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35화>
하늘에 기원하고 눈을 뜬 다음 날.
천문석은 긴 꿈을 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작은 분명히 기억났다.
‘특급 헌터는 동료를 버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외침과 함께 시작된 꿈은, 잠에서 깬 후에도 입가에 미소가 남아 있고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라도 만났던 건가?”
어째선지 소파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냉장고 앞에 앉아 요플레 뚜껑을 핥고 있는 꼬맹이가 보일 것만 같았다.
“그럼 확인해 봐야지.”
천문석은 소파 너머 부엌을 보려는 순간 깨달았다.
“어, 내가 왜 여기서 잤지?”
특급 헌터의 박스성, 천공탑에 반쯤 몸을 넣고 잠들어 있었다.
“……!”
알 수 없는 직감에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저릿저릿 전신을 달리는 통증!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뼈마디가 욱신욱신 시렸다!
“이거 뭐야? 몸이 왜 이래?!”
철수 형과 방호복을 입고 10시간 동안 화공 공장 하수관 찌꺼기를 긁어냈을 때 찾아온 지옥의 근육통. 그것의 3배 이상이다!
‘으어악-’
신음을 안으로 삼키며 간신히 허리를 펴는 순간 보였다.
박스성에 붙어 있는 명패!
[특급 헌터의 천공탑]
분명 뒤집어 붙여 놓은 명패가 제대로 붙어 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냉장고로 고개를 돌렸다.
“특급 헌터?!”
그러나 냉장고 앞에 요플레 뚜껑을 핥는 꼬맹이는 없었다.
‘혹시 모른다!’
쿵, 쿵, 뚝, 꺽-
천문석은 삐걱거리는 양철 로봇처럼 거실, 베란다, 부엌, 화장실을 걸으며 외쳤다.
“특급 헌터!”
“야, 숨은 거 들켰어! 나와!”
“천공탑 명패 제대로 붙인 거 다 걸렸어!”
“지금 나오면 요플레 매일 2개씩 보장할게!”
“특별히 기름에 튀긴 계란프라이! 2개 추가!”
……
베란다 선반, 인디언 천막, 박스성 뒤, 부엌 찬장, 옷장, 침대 아래, 서랍 뒤…….
온갖 장소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꼬맹이는 없었다.
천공탑과 티피, 아수라 도장이 찍힌 장식장, 거복이가 햇볕을 쬐던 돌, 흔적들만이 남아 있었다.
“…….”
어느새 천문석이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빠 일어났어?”
이때 현관문이 열리고 류세연이 들어왔다.
“세연이? 너 선생님 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류세연은 손에 쥔 종량제 봉투를 흔들었다.
“지금 벌써 점심때야. 점심 안 먹었지? 얼른 씻고 나와. 아, 요플레 먹어야지. 오빠도 요플레 먹을 거지?”
거실을 가로질러 냉장고를 여는 순간 터진 짧은 탄성.
“어, 냉장고에 요플레 하나도 없는데? 오빠가 다 먹은 거야?”
“그럴 리가 어제 천문하기 전에 2줄 사다 놨는데.”
“천문?”
“그런 게 있어.”
적당히 말을 흘리고 다가간 냉장고 안.
류세연의 말대로 요플레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이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촉!
‘옥탑방에 없다면 어디에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몸이 돌아가고 옥상 창문 너머로 보였다.
수많은 증거가!
‘어째서 눈치채지 못했을까?!’
“오빠?”
“오빠 왜 그래?”
천문석은 홀린 듯이 거실을 가로질러 창문에 섰다.
이 순간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보였다.
-흙먼지 하나 없이 선명한 경주 트랙.
-아무도 치우지 않았는데 여전히 깔끔한 평상.
-옥탑방 벽 앞에 줄줄이 놓여 있는 열매가 매달린 수박 토마토 화분.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는데도 생생한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들.
‘특급 헌터가 왔다.’
지금 당장 특급 헌터가 철문을 열고 뛰어들어와 외쳐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옥상.
천문석은 질문했다.
“세연아. 너 혹시 옥상 청소했니?”
“응? 나 요새 아카데미 신입생 면접 보느라 바빠서 거의 못 내려왔잖아?”
요플레가 사라진 냉장고.
완벽하게 관리된 옥상.
너무나 바쁜 류세연.
세 가지 확신이 더해지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감고 마법의 문장을 외쳤다.
“오늘 점심은 1등급 한우 등심이야! 특급 헌터 밥 먹자!”
눈을 감은 채로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1, 2, 3…….’
“오빠?”
