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47화>
“데려다줄게…….”
장철은 손을 내밀며 웃었다.
천문석이 과거를 재현하는 던전에서 장철, 장민, 장세린을 만나 도와주고 자신에게 곰곰이를 전해 줬음에도 세린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던전은 과거를 비추는 허상일 뿐이라는 말처럼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행동 또한 결과는 같으리라.
하지만 괜찮다.
이 모든 건 무의미하지 않았다.
옥탑방 천문석이 던전에서 만난 장철, 장민, 세린이를 도와줬듯.
김철수라는 사람이 처음 보는 세린이에게 아낌없이 베푼 것처럼.
자신의 행동으로 세린이가 아빠, 엄마, 고모와 함께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딸을 지키지 못한 아빠에게는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과분한 선물이었다.
아직 실패하지 않은 아빠에게 딸을 데려다주는 것, 그게 지금 자신이 할 일이었다.
“세린이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반드시…….”
뻗은 손이 유리창에 툭- 닿는 순간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잘못 본 거였구나!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아빠를 몰라볼 리 없잖아! 난 알고 있었다니까!”
“미안, 아저씨 딸이랑 너무 닮아서…… 착각한 거 같아. 여기는 위험하니까 같이 아빠, 엄마, 고모 찾으러 가자.”
“아빠, 엄마, 고모!”
환호하며 문을 열려다가 멈칫하는 세린이.
“철수 오빠랑 약속했는데…….”
“약속?”
“아빠, 엄마, 고모 아니면 절대 문 안 열기로 약속했어! 곰곰이가 증인이야!”
창문에 찰싹 붙는 곰 인형, 곰곰이.
“아빠를 찾으러 가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
짧은 망설임 후에 단호히 고개를 젓는 세린이.
“안 돼. 요플레 뚜껑 같이 핥으면서 약속했단 말이야! 그렇지 곰곰이?”
곰곰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감이 왔다.
예전에 고래 내복을 사줬을 때와 같다!
포장도 뜯지 않은 고래 내복을 품에 안고 잠들더니…….
아침이 되자마자 고래 내복으로 갈아입고 주장했다.
고래 내복을 입고 유치원에 가야 하는 1두 가지 이유를!
자신과 아내가 아무리 말리고 혼내도 먹히지 않았다.
세린이가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장민의 설득도 소용없었다!
결국, 세린이는 고래 그림이 그려진 내복을 입고 유치원에 갔고.
며칠 후 아침 현관문을 열었을 때, 똑같은 내복을 입은 옆집 세찬이가 있었다.
‘세찬이! 멋진 고래잖아?! 훌륭해!’
‘하루 종일 굴러서 나도 샀어! 후헤헷-’
환호성을 터트리는 두 꼬맹이 뒤에 서 있는 사람들.
‘…….’
‘…….’
초췌한 얼굴, 지친 눈빛의 세찬이 아빠, 엄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이심전심 공감한 감정!
세린이는 그때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도록 어떻게든 구슬려야 한다!
“세린아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자 얼른 문 열자.”
“안 돼! 모르는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단 말이야!”
“아저씨는 세린이, 아빠, 엄마, 고모, 그 곰 인형 곰곰이 이름 다 알잖아? 모르는 사람 아냐.”
“난 아저씨 이름 모르잖아! 우리 모르는 사람 맞아!”
다람쥐처럼 잽싸게 뛰어 반대쪽 문에 착 달라붙는 세린이!
아차!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아저씨 이름 장철이야.”
“……?!”
두 눈에 생겨나는 경계심.
재빨리 주머니에서 헌터 라이선스를 꺼내 창문에 붙였다.
“보이지? 여기 장철이라고 쓰여 있는 거?”
“장철?! 우리 아빠, 우리 고모 오빠랑 이름이 똑같잖아!”
창문에 붙은 헌터 라이선스에 인쇄된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는 장세린.
“야, 지금까지 계속 그 이야기……!”
장철은 반사적으로 외치다가 말을 삼켰다.
지금 중요한 건 세린이를 과거의 장철과 장민에게 데려다주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세린이가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맞아. 세린이 아빠랑 이름이 똑같아. 그럼 우리 이제 서로 이름 알지? 장세린, 장철.”
“앗! 그럼 우리 이제 아는 사람이잖아?!”
