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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8화 (1,04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8화>

길이 백 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주상복합 옥상, 그곳엔 컨테이너 하우스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한 컨테이너 안 8살 남짓 작은 꼬맹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아 커다란 칠판에 선을 긋고 있었다.

쓱쓱, 쓰스슥-

무아지경으로 선을 긋다가 멈추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게 뭐야?!”

꼬맹이의 시선이 닿은 칠판에는 수많은 선으로 이뤄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걸 내가 왜 그리고 있었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김밥 먹다가 갑자기 제정신을 차렸던 며칠 전이 떠올랐다.

마도의 기억은 곧 힘!

제정신이 돌아왔다는 건 힘이 돌아왔다는 말과 같았다!

1년 전 제정신을 차렸을 때 준비 했던 대로 잽싸게 열쇠를 완성하고, 김철수 과장에게 연락한 게 12시간 전이다!

김철수 과장이 강릉에서 부산에 올 때까지 아직 한참의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와 거래해 삼각김밥과 생수를 사 온 후, 완성된 열쇠로 시험 삼아 게이트 마력장을 움직여 세계의 나무를 관측했다!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있는 칠판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하나의 점에서 분화한 수십 수백 개의 선이 그려 내는 무한의 고리.

루프(loop)!

“루프가 일어났다고? 언제? 아니, 왜?! 설마 나 때문에 일어난 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반사적으로 수인을 짚고 기억을 되짚는 순간 불에 탄 천 조각처럼 빛바래고 구멍투성이 기억이 펼쳐졌다.

1999년 12월 31일경.

지구로 귀환했을 때 사건이 터졌다!

정확히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무언가 오류가 생겼고, 그 탓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이다!

원래 지구에 게이트가 열린 건 2005년이고, 자신이 타 대륙으로 튕겨 나간 건 2020년 9차 서울 수복 작전이 실패했을 때다!

그러나 이 세계에 게이트가 열린 건 자신이 돌아온 직후 2000년 1월 1일이었다.

2000년과 2005년.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는데 5년의 시차가 발생했다!

그 결과 타 대륙에서 빛의 길을 올라 지구로 돌아오며 계획했던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원래 계획은 간단했다.

1단계. 2005년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으로 돌아와 게이트를 닫고 세계의 나뭇가지를 분화시킨다.

2단계. 2020년 9차 서울 수복 작전이 실패하고 자신이 타 대륙으로 튕겨 나간 세계의 나뭇가지로 이동해 부하를 줄인다.

3단계. 전능 옥좌를 띄우고 돌과 철의 힘으로 둘로 분화된 세계의 나무를 하나로 합친다.

하나로 합쳐진 세계는 게이트 전쟁으로 인한 참사가 일어난 적이 없는 세계다.

세계 전체를 개변하는 대마법!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업과 인과가 필요하지만, 자신이라면 가능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2005년이 아닌 1999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언가 사건이 터져 그 전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지고, 명운이 흩어지며 이름, 출생, 기억에 구멍이 뻥뻥 뚫려 버렸다.

힘과 기억을 잃은 꼬맹이의 머리에 남은 기억은 하나뿐이었다.

‘돌과 철이 찾아라!’

돌과 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폐허가 된 서울을 달리며 찾았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 제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돌, 보석, 마탑, 최초의 머릿돌!

-철, 강철, 타이탄, 첫 번째 타이탄 강철!

머릿돌과 타이탄을 찾으면 기억을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제정신을 차렸어도 여전히 기억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시간도 길어야 일주일이다!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때 자신을 찾으라는 내용이 적힌 가죽 수첩과 시간 오류 수정자의 시계를 가진 김철수 과장이 나타났다.

즉시 김철수 과장에게 돌과 철을 찾는 방법을 전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6일 후 자신은 정신줄을 놓고 평범한 꼬맹이가 되어 보육원에 맡겨졌지만, 김철수 과장은 계속 돌과 철을 찾았다.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돌아오고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위치를 특정할 확률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돌과 철 중 철, 최초의 타이탄 강철을 찾는 데 집중했다.

