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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드워프가 존재할까? 가이아 대륙에 실제로 살고 있는지, 만약 산다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이날부터 팰리스는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은근슬쩍 물어 드워프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 * *
[드워프? 당연히 살고 있지. 마가렛 공주와 일곱 드워프 이야기를 모르니?]
[동화가 아니냐고? 쳇~ 우리 토머스는 아직도 믿는 눈치던데. 우리 애는 힘도 세고 검도 제법 다루니깐 뭐, 상관은 없겠지? 졸라 강하니깐! 아무튼 그 이야기는 당연히 동화고 말고. 그러나 드워프는 실제로 살고 있단다.]
[실제로 본적이 있냐고? 당연히 봤지. 이래 뵈도 아빠가 영지에서 꽤 잘 나가거든?]
[어디서 봤냐고? 당연히 위대한 영주님의 대장간이지. 위대하신 영주님이 글쎄 상(償)으로 아주 좋은 칼을 하사··· 이 녀석이 바로··· 드워프 노예가 아참~ 일하는 꼴은 딱 노예인데 사실은 노예가 아니었던가? 아무튼 그 대단하다는 드워프가 만들어서 이 칼이··· 어, 어? 어디 가니.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아, 아들아 제발~]
[쳇~ 우리 피리온을 도와주러온 게 아니었구나? 앞으로 뭐가 되려는지 쯧쯧쯧~ 배우라는 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글을 배운다고 글쎄, 나에게 책을 구해달라잖니? 어휴~ 아참, 내성(內城)의 대장간에서 일하고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단다. 영지의 아주 중요한 시설이고 드워프가 일하는 곳이니깐.]
일주일간 정보를 모은 결과 드워프는 가이아에 실제로 존재했다.
소설처럼 작고 땅딸만한 주제에 손재주가 무척 좋은 종족이었다.
황실과 영주들이 직접 드워프를 부려 물건들을 만들기도, 어떤 드워프는 수도에서 대장간을 직접 운영한단다.
초대황제의 이종족 노예금지법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 때문에 노예가 아닌 계약을 맺어 생산한다고 한다.
아참, 가이아에는 엘프라는 종족도 존재했다.
소설처럼 쭉쭉빵빵한 몸매에 얼굴도 아주 잘생겼단다.
아무튼, 노예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위해 일하는 드워프는 꽤 드물었다.
과거에 저질렀던 이종족 노예사냥으로 인간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이온 영지에 드워프가 일하는 이유는 상당히 특이했다.
황제가 충성스런 파이온 백작을 위해 황실과 계약한 드워프 중의 하나를 설득했기 때문이란다.
참고로, 이 시대의 대장간은 일종의 ‘군사시설’이었다.
그런 군사시설에 소중한 드워프까지 일하는 곳. 당연히 팰리스같은 잡상인(?)이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고 설혹, 접촉했다손 치더라도 들키는 순간 모가지가 뎅강 잘려나간다.
아무리 총애하는 레인저 캡틴의 아들이라도···
팰리스는 이런 소소한 정보 외에도 단순무식 토머스와 꾀돌이 피리온이 각각 무력과 지식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세상을 홀로 걸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팰리스는 토머스와 피리온을 꼬드겨 동료 겸 수하로 삼을··· 잠시 드워프 대신 이런 생각을 하던 참에 매우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들었다.
[아참~ 드워프가 동쪽 숲을 다녀간 것 같더라. 뭐, 어떻게 알았냐고? 이 아저씨가 누구냐? 레인저 중에서 가장 강한 레인저··· 아, 아니 네 아버지만 빼고··· 흠흠~ 방금 그거··· 캡틴에게 비밀인거, 알지? 아무튼 이 몸께서 드워프의 흔적을 발견했지. 그곳이 어디냐면···]
검은 인영. 자신의 추리가 옳았다.
그 싸가지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아주 귀중한 일꾼이자 ‘시다바리’로 통하는 드워프였다.
“그렇다면 동쪽 숲을 뒤져야 하나?”
각궁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쪽 숲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위험한 곳이다.
사실 동쪽 숲을 비롯한 사냥터 대부분은 레인저의 활동으로 안전했다.
그러나 2년 전, 그날의 사건처럼 언제든 몬스터와 조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가이아대륙이었다.
“괜찮지··· 않을까? 그래! 괜찮을 거야.”
팰리스는 발목과 허리에 각각 대거와 (어린이용)롱소드 그리고 오른손에 든 (어린이용)장궁과 화살을 점검하며 용기를 다졌다.
비록 6살 어린 아이라지만 가이아대륙, 그것도 그린 포레스트를 수호하는 레인저의 아들이었다.
[그래, 오크는 이해한다. 아주 쬐끔 세니깐! 그런데 고블린에게 쫓겨 도망쳤다고?]
[캡틴! 이거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
다소 이른 나이지만 4살 반의 팰리스와 또래의 아이들은 (어린이용)장궁을 쏘고 검을 수련하다 숲을 내달려야 했다.