‘33, 34, 35…….’
“지금 뭐 하는 거야?”
‘57, 58, 59, 60…….’
“오빠! 오빠!!”
번쩍 눈을 뜨고 옥상을 바라봤다.
철문이 열리지도, 환호성이 들려오지도 않았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빠. 달달한 커피 마시자.”
“그래…….”
천문석은 몸을 돌렸고.
류세연은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달달한 커피를 손에 쥐고 나란히 소파에 앉아 대화했다.
세연은 평소보다 더 크게 말하고, 더 환하게 웃었다.
천문석도 평소보다 더 크게 대답하고, 과장되게 놀랐다.
“나 지구 평면설 주장하는 사람 처음 봤잖아. 그것도 수험생이! 면접관 앞에서 주장하더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설마 붙은 거야?!”
“떨어졌으면 미안해서 이런 이야기 못 하지. 논리 전개 과정이 독창적이더라고!”
“얼마나 독창적이었는데?”
“특급 헌터만큼?!”
류세연이 말하고 아차! 하는 순간.
띵동-
벨 소리가 울렸다.
“어? 택배 온 건가?!”
반색한 세연은 다급히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여는 순간 얼어붙었다.
“야, 안 그래도 돼. 나 하늘님이랑 해결 봤어. 괜찮으니까 와서 앉아.”
“…….”
“세연? 류세연? 왜 그래?!”
천문석은 현관으로 걸어갔다.
“야, 뭐야? 너 왜……?”
그리고 세연과 마찬가지로 얼어붙었다.
“오빠. 평상 위에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어, 나도 보인다.”
평상 위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고, 상 2개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상 한가운데에는 불판을 올린 버너와 깨끗하게 씻은 수박 방울토마토가 쌓인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오빠? 이거 설마?!”
“……!”
대답은 필요 없었다.
평상에 깔린 신문지, 2개를 붙여 놓은 상, 불판을 올린 버너!
누구도 차마 손대지 못한 특급 헌터가 기르던 수박 방울토마토까지!
고기 구워 먹기 전 언제나 했던 준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입가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천문석과 류세연은 동시에 외쳤다.
“특급 헌터! 얼른 나와!”
“한우 등심 먹어야지? 우리 둘이 다 먹는다?!”
“야, 준비까지 다 해 놓고 왜 안 나와!?”
“특급 헌터 어디에 있는 거야?”
……
특급 헌터를 찾아 옥상을 달리며 외칠 때 세연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빠! 여기 불판에 쪽지 붙어 있어!”
“쪽지?!”
한달음에 달려가 확인한 불판에는 무언가에서 찢어 낸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최고급 한우 꽃등심!]
크레파스로 쓴 삐뚤빼뚤한 글자.
[02-xxx-xxxx]
반사적으로 뒤집자 나온 전화번호.
“이거?”
“설마?!”
천문석은 알 수 없는 직감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딸깍-
-네 장민입니다.
“대표님?”
-알바 씨? 대표실 전화로 왜?
‘장강 유통 장민 대표실 전화!’
천문석은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말했다.
“대표님. 지금 옥탑방에 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알바 씨 옥탑방에요? 무슨 일로?
“확실한 건 아닌데…… 특급 헌터와 관련된 일인 것 같습니다.”
-……네? 특급 헌터요……?
짧은 침묵 끝에 돌아온 떨리는 목소리.
천문석은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상한 종이쪽지를 발견했는데 뒤에 이 전화번호가. 앞에는 글자가 적혀 있네요. 잠시만 세연이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서 보내겠습니다.”
[최고급 한우 꽃등심!]
[02-xxx-xxxx]
사진을 보내자마자 다급한 외침이 돌아왔다.
-바로 갈게요!
그리고 전화가 끊어지고 20분도 지나지 않아, 장민 대표와 장철 헌터가 함께 옥상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종이! 사진 찍은 그 종이 어디에?!”
“여기…….”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종이를 받는 순간.
장민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주룩 눈물을 흘렸다.
“맞아. 분명해. 특급 헌터야……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니…….”
“언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류세연은 비틀거리는 장민을 부축했다.
“아니 괜찮아. 여기서 들을게.”
장민이 고개를 젓는 순간.
장철 헌터가 앞으로 나섰다.
“여기 최고급 한우 꽃등심 세트, 백화점 들러서 사 왔어! 혹시 몰라서 세린이는 북한산 만월관으로 갔고. 특급 헌터가 좋아한다는 만월관 한우 꽃등심사서 올 거야. 그 종이 말고 다른 흔적도 찾았다고 했지?!”