설령 아공간에 잠들어 있다 해도 기동 신호를 보내면 강철은 즉시 깨어날 테고, 강철을 손에 넣으면 머릿돌을 찾는 건 시간문제니까!

그러나 김철수 발명가가 기동 신호가 담긴 인증 파문으로 서울과 북한산 일대를 수백 번 훑었지만, 타이탄 강철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가지고 사라진 것처럼!

결국, 타이탄 강철을 찾는 걸 미루고 머릿돌을 찾으려 할 때 게이트 전쟁의 전황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EMP 마력 폭풍이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약과 전자기기 맛이 가고 간신히 버티던 군과 각성자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시간만 있으면 이유를 찾아 대처할 수 있지만, 자신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4, 5일이 전부였다.

나머지 360일은 보육원 꼬맹이들의 형으로 지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릿돌을 찾기 전에 한국이, 세계가 망할 판국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마력을 쥐어 짜내 모든 것이 기록된 세계의 나무의 본질에 접촉했다.

그리고 명운을 대가로 ‘마탄’을 만들어 김철수 과장에게 넘기고 픽 쓰러졌다.

마탄 라이선스로 모아들인 엄청난 재원으로 돌과 철을 찾았기를 기대하며!

1년 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예상대로 인류는 마탄으로 게이트 전쟁에서 선전했고!

예상과 다르게 재금 공업은 재정난으로 휘청이고 김철수 과장은 개고생을 하고 있었다!

‘특허를 출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신이 지구의 미·중·러·일을 얕봤다!

미친놈들이 마탄 특허를 정지하고, 미친 듯이 마탄을 찍어 내고 있었다!

미친 물량과 덤핑에 마탄 가격은 발 당 100원까지 떨어졌다!

마탄 라이선스로 재원을 모아 머릿돌을 추적할 광대역 차원파 계측기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했다.

차원파 계측기로 머릿돌만 찾으면 단숨에 게이트 전쟁을 끝낼 수 있는데, 정작 그걸 만들 돈이 없었다!

아니 차원파 계측기는커녕 재금 공업은 망하기 직전, 김철수는 덤핑 마탄에 퀭한 얼굴, 자신이 있는 보육원은 경영난에 기름이 없어 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다 뗐다!

‘빌어먹을!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시간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지구로 돌아온 지 벌써 4년이 훌쩍 지났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차원파 계측기를 만들어도 머릿돌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승부수를 준비했다.

김철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칠판 위 허공을 봤다.

허공에 박힌 12개의 쇠말뚝!

시계 판처럼 30도 각도로 박힌 12개의 쇠말뚝에서 퍼져 나온 파문이 물결치듯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소울 스트림과 라이프 스트림과 직접 연결된 게이트 안정화 장치!

소울 스트림, 영맥, 천맥!

라이프 스트림, 용맥, 지맥!

천맥과 지맥은 영혼육백, 본질의 순환, 삼생의 인과와 인과율, 하늘의 저울에 닿아 있다!

그렇기에 이걸 잘못 건드리면 심판자가 나타난다!

신조차 피할 수 없는 필멸의 부여자.

역천을 바로잡는 역천(逆天).

지극(地極)을 밟고 천원(天元)에 닿은.

천의와 인과율의 심판자.

천마(天魔).

천맥과 지맥이 오염되고 천마가 세계의 나뭇가지에 나타나면 모든 게 끝장이다.

천마의 상징, 천강(天罡)의 불꽃은 신성을 얻어 신위에 닿은 존재조차 한 줌 잿더미로 돌려 강제 전생(轉生)시킨다!

즉석 복권을 긁을수록 당첨 확률이 올라가듯.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사용할수록 천마가 나타날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금 마탄으로 이뤄낸 안정은 잠시일 뿐이다.

마탄만으로는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의 엄청난 물량을 막아 낼 수 없다.

아니 당장이라도 게이트가 허수 공간, 마굴과 연결된다면?

