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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16화 (1,21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216화>

빠빠빠빵-

머릿속에서 효과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활짝 열린 천강흔 랜덤 박스 안에서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불길한 너무나 불길한 검은 기류!

기적은 없었다.

XXX등급 무공 천마신공 당첨이다!

잊었던 입문결이 다시 울려 퍼지고.

오욕칠정을 태우는 화로가 생겨났다.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은 초절정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어둠.

천마신공 그 자체인 무명(無明)!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지권인의 수인을 짚어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륜을 밝혔다.

밀려오던 어둠은 멈췄으나 별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을 작은 성냥 하나로 밝히는 꼴이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국, 어둠을 밝힌 성냥은 꺼지고 천마신공의 무명이 심상 공간 전체를 물들이는 순간.

빌어먹을 마공에 다시 입문한다!

‘1퍼센트! 빌어먹을 1퍼센트!’

절로 분통이 터졌으나 탄식은 나중!

마공에 입문하기 전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부터 한다!

번쩍 하늘을 바라보자 여전히 둥실둥실 천천히 떠오르는 다람쥐 풍선이 보였다.

경지를 넘은 이유!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 다가가는 그림자 마수 처리!

천문석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성큼성큼 걸으며 마음을 일으켰다.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내기가 움직이고, 내기가 움직이자 외기가 호응했다.

하늘의 천기와 용맥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승(昇)!

천문석은 기운에 올라타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하늘로 올라갔다.

“…….”

“…….”

장철과 마혁진은 홀린 듯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하늘의 별처럼 아득히 멀어지다가, 갑자기 엄청난 존재감을 쏟아 내는 이세기.

몸과 마음이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 없었다!

“……!”

“……!”

석상처럼 굳은 채로 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형광등을 끄고 다시 켜는 것처럼 세계가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진다.

노을을 드리운 각성력의 태양과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빛의 고리가 어두워질 때.

이세기는 어둠 속에 놓인 촛불처럼 빛을 토해 내고 있었다.

바람 앞에 당장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위태로운 빛을!

‘뭔가 잘못됐다!’

‘뭔가 잘못됐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반사적으로 각성력을 일으켜 굳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이세기는 성큼- 암반을 디디고 허공을 밟고 아득한 하늘을 향해 비상했다.

각성력의 태양을 향해 둥실둥실 떠오르는 그림자 마수를 향해서!

“야!”

“이세기!”

*   *   *

“와라!”

외침과 함께 손을 뻗는 순간 마음과 내력이 움직이고 자연이 호응했다.

파아아아앙-

돌연 불어온 일진광풍에 실려 빠르게 가까워지는 그림자 마수!

곧 그림자 마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

검은 그림자로 이뤄진 다람쥐 풍선!

‘이 녀석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

분노가 담긴 손을 뻗는 순간 보였다.

그림자로 이뤄진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바람을 거슬려 도망치려는 모습!

뽈뽈뽈-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둥실둥실 허공에 뜬 작은 풍선이 바람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활짝 펼친 손을 내밀고 마음을 일으키자.

위이이이잉-

진공청소기에 빨려 드는 먼지처럼 단숨에 끌려와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앗! 잠……!]

이제야 다급한 사념이 흘러나왔지만 들을 필요도 없다.

천문석은 모든 울분과 고통, 분노를 실어 전법륜인 딱밤 자세를 잡았다.

맞는 순간 실체가 없는 정신체라도 완전히 정신줄을 놓을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그러나 전법륜인 딱밤이 닿기도 전에 다람쥐 풍선이 터졌다.

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본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을 꾹꾹 눌러 만든 것 같은 검은 눈 뭉치 같은 본체!

‘달라진 것은 없다!’

천문석은 그림자 마수의 본체를 향해 최대 출력 전법륜인 딱밤을 날렸다.

[……!]

딱밤이 허공을 가르는 찰나의 순간.

그림자 마수를 잡은 손에 밝혀진 빛이 빨려 들어갔다.

그림자 마수의 본체!

검은 눈뭉치 같은 어둠 속으로!

빛 한 점 없이 깜깜한 방에 전등을 켜듯 검은 눈 뭉치는 사라지고 그 안에 갇혀 있던 영체(靈體)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처럼 새하얀 털.

바다처럼 푸른 두 눈동자.

