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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아! 크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아.”
아무래도 티아늄은 ‘크고 아름다운 것’을 맹신하는 드워프 같았다.
‘이 자식이 진짜···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티아늄! 작아서 휴대하기 편하고 멀리 나가는 활이 명품이잖아요. 그것도 몰라요?”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런데 작은 크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티아늄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혼! 장가가고 싶지 않아요?”
“으, 응?”
“여자, 장가, 결혼! 여자! 에라~ 모르겠다. 살과 뼈가 타오르는 첫날밤!”
첫날밤이란 말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오호~ 살과 뼈가 타오른다고? 그래! 당장 계약하세!”
‘휴우~ 드디어 끝났다.’
“그럼, 지금부터 계약을···”
“이렇게 말할 줄 알았지? 낄낄낄~”
“에, 에?”
‘뭐, 뭐시여!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냐?’
“처음에 어린 친구는 분명 ‘가꿍을 만들어주세요. 아니, 저와 계약을 맺어요.’라고 말했었어. 안 그런가?”
“그, 그런데요?”
“그 말인즉 네가 나에게 가꿍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거야, 부탁 말이지. 그건 드워프인 나에게 가꿍을 의뢰한 것이나 다름없어. 안 그런가?”
“티아늄. 그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팰리스가 급히 해명하려고 했지만 티아늄의 기세를 잠재우질 못했다.
“좋아! 결정했다. 가꿍을 만들어주마. 그것도 공짜로! 그러니 빨리 만드는 방법이나 알려줘.”
“···”
‘이런 염병할 드워프가···’
드워프는 단순하고 다소 멍청한 종족이라고 어느 누가 말했었나!
티아늄은 상당히 피곤하고 영악한 드워프였다.
“가꿍을 만들고 싶지 않나? 지금 내가 너의 부탁을 들어준다잖아! 낄낄낄~”
‘젠장~ 어떻게 하지?’
“너도 잘 알고··· 아니, 아직 어려서 잘 모르려나? 아무튼, 신성한 계약으로 나 같이 젊고 잘 생긴 드워프가 한곳에 얽매이면 얼마나 불쌍하겠니. 작업하는 재미도 없을 테고. 하고 싶은 작업을 내키는 대로 해야 드워프지, 안 그러냐?”
‘젠장, 곧 죽어도 계약은 싫다 이 말인가? 그래, 일단은 각궁부터 해결하고 계약은 차후의 문제다.’
“하아~ 좋아요. 각궁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아참, 나의 허락이 없으면 다른 곳에 전파하지 못하는 조건입니다. 콜?”
“콜! 당연하지. 으흐흐흐~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다른 놈들도 나처럼 고생해 봐야··· 으흐흐흐~”
‘쯧쯧쯧~ 평소 쌓인 게 정말 많았나 보군. 아무튼!’
“각궁을 만들려면 차람나무와 뿔소의 뿔부터 준비··· 아니네요. 제가 준비한 재료와 도구들이 충분하니깐 내일 가져온 후에 설명할게요.”
“오~ 재료까지 준비해 났어? 좋아, 아주 좋아.”
티아늄을 계약으로 얽매는 건 실패했다.
그러나 각궁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선물하자는 당초의 계획은 성공했다.
다음 날, 팰리스는 아지트에 보관했던 재료와 도구들을 잔뜩 가져왔다.
“재료들을 이 따위로 다듬어 놓고선 무슨 활을 만들겠어? 이봐~ 어린 친구. 내가 다시 손봐야겠다.”
“미, 미안해요, 티아늄. 아무튼 각궁을 만들려면 일단···”
팰리스는 각궁을 만드는 방법과 이때의 주의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흐음~ 그런데 팰리스. 활에 뿔조각과 힘줄을 입힌다고 정말 멀리 나갈까?”
예상대로 티아늄이 자꾸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고 직선적인 장궁(Long bow)이 일반적인 가이아대륙이었다. 리커브 보우(recurve bow) 형태의 각궁은 그야말로 파격(破格) 중의 파격이었다.
“속고만 살았어요? 일단 만들어서 테스트해 보면 밝혀질 거잖아요.”
“하긴 뭐··· 그런데 아직도 문제가 여전한데 말이야.”
“문제요? 각궁에 또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많지. 그것도 아주 많아. 내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꿍은 습기에 너무 약할 것 같단 말이야.”
“습기···요?”
“그래, 아교라는 녀석이 본래 습기에 너무 약한 접착제거든? 그리고 가꿍을 사용하기 위해서 시위를 걸어두면 탄성이 떨어질 것이 분명해. 뭐, 하루 이틀 정도야 괜찮겠지. 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시위를 걸어야 하는 건 좀 불편하잖아?”
확실히 티아늄은 장인의 종족이라는 드워프가 맞았다. 각궁의 단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알다시피 각궁은 아교(물고기의 부레)로 뿔조각과 힘줄을 접착시키는 복합궁이다. 그런데 아교는 습기에 매우 약하다.