귀찮다고 허수 공간에 대충 던져 놓은 허신, 마신, 용종이 튀어나오면 지구는 즉시 끝장이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돌과 철을 찾고 전능옥좌를 띄워 분화된 세계의 나무를 합치는 것!

우선은 철, 타이탄 강철부터 찾는다!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이용, 게이트 마력장 공명으로 지구 전체를 덮는 인증 파문을 일으켜 타이탄 강철을 찾는다!

한국에 없어도 상관없었다!

강철이 지구 어딘가에 있는 이상, 지구 전체를 덮는 인증 파문에 반드시 걸린다!

루프! 분화된 세계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만, 돌과 철을 되찾고 전능옥좌를 띄우면 해결할 수 있다!

결심하는 순간 번쩍 주먹을 움켜쥐며 익숙한 구호를 외쳤다.

“난 할 수 있다!”

꼬르르륵-

순간 뱃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리고 시선이 테이블로 움직였다.

반만 남은 삼각 김밥과 생수 한 병.

마탄 개발로 재금 공업이 감시당하며 김철수 과장의 재정 지원이 뚝 끊겼다.

게다가 고물상에서 쇠말뚝을 사고 마법 처리를 하느라 빈 병과 폐지를 팔아 모아 둔 비상금도 다 썼다.

저 반만 남은 삼각 김밥이 김철수 과장이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식량이었다.

‘보육원에 가서 몰래 밥을 먹고 돌아올까?’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자신은 김철수 과장과 함께 있는 거로 돼 있다.

밥 먹으러 보육원에 돌아갔다가 잡히면 다시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꼭 실험해야 할 것도 있고!’

반만 남은 삼각 김밥을 한입 깨물어 꼭꼭 씹으며, 편의점 알바가 사은품으로 준 500ml 생수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본에서 물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편의점에 깔린 500ml 생수!

어째선지 이 500ml 생수를 보는 순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생수병에 손이 가까워지는 순간.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찌르르르르릇-

등에서 시작한 전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탁-

생수가 손에 잡히는 순간 꽈드득- 단숨에 생수 뚜껑을 열었다.

쿵쿵, 쿵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그 맥동에 사지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뭔가 있다!’

지구로 돌아온 직후 터진 사고!

기억을 뭉텅이로 날려 버린 그 사고와 이 생수가 뭔가 관련이 있다!

‘직접 마셔서 확인한다!’

결심과 동시에 생수병을 들어 마시는 순간.

쾅쾅쾅-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야! 꼬맹이, 너 안에 있지?!”

잽싸게 생수병을 내려놓고 살짝 문을 열었다.

“쿨럭- 누구……?”

낡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

바로 옆 컨테이너에 사는 가족이다.

“야! 꼬맹이! 우리 언니 못 봤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머릿속 기억이 차르륵 펼쳐지고 사진을 보는 것처럼 장면이 떠올랐다.

편의점 알바에게 운송단 영희의 사진을 넘기고 폐기 직전 삼각 김밥을 받을 때!

창문 밖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여자와 손목을 잡아끌며 웃던 남자!

“그쪽 아버지랑 같이 편의점 앞 지나서 중심지로 가던데? 그럼 이만…….”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중심지면? 유흥가?! 설마 하우스?! 언니가 아빠랑 같이 하우스를 찾아갔다고?! 미친! 그 편의점 어디? 아니, 나랑 같이 가자!”

문틈으로 들어온 손이 몸을 잡아당겼다.

“어, 어어?! 뭐 하는 거야?! 놔! 나 지금 할 일 있어! 뭐야?! 힘 왜 이렇게 세!”

다급히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옆집 여고생은 엄청난 힘으로 번쩍 몸을 들어 옆구리에 끼고 미친 듯이 달렸다.

“미친! 또라이 새끼! 도박에 미쳐서는! 시발! 개 같은 새끼!”

“야, 야! 놔! 어디 가는 거야?!”

순간 폭발할듯한 분노가 담긴 외침이 돌아왔다.

“칠성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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