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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6화 (1,04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6화>

#1046

서울대성당 1층 의무실.

영희 수녀님은 침대에 누운 장철 헌터에게 링거 주사를 꽂으며 웃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이시네요. 한숨 자고 내일쯤 깨어나실 거예요.”

노신부는 바로 말을 받았다.

“걱정할 거 없다. 영희 수녀님, 간호사로 오래 일하셔서 환자를 아주 잘 보시거든. 아까 만난 찬호 걔보다 훨씬 나아.”

“감사합니다. 수녀님. 신부님.”

천문석은 감사 인사를 했다.

“내가 더 고맙지. 저 쌀에 생필품, 이 마석까지! 큰 도움이 됐어! 요즘 성당에 눈독 들인 깡패놈들이 설쳤는데 한 번에 해결됐다! 하하하-.”

노신부는 호탕하게 웃었고, 수녀님은 입가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드려요. 정부 지원이 줄어서 걱정했거든요. 제가 맛있는 김밥을 대접할게요. 신부님은 손님분 방으로 안내해 주시고 좀 쉬세요. 호남평야까지 다녀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아뇨! 멀쩡합니다. 안내는 철수한테 맡기고 제가 김밥 재료 준비하는 걸 돕죠.”

노신부는 의무실 밖 복도를 향해 소리쳤다.

“철수! 김철수! 여기 손님 안내 좀 해라! 이 녀석 어디 간 거야?”

“철수. 그분 내려오신다고 해서 나갔어요. 며칠 걸릴 거 같다네요.”

“그분이요?”

“작은 공업사 하신다는 철수랑 이름 같은 그분이요.”

“아, 서울에서 철수 발견한 그분?!”

“네. 맞아요. 감사하게도 난방용 기름을 열 통이나 보내 주셨네요.”

“이런 행운이! 하하하-.”

노신부는 웃음을 터트리며 앞장섰다.

“그럼 얼른 안내하고 돌아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뇨. 김밥 싸는 건 도와줄 사람이 따로 있어요.”

수녀는 빙그레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창밖 마당에는 넋이 나간 채 쪼그려 앉아 있는 트럭 운전기사가 있었다.

순간 노신부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철수가 철수를 만나러 가고. 영희와 영희 수녀님이 김밥을 싸겠군요. 그럼 철수 신부가 안내하겠습니다.”

노신부는 씩 웃으며 앞장섰고.

천문석은 뒤를 따라가며 슬쩍 물었다.

“철수, 영희라는 이름이 많네요?”

“사실 철수, 영희 나랑 수녀님 이름 따서 지은 거야.”

“……아, 설마!”

천문석이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노신부는 계단을 오르며 말을 이었다.

“맞아. 게이트 전쟁. 그 빌어먹을 전쟁 때문이지. 서울이 난장판이 되고 헌터들이 성당으로 아이들을 많이 데려왔거든. 아무리 아이라도 이름은 다 기억하는데, 가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더라고.”

“PTSD.”

노신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다시 기억날 수도 있고, 곧 부모님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새 이름을 줄 수는 없잖아? 잠시 이름을 잊었다고 엄마, 아빠가 지어 준 이름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서 철수, 영희군요…….”

“맞아. 철수, 영희. 아주 흔해서 원래 이름을 찾으면 쉽게 잊을 수 있는 이름이지.”

노신부는 씩 웃으며 말을 끝맺었고.

천문석은 계단을 오르는 노신부를 봤다.

아이들을 먹일 쌀을 가져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잊히기 쉬운 이름이기에 자신의 이름을 건네주는 사람.

마수에게 쫓기는 신부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천문석은 계단 창문 너머 하늘을 슬쩍 보며 생각했다.

‘하늘님. 정말 오랜만에 한 건 하셨네요? 아니지, 이거 처음으로 한 건 한 것 같은데요?’

내심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계단은 끝나고 노신부는 발걸음을 멈췄다.

“자 다 왔어. 이 방이야.”

노신부는 문을 열고 깔끔하게 정리된 방 안 2층 침대를 가리켰다.

“아까 자네 동료랑 이 2층 침대 쓰면 되고. 욕실, 화장실, 세탁실은 저기 복도 끝에 있어. 김밥 얼른 준비할 테니까. 씻고 쉬고 있어.”

노신부는 바로 몸을 돌려 사라졌고.

천문석은 배낭을 내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아직 해가 쨍쨍한 이른 저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처음은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천문석은 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 * *

서울대성당 앞마당.

꼬맹이들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오리배 악어 앞에 한 명의 꼬맹이가.

마혁진 주위에는 수십 명의 꼬맹이가 모여 환호성을 터트렸다.

“우와아아- 이거 엄청 재밌어!”

“할배 헌터님! 저도요! 저도!”

“줄 서! 한 줄로 줄 서야 태워 주신대!”

“철수 형! 이거 엄청 좋아했을 텐데!”

“앗! 그러고 보니 철수 형 어디 간 거야?!”

“철수 형! 아는 아저씨 만난다고 나가던데?!”

“에휴- 철수 형은 맨날 재수가 없다니까!”

“맞아! 김밥도 못 먹고! 이렇게 재밌는 것도 못 타고!”

……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신나게 외치는 아이들.

반면 그 신난 아이들의 중심에는 ‘황당함’과 ‘어이없음’, ‘믿을 수 없음’이 뒤엉킨 표정으로 외치는 마혁진이 있었다!

[야! 3번 태워 주면 그만한다며! 너희들 언제까지 하려고!!]