이런 과격한 결정에 라이나를 비롯한 어머니들이 ‘어린 자식을 잡는다며’ 격렬하게 항의···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좀 불쌍하지만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이들의 훈련은 이렇게 자위차원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살짝 변질되었다.
“팰리스! 너는 나, 캡틴의 아들이다. 반드시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알았나?”
이때의 아르펜은 멍청해 보이는 평소의 그 ‘아들바보’가 아니었다.
매우 엄격하고도 단호한 교관이었다.
“당연하죠, 아버지! 저를 믿으세요. 그럼, 시작할까요?”
단전을 만들고 마나의 활용법까지 깨우친 팰리스는 각종 훈련과 시험에 자신 있었다.
실제로도 또래와 형들보다 앞자리에 섰다.
“대가리가 안 되어 요령이 없다고? 괜찮아, 토머스! 그냥 몸으로 때우면 돼, 알았니?”
“당연하지, 아빠! 다른 건 몰라도 몸으로 때우는 건 자신 있어. 헤헤헤~”
‘휙,’
‘뽀각~’
‘휙~’
‘뽀각~’
토머스의 검격에 잘려나가는 대신 부서져버린 나뭇가지. 단순무식 토머스 네의 사정이었다.
“아이고 이 화상아~ 평민 주제에 문자가 뭐고 책이 웬 말이냐. 도대체 그것들을 배워서 어디에 써? 한 대라도 더 화살을 날리고 검을 휘둘러야지.”
“아빠, 미래에는 힘과 폭력이 사라져요. 그 대신 지식과 정보가 세상을 지배하니깐 반드시 문자를···”
“이 새끼가 정말~ 어디서 자꾸 문자질이야?”
“아빠, 솔직히 말해 봐요. 술내기에 져서 화난 거, 맞죠?”
“뭐, 뭐? 그래, 내기에 져서 화가 났다, 이 자식아~ 앞으로 사라진다는 그 힘과 폭력 맛 좀 볼텨? 에잇~ 죽어라, 이 새꺄~”
‘으아아악~ 살려 줘요.’
꾀돌이 피리온 네의 사정. 어른들 사이에 이상한 경쟁이 붙고 말았다.
가이아는 상당히 위험한 세상이었지만 그린 포레스트는 레인저의 활동으로 매우 평화로웠다.
달리 말하면 상당히 심심했다.
그 때문에 어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훈련시켰고 차츰 치열한 경쟁(으로 쓰지만 술내기로 해석한다.)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각설하고, 팰리스는 마나를 이용하면서부터 일신의 무력을 레인저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몸 자체가 어려서 그렇지 현재의 무장이라면 (병사 2명의 무력에 필적한다는)오크 1마리쯤은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였다. 가이아가 원체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영웅이 될 사람이다. 좋아~ 결심했어.”
다시금 무장을 점검한 팰리스는 어른들 몰래 동쪽 숲으로 진입했다.
‘꿀꺽~’
‘긴장! 긴장하자, 팰리스.’
역시 수색초반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동하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즉각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움직이다가 몸을 굳히기를 10여 차례. 주위의 작은 변화에도 신경을 집중했다.
이런 상태로 1시간가량을 수색했다.
솔직히 좀 피곤한 작업이었다.
‘뽀롱, 뽀롱~ 뽀로로롱~’
‘꼬롱, 꼬롱~ 꼬로로롱~’
엄중한 경계가 무색하게도 새들이 평화롭게 노래했다.
가끔은 사슴이 풀을 뜯다가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레인저의 활발한 순찰 덕분에 이곳이 이리도 평화로운 것이리라.
팰리스는 살짝 긴장의 끈을 풀어놓고 드워프의 흔적이 발견된 곳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흔적이 사라졌나? 아마도 비바람에 씻겼나보군.’
안타깝게도 레인저 대원이 말한 흔적이 지워져버렸지만 이곳 부근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어디에 있느냐. 드워프야~ 빨리 모습을 보여라.’
팰리스가 속으로 드워프를 노래하며 안달했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쉽게 띌 녀석이 아니었다.
해질녘까지 수색했으나 드워프는커녕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젠장! 실패다. 그러나 난, 의지의 한국인이다. 내일 다시 도전하자.”
팰리스가 굳게 다짐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내일은 자꾸 또 다른 ‘내일’이 되어 10일이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래, 무작정 수색한다고 드워프를 찾을 수는 없어.”
그렇다. 초보자(?)의 눈에 쉽사리 발각될 드워프였다면 레인저가 먼저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충성스런 레인저답게 위대한 영주님과 계약하라고 귀찮게 따라다니며 설득(을 빙자한 협박도 일부 포함)했을 것이다.
“생각하자, 팰리스. 내가 만약 드워프라면 어떻게 행동할 지를···”
팰리스는 드워프의 입장으로 추리하기 시작했다.
드워프는 장인의 종족이고 그래서 자신이 사용할 대장간부터 갖출 것이다.
그린 포레스터는 영주 전용의 사냥터다.
