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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탄생
[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는··· 서, 설마! 이곳이··· 임산부의··· 자궁 속?]
칠성은 가난해 삶이 힘들었지만 취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가난으로 인해 선택한 취미. 그건 도서대여점에서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을 빌려 읽은 것이었다.
술 한번 안마시면 한 달의 비용이 빠졌고 담배 한 갑을 안 피워면 일주일이 즐거운 몹시도 저렴한 취미였다.
칠성이 읽은 소설 중에 간혹 등장하는 설정이 있는데, 전생을 기억하는 현대인이 중원이나 판타지 세상의 갓난아기로 다시 태어난다는 설정이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죽었던 칠성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 당시의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몸이 현재 임산부의 자궁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이렇게 가정한다면 지금의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맞아. 지금의 내가 태아의 상태라면! 모두 들어맞는다. 그래, ‘CSI’ 열한 번째 시즌이었나? 아무튼 거시기 7번째 초입이랑 ‘노란거탑’에서 아홉 번째에 나왔던 심장 소리가 바로 지금과 똑같이 들렸었다.]
그리고 바람소리 같기도, 물이 흐르는 소리 같기도 했던 소음의 정체는 혈액이 혈관 속에서 흐를 때에 발생하는 소리인 것 같았다.
간간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이유. 아마도 그건 임산부가 흥분했거나 힘겨운 노동을 할 때 심장이 강하고 빠르게 뛰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음이 점점 커졌던 이유는 바로 태아가 성장하며 청각기관이 생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의 현재의 칠성이 전생을 기억한 태아라면 지금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칠성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괴이한 소리는 분명 ‘CSI’와 ‘노란거탑’이라는 드라마에서 (CG로)보고 들었던 바로 그 때의···
응? 그런데 잠깐!
불현듯 뭔가 이상한 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잠깐!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 있지? 내가 잘 보던 ‘테레비’도 아니었는데. ‘아현동 마님’이라면 또 모를까.]
그랬다. 문제의 장면은 숨죽이며 시청했던 야동 아니, ‘아현동 마님’도 아닌 그저 그런 재미없는(?) 드라마였다. TV에 정신이 팔린 손자나 증손자들이 즐겨보던, 그래서 혀를 차며 슬쩍 보고 지나쳤던 드라마였을 뿐이었다.
알다시피 칠성은 공부할 머리가 아니었다. 어떻게 그것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느 대목에서 어떤 내용이 나왔다는 식의 아주 사소한 내용까지도 기억한다는 건 상당히 괴이한 일이었다.
[이상해. 내가 그것들을 모조리 기억한다니···]
그렇다. 정상적인 사람의 두뇌로는 절대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럼, 새로운 내가(태아) 정상이 아니라는 말인가? 거~ 있잖아. 그것이 뭐였더라? 아~ 맞다, 서번트 증후군! 내가 그것 같은 자폐···]
자폐증의 가능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으, 응? 머시여. 니기미 씨팔 지랄 염병할 일이 있나.]
자폐증? 얼마나 놀랐는지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과 서번트증후군 같은 아주 생소한 용어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내가··· 자폐아라니! 다시 태어날 내가 자폐아라니! 으아아악~ 뭐여, 시방! 시방 장난하는 겨? 이런 씨발 놈들아. 배창시를 째서 창자로 줄넘기하기 전에 빨리 물러놔! 이것은 명백한 무효다, 무효!]
분기탱천한 칠성이 고함을 지르기 위해 크게 입을 열고 소리쳤다.
그러나 태아의 상태였던 칠성은 양수(羊水) 속에서 입술을 아주 귀엽게 뻐끔거렸을 뿐이다.
[아무리 대갈통이 좋고 특출 나면 무얼 해! 자폐아인데. 새로 태어나는 내가 자폐아라니. 그래, 이것은 무효다, 무효! 신(神)이 있으면 똑바로 들어보쇼, 잉?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드시 무효로 만들어 놓으··· 으, 응? 그런데 가만! 거시기가 쪼까 껄쩍지근하네.]
가만히 생각해보니 태아는 천재적인 암기력을 지녔다는 자폐증, 서번트 증후군과 관련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 문제가 된 정보들은 태아로 지내며 얻었던 정보들이 결코 아니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기억하는 정보들은 죄다 한국인이자 칠성으로 살았던 과거의 것이다.
그가 슬쩍 보고 지나쳤던 아주 사소한 정보들이었다.
그러므로 자폐증이라지만 비정상적인 암기력을 지녔다는 서번트 증후군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입이 방정이라고, 신(神)까지 들먹이며 무효가 어쩌고 방정을 떨어댔다.
자칫하다가는 환생이 취소될 수도 있다!
그가 처한 사정이 워낙 특별하다 보니 괜스레 불안해졌다. 신이 정말로 무효로 만들기 전에 빨리 수습해야 한다.