습기가 높거나 비에 노출되면 접착이 쉬 풀어진다. 게다가 초보자가 막 다루다보면 쉽게 부러지는 등 관리와 보관이 꽤 까다로운 활이었다.
“그건, 그렇겠네요?”
“그렇지? 언제 사용할 줄 알고 가꿍에 시위를 걸어 놓겠어? 갑자기 습격 받으면 가꿍에 시위를 걸다가 당하고 말거다.”
“···”
‘뭐야! 그렇다면 아버지의 선물로 낙제라는 뜻이잖아?’
레인저는 습기가 꽤 높은 숲이 주요 활동무대이고 때로는 이슬을 맞으며 매복도 해야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각궁은 성능이 아주 뛰어나지만 보관과 관리, 사용이 너무 까다로운 활, 계륵(鷄肋)이 될 것만 같았다.
자연, 팰리스가 크게 낙담했다.
“하하하~ 걱정 말게, 젊은 친구. 이래 뵈도 나··· 드워프야, 드워프!”
“그렇다면 혹시··· 해결할 방법을 있나요?”
“당연히 방법이 있지. 일단 아교를 슬라임의 소화액으로 대신하는 거야.”
송아지 크기의 슬라임은 아메바와 같은 무정형(無定形)의 몬스터로 주로 습지에 서식한다. 눈도 귀도 없이 오직 촉각과 사물의 진동으로 주위를 판별하는데 움직임이 아주 느리다.
그래서 아이들도 쉽게 죽일 수는 있지만 자칫 실수했다가는 내부로 빨려 들어가 소화액에 녹아 죽는다.
“슬라임의··· 소화액이요?”
“그렇지. 그걸 적당한 농도로 희석해 발랐다가 중화시키면 아주 유용한 접착제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래··· 요? 정말이겠죠?”
“그렇다니깐?”
“흐음~ 녹였다가 중단시키면 아하~ 그것이 바로 접착제? 그런데 몬스터의 부산물까지 굳이 사용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하하하~ 역시 어린친구가 눈치가 빠르군.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슬라임의 소화액은····”
금속까지 소화시키는 강력한 용해제다.
당연히 차람나무와 뿔조각 그리고 짐승의 힘줄의 접합부를 용해 즉, 녹일 수가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여 접합부에 살짝 발라 용해시켰다가 도중에 중화시키면 차람나무와 뿔 그리고 힘줄의 성질이 각각 반반 섞인 고유한 물질로 굳어진다.
한마디로 복합궁의 성질을 가졌으면서도 복합궁이라고 단정하기 애매한 활로 만들 수가 있다.
“오~ 그럼, 습기문제가 해결되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드워프의 비법으로 특별하게 가공한 마정석까지 덧붙일 생각이다.”
“마정석이라면··· 아하~ 정력이 좋아진다는 그 마정석?”
마정석은 마법사들이 환장한다는 마나석과 유사한 광석으로 몬스터의 심장에서 간혹 발견된다고 한다.
마나석과 달리 마나의 방출이 너무 느린데다 충전되지 않는 단점 때문에 마법사에게 외면 받는다. 그럼에도 마정석은 상당한 가격에 거래되고 이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 헌터까지 존재한다.
특별한 처리 후에 몸에 지니고 다니면 (방출되는 마나 때문에)신체가 건강해지고 이로 인해 정력까지···
흠흠~ 그리고 수련의 성취가 소폭이마나 빨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굳이 왜 사용해요?”
“당연히 성능이 더욱 좋아지니깐 사용하지. 드워프가 특수하게 처리한 다음에 붙이면 가꿍에 복원력이 생기거든? 아트팩트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정석을 갈아 끼우면 복원력이 유지되니깐. 뭐, 일종의 마법물품이 맞긴 하네?”
“마, 마법물품? 자, 잠깐, 복원력이라면···”
“그렇잖아도 약하게 생긴 가꿍인데 흠집이 나면 어떡할 거야? 이리저리 막 사용할 수 있게 고민 좀 했지. 평소에 시위를 걸어놔도 탄성이 떨어지지 않는 건 덤이고.”
“와~ 대박이다. 드워프는 역시 드워프네요?”
“하하하. 이건 뭐, 기본 중의 기본이지. 그런데 팰리스. 지금 뭐하나?”
“뭐하··· 다니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사냥 안 해? 슬라임을 사냥해서 빨리 소화액을 가져와야지.”
“제가요?”
팰리스는 엄지로 자신을 가리켜보였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하리?”
“아, 네에~”
팰리스가 투덜거리며 슬라임을 사냥하러 나갔다.