“네 무슨 일이 있었냐면…….”
천문석 깨어난 후 일어난 일을 빠르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는 순간 장민과 장철의 시선은 옥상을 지나 평상 위에 차려진 상에 꽂혔다.
두 사람도 천문석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사라진 요플레!
완벽하게 관리된 옥상 곳곳의 모습!
언제라도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준비가 끝난 평상!
이 모든 것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눈이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장민과 장철은 동시에 외쳤다.
“특급 헌터! 어디 있니?! 엄마 왔어!”
“삼촌 왔다! 여기 너 좋아하는 최고급 한우 꽃등심 세트 사 왔어!”
“얼른 나와서 같이 고기 구워 먹자!”
“와 벌써 점심시간이네? 배고프겠다!”
천문석, 류세연까지 가세해.
네 사람은 옥상과 옥탑방을 달리며 외쳤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특급 헌터는 이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천문석은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우선 한우를 구워 보죠!”
“그렇지! 우선 굽자! 냄새나면 나올 거다!”
“숟가락, 젓가락. 밥! 내가 챙겨 올게!”
“세연아! 찌개! 차돌 된장찌개 좋아해!”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이 놓이고.
보글보글 끓는 차돌 된장찌개가 자리했다.
그리고 달궈진 불판에 최고급 한우 꽃등심이 깔렸다.
치이이익-
고기 익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곧 과장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최고등급 한우야!”
“와, 이거 뭐야?! 엄청 맛있어!!”
“역시 특급 헌터 말대로 한우는 꽃등심이네?!”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맛이야!”
……
그러나 특급 헌터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불판 위 고기가 줄어들수록 과장된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젓가락질은 느려졌다.
“…….”
“…….”
“…….”
“…….”
천문석, 류세연, 장민, 장철.
네 사람이 말과 젓가락질을 멈췄을 때 불판 위에는 마지막 한우 등심 한 점만 남아 있었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고 외쳤다.
“더 구워 보죠.”
고기를 올리려 상자를 확인했지만, 상자는 텅 비어 있었다.
“왜 이렇게 고기가 빨리 떨어진 거 같냐? 반도 안 먹은 거 같은데 벌써 다 떨어졌네…… 하-”
장철 헌터의 짧은 한숨 소리에 삼켜진 마음.
모두는 같은 마음이었다.
“…….”
“…….”
“…….”
치이이익-
마지막 남은 한우 등심이 타들어 가는데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장철은 돌처럼 굳은 채 불판을 보고.
장민은 하늘을 바라보며 어깨를 떨었다.
“언니…….”
류세연이 장민의 어깨를 안았을 때.
천문석은 마지막 등심을 집어 들며 외쳤다.
“특급 헌터! 마지막 등심이야! 먹는다! 진짜로 먹는다! 먹었다! 씹고 있어!”
마지막 한우 등심을 삼켰는데도 특급 헌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진짜 떠난 거구나……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가 최고급 한우 꽃등심인 거니…….”
장민이 처연하게 웃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아닌 거 같긴 한데. 혹시 모르니…….”
“뭔데 그래? 빨리 말해 봐!”
장철 헌터가 다급히 말을 받았다.
“특급 헌터라도 이 상황에 이건 아닌데…….”
“지금 상황에서 가릴 게 뭐가 있어?! 가능성 있으면 뭐든지 해 봐야지!”
천문석은 머릿속 가설을 말했다.
“종이에 쓴 대로 최상급 한우 꽃등심이 나타나니까. ‘더 큰 걸’ 더 바라는 거 아닐까요?”
“더 큰 거?”
장철 헌터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장민 대표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 설마!”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등어랑 건강해지는 샐러드 금지한다고 약속해 보면 어떨까요?”
장철 헌터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우리 집 꼬맹이가 아무리 이상해도 이 상황에서 그건 좀…….”
장민은 벌떡 일어나 사방을 향해 외쳤다.
“고등어 일 년에 한 번. 아니 먹고 싶을 때만 줄게. 약속할게!”
그리고 장민의 절절한 시선이 장철, 천문석, 류세연에게로 움직였다.
“삼촌도 약속할게! 장민이 절대로 고등어 반찬으로 올리지 않도록 할게!”
“나도 약속할게! 옥탑방에서 고등어는 영구 퇴출이야!”
“누나는 옛날부터 고등어 별로였어!”
……
장민. 장철, 천문석, 류세연은 계속해서 외쳤다.
“고등어, 샐러드 앞으로 식탁에 안 올릴게! 엄마가 약속할게!”