[아, 아니 그것이··· 제가 신님께 욕한 것이 아니라··· 그, 그래요~ 무효가 바로 무효랑께요? 신이 계시다면 그냥 이대로 가만 놔두쇼, 잉?]
98년을 아주 평범하게 살았던 김칠성. 당연하게도 쓸데없는 오기나 자존심이 높지 않았다.
[헤헤헤~ 취소하는 거··· 아니지요? 꿀꺽~]
한동안 기다려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새로운 인생 즉, 전생이 취소될 위험성은 없는 것 같았다.
[휴우~ 사사구통으로 나가리가 될 뻔 했구먼. 그나저나 내 대갈통은 내가 더 잘 아는데····]
생전에 머리가 그리 뛰어나지 못했던 칠성이었다. 지난 생에 보고 들었던 정보들은 당연하게도 아주 깨끗하게 잊고 살았었다. 아마도 잠재의식 같은 뇌의 가장 구석진 곳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아주 사소한 내용까지 모두 기억한다면 사람이 어찌 제 정신을 유지하겠는가!
안 그런가?
[뭐, 아니면 말고! 누구들 맹키로··· 그래 안 그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나에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서도···]
태아 상태인 그가 지난 생(生)의 사소한 정보까지 모두 기억한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해. 솔찬히 이상해. 이러다가 내가 잘못 되는 거···아니겠지? 정말···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아니, 발상을 전환하여 생각해 보면 칠성에게 불리한 점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 태어나는 자신에게 매우 유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인생의 매우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생을 기억한 채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도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이는 분명 신(神)과 같은 존재가 안배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새로운 생(生)은 그야말로···
[맞다, 맞아. 거~ 있잖아.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 거기에서 보면 지구의 지식으로 종이와 염전을 만들어 세력을 키우잖아, 그려 안 그려? 그리고 지구의 내공심법으로 소드마스터가 되어 막 날아다니고··· 안 그런 가?]
그리고 그랬던 그들 대부분은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위대한 영웅이 되거나 왕국이나 제국을 건국하곤 했었다.
아니면 가난한 촌부(村夫)의 자식으로 태어나지만 우연찮게도 뛰어난 근골을 알아 본 9파 5방의 실력자가 장문제자로 거둔다. 물론, 엄청난 무공의 전수는 기본이고 끝내는 2갑자에 달하는 내공까지 물려주고 죽거나···
평범한 한국인으로 죽어가던 칠성이 바라고 바랐던 바로 그런 특별한 삶이었다.
[오오~ 그럼, 내가 비운의 황태자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힘없는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려나? 예전에 읽었던 소설처럼.]
칠성이 즐겨보던 소설에서는 대체로 그런 설정으로 시작했었다.
지구의 기억과 지식을 가진 채로 전생한 주인공 대부분은 위기한 처한 제국의 황태자 또는 작고 가난한 영주의 맏아들로 태어난다.
그러나 이런 불운(不運)은 초반의 설정일 뿐이다.
중반부터는 전생의 지식을 활용하여 세력을 키운다. 군사력을 갖춘 후에는 대단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는 일은 당연지사(當然之事). 경우에 따라서는 마왕까지 물리치고 세상을 구원한다.
[오~ 대박이다! 정말 대박이야. 거시기가 정말 거시기하네, 잉~]
발상을 전환하자 평범한 칠성에게 엄청난 행운으로 다가왔다.
(어느 곳, 어떤 시기에 태어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자신이 가진 지구의 정보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생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황제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다.
[부처님, 하느님, 천지신명님, 알라님 그리고 세상의 온갖 잡스런··· 아, 아니 신령스런 신(神)님들 캄사! 캄사하구만요. 제가 다시 태어나면 반드시 뛰어난 영웅이 되겠습니다요, 으흐흐흐~]
이전까지는 비좁고 어두운 자궁 속이 한없이 답답하고 불안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생각을 달리하자 온 몸을 옥좨는 주변 환경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아암~ 당연하지. 사람의 배창시 속이 원래 이렇잖아? 그려 안 그려? 뭐, 아니면 말고. 그런데 그것이 정말··· 되려나?]
불현듯 소설 중에서 암계에 걸려 죽었던 중원의 내공고수가 다시 환생할 때에 뱃속에서부터 내공을 수련했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지난 생의 기억을 가진 전직(?) 내공고수는 그 때문에 갓난아기 주제에 2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보유한 괴물로 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판타지 역사상 최강의 먼치킨으로 성장한다.
[배창시 속에 있을 때는 거 뭐였더라? 아~ 그래, 생사현관! 아무튼 그 생사현관이랑 백회혈인가 머시긴가가 막히지 않았다던디··· 그래서 내공심법으로 운기(運氣)를 하면 막 잘 된다고 했으니까···]
그렇다. 태아의 몸은 혈도(穴道)가 굳어지지 않아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대로(大路)와 같은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설정으로 생(生)을 시작한 내공고수는 자신과 부하들에게 내공을 수련시키고 끝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문제는 칠성이 기(氣)나 마나가 없는 세상을 살았다는 점이다. 당연히 태허무령심법 같은 내공심법이나 무슨 특별한 무공도 알지 못했다.
