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124화>
온기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요와 핫팩!
밧줄로 고정해 둔 짐과 배낭도 잠들기 전 모습 그대로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장철과 마혁진, 두 사람만 사라졌다!
반사적으로 오리배 주위를 확인했지만, 달빛에 환하게 밝혀진 고요한 호수와 탁 트인 물가에 사람의 흔적은 없다.
천문석은 바로 내력을 실어서 외쳤다.
[장철 헌터님!]
[염동 대협 마혁진!]
……
하지만 몇 번을 외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킥키킼, 키키키키키킼-
번쩍번쩍 빛나는 하늘다람쥐만 하늘에서 활강하며 울음소리를 냈다.
‘바로 추적해야 하나?’
이 숲은 공간이 뒤죽박죽 연결된 마경이다.
직접 숲을 달리며 찾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페달도 달렸잖아! 나 페달 돌려 봐도 괜찮아?!”
문득 시선을 내리자 페달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꼬맹이가 있었다.
이 무한의 숲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꼬맹이가!
천문석은 꼬맹이를 내려 주자마자 바로 확인했다.
“혹시 아까 호수 지나갈 때 사람 못 봤어?”
“사람? 사람, 사람!”
빤히 천문석을 바라보며 가리키는 꼬맹이.
“아니, 나 말고 다른 사람! 이 오리배 악어 타고 있던 사람. 수염이 가득한 남자랑 비쩍 마른 좀 많이 삭은 얼굴의……!”
장철과 마혁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꼬맹이는 고개를 저었다.
“숲에서 사람 한 번도 못 봤는데? 앗! 다람쥐한테 물어볼게!”
꼬맹이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다람쥐! 주위에 사람 안 보여!”
킥킼, 키키키키킼-?
“아니, 여기 말고!”
키키킼, 키키키킼-!
“다람쥐도 아무도 안 보인다고…… 앗! 그렇지! 귀 뾰족한 사람!”
“귀 뾰족한 사람?”
“다람쥐가 아까 귀 뾰족한 사람 봤다고 말했어! 다람쥐! 귀 뾰족한 사람 보여?!”
휘이이잉-
바람을 타고 내려온 하늘다람쥐는 빙글 오리배 악어 주위를 회전하며 울었다.
킥, 키키키킼키키킼키-!
꼬맹이는 하늘다람쥐의 울음소리를 실시간으로 옮겼다.
“귀 뾰족한 사람이 손을 휙 저으니까! 바람이 몰려와서 고래고래를 빙글빙글 날려 버렸대! 그리고 번개같이 도망쳤다는데? 나 이제 페달 돌릴게!”
여전히 이해 가지 않는 설명이지만 두 가지는 분명했다.
귀 뾰족한 사람이 장철 헌터와 마혁진은 아니라는 것과 호수 주위에 사람의 흔적이 없다는 것!
‘우선 오리배 악어부터 호수에서 빼낸다.’
“미궁 악어 7호 전진.”
천문석이 명령하는 순간 미궁 악어 7호의 다리와 꼬리가 움직였다.
“으앗! 말하니까 움직이잖아! 이게 뭐야?!”
오리배 페달을 돌리던 꼬맹이의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오리배 악어는 순식간에 호수를 가로질러 땅으로 올라왔다.
“……!”
“자 내리자.”
번쩍 들어 오리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도, 서울 보육원 아이들처럼 오리배 악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꼬맹이.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난 주위 숲 좀 살피고 올게.”
“잠깐, 내가 친구들한테 부탁할게!”
빙글 몸을 돌린 아이는 숲을 향해 외쳤다.
“사람 있나 확인해 줘!”
꼬맹이가 외치는 순간 허공에 멈춰있던 도깨비불들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둠을 밝히는 발간 불빛과 눈처럼 쏟아지는 불티가 빠른 속도로 숲을 훑기 시작했다.
광역 스캐너로 숲을 스캔하는 듯한 모습.
자신 혼자서 찾는 것보다 월등히 빠르다.
천문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다.”
“나한테 이름 주러 왔잖아? 당연히 내가 도와줘야지. 앗! 그렇지 내 친구들! 나 이름 기억나면 친구들 이름부터 줘야 해. 혼자 숲에 남는 건 재미 없거든.”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선 수백 년을 살아온 요마의 음흉함도 괴이 특유의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옆구리에 끼고 달릴 때 깨달았다.
이 아이의 육체에는 내력, 요력, 각성력 그 무엇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어린아이 육체였다.
곰, 여우, 늑대…… 동물 요괴들을 물어서 기절시키고, 도깨비불에 명령하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평범한 아이라도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평범한 아이가 무시무시한 요력을 지닌 동물 요괴들을 거느리고 이 기이한 숲에서 버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이 녀석 정체가 뭐지?’