작은 머리에 솟은 뾰족한 귀와 풍성한 꼬리.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새끼 여우?”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사념이 전해졌다.

[한 입만! 딱 한 입만 먹으려고 했어! 절대로 많이 먹으려고 한 거 아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담긴 사념이!

‘뭐야 이 녀석? 말이 통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멈칫할 때 사념이 쏟아져 나왔다.

[앗! 아앗! 영체가 생겨났잖아?!]

[설마?! 이 빛, 이 힘!]

[나 도와주러 온 거야?!]

[안개길의 비술로 엄청 불렀는데!]

[내가 부른 거 들었구나?!]

[나 데려오라고 성주님이 보낸 사람이야?!]

……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쏟아지는 사념.

하지만 그 사념 안에 담긴 절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반가움!

어느새 손이 멈추고 다시 시선이 닿았다.

바다처럼 푸른 눈, 첫눈처럼 새하얀 털의 새끼 여우가 신나서 사념파를 쏟아 내고 있었다!

[어떻게 오게 됐냐면…….]

새끼 여우의 영체에서는 영락한 허신과 마신의 잔해, 그림자 특유의 음습함이 없었다!

‘설마?!’

이 순간 생각지도 못한 한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안개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엄청 멋진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야, 잠깐! 잠깐만 나 누가 보내서 온 사람 아냐!”

[뭐? 성주님이 보낸 사람이 아니라고?!]

새끼 여우가 깜짝 놀라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온 신경을 집중하고 물었다.

“너 저 하늘의 각성력의 태양! 삼키려고 올라가던 거 아니었어?!”

[…….]

짧은 침묵 후 억울함이 묻어나는 사념파가 터져 나왔다.

[난 딱 한 입만 먹으려고 했어!]

[절대로! 진짜로! 다 삼킬 생각은 없었어!]

[우리 집이 있는 성으로 돌아갈 힘이 필요했단 말이야!]

[그래서 딱 한 입만 먹고 안개길 열려고 했는데…….]

……

무언가 굉장히 서러운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열심히 설명하는 새끼 여우.

길게 들을 필요도 없었다.

사념파를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마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전부 진실이다!

이 새끼 여우는 각성력의 태양을 삼킬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각성력의 태양을 삼켜 물들이는 게 불가능했다.

이름을 잊은 허신과 영락한 마신!

초월종의 잔해가 아니라, 그냥 길을 잃은 여우 요괴의 영체였으니까!

여우 요괴의 영체는 우물에서 물 좀 마시려던 여행자였다.

가만히 놔뒀으면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야 할 곳으로 갔을 목마른 여행자!

그런 여행자를 막겠다고 지레 깜짝 놀라 천강흔 랜덤 박스를 열고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천마신공까지 당첨되면서!

‘이 무슨 삽질이란 말인가?!’

거대한 자괴감이 밀려올 때 문득 느껴지는 시선!

고개를 내리자 시선의 주인이 보였다.

숲속 공터에 자리한 장철과 마혁진.

놀람, 경악, 희열, 찬탄!

두 사람은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허공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외심은 이제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감정이 가득 채워지게 된다.

황당함과 어이없음!

잠시 후 터져 나올 마혁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재생됐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다 헛수고였다고? 그냥 오해였다고?! 그렇게 개폼을 잡았는데, 삽질을 한 거라고?!’

그렇다! 그 모든 게 삽질이었다!

마혁진의 황당한 얼굴과 장철 헌터의 허탈한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에서 검은 무언가가 차올랐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랜덤 박스까지 열었는데. 그게 전부…… 하, 인생!’

내면의 목소리마저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

당장이라도 정신줄이 뚝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다른 건 전부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다.

단 하나 불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킬 천마신공만 빼고!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불꽃이 꺼지는 순간 천마신공은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에 새겨진다.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스스로 올라탄 거다.

길잃은 새끼 여우의 영체가 각성력의 태양을 한 입 먹는 걸 막기 위해서!

“……!”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느낌이 왔다.

손에 닿는 촉촉하고 따뜻한 무언가!

시선을 움직이자 작은 혀를 내밀어 손을 핥짝, 핥짝- 핥는 새끼 여우의 영체가 보였다.

