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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131화 (1,13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31화>

소녀의 시선이 도깨비불이 밝혀진 숲을 빠르게 훑었다.

염(念)의 안개에 둘러싸인 숲.

숲을 가로지르는 쭉 뻗은 오솔길.

오솔길 중앙에 자리한 거울 같은 호수.

“저런 호수가 있었나?”

기억을 짚어 봤지만, 호수, 오솔길, 숲 모두 기억에 없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곳은 세계의 나무가 자라난 모든 세계와 이어지는 허공도(虛空島).

허공도의 제사장인 자신이라고 해도 이 무한한 산맥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달이 뜬 깊은 밤이다.

세계의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 엘프, 수인, 드워프…… 사람과 요마괴이 모두가 꿈을 꾸는 시간이다.

누군가의 꿈이 허공도에 흘려 들어왔을 수도 있다.

오래 사는 엘프가 밤의 길을 열고, 천공탑을 오르는 노움이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이 있는 곳이 허공도인지도 모르는 요괴가 대주술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

한참 동안 숲을 바라보던 소녀, 허공도의 제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정도 규모의 숲을 만들 정도면 이름을 가진 존재일 텐데…… 확인해 볼까?”

문득 호기심이 들었지만, 바로 고개가 저어졌다.

무한한 허공도에 비하면 저 숲은 바늘을 세운 것에 불과하다.

밤은 짧고 허공도의 제사장으로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아- 그렇지. 할 일이 있었지.”

허공도의 제사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마당을 나서 선조의 나무로 걸어갔다.

자욱한 안개를 지나 잠시 걷자 단단한 판석이 깔린 광장에 자리한 거대한 밑동만 남은 나무가 나타났다.

갈라진 지팡이를 휘두르자 사방에서 생겨난 빛이 나무 밑동으로 모여들어 줄기와 가지를 만들어 냈다.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빛의 나무는 아득한 하늘의 달과 별을 향해 가지를 뻗고 천천히 흔들렸다.

선조의 나무.

세계의 나무를 모사한 선조의 나무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고 그 앞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판석에 남아 있는 깨진 흔적.

황금 명판을 도둑맞은 흔적이었다.

일기일원문의 조사와 붉은 털의 하누만이 나타난 난장판에 휩쓸렸다 돌아왔을 때 황금 명판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단단한 판석에 남은 얼음 조각과 마력 흔적으로 도둑맞았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도 황제가 건네준 황금 명판을 도둑맞았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러나 황금 명판 도둑놈을 쫓지 못할 정도로 대형 사고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 명판이 사라지는 순간 선조의 나무에 걸어 둔 주술이 깨지고.

선조의 나무 밑동에서 쿨쿨- 잠자고 있던 허공도의 주인이 실종됐다.

아니, 사실 실종일 확률은 극도로 낮았다.

사당에 모아 놓은 곰, 여우, 늑대, 사슴, 너구리, 삵…… 동물 조각상이 같이 사라졌고!

신나서 뛰어간 꼬맹이와 십여 마리의 동물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으니까!

허공도의 주인은 동물들과 함께 그를 찾아 뛰어갔으리라!

그러나 아직 인과가 이어지지 않았다.

허공도의 제사장은 문득 밤하늘을 바라봤다.

“오늘은 달빛도 이상하네?”

어쩐지 평소와 달라 보이는 달 너머에 펼쳐진 별의 바다.

허공도의 주인과 그와의 인과를 잇는 천원좌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

천원좌가 떠오르지 않았다!

허공도의 주인은 아직 잠에서 깰 때가 되지 않았다.

몽중행(夢中行)!

허공도의 주인은 자신이 잠들었다는 것도 잊은 채 동물들과 함께 사라진 거다!

아직 꿈을 꾸고 있기에 힘과 인지는 엉망진창 뒤죽박죽, 게다가 이름과 기억마저 잊은 상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무슨 사건·사고를 일으킬지 몰랐다!

사라진 걸 발견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인과가 이어진 모든 세계를 미친 듯이 뒤졌다.

