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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34화 (1,33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34화>

“아뇨. 전 정말 괜찮아요.”

-…….

“네. 그러네요. 역시 바쁘게 사는 게 정답이었나 보네요.”

-…….

“네 고맙습니다. 아뇨, 전화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이만.”

장민은 전화를 끊고 책상 위에 수화기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빙글 의자를 돌려 창을 바라봤다.

“…….”

조금도 웃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문득 시선을 올리자 두근- 심장을 옥죄는 통증과 함께 보였다.

날은 더 추워지고, 하늘은 조금 더 밝은 푸른색이 됐다.

하지만 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천공의 섬.

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게 믿겨 지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장민은 흠칫 놀라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 버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여전히 평소보다 많은 부재중 통화와 문자를 빠르게 넘기다 한 문자에서 멈췄다.

[언니. 오늘 밤에 시간 있지? 없어도 내! 무조건이야! 경석, 태희, ‘장민’ 언니까지 전부 같이 이세영 선생님 집으로 자러 가기로 했어! 그렇게 자랑하시던 이세영 선생님 아파트 드디어 볼 기회야! 우리 집으로 오면 돼. 다 같이 모여서 마트 들려서 장 보고 갈 거야! 꼭꼭꼭 와야 해! - 류세연]

장민은 어느새 미소 띤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

[바로 갈게!]

그리고 재킷을 걸치고 바로 대표실에서 나왔다.

“대표님?”

“대표님 혹시 일정이?”

“아뇨 오늘은 이만 퇴근할게요. 모두 들어가도록 해요.”

비서실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와 바로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

문고리를 앞에 두고 망설이길 잠시.

장민은 크게 심호흡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며 밝게 외쳤다.

“엄마 왔어!”

햇살에 환하게 밝혀진 넓은 거실 어디에서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장민은 빙그레 미소 지은 채 살금살금 거실을 걸었다.

층간 소음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가장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깨끗이 손발을 씻고.

거실을 쓱 돌아보며 만족스레 씩- 웃은 후.

냉장고에서 요플레를 꺼내 뚜껑부터 핥으며 거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점점 빠르게 울린다.

베란다 앞, 거실 구석에는 차마 마주 볼 수 없던 게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긴다.

마음, 행동, 물건, 장소…….

벽과 바닥, 창틀에.

“…….”

장민은 물끄러미 거실 구석을 바라봤다.

새하얀 벽지에 남은 작은 손바닥.

대리석 바닥에 남겨진 작은 발자국.

베란다 창틀에 그어 놓은 키 높이 자국들.

흔적을 보는 순간 기억에 새겨진 장면이 떠오른다.

손에 묻은 잉크로 벽지에 손도장을, 바닥에 발도장을 찍고 환하게 웃던 목소리.

“훌륭해! 이건 특급 손도장이야!”

저녁 햇살이 드리워질 때면 손도장에 손을, 발도장에 발을 가져다 대고 쪼그려 앉아 베란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만족스레 웃던 그 얼굴, 웃음.

“이건 특급 풍경이야! 카카카카캌-.”

기억 속 웃음을 따라 웃는 순간 그때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흘러넘친다.

웃음, 미소, 기쁨.

그리고 고마움, 고마움.

언제나 환하게 웃고,

최선을 다해 달리던 아이.

특급 헌터.

고마웠다.

특급 헌터가 너무나 고마웠다.

특급 헌터가 있어서.

웃을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

장민은 손을 뻗어 작은 손도장에 올려놨다.

특급 손도장에서 전해진 온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

장민은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어 꼭 해야 했지만, 아직도 하지 못한 말을 했다.

“특급 헌터…….”

그러나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가슴속에 박혀 말을 막는 것처럼 단 한마디도 더 할 수가 없었다.

장민은 차마 작별 인사를,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없었다.

“…….”

장민은 손도장에 손을 올린 채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마지막 인사를 삼키고 또 삼켰다.

어느 순간 너무나 익숙한 웃음소리가 마음에서, 가슴에서, 머릿속에서 가득 울려 퍼졌다.

카카카카카카카캌-

수많은 기억이 마치 특급 헌터가 달리던 것처럼 휘몰아쳤다.

배가 아프게 웃고, 숨이 차게 달렸다.

정신없는 난장판과 생각지도 못한 엉망진창 상황이 끝없이 이어졌다.

장민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울었다.

엉엉 소리 내서 아이처럼 울었다.

이 순간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언제나 웃을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그리고 지금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장민은 벽지에 찍힌 손도장 위에 손을 올린 채, 대리석 바닥에 새겨진 발 도장을 밟고 쪼그려 앉았다.