새끼 여우의 영체는 자신의 손을 핥을 때마다 점점 더 선명해지고 존재감이 강해지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새끼 여우가 핥고 있는 자신의 손에는 천마신공의 무명(無明)을 밝히기 위해 피어올린 불꽃!

지혜의 륜이 떠 있었으니까!

지금 새끼 여우는 자신의 생명줄을 신나게 핥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배시시 웃으며 꼬리까지 흔들면서!

[이 힘 최고야! 조금만 더 핥으며 집으로 가는 안개길 열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

천문석은 새끼 여우를 멈추지 않았다.

빚이 10억이나 10억 100만 원이나 그게 그거다.

어차피 망했는데 몇 초 빨리 간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   *   *

천문석은 조용히 허공을 밟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그림자 마수 처리한 거 맞아?!”

정신없이 달려온 장철과 마혁진.

그러나 두 사람의 외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세기의 어깨에 앉아 핥짝핥짝핥짝- 정신없이 목을 핥고 있는 새하얀 새끼 여우가 있었으니까!

“……!”

“……!”

장철과 마혁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고 답을 구하는 시선이 날아왔다.

천문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차마 열리지 않는 입을 열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셔야 합니다. 약간의 사고가…….”

“이세기 선생님!”

이때 잔뜩 억눌린 외침과 함께 숲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헉, 허어엌-.”

한달음에 달려와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다 번쩍 고개를 든 사람은 백운대 암반으로 달려간 청년 마혁진이었다!

“네가 여기는 왜? 한강으로 탈출은……?!”

마혁진의 질문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백운대 암반에 엄청난 강자가 나타났습니다! 허공을 찢고 튀어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살금살금 조심스레 걸어서 그 덕분에 제가 앞질러서……!”

천문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적의 등장!

평소라면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을 거다.

사건이 다 끝나 가는데 이 개연성 없는 등장은 뭐냐고!

하지만 천문석은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재의 기사, 초월자 김철수처럼 스스로를 희생했다.

초절정의 경지.

마침내 열린 천강흔 랜덤 박스.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천마신공.

그러나 자신의 희생은 무의미한 삽질로 밝혀졌다.

핥짝. 핥짝, 핥짝-

신나서 목을 핥고 있는 새끼 여우가 천마신공에 당첨되면서까지 막으려던 그림자 마수였으니까!

청년 마혁진의 외침은 자신의 행동이 삽질이 아니라고,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해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힘으로 그 강자를 꺾는다!

천문석은 청년 마혁진의 말을 끊고 확인했다.

“그 강자 어디서 오고 있다고?!”

*   *   *

천문석은 손을 봤다.

파슥, 파스슥-

천천히 점멸하기 시작하는 지혜의 불꽃.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제 곧 지혜의 불꽃은 꺼지고 천마신공의 무명이 밀려와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에 마공을 새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다.

전생 천마와 같은 결말.

그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는 정체불명의 강자를 해결하는 것!

천문석은 힐끗 등 뒤로 시선을 돌렸다.

작은 기척 하나 흘리지 않고 숨어 있는 장철 헌터와 새끼 여우, 젊고 나이 든 마혁진.

다시 빙글 고개를 돌려 백운대 방향 숲을 바라보며 기감을 뻗었다.

초절정에 오르기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기감은 순식간에 숲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쏟아 냈다.

하지만 기감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백운대에 나타난 강자는 완벽하게 기파를 갈무리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금 그 경지에 맞는 상대가 나타났다.

현생 알바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제대로 된 강자가!

그리고 곧 소리가 들려왔다.

와삭, 와삭-

바짝 마른 낙엽이 천천히 부서지는 소리가!

강자는 둔보를 펼치듯 천천히 아주 느리고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한 적들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강자다!

천문석은 기척을 지운 채로 내력을 압축하고 다시 압축했다.

‘선수필승! 우선 선빵부터 날리고 본다!’

폭풍같이 몰아치기 위해서!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와삭, 와삭-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천둥 치듯 귓가를 울리는 순간.

‘지금이다!’

소리 없는 진각을 밟고 산을 무너트리는 힘을 담을 선빵을 발사했다.

이 순간 거대한 사념파가 터져 나왔다.

[하늘님! 어디에 계세요?!]

[차원 방벽을 뚫고 제가!!]

[부르신 천마가 왔습니다!!]

천마(天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담긴 사념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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