이렇게 해서 각궁이 겨우 가이아대륙에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팰리스가 어렵사리 슬라임의 소화액을 구해오자 티아늄은 한 달의 작업시간을 요구했다. 그리곤 나중에 다시 찾아올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팰리스는 각궁에 쓸 다량의 화살과 편전으로 사용할 통아 및 애기살까지 함께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확실히 드워프에게 맡기니깐 일이 편해졌군. 그런데 각궁 한 장을 만드는데 한 달씩이나 걸리다니··· 드워프는 본래 장인의 종족이 아니었나? 아무튼···’
“아버지! 기대하세요. 제가 각궁을 선물할게요.”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팰리스.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침 아르펜의 생일이 한 달 조금 넘게 남았는지라 시기도 적당했다.
팰리스는 한 달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자꾸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라 아르펜도, 라이나도 선물 때문이라는 사실을 얼추 눈치 챌 정도였다. 그러나 아들이 준비한 선물이 각궁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각설하고,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다.
“팰리스. 너무 이른 것 같은데, 벌써 나가니?”
“아버 아니, 아빠! 어디 좀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아침 댓바람부터 갑자기··· 아하~ 혹시···”
“혹시 뭐요?”
”아, 아니다. 어험~ 아들아.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단다. 게다가 아직은 3일이나 남았··· 헉!“
아르펜은 생각 없이 말하다가 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네, 네?”
‘혹시 눈치를 채셨나? 뭐, 이젠 상관없겠지?’
“그럼 해지기 전까지 돌아올게요.”
“그, 그래라~ 빨리 일이나 봐라.”
팰리스는 아르펜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티아늄의 동굴로 달려갔다.
그런데 팰리스가 어두운 통로를 지나 막 작업장에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휘익~’
날카롭게 날이 선 도끼날. 팰리스의 목덜미 앞에 딱 멈춰 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라 방어나 회피가 너무 늦고 말았다.
‘번뜩~’
“뭐, 뭐야?”
“팰리스라고 했나? 나에게도 비법을 알려줘! 아니, 허락한다고 말해줘.”
처음에는 티아늄이 왜 이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딘지 살짝 티아늄이 아니었다.
“비법? 허락이요?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
“이런 썅~ 그거 당장 안 치워? 어린 친구는 내 물주··· 아니 친구란 말이다.”
그제야 모습을 보인 티아늄. 확실히 괴드워프는 티아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시추에이션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 귀하다는 드워프가 이곳엔 왜 이리도 득시글거리는가!
“미안하다, 팰리스. 장로에게 인정받으러 갔다가 그만 꼬리가 붙었다.”
이어지는 티아늄의 해명에 의하면 3일 만에 주문한 각궁 외에도 팰리스 사용할 것까지 모두 만들었고 장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향마을에 방문했다고 한다.
뭐, 그럴 속셈으로 여유있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요구했었지만 어쨌든! 각궁을 살핀 장로들은 당연히 만족했고 티아늄이 크게 될 놈이라고 칭찬했단다.
그런데 드워프 마을에는 (예전의 티아늄처럼)장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여러 드워프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티아늄이 각궁을 자랑하고 다녔다. 당연히 그들의 눈이 뒤집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티아늄이 달리 티아늄이었던가!
남 좋은 꼴을 절대 못 보는 드워프였다.
[티아늄 저 자식이··· 쳇~ 나도 장인으로 인정받아 장가를 가야하는데. 그래, 좋다! 몰래 따라가면 저놈이 어쩌겠어?]
[나 혼자만 좋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 드워프는 수가 너무 적어. 종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서는 내가 장가 아니, 이 한 몸을 레이디께 기꺼이 희생··· 흠흠~ 아무튼 저 부러운 새끼의 뒤를 밟자.]
[어쩌고저쩌고 이하 동문]
이런 이유로 또래 7명이 이곳까지 몰래 찾아왔던 것이다.
팰리스는 하도 어이가 없어 한동안 피식거렸다. 그러다 차츰 생각을 달리했다.
여자에게 환장한(?) 저들이라면 분명 미끼를 덥석 물을 것이다.
‘가만~ 오히려 아주 좋은 기회잖아? 드디어 드워프와 계약할 수 있겠다.’
“그럼, 나랑 계약해요. 신성한 계약! 콜?”
팰리스는 주먹을 불끈 쥐곤 드워프의 대답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내가 왜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날 이해시켜봐, 팰리스! 아참, 나는 검은모루족의 젊은 망치, 세륨 블랙스미스라고 한다.”
확실히 세륨은 티아늄의 친구가 맞았다. 속을 뒤집는 발언을 똑같이 지껄여댔다.
“그래, 우리가 왜 너랑 계약해야 하지? 아주 좋은 주먹과 도끼가 있는데 말이야.”
“죽이지는 않을게. 비법만 알려주거나 그도 아니면 티아늄에게 허락한다고만 말해줘.”
‘허허 참~ 이 자식들이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야?’
설득을 가장한 협박!
맥주와 더불어 드워프와 계약하는 데에 자주 오용(誤用)되는 ‘인간의’ 수단이었다.
어째 어른들이 말한 드워프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4. 팰리스의 선물-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