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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329화 (1,33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9화>

“됐다. 풀렸다.”

워커 실트의 외침과 함께 비밀문의 보안 회로가 해제되는 순간.

천문석은 문에 손을 올리고 모아 둔 내력과 기감을 뻗었다.

단숨에 강화 강철을 통과해 통로로 퍼져 나가는 기감!

느껴진다.

평범한 천장과 벽!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

그 어디에서도 위화감은 없었다.

“인기척 전혀 없어!”

“좋아! 보안 시스템 과부하가 걸렸지만, 통제실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다! 분명 통제실에서 보고 있을 거다! 마력 스캔하며 천천히 전진하자! 최대한 통제실 가까운 곳에 백도어를 심어야 한다!”

워커 실트는 고글을 쓰고 단말기를 손에 들고 마력 회로를 가동했다.

파스스스스-

직사각형 우산처럼 앞에 펼쳐진 스텔스 마력 회로.

“보안 장비는 이거랑 내가 막을 수 있지만, 사람은 네가 처리해야 한다. 통제실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

“알았어.”

워커 실트와 천문석은 스텔스 우산을 앞세우고, 한 계단 한 계단 CCTV와 보안 장비를 무력화하며 통로를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커 실트의 예상은 이번에도 틀렸다.

지금 통제실은 텅 비어 있었다.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마도 엔진의 이상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위장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금 그룹의 오너.

물론 오너는 약속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상 현상을 일으킨 마도 엔진을 분리하고 통제실과 이어지는 통로 전체를 봉인했다.

보조 엔진만으로도 1년 이상 천공의 섬을 유지할 수 있다.

오너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사방에 초대장을 뿌려 연막을 쳤다.

천공의 섬에는 헌터, 각성자, 기업인, 정부 관계자, 정보요원들이 넘쳐 났다.

“오너가 많이 늦으시는데요?”

“걱정할 거 없어. 전에도 몇 번 늦으셨어. 뭔가 불운이 계속 찾아오는 분이시라.”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두 사람은 통제실로 연결된 27개의 통로를 비추는 CCTV를 힐끗 살피며 느긋하게 카페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증 파문에 보안 시스템은 이미 맛이 간 상태라는 것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오너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뒷골목에 있다는 사실을.

“헉, 허억- 특급 헌터! 최후통첩이다! 진짜 전화한다!”

“특급 헌터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허억- 항복, 내가 항복할게. 더는 못 뛸 거 같아.”

“뭐?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철수 형, 절대 포기해선 안 돼! 포기하면 0점이야! 찍기라도 하란 말이야!”

“야, 너 배낭에 고양이! 그 새끼 고양이가 따라잡을 때마다 순간 이동하는데 어떻게 잡아!”

“아…….”

냠, 냐암-

“그럼 협상하자. 너 어디로 가는데?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대신 어디로 가는지 장민 대표님한테…….”

“엄마는 안 돼!”

“류세연! 세연이한테 문자로 목적지 가르쳐 주는 거 어때? 딜?”

“딜!”

멀리서 조심조심 다가온 퐁퐁검과 주먹이 부딪치고.

김철수와 특급 헌터는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그런데 너 어디로. 허엌-.”

“철수 형 이거 마시고 이야기해! 내가 만든 완전 맛있는 특급 약이야!”

“어, 그래. 고맙다.”

김철수는 특급 헌터가 건네주는 물병의 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어, 이 주스 진짜 맛있네? 수박이랑 토마토 맛이 나는데?!”

“그렇지? 맛있지?! 내가 엄청 열심히 만들었어! 내가 열심히 기른 수박 토마토에…….”

자랑스레 설명하기 시작하는 특급 헌터.

김철수는 말을 끊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퐁퐁이가 친구들이랑 내려오는 곳! 이쪽이야!”

“거기는 너 도망치던 곳이랑 반대 방향…….”

“앗! 이쪽인 거 같아!”

특급 헌터는 빙글 몸을 돌려 방향을 바꿨다.

“……야, 같이 가야지!”

김철수는 약속은 까맣게 잊은 채 특급 헌터를 따라 달렸다.

*   *   *

“이상하네? 왜 이렇게 보안 시스템이 허술하지? 조금만 더 가 보자.”

워커 실트는 스텔스 우산을 펼친 채 계단을 내려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계속, 계속해서.

황당하게도 계단은 끝나고 통제실로 들어가는 보안문이 나타났다.

“뭐야? 왜 통제실 입구가 나오는데?!”

워커 실트는 조심조심 단말기와 통제실 보안문을 연결했다.

차르르르륵-

단말기에 뜬 분석 결과를 보는 순간 얼굴이 멍해졌다.

“어, 마도 엔진 양자 가위바위보 암호 왜 풀려 있어? 이 조잡한 암호벽은 뭐야? 함정인가??”

워커 실트는 멍하니 보안문을 봤다.

이것은 본능과도 같았다.

손에 휴지가 멀리 쓰레기통이 있으면 던져 넣는 본능.

