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30화>
우히헷히헷힠헼-
꼬맹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질 때.
“……!”
천문석의 가슴속 깊은 곳에선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솟았다.
평생 버리려던 천마신공과 천마의 업이다!
그러나 이렇게 비웃음당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비웃어도 내가 비웃는다!’
천문석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담아 외쳤다.
“꼬맹이! 넌 이름도 없잖아!”
“아……!”
짧은 탄성과 함께 웃음이 뚝 멈추고 들썩이던 어깨와 고개가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힘없는 목소리.
“맞아. 난 이름도 없는…….”
“야, 그런 의도로 한 말 아냐! 웃어! 차라리 그냥 계속 웃어!”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번쩍 고개를 드는 꼬맹이.
“……는 게 아니라! 이름 잊어버렸다니까! 당연히 이름 있어! 엄마, 아빠! 무서운 누나! 붕붕이 오빠! 주정뱅이 빨간 원숭이! 잔소리꾼 제사장! 동물 친구들! 전부 다 부르는 완전 멋진 진짜 이름 있어! 난 절대 이름이 없는 게 아니야! 너무 오래 자느라 깜빡 까먹은 거야! 봐봐! 구, 구 팔십일! 구, 팔에 칠십이! 구, 칠에 육십삼! 봤지?! 구구단 9단도 거꾸로 외우고 있잖아! 내 이름도 금방 생각날 거야! 그럼 숲에서 나가서 엄청 신나고 재밌게 놀 거야! 어떻게 놀지 전부 다 계획도 세워 놨어! 우선 붕붕이를…….”
꼬맹이는 숨 한번 쉬지 않고 폭풍같이 말을 쏟아 냈다.
“…….”
천문석은 멍하니 듣고 있다 툭 던지듯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름 잊어버렸잖아?”
“……할 건데, 해야 하는데, 하려고 했는데…….”
도돌이표를 만난 듯 같은 말이 반복되다 버럭 고함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나 머리 엄청 좋은데!”
“왜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 거야?!”
“팔, 팔에 육십사! 구구단 말고 이름이 기억나라고!”
꼬맹이는 작은 손을 들어 콩콩콩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
멍하니 이 모습을 보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야, 잠깐! ‘천마’가 진짜 이름인지 확인해 줘야지!”
“당연히 아니지! 사람 이름이 천마일 리 없잖아! 천마는 지우개란 말이야!”
“지우개? 뭔 소리야! 야, 밤송이 빛으로 확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휙- 낙엽이 뿌려지고 밤송이 빛이 튀어나왔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이다!”
잽싸게 이름을 외치고 손에 내력을 담는 순간 휘이잉- 밤송이 빛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천마도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천마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지우개…… 앗, 잠깐!”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는 깜짝 놀라 외쳤다.
“가짜 천문석! 내 이름 불러 주러 온 거였잖아?! 내 이름은 왜 안 말해 줘?!”
“……!”
아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꼬맹이와 처음 만났을 때 무는 시늉만 했던 이유!
자신이 꼬맹이에게 이름을 주러 왔다고 생각해서다!
힐끗 꼬맹이 뒤를 보자 곰, 사슴, 여우, 늑대 등등 동물 요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꼬맹이가 분노하는 순간 동물 요괴들도 분노하리라.
그렇다고 그냥 아무 이름이나 말할 수도 없다.
진짜 이름인지 확인하는 밤송이 빛이 있었으니까!
‘어떡하지?!’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꼬맹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 이름 뭐야?! 빨리 말해…… 앗!”
이름을 묻다 말고 돌연 굳어 버리는 꼬맹이!
“갑자기 왜 그래?”
“…….”
대답 없이 힐끗 눈치를 보고.
“야, 뭔데 그래?”
“……!”
다시 힐끗힐끗 눈치를 보는 꼬맹이.
‘뭔가 있다!’
직감하는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그게, 그게.”
꼬맹이는 한참을 머뭇머뭇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지존, 천마…….”
“그거 진짜 이름 아니라며? 갑자기 왜?”
질문과 동시에 꼬맹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처럼 완전 이상한 이름이면 안 되는데…….”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꼬맹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
반문하는 순간 좀 더 커진 목소리가 돌아왔다.
“내 이름 지존, 천마처럼 이상한 이름은 아니지?”
진지한 표정, 절박한 목소리로!
“야 지존, 천마가 어때서! 이거 엄청 인기 있는 이름이야! 혈맹 온라인에선 돈 주고 사는 아이디야!”
“아니지? 내 이름 지존, 천마 같은 웃긴 이름 아니지?! 빨리 아니라고 말해 줘!!”
“야! 천마 하나도 안 웃기거든! 우리 동네에는 특급 헌터도 있어!”
“특급 헌터가 왜? 특급 헌터는 완전완전 멋진데?!”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가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당연히 천마가 특급 헌터보다 멋지지! 천마, 특급 헌터 뭘 고를 거야?! 누구나 당연히 천마 고르지! 듣기만 해도 천마가 더 세고, 멋지고, 고독하고 하여튼 좋아 보이잖아!”
“아냐아냐! 내가 보여 줄게!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자기소개한단 말이야!”