영주성 부근에 여러 광산들이 채광되었기에 굳이 개발하지 않았을 뿐, 이곳에는 대장간에 필요한 석탄과 철광석이 심심찮게 널려있었다.
“대장간이면 불과 고로(高爐)! 그래, 불을 피웠을 테니 연기를 찾아보자.”
팰리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울창한 숲이라 시야가 극히 제한되었다. 게다가 안개가 자주 끼는 숲이다 보니 대장간으로 추정되는 연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소설에서는 이럴 때···”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우연찮게 굴려 떨어진 절벽 또는 동굴이 없을 지형인데도 이상하게도 딱 마주치는 동굴에서 각종 기연과 조우한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이 아니었다.
불확실한 기연을 바라고 몬스터를 찾아 도발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하는데···”
팰리스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자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그래서 잠시 풀밭에 앉아서 고민하기로 했다.
피곤했는지 자리에 앉았더니 괜스레 눕고 싶어졌다.
몸을 눕히자 자꾸 졸음이···
‘뭐야!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하암~ 이러면 안 되지. 여기는 아주 위험한 숲이니깐.”
아무리 평화로워도 이리 방심해선 안 된다.
팰리스가 졸음을 쫓기 위해 (고개를 흔들려고)머리를 들어 올리려는 바로 그때였다.
‘···저벅, 저벅···’
발자국소리로 추정되는 미세한 소음이 지면으로 전달되었다.
순간, 졸음이 확 달아났다. 팰리스는 재빨리 몸을 숨기곤 드워프 아니, 발자국의 정체를 기다렸다.
긴장된 순간!
“···이번 주··· 활쏘기··· 술내기···”
“···약골 피리온··· 토머스··· 어림없다.”
‘쳇~ 아저씨들 이었군. 괜히 기대했잖아?’
레인저의 순찰. 자경대원들이 멀찍한 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어, 어? 그래, 소리! 소리는 멀리까지 전해진다, 지면으로!’
그렇다. 드워프는 장인의 종족이지만 대지의 종족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리는 지면으로 멀리 전달된다.
단서를 찾은 팰리스는 땅바닥에 귀를 대고 동쪽 숲 이곳저곳을 수색했다.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러나 추적방법이 옳았는지 3일 만에 유력한 단서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땅!··· 따땅~···’
아주 희미한 소리였지만 망치질 소리가 확실했다.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라면 대장간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숲속에 대장간을 차릴 인간은 없다. 고로!
“드, 드워프! 드디어 찾았다!”
팰리스가 오른손을 불끈 쥐곤 허공에 주먹질했다.
확실한 단서를 찾았으니 이제부터 거리를 좁혀 가면 된다.
드워프가 항상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서 이것 또한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어쨌든 일주일 만에 어찌어찌 드워프가 사는 동굴입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팰리스가 이용하는 아지트처럼 드워프도 관목을 옮겨 심어 입구를 교묘하게 위장해 놨다.
그러나 ‘소리’라는 확실한 단서 때문에 팰리스의 촉수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드워프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좀처럼 인간을 믿지 않는 드워프라고 한다. 어떻게든 ‘시다바리’로 꼬드겨 아니, 계약해야 한다.
“하하하~ 어떻게 계약하느냐고? 문제없어. 드워프라면 맥주! 맥주라면 드워프잖아?”
소설 속의 드워프는 항상 맥주를 갈구했다.
어른들도 말하기를 드워프는 고된 작업 후에 마시는 맥주를 아주 좋아했고 그래서 그 점을 ‘아주 잘’ 이용하여 드워프와 계약한다고 했다.
순간, 조용한 숲에 음흉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으흐흐흐~맥주는 내가 구해줄게. 그러니 드워프 넌··· 으흐흐흐~”
‘내 전용 시다바리가 되 거라.’
팰리스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드워프가 사는 동굴로 들어갔다.
입구 초입에는 횃불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내부로 깊이 들어가자 천정 곳곳에 발광석이 박혀있었다.
다소 어두웠지만 사물을 구별할 정도는 되었다.
‘땅! 땅! 따땅~··’
확실히 동굴 안으로 진입하자 망치질 소리가 제대로 들려왔다.
아마도 입구를 위장한 관목과 덤불이 쇳소리를 크게 줄여준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
“아차~ 갑자기 인간이 나타나면 깜짝 놀랄지도 몰라. 재수가 없으면 무턱대고 공격하겠지?”
그럴 것이다. 그래서 팰리스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걸어 들어갔다.
밑으로 향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들어가자 마침내 드워프의 작업장이 나타났다.
고로의 석탄 때문에 내부가 무척 밝았다.
그런데 팰리스의 배려가 무색하게도 드워프는 작업에 너무 열중했다.
이곳에 인간이 나타났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깜짝 놀라서 공격하는 거 아냐?’
“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와요.”
‘획~’
팰리스의 인사말에 그제야 드워프가 고개를 획 돌렸다.
“····새롭지만··· 낡은··· 자?”
무심한 드워프가 또 이상한 말을 흘렸다.
4. 팰리스의 선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