잠긴 문이 앞에 있는데 손에 열쇠가 있으면 당연히 열쇠를 꽂고 돌려 봐야 한다.

워커 실트도 그렇게 했다.

조잡한 암호벽은 순식간에 찢어지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순간 철컥- 통제실로 이어지는 보안문은 열렸다.

“…….”

그리고 통제실이 나왔다.

보안 회로가 모두 해제된 통제실이!

“어, 어어?! 이럴 리가 없는데!”

“너 어디 가는 거야?!”

워커 실트는 한달음에 통제실 컨트롤 패널로 다가가 단말기에서 선을 쭉 뽑아 연결하고 정신없이 두들겼다.

점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던 워커 실트의 입에서 버럭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친 이게 뭐야?! 이 또라이 녀석들, 왜 마도 엔진 락을 풀어 둔 거야?!”

천문석은 재빨리 통제실 안을 기감으로 훑으며 확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백도어는 언제 심을 건데?!”

“백도어? 백도어라고?!”

워커 실트의 광기 어린 외침이 쏟아졌다.

“통제 장치에 백도어 심어 봤자 소용없어! 마도 엔진이 주고 통제 장치가 부야!”

“이 멍청한 녀석들이 마도 엔진을 통제 장치랑 분리해 놨어!”

“내가 마도 엔진에 박아둔 양자 가위바위보 락이 풀리고, 통제 장치에 조잡한 암호벽이 깔려 있다!”

“내가 분명 마도 엔진 매뉴얼에 빨간색 주먹만 한 글자로 박아놨어!”

“마도 엔진 분리되고 양자 가위바위보 락 풀리면 보안에 취약하니까! 긴급 정비할 때만 10분 안으로 사용하고 바로 원상 복구하라고!”

“멍청한 녀석들! 지금 침입자가 들어오면 그대로 전능 옥좌 통제권 날리는 거야!”

“돌철 그 녀석이 나한테 메시지 보낸 이유가 있다니까!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다니! 내가 전능 옥좌 날려 버리지 않았으면 1000% 허신한테 오염돼서 대참사…….”

워커 실트의 외침이 어느새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때.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침입자가 들어오면 그대로 전능 옥좌 통제권 날릴지도 모르는…….’

“어!?”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돌려 분통을 터트리는 워커 실트에게 봤다.

“야, 우리 백도어 심으러 왔잖아?!”

“백도어 심어 봤자 마도 엔진이 분리……!”

“그게 아니라 우리 침입……!”

“침입이 아니라 궁극의 사기. 피해자가 아무도 없는 완벽한 사기를!”

“그게 아니라! 통제권을 뺏을 수 있으면 지금 그냥 뺏으면 되잖아?!”

“양자 가위바위보 락 걸렸다니까! 양자 엉킴 현상을 이용해서 1나노초(10-9sec)보다 빠르게 관측하고, 가위바위보를 늦게 낸다! 이 사기 가위바위보를 이기고 락을 풀려면 최소 30분? 아니지 요새 컨디션 좋아서 잘하면 20분대도 될 거 같은데? 앗!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중요한 건 하이브리온 군단장이 없는 지금 락을 풀려고 하면 1분 안에 정체불명의 마도왕이…….”

“너 방금 말했잖아?! 지금 침입자가 들어오면 그대로 전능 옥좌 통제권 뺏긴다며?! 양자 가위바위보 락이 풀려서!”

“어, 어? 어어!”

워커 실트의 경악한 얼굴이 통제실을 돌아보자 일그러진 얼굴이 점차 펴지고 곧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락이 풀렸지! 백도어 심을 필요 없이 그냥 지금 마도 엔진 통제권 뺏고 연결하면 되지!”

“야,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통제권은 금방이야! 마도 엔진 연결이랑 기동 병참 도시를 소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양자 가위바위보에 비하면 껌이다! 좋아! 긴급 계획 변경이다! 전능 옥좌 탈취 계획 지금 바로 시작한다!”

워커 실트는 컨트롤 패널에 연결한 단말기를 빠르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순식간에 봉인된 통제실의 전력과 마력이 살아나고 벽에 설치된 초대형 디스플레이에 외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 빠르게 간다! 이렇게 허술한 녀석을 통제실에 박다니! 이 마도왕 멍청한 사령 술사 아냐?! 카카카카캌-.”

워커 실트는 광소를 터트리며 빠르게 통제권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커 실트의 생각처럼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 두 사람이 방심한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할 수 있는 모든 보안 프로토콜을 깔아 놨다.

단지 상황과 상대가 나빴다.

두 사람은 천공의 섬에 쏟아지는 인증 파문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고.

워커 실트는 ‘양자 가위바위보’라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보안 시스템을 설계한 노움 종족 최고의 천재였다.

108가지의 보안 프로토콜은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마도 엔진 통제권이 순식간에 넘어왔다.

“됐다! 게스트 권한 얻었다! 연결 해제해서 오히려 시간을 벌었다! 내 단말기를 바이패스로 마도 엔진과 통제 장치를 연결한다! 10분이면 된다!”