문득 고개를 베란다 통창 너머로 보였다.

특급 헌터가 만족스레 웃던 특급 풍경이.

저녁 햇살이 드리워진 베란다 정원.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그 앞에 놓인 평상.

자신, 장철, 특급 헌터, 알바 씨가 모여 앉아, 알바 씨가 사 온 최고급 한우 선물 세트를 구워 먹던 자리.

가슴속에 박힌 단단한 무언가가 녹아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삶은 끝이 정해져 있으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니. 많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된대…….”

장민은 눈물 흘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특급 헌터가 가르쳐 준 대로 만남을 위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니 꼭 다시 만나자. 안녕안녕. 특급 헌터…….”

*   *   *

“원래 이렇게 조용했나?”

천문석은 문득 주위를 돌아봤다.

텔레비전, 소파, 인디언 텐트, 박스성까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왜 이렇게 텅 빈 것만 같을까?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슴이, 반짝이, 거복이, 탱탱이, 냠냠이, 퐁퐁이, 용용이, 니케, 아수라 도장, 섬초…….”

천문석은 주위를 돌아보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특급 헌터.”

그러나 몇 배로 넓어진 것만 같은 옥탑방 어디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특급 헌터와 동물 친구들은 모두 떠나갔다.

옥탑방에 남겨진 것은 텔레비전 옆에 놓인 텅 빈 작은 나무상자, 특급 헌터의 저금통뿐이었다.

아니 하나가 더 있었다.

천문석은 성큼 걸어가 나무상자를 흔들었다.

이 순간 특급 헌터의 최고의 보물이 툭- 떨어졌다.

앙꼬가 먹던 사탕.

“특급 헌터. 너 최고의 보물이 여기 있는데 어디에 있는 거니?”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걱정하지 않았다.

철수 형, 이세기, 적예가 특급 헌터를 지켜 줄 테니까.

천문석은 아들을 잃은 장민 대표에게 단 한마디의 위로도 하지 않았다.

류세연, 한경석, 김태희, 장철, 장세린…….

장민 대표에게는 걱정하고 위로해 줄 친구들은 많았으니까.

자신은 위로가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천마(天魔).

역천의 천마답게.

하늘을 거슬러서라도 특급 헌터를 데려오는 게 자신이 할 일이었다.

천문석은 오연한 눈으로 하늘을 향해 말했다.

“하늘님 특급 헌터는 언제 돌려보내 주실 건가요?”

지난 한 달 수 없이 물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아무 답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하늘에게 답을 들을 방법을 마침내 찾았으니까!

천문석은 몸을 돌려 잡낭에 끼워진 잘 접힌 스케치북을 뽑았다.

특급 헌터의 마지막 외침과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 부러지는 나뭇가지 고치고 올게! 앗! 알바! 내가 편지 넣어 놨어! 앙꼬 대장이 알바가 찾는 거 가까이에 있대! 아앗! 내 나무상자 저금통은 알바 줄게! 그리고 엄마…….’

특급 헌터는 모르는 것 말고는 다 아는 아이다.

그렇기에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특급 헌터의 마지막 외침을 지난 한 달 동안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아냈다.

[알바! 내가 편지 넣어 놨어!]

[앙꼬 대장이 알바가 찾는 거 가까이에 있대!]

특급 헌터의 말대로였다.

자신이 찾는 편지는 가까이에 있었다.

손에 쥔 스케치북 편지!

하지만 잡낭에 꽂혀 있던 이 편지를 찾는 데는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스케치북은 한 달 전 그 일이 일어난 날에 찾았다.

하지만 특급 헌터가 전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는 오늘에서야 찾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문석은 스케치북를 활짝 펼쳤다.

[이세기 010-xxxx-xxxx]

편지 앞 장에 이세기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놨으니까!

“하아- 특급 헌터. 중요한 편지를 이세기 명함에 쓰면 어떡해?!! 한 달 걸렸다!! 명함 뒷장 확인해서 편지 내용 찾는데 한 달!!”

아무도 듣지 않는 분노를 토해 내고 스케치북 편지를 뒤집는 순간 옥상 창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재앙! 안에 있냐?”

창문으로 걸어가자 멀찍이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악연으로 시작해서 선연으로 끝난 친구.

“마혁진. 왔냐? 왜 안 들어오고?”

“재앙 새꺄! 가까이 가면 재수 없는 거 옮아!”

“야, 그거 다 미신이야! 나 이제 재수 안 없어! 김철수 사무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못 들었냐?! 염동 대협의 뒤를 이어 새롭게 떠오르는 청혈 대협(淸血大俠)! 청혈철검 주호 대협!”