그러나 이름과 기억을 잊고 꿈을 꾸고 있어도 허공도의 주인.

그분께서 먼저 이름을 부르고 인지하기 전에는 경지를 넘은 초월자는 그분의 존재를 인식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찾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이 영원을 약속받은 허공도의 제사장, 아마르. 자신의 업이었으니까.

“…….”

허공도의 제사장 아마르는 한참 동안 텅 빈 천원좌를 올려다봤다.

아득한 천기에 천원좌를 새긴 일기일원공의 개파조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천원좌는 텅 빈 채 별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정뱅이 대사형.

우직이 밭을 갈던 둘째.

대상인의 꿈을 꾸던 막내.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다시 과거.

삼생의 인과를 엮어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 위를 흐르는 허공도.

아득한 세월이 흘렀지만 세 사람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주정뱅이 대사형의 얄미운 웃음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확실한 건 둘뿐이었다.

그날이 오늘 밤은 아니라는 것과.

달이 지기 전에 인과가 닿은 세계를 돌아보려면 당장 움직여야 한다는 것!

허공도의 제사장 아마르는 훌쩍 몸을 날려 선조의 나무 옆에 수직으로 꽂힌 기둥 위를 달렸다.

짤랑-

갈라진 나무 지팡이에 매달린 고리에서 맑은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세계가 기울어지고 기둥이 수평이 됐다.

하늘에 닿은 기둥 너머에 거울에 비친 듯 거대한 산맥이 나타났다.

제사장 아마르는 기둥에서 훌쩍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바람을 낚아챘다.

휘이이이잉-

한 줄기 바람을 탄 아마르는 봉우리 위를 크게 한 바퀴 돌며 남아 있는 흔적을 다시금 살폈다.

이때 문득 눈에 밟히는 발간빛이 있었다.

염의 안개 앞에 멈춰 선 도깨비불.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가 저어졌다.

이미 떠난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아직도 허공도에 계실 리는 없었다.

“그럴 리 없지.”

아마르는 피식 웃으며 도깨비불이 밝혀진 숲 위를 단숨에 지나 경계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지팡이를 흔들어 덫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땡, 때앵, 때애앵-

풍경 소리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담긴 바람이 숲 위로 퍼져 나갔다.

[어디에 계세요? 달콤한 얼음 동동 식혜를 준비했어요! 대답만 살짝 해 주시면 바로 모시러 갈게요!]

* * *

“돌멩이.”

이름을 부르고 하얀 선 너머로 천천히 손을 밀어 넣는 순간.

마치 물속으로 손을 넣는 듯한 저항감과 부유감이 느껴졌다.

빛을 반사하는 거울처럼 몸을 튕겨 내던 선 너머로 육체가 이동했다!

“돌멩이가 진짜 이름이었다고?!”

천문석은 기울기 시작하는 달을 바라보며 12번째로 탄식했다.

꼬맹이의 외침!

찰싹 달라붙은 밤송이 빛!

하얀 선 너머로 나아가는 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환몽 속 세계는 자신을 ‘돌멩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아니.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돌멩이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맞다고…… 했잖아……!”

완전히 자신감을 되찾은 꼬맹이 목소리가!

빙글 몸을 돌리자 의자에 앉아 요플레 뚜껑을 핥는 꼬맹이가 보였다.

“훌륭해! 챱-! 엄청 맛있어! 챱챱- 이건 아주아주 훌륭한 맛이야!”

챱챱, 챱챱챱-

얼마나 핥았는지 요플레 뚜껑이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야, 요플레 더 줄 테니까 그만 핥아! 뚜껑 닳겠다!”

“뭐?! 더 준다고 진짜로?! 정말로?!”

진짜 이름을 찾았을 때보다 2배는 깜짝 놀라는 꼬맹이.

천문석은 성큼 걸어가 배낭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2004년 부산에서 만난 서울 보육원 아이들이 선물로 준 요플레가 잔뜩 들어 있는 비닐봉지에서 요플레를 하나 꺼내다 문득 든 생각에 비닐봉지를 통째로 건넸다.