“그렇지! 이제 우리 서로 아는 사이니까 괜찮아. 자 문 열고 아빠한테 가자…….”
부드럽게 말하는 순간 표정에 드러난 갈등.
어느새 반대쪽 문에 붙었던 몸이 스르륵 다가오고 있다.
이제 한마디면 더 설득하면 된다.
그러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리라!
‘생각해라, 생각해!’
빠르게 머리를 굴릴 때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악마 꼬맹이, 엉망진창 말썽꾼을 제압한 특급 헌터의 절친, 전 키즈카페 부사장 알바 천문석!
-알바 천문석.
-헌터 라이선스.
-갈등하는 장세린.
알바 천문석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설득했을까?!
머릿속에 팟! 섬광이 번쩍이고 한가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세린아! 여기 신분증에 헌터라고 써진 거 보이지?”
“보이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장세린.
“헌터는 경찰이랑 비슷한 거야. 경찰이 도와준다고 하면 어떡해야 하지?”
“당연히 따라야…… 앗, 아앗! 아저씨 경찰이었구나!”
탄성과 함께 깨달음의 빛이 얼굴에 스치고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됐다! 해냈다!’
마음속으로 환호하는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타아아앙-
동시에 움직이는 장철과 장세린의 시선.
주차장 북쪽 시가지 방향!
랩터, 고블린, 늑대 마수가 튀어나오고 있다!
그리고 들려오는 확성기 외침!
[경찰이 시민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거대 괴수가 용마산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린이 대공원 방향에서 괴물들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군이 이미 출동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강은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거리의 시민분들은 안전한 주위 건물로 대피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국군이 괴물들을 저지하기 위해 출동 중입니다!]
[시민분들은 위험한 한강이 아닌 안전한 집과 건물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
끼이잇-
타아앙-
시가지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와 총성!
공기가 무거워지고, 피부가 따끔거린다.
‘느껴진다!’
수천 번 경험한 전투의 예감!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되고 이곳은 전장이 된다!
‘막을 수 있을까?!’
현대 무기는 절대 약하지 않다.
던전, 균열, 게이트 너머가 아닌 지금의 서울에 나타난 자잘한 마수와 몬스터는 소총만으로 쉽게 상대할 수 있고, 바위 트롤 같은 대형 몬스터도 전차 포탄으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마수와 몬스터의 투지, 기동, 돌진력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고, 현시대의 군인들은 대규모로 밀려오는 마수,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는 몬스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다 보면 아군의 등에 총알을 꽂기 일쑤였다.
처음 헌터가 되는 순간 세뇌하듯이 반복시키는 사선 확인의 외침에는 게이트 전쟁에서 피로 얻은 교훈이 담겨 있었다!
사선 관리가 조금만 어긋나도 대참사가 벌어진다!
엄청난 인파가 몰린 한강이 아닌 안전한 집과 건물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은 적절했다.
단, 엄청난 피어를 터트린 거대 괴수가 접근하는 게 아니었다면!
성수 대교를 내려올 때 하늘을 터트릴 듯 울려 퍼진 피어!
이곳으로 접근 중인 괴수는 최소 3등급 이상의 거대 괴수다!
3등급을 넘어가는 거대 괴수의 막강한 반발장!
마탄도 아닌, 그냥 전차 포탄 몇 발로는 이 반발장을 뚫을 수 없다!
마탄이 없는 지금 거대 괴수의 막강한 반발장을 뚫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포격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이다.
아직 대피하지 않고 집에서 기다리는 시민들이 태반!
서울 전체는 빈 곳 하나 없이 집, 건물, 빌딩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게다가 게이트가 열린 지 하루가 지났을 뿐, 게이트 전쟁은 시작하지도 않았다.
군인, 경찰, 시민, 정치인 그 누구도 서울을 잃고 낙동강까지 밀리는 미래는 생각지도 못할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시민의 생명과 재산 피해를 감수하고 서울 시가지 포격을 승인할 정치인은 없다!
거대 괴수와의 전투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기억났다.
전차와 장갑차는 화력을 쏟아붓다 전멸.
저지선이 붕괴하고 거대 괴수는 수십만이 넘는 피난민이 모인 한강으로 이동.
갑자기 튀어나온 바이크가 거대 괴수를 어린이 대공원으로 유인.
현장 지휘관은 어린이 대공원의 거대 괴수를 향해 포격 요청을 한다.