단말기에서 쭉 뽑은 전선을 고글과 연결하는 순간 워커 실트의 입에서 고속 기계어가 튀어나왔다.

띧디디딛딛띠디디디띠딛-

10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5, 4, 3, 2, 1.’

“영!”

이 순간, 가득 찬 그릇의 물을 흘러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연결을 끊어 둔 마도 엔진이 워커 실트의 단말기를 거쳐 전능 옥좌와 연결됐다.

이상 현상을 일으켜 분리한 마도 엔진의 77% 출력이 그대로 전능 옥좌에 쏟아졌다.

타대륙의 전능 옥좌를 추락시킨 마도 제국 7재앙의 수좌, 워커 실트의 인증 파문이자 사념 폭탄에 휩싸인 전능 옥좌에.

보조 마도 엔진이 꺼지고.

천공의 섬의 모든 전력과 마력 공급이 멈췄다!

***

보조 엔진이 멈추는 순간 지상과 연결된 모든 게이트가 사라지고 전력이 끊겼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3초 남짓!

바로 비상 발전기가 가동돼 전력이 복구됐다.

그러나 비상 발전기는 보조 마도 엔진이 아닌 전기 발전기였다.

엄청난 마력압에 꺼진 보조 마도 엔진은 재기동하지 않았다.

천공의 섬에 있는 모두는 아찔한 부유감을 느꼈다.

‘천공의 섬이 추락한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하늘을 덮은 역장 매트릭스에서 마력 불꽃이 쏟아지고,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장 허공이 비틀렸다.

크아아아아-

비틀린 허공에서 선명한 살의가 담긴 포효가 터져 나왔다.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에 참석한 상위 1%의 헌터들은 한눈에 알아봤다.

균열이 열린다!

“난장판이 이 말이었어?”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꺄아아아-

으아아악-

뒤늦은 비명이 터지고 행사장의 사람들이 도망쳤다.

이 순간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쪽지 진짜잖아요!”

“아니 하늘섬이라고 써서 아닌 줄 알았지?!”

“더 빨리 뛰어! 늦으면 끝장이다! 천공의 섬 추락하면 대참사다!”

에코, 아리엘, 케인 이사는 사색이 된 얼굴로 인파를 헤치고 지도에 표시된 장소로 전력 질주했다.

“장민 언니! 언니!”

이때 류세연은 다급히 장민을 부르며 달려갔다.

“세연이? 위험하니까 내 옆에……!”

“언니 이럴 때가 아냐. 특급 헌터가 여기에 있어!”

“……!”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휘청이는 장민.

류세연은 재빨리 장민을 붙잡고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특급 헌터 나랑 같이 있어. 장민 대표님한테 네가 좀 전해 줘. 특급 헌터 가는 곳 위치 같이 보낸다.]

“문자 온 걸 내가 늦게 봤어!”

장민은 다급히 스마트폰을 꺼냈지만, 전화기는 통화권 이탈 상태였다.

“유선 전화…….”

“유선 전화도 먹통이야! 이 지도 받아! 여기에 특급 헌터 간다는 곳 표시했어!”

류세연은 원이 그려진 지도를 건네며 다급히 외쳤다.

“3시 방향이야! 언니 먼저가! 난 도와줄 사람들 데리고 따라갈게!”

“알았어! 먼저 갈게! 고마워! 정말 고마워!”

장민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없이 뛰어갔고.

류세연은 바로 몸을 돌려 난장판이 된 행사장을 달리며 ‘도와줄 사람들’을 찾았다.

“세연아! 너 어디 갔던 거야?! 연구실 문도 잠겨 있고!”

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경석 언니? 난 괜찮아! 얼른 저기 행사장 중앙으로! 이제 곧 균열 열릴 거야!”

“괜찮아! 거기 후식이 삼촌이랑 이태성 길드장 있어! 위험하니까! 내 옆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돼!”

한경석의 손이 다가오는 순간.

류세연은 허공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1초 시선이 분산됐을 때.

톡- 뒤통수에 닿는 가벼운 손길.

토끼가 잠드는 것처럼 주저앉는 한경석의 몸을 받아, 의자에 앉히며 귓가에 속삭였다.

“세연이는 장민 대표님을 도와주러 간 거야. 경석 언니가 할 일은 균열을 막는 거야. 부탁해. 딱 소리가 들리고 3분 후 깨어날 거야.”

딱-

류세연은 손가락을 튕기는 즉시 몸을 돌려 행사장을 다시 달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도와줄 사람들’을 찾았다.

험상궂은 인상의 거한.

허리에 검을 차고 갑옷을 입은 기사.

청개구리처럼 엉뚱한 장소로 온 두 사람.

“도와주세요! 언니가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류세연은 한달음에 달려가 험상궂은 거한에게 매달렸다.

잠시 후 류세연, 바라카스 발도, 비제우 검공은 3시 방향으로 달렸고 곧 장민 대표와 합류했다.

“언니 먼저가! 난 확인할 게 있어!”

외침과 함께 류세연은 몸을 돌려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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