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324화>
“사무실에서 가져온 감귤 10상자. 전부 건물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왔어.”
“존잘 형 고생했어! 으어어- 시원하다!”
이세기가 현관으로 들어오는 순간.
특급 헌터는 탄성을 터트리며 욕실에서 나왔다.
“수고했다. 이세기. 너도 얼른 씻고 나와. 지게는 내가 치울게.”
“그래. 고맙다.”
천문석은 지게를 번쩍 들어 옥상 창고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재금 빌딩 앞에서 주호.
김철수 사무실에서 철수 형.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두 사람이나 만났는데, 아직 12시도 되지 않은 오전이었다.
9시가 넘어 집에서 출발했으니 3시간도 걸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거다.
그러나 이 3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과 얻은 성과는 놀라웠다.
-어그로를 끌어 줄 강자, 주호.
-흔적 없이 전능 옥좌에 들어갈 초대장 3장.
워커 실트의 계획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찾았다.
이미 워커 실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초대장은 퀵으로 보낸 상태.
지금 워커 실트는 내일 계획의 디테일을 짜고 있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주호와 초대장.
모든 게 순조롭게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하늘님이 이럴 리가 없는데.”
헌터용 지게를 옥상 창고에 넣고 돌아온 옥탑방.
“이거 뭔가 대형 사건 터질 거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문자가 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통화한 세연이에게서 온 문자였다.
[아까 아카데미 창립식 통화 기억하지? 오빠 내일 멋지게 입고 올라와. 친구들 소개해 줄게! 아, 이세영 선생님 교장 취임식도 같이하니까 올라와서 꼭 연락 줘. 내가 안내할게! 초대장 링크 보낼게! [링크]]
문자에 첨부된 링크를 터치하자 예상한 화면이 떴다.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VIP 초대장]
“미안하다 세연. 이번에 창립식은 패스다. 입학식 날 보자.”
아쉽지만 이번 창립식에서는 세연을 만날 수 없었다.
워커 실트, 주호와 함께 전능 옥좌에 백도어를 박아야 했으니까!
‘준비할 것은?’
워커 실트가 계획의 디테일을 채우며 필요한 장비를 모두 준비하기로 했다.
내일 약속된 시간에 광화문 게이트 앞에서 워커 실트와 주호를 만나면 바로 계획은 시작된다.
자신이 특별히 준비할 물건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비상용품은 준비해야겠지?”
텔레비전이 놓인 장식장 옆에 나란히 놓인.
강철봉, 잡낭, 헌터용 배낭.
“시조의 검은 넘겼고, 무기는 당연히 안 될 테고, 창립식에 헌터용 배낭은 어색하고 잡낭만 챙기면 되겠네. 그런데 이건 뭐야?”
잡낭 위에 눈에 익은 접은 스케치북이 보였다.
[이세기 010-xxxx-xxxx]
펼치자 예상대로 이세기 명함이었다,
“이세기는 오늘도 잠을 못 자겠구나.”
웃으며 잡낭을 열자 가지런히 정리된 내부가 보였다.
누가 정리했을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류세연, 특급 헌터 언제 정리해 둔 거냐?”
천문석은 잡낭과 스케치북 명함을 장식장에 내려놓았다.
내일은 이 잡낭만 가지고 올라가면 된다.
아직 오후가 되기도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편안히 쉬다가 내일 아침 염동 광장으로 출발하면 된다.
아니 할 일이 하나 남긴 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
당연히 따라오려 할 특급 헌터를 떼놓고 가는 것!
특급 헌터를 찾아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 드디어 그날이 왔어!”
옥상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성큼 창문으로 걸어가 밖을 보자 예상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다.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복이.
아수라 조각상, 여전히 잠든 새끼 여우 섬초.
평상 위에 나란히 앉은 동물 친구들.
특급 헌터는 그 앞에 등을 보이고 선 채 퐁퐁검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 내가 한 말 기억하지?!”
구으으으-
띠딛디디-
왕, 왕왕-
끼이이잇-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복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고 옆을 봤다.
바로 옆 아수라 조각상과 깊이 잠든 새끼 여우 섬초 너머 빈 공간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로 감이 왔다.
냠냠이, 퐁퐁이, 니케.
있어야 할 친구가 없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품고 있다.
특급 헌터는 단호히 외쳤다.
“걱정할 거 없어. 냠냠이는 장민 집에, 퐁퐁이는 알바 집에 시간 맞춰 오기로 했고. 니케는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말해 줬어! 그럼 모두 구호!”
구으띠딛왕왕끼이잇-!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외침과 동시에 아수라 조각상과 잠든 섬초를 품에 안고 옥탑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 내일…….”
“알바, 나 엄청 바빠! 이따가!”
특급 헌터는 말을 듣지도 않고 휙 거실을 가로질러 티피로 뛰어 들어갔다.