문득 든 생각에 조심스레 입을 여는 순간.
“너…….”
꼬르르륵-
꼬맹이의 배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 밥 먹을 때야! 손님이니까! 내가 맛있는 밥 줄게!”
꼬맹이는 망태기에서 꺼낸 물건을 천문석의 손에 꼭 쥐여 줬다.
“먹고 있어! 난 물 떠올게!”
망태기에 달린 물통을 들고 한달음에 호수로 달려가 물을 담는 아이.
문득 시선을 내리자 손에 쥐어진 물건이 보였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나무 열매와 풀잎.
“괜찮아! 빨리 먹어! 나 엄청 열심히 주워 놨어! 아주 많아!”
어느새 물통을 가지고 돌아온 꼬맹이는 자랑스레 망태기를 내밀었다.
망태기 안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퐁퐁이와 용용이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 열매, 차곡차곡 모은 풀잎과 꽃잎이 가득 담겨 있었다.
“…….”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 한겨울 눈발을 뚫고 산을 올라 사당 앞에 몰래 놓아 둔 지게.
그 지게에 실려 있던 쌀 한 가마와 장작.
오래전 기억에 눈앞에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 겹쳤다.
나무 열매와 풀잎, 꽃잎을 모으기 위해 나무를 오르고 숲을 뒤졌으리라.
나무 열매를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닦고, 풀과 꽃잎을 차곡차곡 소중히 모았으리라.
자연에서 음식은 곧 생명이다.
꼬맹이는 그런 소중한 나무 열매를 선뜻 내줬다.
천문석은 문득 숲으로 시선을 보냈다.
도깨비불들이 불티를 흩날리며 장철과 마혁진의 흔적을 찾아 숲을 훑고 있었다.
음식을 나눠 주고, 흔적을 찾는 걸 도와준다.
꼬맹이의 호의와 진심이 느껴졌다.
“왜 안 먹어? 빨리 먹어 봐! 이 풀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
쓱쓱 옷소매로 닦은 나무 열매를 와삭 깨물고 풀잎과 함께 씹으며 환하게 웃는 꼬맹이.
천문석은 마주 웃으며 나무 열매를 깨물고 풀잎을 씹었다.
“……!”
“마잇지!”
입안 가득 나무 열매를 씹으며 꼬맹이가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이 꼬맹이는 보통 꼬맹이가 아니다!
동물 요괴를 물고, 도깨비불을 부리는 아이가 보통의 아이일 리 없다!
당연히 그런 꼬맹이가 먹는 나무 열매와 풀도 평범할 리 없었다!
나무 열매는 전신에 두드러기가 돋는 듯한 떫은맛이!
풀에서는 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쓴맛이 올라왔다!
아니 이건 맛이 아닌 감각기관에 전해지는 폭거이자 테러였다!
같이 먹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독살을 확신할 폭력적인 맛!
천문석은 극한의 인내력으로 나무 열매와 풀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이게 맛있다고?”
와득, 와드득-
꼬맹이는 꼭꼭 씹어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 꼭 감고 계속 씹다 보면 달아!”
“……원효대사 해골물도 아니고. 하아-.”
절로 탄식이 터지는 순간 결심했다.
호의와 진심을 보여 준 꼬맹이의 미각을 살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 미각을 살려줄 음식이 오리배 악어 안에 있었다.
이세영 선생님에게 반을 넘기고 남은 영희 수녀님의 선물!
“야, 그만! 오늘 밥은 내가 준비할게. 잠시만 기다려. 나무 열매 그만 먹어! 그건 아냐!”
“이어 마이는데?”
입안 가득 나무 열매를 오물거리며 대답하는 꼬맹이.
천문석은 한달음에 오리배로 돌아가 배낭을 열었다.
확-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김밥의 달인 영희 수녀님의 특제 김밥 반 통.
여기에 헌터용으로 만든 냄새를 죽인 간편식을 더해 식사를 차린다.
천문석은 바로 식사 준비를 했다.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여기 나뭇가지!”
“잘했다!”
꼬맹이가 주워 온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모닥불을 피었다.
호숫물을 담은 냄비에 헌터용 간편식 담고, 생수를 담은 냄비에는 된장국 블럭을 풀어 모닥불 위에 올렸다.
접이식 테이블에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과 물컵을 놓고.
마지막으로 영희 수녀님의 김밥이 담긴 밀폐 용기를 올렸다.
“이 상자에서 처음 맡는 냄새가 나!”
테이블 위 밀폐 용기에서 얼굴을 바짝 붙인 채 깜짝 놀라 외치는 꼬맹이.