“주호 대협? 너랑 엮이고 개같이 구르고 있다는 이야기 잘 들었지! 그리고 뭐 재수가 안 없어?! 와! 입만 열면 구라를! 한 달 전 회기 파출소 폭발 사건! 너 때문에 하수구 던전에 처박혔던 거 아직도 냄새가 다 안 빠졌어! 재앙 새꺄!”

“그때는 미안했다니까! 사정이 있었어, 사정이! 너 얼마 전에 끝난 남중국 연방 총선 알지?! 연방 총선이 무산될 정도로 엄청난 대사건이 터질 뻔했다! 너한테만 말해 줄게! 회기 파출소 폭발 사건의 진실은……!”

“왜? 남중국에서 승천한 천검이 회기 파출소에 나타나기라도 했냐?”

‘뭐야, 마혁진 이 새끼! 이제 사람 마음도 읽는 거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입만 열면 구라를 치는 놈이 정곡 찔렸다고 움찔하기는. 됐고 나 이제 가야 하니까 얼른 받아!”

“어? 진짜 너한테 있었냐?!”

“뭐야? 알고 오라고 한 거 아냐?”

마혁진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생각해 보니까 부쩍 재수 없어진 게. 너한테 이거 계약금이라고 받았을 때부터다. 돌려줄게, 가져가라. 계약은 땡이다!”

팅-

마혁진의 손가락에 튕겨 빙글빙글 회전하며 허공을 날아오는 동전.

반사적으로 낚아채자 보였다.

별과 용이 그려진 검은 동전, 흑전이!

천문석은 손에 쥐고 있던 이세기 명함을 뒤집었다.

[착해진 악당한테 찾는 게 있어!]

착해진 수많은 악당 중 첫 번째로 확인한 악당, 마혁진에게서 바로 흑전이 나왔다!

직감이 왔다.

오늘이다.

천문(天問)!

하늘에 물을 날이다!

장철 헌터의 딸, 세린이를 데려왔을 때처럼!

사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한 번의 기회는 이미 써 버렸지만 상관없다.

자신은 밥 먹듯이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의 천마니까!

오늘 밤 해가 완전히 지고 달과 별이 드리워질 때 역천을 행한다.

*   *   *

깊은 밤.

천문석은 장철 헌터를 위해 기원했던 그 자리에 섰다.

아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특급 헌터를 위해 역천을 행할 이유가 개연성이 있는가?’

피식 웃으며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개연성이 없어도 좋았다.

맥락이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제나 씩씩하게 웃고 열심히 달리고.

고등어를 싫어하고 요플레는 뚜껑부터 핥는 아이.

모든 심각한 상황을 시트콤으로 만드는 특급 헌터를 다시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사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업(業)으로 하늘에 묻는 단 한 번의 기회, 천문(天問)은 이미 사용했다.

역천의 천마답게 묻는 건 몇 번이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저울은 그 누구도 속일 수 없는 법.

하늘의 저울에 올릴 대가는 필요했다.

천문석은 씩 웃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사문에 대대로 전하는 업(業)은 사라졌지만, 자신에게는 다른 업(業)과 흑전이 있었다.

무정한 하늘은 대답하지 않기에.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건 사람뿐이다.

정명한 사람은 인과를 거스르는 역천을 행할 수 없으니.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으로 인과를 비틀 존재는 하나뿐이다.

천마.

천마신공의 마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괜찮다.

마업은 사라졌지만, 그 근원은 여전히 자신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천강흔(天罡痕).

천문석은 마음으로 불렀다.

‘오라-’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갑다.

봄바람처럼 포근하고.

가을바람처럼 서늘하다.

찰나의 순간 수십수백 번 반전하는 천강흔의 선연한 기운이 전신을 흐를 때.

천문석은 마침내 벽을 넘어 이미 반쯤 열린 천강흔 랜덤 박스를 열었다.

마업이 사라진 천강흔 랜덤 박스에서는 특별한 것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이미 자신이 아는 것.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들만 나왔다.

전생 천마가 쌓은 무업(武業)!

이미 얻었던 것, 한번 걸었던 길을 되짚어 찰나에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 극을 향해 나아갔다.

이 순간 혼백에 새겨진 무업(武業)이 올올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찢고, 대지를 꺼트릴 경천동지의 힘이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에 차오른다.

이 무업(武業)이 자신이 하늘의 저울에 올릴 대가였다.

천문석은 모든 무업(武業)을 대가로 올리곤 천문(天問), 하늘에 고했다.

핑그르르르-

그리고 검은 동전이 하늘 높이 튕겨 올라 회전할 때, 모든 마음을 담아 기원했다.

‘특급 헌터, 철수 형, 이세기, 적예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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