휙휙, 휙휙휙-
이 순간 옷, 양말, 신발, 베개, 담요, 플래시, 스케치북…… 온갖 물건이 티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특급 헌터는 경량화 마력회로가 새겨진 헌터용 배낭을 들고나왔다.
“스케치북, 크레파스! 할머니 특급 육포! 양말, 속옷, 경석 형이 준 잠바, 숟가락, 젓가락, 담요, 물병……!”
파파팟- 손이 보이지 않게 빠르게 짐을 싸는 특급 헌터.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 이사라도 가는 것처럼 티피 안에 챙겨 둔 모든 물건을 배낭에 싸면서!
“너 왜 갑자기 짐 싸는데? 나 아무 데도 안 가! 짐 안 싸도 돼!”
다급히 외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집에 가는데?”
“집? 너 집 여기 있잖아? 티피랑 천공탑.”
“앗! 깜빡할 뻔했어!”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골판지 성탑에 붙은 스케치북 문패를 뗐다.
[특급 헌터의 천공탑]
“네가 만든 문패? 그건 왜?”
“나 없을 때 누가 천공탑 올라가면 안 되잖아?”
이해할 수 없는 대답과 함께 착- 문패를 뒤집어 붙이고 탁탁- 손을 터는 특급 헌터.
“됐어! 이러면 천공탑인 줄 모를 거야! 박스성으로만 보일 거야!”
특급 헌터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야, 너 간다는 집이 어딘데? 혹시 친구 집?!”
천문석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옥상에서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VIP 모시러 왔는데.”
“황 비서 누나? 잠깐만! 나 짐 싸고 있어!”
장강 유통, 황 비서?
설마, 장민 대표가 있는 타워 팰리스?
특급 헌터가 스스로, 자기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지 못한 상황에 멈칫할 때 현관에 초췌한 얼굴의 황 비서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아, 네. 그런데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으신데?”
“남중국에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계속 야근하는데, 어제도 사고가 터져서…….”
“혹시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때문에?”
“네, 알고 계시는군요. 장강 유통도 재금 그룹 협력업체라 발칵 뒤집혔어요. 하아- 일이 끝이 없네요…….”
헌터 업계 상위 0.01%의 분위기를 알아볼 기회다!
천문석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지금 분위기는 어떤가요?”
“전부 난리죠. 거의 2달 가깝게 일정을 당겼으니…….”
천문석이 황 비서의 말에 집중할 때.
거실에서 특급 헌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앗! 알바 잡낭에 넣을 거 있는데 괜찮아?!”
“어, 신분증은 넣지 말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빠르게 움직였다.
한달음에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뛰어나와 텔레비전 옆에 놓인 잡낭을 열고 나무상자를 흔들었다.
후드드득-
나무상자에서 튀어나와 잡낭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건들.
쓰스스스슥-
잽싸게 스케치북에 편지를 써서 2, 3, 4번 접어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다.
“뭐지? 또 뭐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앗! 그렇지!”
깨달음의 탄성과 함께 짝- 박수 치고 왼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눈에 대는 순간 보였다.
잡낭 틈에 숨어 있던 검은 동전이!
특급 헌터는 오른손으로 딱밤 자세를 잡고 검은 동전을 가볍게 때렸다.
딱, 우우웅-
검은 동전이 종처럼 떨어 울었다
“내가 부르면 오는 거야. 알았지? 안 오면 하늘 이을 거야. 알았지?!”
톡- 건드리는 순간, 마치 대답하듯 부르르 떠는 검은 동전.
“이걸로 준비 끝!”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모든 것을 봤다.
편안한 소파 등받이.
같이 밥을 먹은 러그.
함께 보면서 웃은 텔레비전.
완전 맛있는 밥이 나오던 주방.
신나게 샤워하고 요플레를 먹던 냉장고.
거실 구석에 놓인 내 집과 모두와 함께 만든 천공탑.
……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때마다 알바, 세연, 경석 형 그리고 장민과의 추억이 생각났다.
“하늘님 난 할 수 있어!”
특급 헌터는 하늘을 바라보며 씩씩하게 외치고 헌터용 배낭으로 달려갔다.
재킷 안쪽 주머니 깊이 잠든 새끼 여우 섬초를 확인하고.
배낭의 좌우 포켓에 물병과 아수라 조각상을 꽂은 후 배낭을 메고 일어나 외쳤다.
“으아앗- 엄청난 힘이 솟는다! 황 비서 누나! 나 집에 갈 준비 끝났어!”
* * *
천문석은 돌연 들려온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진짜 집에 가는 거야? 장민 대표님 집?!”
“맞아. 엄마한테 안녕안녕안녕 해야 하거든! 그럼 알바 안녕안녕! 내일 봐!”
특급 헌터는 대답과 동시에 옥상을 가로지르며 외쳤다.
“친구들 안녕안녕! 멋진 나무, 수박 토마토, 경주장도 안녕안녕안녕!”
“잠시만 계단 위험해요! 저랑 같이……!”