“먹으면 더 깜짝 놀랄 거다. 우선 밥 먹기 전에 손이랑 얼굴 좀 씻자.”
“금방 씻고 올게!”
꼬맹이는 번개같이 호숫가로 달려가 작은 손에 모은 물을 얼굴에 두 번 뿌리고 쓱쓱 문지르고 돌아와 외쳤다.
“다 했어!”
“……다 했다고?”
“응! 물 2번이나 뿌렸어! 아주 깨끗해!”
“넌 뭔가 씻는 게 아주 잘못됐는데?”
“뭐?! 내가 잘못 씻는다고? 곰한테 배웠는데?! 여우가 잘 씻는다고 감탄도 했어!”
“……사람한테 다시 배워야겠다. 가자, 제대로 씻는 법 가르쳐 줄게.”
천문석은 한 손에는 세면 백과 수건을 한 손에는 놀란 꼬맹이를 번쩍 들고 호숫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환한 달이 뜬 밤.
바람은 서늘하고 호숫물은 시원했다.
“물이 좀 찬가? 잠깐만.”
양(陽)과 양(陽)!
내력이 담긴 손을 비비자 후끈한 열기가 쏟아지고 손이 붉게 달아올랐다.
양강지력에 달아오른 손을 잽싸게 호수에 담그는 순간.
치이이이익-
달아오른 쇠에 물이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무럭무럭 올라왔다.
“꼬맹이 얼른 옷 벗어.”
“알았어!”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진 꼬맹이를 번쩍 들어 따뜻해진 호숫물에 담그고 파파팟-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번개같이 비누칠해서 깨끗이 씻기는 데 걸린 시간이 57초!
천문석은 꼬맹이를 번쩍 들어 바위에 내려놓고 외쳤다.
“자, 만세!”
“만세!”
파파파팡-
번쩍 손을 든 꼬맹이 몸에 남은 물기를 후끈한 내력이 담긴 수건으로 날려 보내고.
“자 회전!”
“회전!”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맴을 도는 아이의 몸을 마른 수건과 담요로 돌돌돌 싸맸다.
“안 춥지?”
“하나도 안 추워!”
“자 그럼 이 수건으로 머리 닦아. 난 네 옷 빨아야겠다.”
옷을 빨고 내력을 담아 팡팡- 물기를 날려 버릴 때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럼 돌아가자! 잠깐 담요 말고 있자. 옷은 모닥불에 바짝 말려서 입고.”
천문석은 담요를 돌돌 감은 꼬맹이를 번쩍 들고 간이 테이블로 돌아와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세탁한 옷을 활짝 펼쳐, 어느새 하늘다람쥐가 불을 쬐고 있는 모닥불 옆에 나뭇가지를 박고 널었다.
씻기고 옷을 빨아서 돌아와 널 때까지 걸린 시간은 3분 남짓.
아직 물이 끓기도 전이었다.
“수건 줘 봐. 머리카락 물기 말려 줄게.”
천문석은 양강지력이 담긴 손가락을 구부려 쓱쓱 머리카락을 고르며, 수건을 문질러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능숙하게 날려 버렸다.
“자 끝! 어때 개운하지? 이게 제대로 씻는 법이다!”
“뭔가, 뭔가가 뭔가 달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꼬맹이는 신기한 듯 뽀송뽀송한 머리카락과 하얗게 변한 팔을 쓱쓱 문지르며 감탄했다.
“앗! 내 팔이 하얗게 변했어!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로 쑥쑥 움직여!”
천문석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씻고 나니까 너 완전 잘생겨졌는데? 아니지, 예뻐졌다고 해야 하나?”
“난 멋진 게 좋은 거 같아!”
아이가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얼룩덜룩한 흙먼지가 사라지고 깨끗한 얼굴과 머리카락이 드러난 아이는 21세기 한국의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보는 순간 감탄할 예쁜 얼굴과 기묘한 분위기!
문득 성별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을 지닌 또래의 한 아이가 생각났다.
특급 헌터.
키즈 카페에서 일하며 수많은 아이를 봤다.
그중 잘생긴 거로 순위를 매기면 특급 헌터가 언제나 1등이었다.
특급 헌터는 단순히 잘생긴 것만이 아니라,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습관처럼 외치는 고독한 콩황제의 포스.
이런 기묘한 분위기는 또래의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뿐 아니라.
10대 학생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길거리 고양이, 강아지, 비둘기까지 기웃기웃 다가왔다.
거리에 나타나는 순간 구름같이 사람이 몰려들던 자신의 친우, 이세기와 비슷했다.
천검, 검절, 무림 맹주, 천하제일인 이라는 호칭이 아닌, 자신이 붙인 직관적인 별명.