왕, 왕왕-
돌연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돌아간 시선에 보였다.
옥탑방 지붕에서 불쑥 튀어나온 새하얀 강아지, 아니 특급 헌터와 사라진 서리 늑대!
“탱탱이?!”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울음소리와 함께 줄줄이 나타났다.
띠디딛-
“반짝이?!”
구으으으-
“사슴이?!”
냠, 냐암-
“냠냠이?!”
……
“지붕! 특급 헌터, 너 옥탑방 지붕에 있었구나!”
장철 헌터가 당장이라도 뛰어 올라갈 듯 벌떡 일어나는 순간.
천문석은 다급히 손을 뻗어 막으며 외쳤다.
“정지! 올라가면 안 돼요! 특급 헌터 도망치면 절대 못 잡아요!”
“……!”
“……!”
“……!”
모두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숨을 죽이고 한참.
퐁, 퐁, 퐁-
바람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날아왔다.
“퐁퐁이?!”
물방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포그르르르-
옥탑방 뒷산 방향 난간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흩날린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듣는 순간 누군지 알 수 있는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약속 진짜야? 서류에 손도장 찍어 줄 수 있어?!”
“……당장, 당장 찍어 줄게! 열 번, 아니 백번 천번이라도 찍어 줄게!”
장민이 대답하는 순간.
포그르르르-
물방울이 흩날리는 난간 너머에서 작은 얼굴이 천천히 올라왔다.
흙과 잿가루가 가득한 꼬질꼬질한 얼굴.
그러나 긴장한 얼굴을 보는 순간 모두는 알 수 있었다.
“특급 헌터!”
“특급 헌터?!”
“특급 헌터!?”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퐁퐁이 등에서 옥상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외쳤다.
“특급 헌터가 왔다!”
장민은 한달음에 달려가 끌어 앉았다.
“잘 왔어! 정말 잘 돌아왔어! 밥은 먹었어? 잠은 어디서 잔 거야?!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배가 홀쭉해졌잖아!”
장민은 특급 헌터의 얼굴과 몸을 쓰다듬으며 정신없이 물었다.
특급 헌터는 고개를 휙휙 젓고 외쳤다.
“장민!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냐!”
“뭐?”
“갑자기 불안한데…….”
“잠깐 설마……?”
장민이 당황하고.
장철 헌터가 갸웃하고.
류세연이 짐작할 때.
천문석은 깊이 탄식했다.
“너 진짜 특급 헌터 맞구나…… 하-.”
특급 헌터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외쳤다.
“지금 중요한 건 고등어, 샐러드 금지 약속이야! 장민 이제 고등어랑 샐러드 금지 맞지?! 빨리 손가락 걸어!!”
“약속할게! 엄마가 약속할게!”
장민은 환한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걸었다.
특급 헌터는 환한 얼굴로 환호성을 터트렸다.
“됐어! 성공이야! 역시 알바 말대로야! 협상은 상대가 절박할 때! 상대의 바닥까지 긁어내라!”
“뭐? 야, 내가 언제?!”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차게 식은 시선이 날아왔다.
“오빠……?”
“하, 너였냐?”
“알바 씨…… 하-.”
“아니 잠깐 제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다급히 변명하는 순간 씩씩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럼 이제 최고급 한우 꽃등심 먹어야지!”
“고기 다 먹었는데? 잠깐만 세린이가 만월관에서 사 오고 있으니까! 얘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장철 헌터가 전화기를 꺼낼 때.
특급 헌터는 외쳤다.
“퐁퐁이! 이제 꺼내도 돼!”
퐁, 퐁, 퐁-
퐁퐁이는 평상에 내려와 물방울을 쏟아 냈다.
포그르르르-
폭포수처럼 쏟아진 물방울이 사라졌을 때 평상 위에는 한우 세트가 있었다.
장철이 사 온 최고급 한우 꽃등심 세트가!
“…….”
“…….”
“…….”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할 때.
장철 헌터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사 온 한우? 잠깐 그럼 방금 고기가 빨리 떨어진 게……?!”
장민, 장철, 천문석, 류세연.
모두의 시선이 특급 헌터에게 모였다.
쓱쓱, 쓱쓱쓱-
특급 헌터는 물수건으로 능숙하게 손과 얼굴을 닦고 자리에 앉아 착착착- 능숙한 손놀림으로 불판 위에 한우를 올리며 외쳤다.
“자, 모두 앉아! 얼른 한우 먹어야지!”
“고기가 적었던 게! 그냥 느낌이 아니었던 거야?”