꼬맹이는 벌떡 일어나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마도 지존 천마입니다!”
“안녕하세요. 특급 헌터입니다!”
그리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어때? 이제 알았지?!”
“……!”
꼬맹이가 외치는 순간 무호흡으로 즉시 반박했어야 한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도 지존 천마입니다.’
전생의 무림에서는 당당히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이라면?
-알바 면접 자리.
‘알바 지원한 천마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소개팅 자리.
‘처음 뵙네요. 천마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사냥 전 헌터 미팅 자리.
‘신입 헌터 마도 지존 천마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상상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몸 위로 송충이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젠장젠장젠장! 진작에 바꿔 놓는 건데!’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어때, 어때? 어때?! 완전 이상하지? 천마라고 소개 못 하겠지?! 특급 헌터가 훨씬 낫지?!”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꼬맹이가 쉴 새 없이 뼈를 때리고 있었으니까!
“……!”
한마디 반박도 못 하고 밀릴 상황.
우선 물타기로 논점을 흐리고 시간을 번다!
천문석은 확신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야, 특급 헌터도 이상하거든! 세상에 누가 자기 이름을 특급 헌터라고 소개…….”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다!
옥탑방 거실 구석에 세워진 박스성의 주인!
니케, 사슴이, 반짝이, 냠냠이, 탱탱이, 퐁퐁이, 거복이의 친구!
눈앞의 이상한 꼬맹이 못지않게 이상한, 말을 거는 순간 온갖 사건이 터지는 꼬맹이!
우리 동네 특급 헌터!
그렇다!
특급 헌터가 있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당당히 자신을 ‘특급 헌터’라고 소개하는 꼬맹이가 자신의 옥탑방 거실에 살았다!
“……!”
스스로 발등을 찍은 천문석이 말을 잇지 못할 때 꼬맹이의 뼈를 때리는 외침이 이어졌다.
“완전 이상하다니까! 누가 자기 이름을 지존, 풉- 천마 푸풉- 이라고 말해?! 하지만 특급 헌터는 멋져! 딱 듣는 순간 완전 특급으로 뭐든지 잘할 것 같은 멋진 내 친구 같은 이름…… 어, 잠깐. 특급, 특급! 특급 헌터! 아아앗!”
정신없이 외치던 꼬맹이는 깜짝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특급 헌터! 특급 헌터!! 특급 헌터!!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아아아앗-!”
경악한 얼굴로 탄성을 터트리는 꼬맹이.
“야, 뭐야? 왜 그래?”
“특급 헌터! 이 이름, 내 친구한테 완전 잘 어울리잖아! 앗! 아까 내가 그림 그린 종이!”
꼬맹이는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번쩍 들고 외쳤다.
“가짜 천문석! 내 이름이 아니라! 내 친구한테 이름 주러 온 거구나?! 특급 헌터 내 친구 이름이었어! 그렇지! 맞지?!”
“야, 가짜 아니라…….”
대답할 때 번쩍 깨달았다.
이거다!
이걸로 밀고 나간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야 내 뜻을 알았구나! 맞아! 네 친구한테 이름 전해 주러 왔어!”
“역시! 처음 여기다 적어 준 이름을 봤을 때 팟! 감이 왔어! 이게 내 친구 이름이었어! 완전 멋지잖아! 특. 급. 헌. 터! 우와아아-“
꼬맹이는 종이에 적힌 한글, 네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으며 환호했다.
“종이 거꾸로 들었다. 꼬맹이!”
파파팟-
번개같이 종이가 회전하고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우히히히힠-
카캬카카캌-
* * *
됐다. 이름을 주는 건 얼렁뚱땅 넘겼다!
이제 이 환몽을 빠져나가는 방법만 찾으면 된다!
천문석은 길게 웃음을 터트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천문석, 알바, 천마!
이름 셋 모두 다 꽝인 상황!
밤송이 빛은 붙지 않고, 선을 넘는 순간 몸은 튕겨 나오고 있다!
거울에 쏘아진 빛이 반사되듯이!
주소 없이 발송된 택배가 반송되는 것처럼!
“하, 저 선만 통과하면 되는데…… 하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올 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진짜 이름, 주소를 몰라도 집을 찾을 방법이 있다!
중요한 건 진짜 이름이 아닌 가야 할 나뭇가지, 세계를 특정하는 것!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을 보고 제주도를 떠올리듯!
돌아가야 하는 세계가 어디인지만 특정하면 된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야! 꼬맹이!”
“내 친구! 이제 돌아갈 수 있어! 우히히힠-.”
종이를 흔들며 환하게 웃는 꼬맹이.
“야! 방법 생각났어! 그만 웃고 들어 봐!”
“방법?”
“진짜 이름, 주소를 몰라도 세계, 돌아갈 나뭇가지가 어딘지만 알면 되잖아?!”
“……진짜 이름을 모르는데 나뭇가지를 어떻게 알아?”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천문석은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대추 나뭇집 막내!”
“경희 슈퍼 첫째 경희!”
“숲에 사는 이상한 꼬맹이!”
“이름을 몰라도 누군지 알 수 있잖아?!”