‘더럽게 잘생긴 새끼!’란 별칭으로 불린 이세기와 특급 헌터는 닮았다.
그러나 이세기와 특급 헌터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이세기에게 말을 걸면 어쨌든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특급 헌터에게 말을 걸면 대답이 아닌 사건이 돌아왔다.
선물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쓱- 손에 지렁이를 쥐여 주고, 등에 사슴벌레를 붙여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게 만드는 게 특급 헌터였다!
지금 눈앞의 꼬맹이에게서 특급 헌터의 느낌이 강하게 왔다.
마치 남매인 것처럼!
“너 왠지 특급 헌터랑 비슷한데?”
“특급 헌터!”
깜짝 놀란 얼굴로 담요를 돌돌 감은 몸을 일으키는 꼬맹이.
“뭐야? 특급 헌터 아는 거야?!”
깜짝 놀라 묻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돌아왔다.
“내 이름 ‘특급 헌터’였던 거야?! 특급 헌터, 특급 헌터, 특급 헌터!!”
“……!”
이 순간 번쩍 뇌리를 스치는 기억!
이름을 가르쳐 주러 온 착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즉, 자신이 말한 ‘특급 헌터’를 자기의 이름이라고 생각한 거다!
특급 헌터가 2명이 될 상황!
천문석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야, 그게 아니라……!”
그러나 꼬맹이가 한발 빨랐다.
“아니야! 특급 헌터 내 이름 아니야! 느낌이 안 오잖아?!”
“아니라…… 잠깐. 너 이름 기억 안 난다며?”
“기억은 안 나지만, 특급 헌터가 내 이름이 아닌 건 알 수 있어!”
“……야! 그게 무슨 소리야! 기억이 안 나면 당연히 자기 이름이 맞는지도 몰라야지!”
“아니거든! 봐봐!”
꼬맹이는 번쩍 손을 들어 나무를 가리키며 외쳤다.
“바위! 바위바위바위위바위!”
한참을 외치고 어깨를 으쓱하는 꼬맹이.
“알겠지?”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컥 막혔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키즈 카페의 악마 특급 헌터와 숨겨진 흑막 앙꼬 보다 더 맥락 없는 꼬맹이가 있다니!
“어떻긴 뭐가 어때! 당연히 이상하지! 나무를 왜 바위라고 부르는 건데?!”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나무를 바위라고 부르니까 이상하잖아!”
“……어?”
문득 뇌리가 간질간질거릴 때.
담요를 두른 채 콩콩콩 뛰어가 들꽃을 흙째로 번쩍 들고 다가오는 꼬맹이.
“자 봐봐!”
후우우우-
번쩍 들린 들꽃에 크게 입바람을 불자 풋풋한 향기가 아이의 숨결에 실려 날아왔다.
그리고 고승이 마음에 내려치는 죽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민들레 이름이 민들레가 아니어도 그 복슬복슬 좋은 냄새는 그대로잖아!”
“……!”
외침을 듣는 순간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관통하는 전율이 흘렀다.
그렇다!
민들레의 이름이 민들레가 아니라도 그 풋풋한 향기와 천지에 흩날리는 홀씨는 그대로다!
이름은 인식이다!
장미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모습과 색, 향기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이 장미가 아니라고 해도 그 모습과 색, 향기!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달을 달이라 부르지 않아도 그 온화한 빛이 변하지 않듯!
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아도 그 가슴 설레는 향기는 그대로인 것처럼!
이름은 단지 미망일 뿐!
돌멩이, 천마, 알바, 이세기, 천문석.
무엇이라 불러도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나는 나이듯, 이름은 상관없는…….
“……어?”
번쩍 섬광이 뇌리를 스치고 천문석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꼬맹이가 들고 있는 들꽃이 민들레가 아니라는 것.
둘째, 꼬맹이의 외침은 스스로의 주장을 논파하고 있다는 것!
반사적으로 고개가 들리고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와, 이 어이없는 녀석! 야! 지금 네 말대로면 특급 헌터라고 불러도 되는 거잖아!”
“아니라니까! 내가 잘 설명할게! 자 봐! 민들레가 있단 말이야! 후우우우- 어때? 향기가…….”
“야, 그거 민들레 아냐! 그리고 지금 네가 하는 말은 부르는 이름이 달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그럼 당연히 특급 헌터라고 불러도 상관없어야지! 본질은 안 변한다며!”
순간 꼬맹이의 얼굴과 몸이 경악으로 굳었다.
“하아- 이제야 알아 들었…….”
다음 순간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앗! 아앗! 이거 민들레 아니었어?! 다람쥐가 민들레라고 했단 말이야! 난 지금까지 완전 민들레인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