“선물이야. 다 줄게.”

“……다 준다고?! 요플레 엄청 맛있는데?! 나 다 주면 돌멩이는 못 먹잖아?! 난 2개면 되는데? 아니 뚜껑만 줘도 괜찮은데?! 앗! 혹시 요플레가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르는 거 아냐?! 내가 설명해 줄게! 요플레가 왜 훌륭하냐면! 우선 새콤달콤…….”

깜짝 놀란 꼬맹이가 벌떡 일어나 말을 쏟아 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이름을 확인하고 하얀 선, 경계를 넘을 수 있는지 12번 확인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환몽이 펼쳐진 숲을 떠날 때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요플레가 어째서 훌륭한지 열변을 토하는 꼬맹이.

같이 떠나지 않고 숲에 남겠다는 담요 돌돌 꼬맹이에게 줄 것이 있었다.

우선은 옷부터 갈아입히고!

천문석은 성큼 걸어가 모닥불에 바짝 마른 옷과 꺼내 놓은 배낭을 챙겨 돌아왔다.

“꼬맹이. 옷 갈아입자.”

“왜? 나 담요 엄청 맘에 드는데?! 보들보들, 포근해! 완전 좋아!”

“나 이제 가잖아?”

“아, 그렇지…… 담요 돌려줘야지…….”

풀죽은 얼굴로 대답하더니 꼬물꼬물 담요를 묶은 수건 매듭을 푸는 꼬맹이.

“내가 해 줄게.”

“앗! 괜찮…….”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뻗어 단숨에 매듭을 풀었다.

그러나 담요는 흘러내리지 않고 차려자세를 취한 꼬맹이의 팔에 꾹 눌려 고정되어 있었다.

“…….”

“…….”

“야, 손 번쩍!”

“안 돼. 나 팔 아파서 손 번쩍이 안 돼.”

꼬맹이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을 때 귓불을 스치는 손가락.

우히히히히헷-

웃음과 함께 반사적으로 손이 귀로 움직이는 순간.

파파파팟-

번개같이 담요를 끌어내고 탄력 있는 헌터용 속옷과 바짝 마른 옷을 입혔다.

“으아앗- 보들보들 보들이!”

순간 절친과 떨어지는 듯 애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뭐야? 벌써 이름도 붙였냐?”

“가짜 천문, 아니 진짜 돌멩이! 보들이 나한테 팔면 안 될까?! 나무 열매, 약초, 민들레 잔뜩 있는데! 앗! 나 신기한 돌멩이도 많아! 당장 가서……!”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당장이라도 달려가려는 꼬맹이의 어깨에 담요를 걸쳤다.

“앗! 고마워! 다 줄게! 내 망태기……?!”

환한 얼굴로 망태기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꼬맹이.

“됐고. 이것도 줄게 같이 챙겨.”

“응?”

천문석은 배낭을 열어 테이블에 뒤집었다.

통조림, 핫팩, 침낭, 고체 연료, 라이터.

컵, 그릇, 냄비, 숟가락과 젓가락.

포션, 붕대, 지혈제, 구급낭.

헌터용 카레, 짜장, 된장국.

……

와르르 온갖 장비와 식량, 물품이 테이블에 쏟아졌다.

천문석은 테이블 위를 가리키며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식기랑 간편식은 아까 요리할 때 어떻게 쓰는지 봤지? 이 고체 연료는 그냥 쓰지 말고 아까처럼 바짝 마른 나뭇가지 모아서 쓰는 게 좋을 거야. 화력은 강한데 지속시간이 짧거든. 불 항상 조심하고. 통조림은…… 아, 여기 있네. 이 통조림 따개로 열면 된다. 혹시 여는 거 힘들면 동물 친구들한테 열어 달라고 부탁하고. 밤에는 쌀쌀하니까. 담요 바닥에 깔고 이 침낭에 들어가서 자고. 이건 핫팩이야. 이렇게 포장을 뜯어서 흔들면…….”