뭐, 억지로 가져다 붙인다면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 같은 (기초적이지만 부작용이 거의 없는)토납법(吐納法)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것도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무협지를 보면 쌔고 쌘 것이 단전이고 거시긴데 당연히 알고 있지. 설마 내가 모르겠어?]
아쉽지만 이것으로 됐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토납법으로 호흡을 하여 영웅의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면 된다.
[내가 여기에서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안 그래? 어차피 부작용도 없다니까 뭐 잘 안 되어도 내가 손해날 일은 없겠지? 아무튼 토납법이라고 했지? 단전까지 만들어지진 않겠지만 서도··· 뭐, 그것이나 함 해볼까나?]
말이 쉬워 운기행공(運氣行功)이지만 부작용이 없어 칠성에게는 밑져야 본전일 것이다.
그래서 칠성은 소설속의 내공고수가 행했던 것처럼 (상식으로 알고 있던)토납법대로 호흡을 시도했다.
‘후우읍~ 후우~ 후우읍~ 후우~’
운기행공(運氣行功)! 운기행공(運氣行功)?
현재의 칠성은 태아였다. 당연히 양수 속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다. 칠성이 의식적으로 호흡하자 입안으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氣)나 마나가 포함된)공기가 아닌 양수가 흘러들었다. 평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염병!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인데··· 가만, 내가 지금··· 물먹었나?]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이, 이를··· 어째? 우웩~ 케켁~ 켁켁켁~]
방금 전까지는 이런 방식의 호흡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었다. 양수(액체)를 들이마시는 행위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양수(羊水) 즉, 액체를 들이켰다고 의식하자 괜스레 숨이 막히고 극심한 거부감이 들었다.
운기행공(運氣行功)으로 단전을 형성하기는커녕 정신적인 문제로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판이었다. 실제로도 지레 겁먹고 당황하자 한창 발달중인 태아의 신체에도 이상이 발생했다.
갑자기 칠성(태아)이 몸을 바르르 떨며 경련했다.
[큭! 아이고, 사람 잡겠네. 사람이라면 숨을 쉬어야 하는데···]
태아의 상태가 급박해지자 산모의 몸에도 조금씩 이상이 발생했다.
‘구궁! 구궁! 쿵! 쿵, 쿠쿵! 쿵쾅, 쿵쾅, 쿵쾅쾅~’
‘쏴아, 쏴아아아~'
'꼴꼴꼴····’
“Γμ! фе ?Оя ?···”
산모의 심장소리가 거칠어지고 혈액이 혈관을 달리는 소음도 커져갔다.
알 수 없는 고함소리까지 작게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산모의 가족들에게도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아, 안 돼! 침착해라, 김칠성! 내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데. 여기에서 나가리되면 어쩔 것이야?]
그렇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가 있다. 토납법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수를 들이킨다는 점을 의식하기 전까지는 아주 멀쩡했다.
98년 동안 공기만을 호흡했던 경험과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아주 일반적인 상식 때문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고 그래서 몸에도 이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괜찮아! 아기들은 원래 이런 데서 자라잖아. 안 그려? 침착해! 침착해라, 김칠성!]
칠성은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태아의 몸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칠성이 자라나는 그릇, 당황한 산모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친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뱃속의 아기가··· 설마, 사산(死産)?
[아, 아이고 큰일 났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무이~ 나 죽소! 제발 정신 좀 챙기쇼, 잉? 그래야 내가 살고 어무이도 같이 살지요, 안 그렇소?]
솔직히 모친의 안위보다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다시 죽는 것이 더욱 억울했다.
[어무이 자식이 위대한 영웅이 될 팔자인데 어무이가 이러면 쓰겠소? 안 그렇소? 제발 좀···]
이러다간 영웅은커녕 태어나지도 못하고 뱃속에서 사산될 것이다.
칠성은 새로운(?) 모친의 안위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그러나 산모가 패닉에 빠졌는지 좀처럼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연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고, 정말 폭폭하네~잉! 어무이 정말 이럴 것이오? 싸게 싸게 정신줄 좀 챙기라니까요? 으~ 답답해라.]
산모의 상태가 악화되자 탯줄을 통해 공급되는 영양과 산소(혈액 속의 산소포화도)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영양공급은 둘째 치고 당장 산소부족으로 질식할 판이었다.
[헉헉~ 제발··· 어무이 제발 좀···]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산모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산모는 현재 死産(사산)의 징조라는 하혈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칠성의 상태도 더욱 악화되어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래,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된다. 이러면 내가 죽어. 뭔가 거시기한 법을 찾아야겠는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 위기를 절감한 칠성은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싸게 싸게 함 해보드라고!]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 그건 전직(?) 내공고수의 사례였다.
2. 어떤 탄생- 2(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