“앗, 아앗! 설마?!”
깨달음의 탄성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과 꼬맹이의 시선이 같은 장소에 닿았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낙엽!
그리고 동시에 터져 나온 외침
“밤송이 빛!”
“밤송이 빛!”
“맞아! 밤송이 빛이 붙기만 하면 돼!”
“그렇지! 밤송이 빛이 붙으면 금을 넘어갈 수 있으니까!”
“될 거 같냐?!”
“될 거 같아!!”
꼬맹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천문석은 잡낭을 뒤집어 테이블에 털었다.
포션, 헌터용 카드, 빈 대환단 곽, 구급낭, 정육면체 큐브, 랩에 사인 나뭇잎, 돌멩이…….
잡낭 안에 담긴 물건들이 테이블에 와르르 쏟아졌다.
“여기서 원래 세계와 연결된 물건을 찾는 거야!”
“밤송이 빛 뿌리면 되지?!”
외침과 동시에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 한 줌이 허공에 뿌려졌다.
흩날리는 나뭇잎에서 둥실둥실 떨어져 내리는 밤송이 빛!
“……!”
“……!”
천문석과 꼬맹이는 테이블 위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떨어지는 밤송이 빛을 봤다.
“포션!”
위잉- 날아가고!
“지갑!”
위이잉- 날아가고!
“나무 곽, 구급낭!”
위잉, 위잉- 날아갔다!
“안 되는 건 내가 치울게!”
천문석은 밤송이 빛을 튕겨 낸 물건을 잽싸게 잡낭에 쓸어 넣었고.
“앗! 난 낙엽 더 가져올게!”
꼬맹이는 한달음에 숲의 경계로 달려가 낙엽을 양팔 가득 들고 돌아왔다.
휙, 휙, 휙-
낙엽이 연속으로 허공에서 흩날리고.
파스스스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밤송이 빛이 천천히 떨어져.
위잉, 위이잉-
테이블 위 물건에 닿는 순간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테이블에 가득했던 물건들 대부분이 어느새 잡낭으로 돌아가고 남은 건 돌멩이와…….
“장난감 큐브? 랩에 사인 나뭇잎? 이게 왜 내 잡낭에 왜 있어?!”
말하는 순간 바로 답이 떠올랐다.
특급 헌터다!
이런 걸 넣어 둘 사람은 특급 헌터뿐이니까!
“잠깐 오리배 악어에 다녀올게! 가져온 물건이 더 있으니까!”
천문석은 한달음에 오리배 악어로 달려가 배낭을 모조리 가지고 돌아왔다.
“…….”
등을 보인 채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꼬맹이.
“야, 잠깐 비켜봐! 배낭 안 물건 쏟아야…….”
으어어엇-
순간 빙글 몸을 돌린 꼬맹이 입에서 괴성이 터졌다.
“갑자기 왜……?!”
꼬맹이 손 위에 놓인 물건이 보였다.
파스스스-
밤송이 빛이 찰싹 달라붙은 물건이!
“됐구나!”
“됐어! 성공했어!”
“뭐에 붙은 거야?!”
“자세히 보여 줄게! 봐봐!”
번쩍 내민 손에 쥐어진…….
“돌멩이? 돌멩이에 붙었다고?!”
순간 꼬맹이가 얼어붙었다.
“……!”
“야, 이번에는 또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외침이 말을 끊었다.
“진짜 이름이야!”
“……뭐?”
“방금 진짜 이름을 말했다고!”
펄쩍 의자에서 뛰어내려 콩콩콩- 깨금발로 달려와 휙 돌멩이를 내미는 순간.
돌멩이에 붙어 있던 밤송이 빛이 둥실 허공으로 떠올라 머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게 왜 붙어?!”
천문석이 경악하는 순간.
꼬맹이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진짜 이름 찾았어! 빨리! 방금 그 이름 외쳐 봐!”
“돌멩이?”
반사적으로 말하는 순간.
파스스스-
머리에 찰싹 달라붙은 밤송이 빛이 정답을 알리는 전광판처럼 번쩍였다.
“돌멩이가 내 진짜 이름이라고?!”
“돌멩이가 진짜 이름이었어!”
천문석과 꼬맹이 두 사람이 경악하고 환호하는 이 순간.
킥킼. 키키키킼킼-
하늘에선 이름이 생긴 하늘다람쥐가 빙글빙글 활강하며 울었고.
…… -
…… -
땅에선 널브러져 있던 동물 요괴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늘에 뜬 환한 달은 어느새 기울기 시작했고.
장철과 마혁진의 흔적을 찾아 숲을 달리던 도깨비불은 마침내 숲의 끝에 도착해 발갛게 하늘을 물들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달에 닿을 듯 우뚝 솟은 거대한 봉우리 정상.
수십 개의 천과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작은 집 마당.
색색이 실을 꼬아 만든 옷을 입고 갈라진 지팡이를 든 소녀가 발갛게 물든 하늘을 보고 있었다.
“도깨비불?”
소녀의 시선이 발갛게 물든 하늘에서 붉은 도깨비불이 타오르는 숲으로 움직였다.
“허공도에 저런 숲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