“아니 각성자가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이걸 눈치를 못 채? 하아-”
“으아! 으아앗- 맛있어! 완전 맛있잖아? 훌륭해! 역시 고기는 최고급 한우 꽃등심이 최고야! 카카캌-”
특급 헌터의 화려한 리액션과 함께 2차 식사가 끝나고 후식까지 먹었다.
“아, 오랜만에 맛있게 배부르다.”
특급 헌터는 평상에 편안하게 앉아 배를 두들겼다.
“특급 헌터 맛있게 잘 먹었어?”
“훌륭해! 역시 한우가 최고야!”
특급 헌터가 엄지를 척 치켜드는 순간.
장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해야 할 일 있지?”
“해야 할 일? 장민 바쁜가 보네? 장민 잘 가! 난 오랜만에 내 집에서 편안하게 쉬어야 할 거 같아. 엄청 힘들었거든. 에휴-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검사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니까! 그럼 안녕 장민, 안녕 삼촌! 내일 또 봐! 잘 가!”
특급 헌터는 시크하게 인사하고 손을 흔들었다.
마치 손님을 배웅하는 집주인처럼.
“그럼 엄마랑 이 일만 하고 쉬면 되겠네.”
“응? 내가 엄마랑 뭘 해야 한다고? 난 할일 없는데?”
“아냐, 꼭 해야 할 일이 남았단다.”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특급 헌터를 꼭 껴안았다.
[@ㅁ@??]
특급 헌터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풀렸다.
팡팡, 팡팡팡-
옥상에 울려 퍼지는 이불 터는 소리와 함께!
“아앗, 아아앗- 고등어랑 샐러드 이제 금지라면서! 손가락도 걸었잖아! 장민 왜 엉덩이 때리는데?!”
장민은 손바닥을 멈추지 않았다.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위험하게! 거기가 어디라고 뛰어들어가!”
특급 헌터는 계속해서 주장했다.
“으앗-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나무 부러지면 엄청 큰일이란 말이야!”
“아앗-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특급 헌터는 절대 울지 않는다! 으앗-“
“하나도 안 위험했단 말이야!”
“아아앗- 앙꼬 대장이랑 다 이야기된 거란 말이야!”
……
팡팡, 팡팡팡-
그러나 특급 헌터가 제아무리 주장해도 장민의 손바닥은 멈추지 않았다.
특급 헌터는 고개를 돌렸다.
“아아앗- 삼촌! 구경하지 말고 장민 좀 말려 봐!”
“미안하다. 삼촌은 힘이 없다.”
“세연! 세연 누나?!”
“특급 헌터. 누나는 장민 언니 편이란다.”
“알바! 알바뿐이야! 알바! 장민한테 하늘 좀 이어 봐! 나 좀 도와줘! 알바아앗!”
“……미안. 특급 헌터 그건 나도 불가능하다.”
천문석은 두 손을 들었다.
전생 천마라고 해도 위험한 행동을 한 아이를 혼내는 엄마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팡팡, 파아앙-
이불 터는 소리와 절대 울지 않는 특급 헌터의 외침이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 * *
“아, 엉덩이 시원해! 히히히힛-.”
천문석은 문득 들려온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창문 너머 빨간 엉덩이를 까고 소파에 엎드린 특급 헌터가 보였다.
특급 헌터는 빨개진 엉덩이에 엄마가 발라 주는 약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특급 헌터 넌 진짜 긍정적이구나.”
피식 웃는 순간 문득 고개가 갸웃했다.
“그런데 철수 형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
옥상 입구에서 기다렸다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천문석 님 등기 우편 왔습니다!”
“네? 등기요? 저한테요?”
“김철수 사무실 천문석 님 맞으시죠? 여기 서명하시면 됩니다. 자, 여기 등기 우편, 이 서류 봉투 받으시면 됩니다.”
우편 배달부가 떠나고.
천문석의 손에는 서류 봉투가 남았다.
철수 형이 보낸 등기 우편, A4용지 크기의 묵직한 서류 봉투가!
잡는 순간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아찔한 현기증이 밀려왔다!
촉이, 감이, 육감이 외쳤다!
“……!”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시선에 보였다.
한 달 전 엉망진창 난장판이 벌어졌던 장소!
천공의 섬, 전능 옥좌!
“철수 형? 이 서류 봉투 설마?!”
천문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 봉투를 열었다.
잠시 후 옥탑방, 옥상에서는 하늘과 땅을 떨어 울리는 고고성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 철수 형! 충성충성충성충성충성!!]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