스스스슥-

핫팩을 흔들어 던져 주자 반사적으로 받는 꼬맹이.

“……??”

꼬맹이의 크게 뜬 두 눈에는 의혹이 서려 있었다.

‘뭐지, 왜 이걸 다 나한테 주는 거지?!’

마음의 소리 뒤로 깜짝 놀란 외침이 이어졌다.

“으아, 으앗- 이거 뭐야?! 막 뜨근뜨근하잖아!!”

경악한 얼굴로 핫팩을 바라보는 꼬맹이.

“핫팩이야. 추울 때 흔들어서 사용하면 된다. 아, 김밥 주기로 했지. 김밥은 쉽게 상하니까. 빨리 먹어야 한다.”

영희 수녀님의 특제 김밥이 담긴 밀폐 용기를 열어, 호일에 사인 김밥을 요플레가 담긴 비닐봉지에 담았다.

“갈대 바구니에 넣기는 좀 많은데…… 꼬맹이, 일어나서 손 번쩍!”

“손 번쩍!”

번쩍 양팔을 드는 순간 배낭을 매주고 살폈다.

“음 좀 크기는 한데 조이면 끌리지는 않겠네. 무거우면 동물 친구한테 옮겨 달라고 부탁하면 되니까 배낭이 낫겠다. 다시 손 번쩍!”

“손 번쩍!”

천문석은 배낭을 풀어 테이블에 가득한 짐을 챙겨 넣기 시작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건 아래로, 작고 가벼운 건 위로.

침낭과 담요는 돌돌 말아 방수천을 씌어 배낭 아래 끈으로 고정.

“하나로는 안 되겠는데.”

순식간에 다 싼 배낭 2개를 앞뒤로 매주고 끈을 당겨 조였다.

잠시 후 꼬맹이는 크고 작은 배낭을 앞뒤로 짊어지고 요플레와 김밥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자, 앞으로 전진!”

“……전진!”

“후진!”

“후진!”

“점프점프!”

“점프, 점프! 앗! 잠깐!”

멍한 얼굴로 반사적으로 움직이던 꼬맹이는 다급히 외쳤다.

“이거 나 다 주면 어떡해?! 계획적으로 살아야지! 막 퍼 주다가 거지 된단 말이야!!”

“거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냐?”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 홀쭉해진 배낭을 가리켰다.

“내가 가는 곳에선 저 배낭이면 충분해. 그보다 너 진짜 나랑 같이…….”

“잠깐만! 나도 줄 게 있어!”

커다란 배낭을 멘 채로 갈대 바구니를 번쩍 들어 테이블에 놓는 꼬맹이.

“이 망태기! 이 안에 내가 열심히 모은 나무 열매, 민들레, 약초 들어 있어! 앗! 이 망태기 곰, 여우, 늑대, 삵, 너구리…… 친구들이랑 같이 만들어서 물건도 엄청 많이 들어가! 내 망태기 줄게! 앗, 앗! 그렇지 돌멩이! 금 그었던 돌멩이도 줄까? 돌멩이, 내 돌멩이가 어디에 있지?!”

꼬맹이는 몸을 비틀며 앞뒤로 맨 배낭 사이로 주머니를 뒤졌다.

“잠깐 우선 배낭 풀어야겠다.”

앞뒤로 맨 배낭을 풀어 내려놓는 순간, 하얀 돌멩이를 쥔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찾았다! 돌멩이, 돌멩이 줄게!”

“아까 선을 그었던 돌멩이?”

“맞아! 다시 보여 줄게!”

쓱, 쓱, 쓰스슥-

하얀 돌멩이를 긋는 순간 땅바닥, 자갈, 바위, 나무 어디 건 페인트를 칠한 듯 선명한 하얀 선이 그어졌다.

“신기하지? 내가 가진 돌멩이 중에 제일 좋은 거야! 앗! 그러고 보니 가짜 천문석 진짜 이름도 돌멩이잖아! 이건 운명이야!”

“그러냐?”

웃으며 반문하는 순간 쓱 앞으로 다가오는 하얀 돌멩이.