“황 비서 누나! 느려! 빨리빨리! 나 오늘 할 일 엄청 많아! 늦으면 놓고 갈 거야!”
외침과 함께 한달음에 철문 너머 계단으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
“바로 가 봐야겠네요. 앗! 이거 대표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남중국에서 터진 사건으로 회사에 비상이 걸려 오지 못하셨어요. 직접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도 같이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내일 창립식에서 대표님께서 직접 말씀…….”
부아아아앙-
이때 지상에서 들려온 엔진음이 황 비서의 말을 끊었다.
“설마? 여기 받아 주세요!”
황 비서는 봉투를 던지듯이 건네고 옥상 난간으로 달려갔다.
“……!?!”
순간 사색이 된 얼굴과 반사적으로 달리는 몸!
“정지! 멈춰! 그냥 가면 안 돼요! 기다려 주세요!”
옥상 난간에 서자 황 비서가 사색이 된 이유가 보였다.
부앙, 부아앙-
당장이라도 질주할 듯 엔진음을 내며 슬슬슬 주차장 입구로 움직이는 장갑 SUV.
“정지! 허억- 멈춰! 흐억- 그냥 가면 안 돼!”
건물 입구에서 뛰어나와 숨을 몰아쉬며 주차장을 달리는 황 비서.
“빨리빨리! 황 비서 누나 할 수 있어! 앗! 알바! 안녕안녕! 내일 봐! 카카캌-”
SUV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퐁퐁검을 흔드는 특급 헌터.
“어, 그래 잘 가고 내일 보자!”
천문석은 마주 손을 흔들며 탄식했다.
“악마 꼬맹이가 돌아가는구나. 장강 유통 직원들 화이팅!”
“악마 꼬맹이? 그게 누군데?”
샤워를 끝낸 이세기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옥상으로 나왔다.
“특급 헌터 별명이 악마 꼬맹이야.”
“뭐? 걔 악마라고 할 정도는 아니던데? 특급 헌터 너 엄청 좋아하던데, 그 별명은 좀 심하다. 하하-”
언제나처럼 시원한 바람 같은 미소로 대답하는 이세기.
“…….”
그러나 그 별명을 붙인 사람들은 이세기의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다.
주차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사람 중 한 명의 대답이 들려왔다.
“허억- 울린다! 반드시 울려 준다! 흐어억- 내가 반드시 엉엉 울려 줄 거야!”
“특급 헌터는 울지 않는다! 내가 엉엉 울 리 없잖아! 카카카카캌-”
……
장갑 SUV, 특급 헌터, 황 비서는 주차장 너머 언덕 아래로 곧 사라졌다.
특급 헌터를 떼어 놓기 위해 뭘 할 필요도 없었다.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특급 헌터는 알아서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선 초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마저 포근하다.
용용이가 다시 서해로 돌아왔는지 미세 먼지가 사라지고 깨끗한 하늘
내일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이 열리는 날도 오늘과 비슷한 날씨가 예보됐다.
어그로를 끌 강자와 창립식 초대장, 특급 헌터에 날씨까지.
정말 오랜만에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안도감이 아닌 불안감이,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천지사방을 훑는 눈에 멈칫, 멈칫 두 번 밟히는 게 있었다.
아득한 하늘에 떠 있는 천공의 섬.
평상 위에 동글에 모여 앉은 사슴이, 반짝이, 탱탱이, 거복이.
“…….”
천문석은 동물 친구들과 천공의 섬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너희들 혹시 내일 뭐 하기로 했냐?”
-……
-……
-……
아무 말도 못 들었다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동물 친구들!
‘얘들 뭔가 사고 칠 거 같은데?!’
촉이 꿈틀거릴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처음 보는 번호로 온 짧은 문자.
[★☆08/24, 어제 거기, 셋, 원래대로★☆]
워커 실트의 문자!
문자를 보는 순간 바로 해석됐다.
시간은 내일 아침 08시.
장소는 광화문 게이트 지역 앞.
인원은 자신, 주호, 워커 실트, 셋.
목적은 전능 옥좌에 백도어 앵커 심기!
머릿속에서 타임라인이 그려졌다.
-08시 광화문 게이트 앞에서 만난다.
-09시 개구멍을 통과, 백도어를 심을 장소를 찾는다.
-10시 보안 시스템에 과부하를 건다.
-11시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시작.
-12시 백도어 앵커를 심고 빠져나온다.
09시에 전능 옥좌에 들어가 12시까지 3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낸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어차피 사전 조사. 언제든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어째선지 뭔가, 뭔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은 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돌멩이,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나가자.”
“아니 오늘 점심,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천문석은 단호히 외치고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간 동물 친구들을 예리한 눈으로 살폈다.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을 감시해야 하니까!’
그러나 천문석의 예감은 빗나갔다.
휴가 6일 차.
재금 아카데미 창립식 전날 점심, 저녁, 밤 옥탑방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옥탑방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