그러나 포격은 끝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에 포격 명령을 내리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거대 괴수는 산발적인 공격을 받다가 어린이 대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누군가 북한산으로 유인할 때까지 한강과 광진구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거대 괴수는 시작일 뿐이다.
광진구, 아니 서울에 안전한 장소는 없다.
EMP 마력 폭풍이 터지는 순간 화약 무기가 침묵하고 국군은 무력화되어 경기도까지 밀려난다.
경기도에 저지선을 펼치고 화력과 병력을 모아 서울을 수복하려 했지만, 전국에 게이트, 균열, 던전이 생겨나며 전후방이 사라지고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다.
검은 폭풍 이세영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고, 서울 수복 작전에 성공해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후에도 게이트 전쟁이 길게 이어진다.
게이트 전쟁에서 안전지대는 단 한 곳 제주도뿐이다!
EMP 마력 폭풍이 터지기 전, 아직 공항이 살아 있는 지금이 기회다!
세린이는 한강을 건너 아빠, 엄마, 고모와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계획이 세워지는 순간 바로 고개를 돌려 외쳤다.
“세린아! 이곳 위험해져. 당장 한강을 건너야 해. 헌터 아저씨가 아빠랑 고모, 엄마! 반드시 찾아 줄게! 문 열어 줘!”
“방송에서 안전한 장소에 숨어 있으라는데? 철수 오빠가 자동차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말했어!”
단호히 고개를 젓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리는 장세린!
갑자기 터진 방송에 거의 다 된 설득이 허사가 됐다!
거대 괴수가 나타날 장소에 놓아둘 수는 없다.
세린이를 데리고 약속한 청담대교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 당장!
강제로라도!
장철은 각성력을 끌어올렸다.
우드드득-
상급 육체 각성자의 육체는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철근을 엿가락처럼 뚝, 뚝- 끊어 낸다!
이런 평범한 자동차 문은 힘만 줘도 열 수 있다.
“미안하다!”
외침과 동시에 손잡이를 비틀어 잡아당겼다.
그르르르륵-
자동차가 통째로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다.
“왜 이렇게 튼튼해?!”
즉시 다리로 바닥을 지지하고 다시금 손에 힘을 주었다.
와드드득-
이 순간 느껴졌다.
“……!”
손에 걸리는 저항이 전혀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마치 산을 당기고, 대지를 밀어내듯 막연한 감각만 전해진다!
무게는 평범한 자동차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평범한 자동차 손잡이는 강화 철근조차 맨손으로 끊어 내는 자신의 힘을 버티고 있다!
‘보통 자동차가 내 힘을 버틴다고?!’
하아앗-
기합을 터트리며 각성력과 육체의 힘을 끌어올렸다.
맨손으로 랩터의 갈고리발톱을 뽑아내고, 마수의 두꺼운 털가죽을 찢어발기는 힘이 강화 강철보다 단단한 손에 모였다.
헌터용 장갑 SUV의 방탄문조차 장난감처럼 뜯어 버릴 힘!
그러나 자동차 손잡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명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존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허상을 잡으려는 것처럼 힘과 각성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진다!
반응은 손이 아닌 발에서 왔다.
콰직, 콰지지직-
자동차가 아닌 발을 디딘 아스팔트가 깨져나가고 시멘트를 뚫고 발이 박히고 있다!
맨손으로는 안 된다!
“세린아!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서!”
장철은 강화 해머를 꺼내는 동시에 손잡이를 내려쳤다.
텅-
타이어를 내리치는 듯한 반발력에 튕겨 오르는 해머!
“……!”
장철은 손잡이, 사방의 유리창. 네 개의 문을 힘, 스냅, 각성력을 담아 쉴 새 없이 내려쳤다.
텅텅, 텅텅텅텅-
바위 트롤의 암석 감각조차 쪼갠 해머가 장난감 뿅망치처럼 튕겨 오르다 퍼석- 모래처럼 바스러져 내렸다!
“……이게 뭐야?!”
경악한 장철이 외치는 순간
어느새 창문에 찰싹 얼굴을 붙인 세린이가 환호했다.
“봤지? 봤지! 철수 오빠가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했어! 난 철수 오빠랑 약속대로! 아빠, 엄마, 고모 올 때까지 절대로 문 안 열 거야!”
장세린은 고래 내복 때처럼 단호히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