“받아! 내 선물이야!”

“그거 주면 너랑 네 친구는 어떡하고? 돌아가려면 선 그어야 하잖아?”

기다렸다는 듯이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고 하얀 돌멩이가 하나 더 튀어나왔다.

“괜찮아! 두 번째로 좋은 돌멩이 있거든!”

“나한테 최고로 좋은 돌멩이를 주는 거냐?”

“당연하지! 최고를 받았으니까! 당연히 최고를 줘야지!”

꼬맹이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요플레와 김밥이 담긴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고맙다.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

하얀 돌멩이를 받는 순간 꼬맹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생겨났다.

“앗! 잠깐만! 줄 거 또 있어! 곰곰곰! 저번에 주운 돌! 내가 맡긴 돌 어디에 있어?!”

꼬맹이는 망태기를 번쩍 들고 한달음에 동물 요괴들에게 달려갔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환한 달빛 아래 거울 같은 호수를 품은 숲이 펼쳐져 있고.

모닥불 옆에는 테이블과 오리배를 등에 짊어진 거대한 악어가 있다.

“돌! 그 반짝반짝! 인간이 좋아할 거라는 돌 어디 있어?! 빨리 찾아봐!”

이상한 꼬맹이는 정신없이 달려가 동물 요괴들을 닦달하고.

우으으응-?

깽, 깨이잉-?

왕, 왕왕왕-?!

이모티콘을 닮은 곰, 여우, 늑대는 쿨쿨 자다 일어나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환몽이란 걸 알고 있어도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곧 끝이다.

한여름 밤 꿈처럼 이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 스승님의 환몽처럼 생생히 기억날지는 아직 모른다.

둘 중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

다음 세계 아마도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가 될 곳으로 떠날 순간이 왔다.

세기말 대한민국.

천문석은 테이블 위 배낭을 짊어지고 외쳤다.

“꼬맹이, 나 이제 간다!”

“앗! 가면 안 돼! 기다려! 망태기 가져가야지!”

꼬맹이는 망태기를 번쩍 들고 다다닥- 달려왔다.

“꼬맹이 특급 헌터랑 정말 비슷하네. 만나면 엄청 친해지겠는데. 아니지, 라이벌이 되려나?”

피식 웃을 때 깜빡한 게 떠올랐다.

칼로리바!

잡낭에 넣어 둔 곡물 칼로리바를 잊고 있었다!

“이것도 같이 줘야겠네.”

잡낭을 열고 곡물 칼로리바를 꺼낼 때 빈 포장지가 보였다.

“웬 빈 포장지가……?”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기억!

4번 쪽지!

서초구에서 만난 임수정이 자신에게 전한 염동 대협의 쪽지!

그 쪽지에 적혀 있던 내용!

“……!”

반사적으로 꼬맹이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쪽지를 펼쳐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설마, 설마!’

곧 기억 속 문장이 나왔다.

[……그러니까 잡낭 안에 있는 칼로리바 3개는 꼬맹이 주지 말고 남겨 둬. 아니지 혹시 모르니 포장지만 회수해도 되겠네.]

처음 읽었을 때는 의미를 알 수 없던 문장.

그러나 지금 다시 읽자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처음과 지금, 변한 것은 하나뿐이다.

“잠깐만 기다려……!”

망태기를 번쩍 들고 달려오는 꼬맹이.

이름을 잊은 꼬맹이를 알게 된 것뿐이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무한의 숲에 떨어진 것.

동물 요괴들을 발견한 것.

이름을 잊은 꼬맹이와 만난 것.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름을 잊은 꼬맹이를 만나 칼로리바와 핫팩, 담요와 음식으로 가득 찬 배낭을 전하기 위한 필연 이었다!

자신이 꼬맹이에게 물건이 가득 담긴 배낭을 건넨 건 이미 정해진 사실, 아득한 하늘의 인과를 잇는 행동이었다!

“……!”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헐떡이는 숨소리가 섞인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헉, 허엌- 돌멩이! 망태기 가져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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