각성력을 담아 처절하게 외쳤지만, 꼬맹이들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환호성을 터트리며 달려 줄 끝에 섰다.

우와아아아아-

“엄청 재밌어!”

“빨리 뛰어! 다시 줄 서야 해!”

……

꼬맹이들이 마혁진에게 달라붙은 이유는 간단했다.

“으앗! 내가 하늘을 날고 있어!”

트램펄린에서 튕기듯 탱탱- 공중으로 날고!

“우와아아- 진짜 배 탄 거 같아!”

바이킹을 탄 듯 휘잉휘잉- 앞뒤로 이동하고!

“회전목마! 난 서울로 갈 적토마를 탔다!”

회전목마를 탄 것처럼 빙글빙글- 마혁진 주위를 돌았으며!

“캬아아아- 미끄러진다!”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을 탄 것처럼 하늘에서 미끄러졌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모습!

십여 명의 아이들이 마혁진 주위 허공에 뜬 채로 환희 어린 웃음을 터트리고.

우와아아- 꺄아아아- 우헤헤헷-

땅에 내려서는 순간 잽싸게 달려 줄을 서고 있었다!

마혁진은 1세대 헌터, 깡패 두목, 칠성파 보스, 수배자, 도망자를 거쳐 마침내 천직을 찾았다!

인간 놀이동산!

트램폴린, 바이킹, 회전목마, 청룡열차, 자이로드롭!

마혁진의 염동력장은 놀이동산의 놀이기구 대부분을 안전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훌륭하다!”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인간 놀이동산 마혁진과 눈이 마주쳤다.

“……!”

섬뜩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순간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보지만 말고! 애들 좀 떼어 내! 도와줘! 새캬!’

“그래 도와줄게!”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

진짜 도와준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 마혁진.

천문석은 길게 줄을 선 꼬맹이들 앞에서 짝- 박수를 쳐서 시선을 모았다.

“어이 꼬맹이들! 이분은 할배 헌터가 아니다!”

“아니라고?”

“완전 나이 먹어 보이는데?”

“할배 신부님보다 나이 많으면 할아버지 아냐?!”

……

의아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꼬맹이들!

아무리 재밌게 놀아줘도 꼬맹이들의 팩트 폭력은 가차 없었다!

천문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혁진을 가리켰다.

“이분은 염동 대협이시다!”

“염동 대협?”

“염동 대협이 뭐야?!”

“멋진 거야?! 아주 멋진 거야?!”

꼬맹이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진심과 확신을 담아 말을 쏟아 냈다!

“모두 그 위업을 들어라!”

“오리배 악어의 페달을 돌리고!”

“신부님을 쫓는 마수와 몬스터를 찢어발기고!”

“꼬맹이들에게 놀이기구를 태워 주시는 협객이 있으니, 그 이름!”

“어!”

“어, 어?!”

“멋있는 거 같은데?!”

꼬맹이들의 뜨거운 시선! 꽉 쥔 주먹! 콩콩 뛰는 심장 소리가 느껴질 때!

“야! 너 뭐 하……!”

불길함을 느낀 염동력자 마혁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천문석이 한발 빨랐다.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고 수십 명의 꼬맹이의 마음에 심상을 전했다.

[염동 대협을 찬양하라!]

[하루 종일 염동력 놀이기구를 태워 주신다!]

꼬맹이들은 찰나의 순간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다.

그리고 천문석의 외침이 이 불꽃에 불을 붙였다!

“하루 종일?”

“놀이기구를 태워 준다고?!”

우와아아아아-

길게 줄을 선 꼬맹이들은 와르르 마혁진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우상을 향해 제를 지내는 원시 부족처럼!

마혁진을 중심에 두고 꼬맹이 수십 명이 환호하고 외치고 기원했다!

“염동 대협!”

“염동 대협!!”

……

“그만! 멈춰! 정지!”

마혁진이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다.

“염동 대협!”

“염동 대협!!”

……

꼬맹이들의 환호성은 점점 커졌고 활짝 열린 정문으로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다.

“염동 대협?!”

“으앗! 저거 뭐야?!”

“엄청 재밌어 보이잖아?!”

“저 할아버지 각성잔가 봐?!”

“빨리 와! 여기 장난 아냐!”

정문에 아이들이 모여들자 광기 어린 환호성을 터트리던 꼬맹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얼른 와서! 너희도 타!”

“염동 대협! 놀이기구 완전 신나!”

“찬양만 하면 하루 종일 태워 준대!”

“오늘 우리 김밥에 사이다 파티도 해!”

“김밥! 사이다?!”

“하루 종일 태워 준다고?!”

우와아아아아-

정문에 빼꼼 고개를 내밀었던 아이들도 단숨에 마당을 가로질러 환호하는 꼬맹이 무리에 끼어들었다.

환호성은 인파를 부르고 인파는 다시 환호성을 키웠다.

원인이 결과를 부르고, 결과가 다시 원인으로 이어지는 인과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염동 대협!”

“염동 대협!!”

“염동 대협!!”

……

어느새 서울대성당 앞마당은 꼬맹이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천문석이 약속했던 대로 ‘깡패 두목’이 아니라 ‘염동 대협’이라는 외침으로!

“그만! 정지! 멈춰! 하루 종일 태워 주는 거 아냐! 야, 얘들 좀 말려 봐!”

염동 대협 마혁진 본인은 정작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별호라는 건 다른 사람이 붙여 주는 거니까!

“힘내라! 염동 대협!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마혁진을 격려하고 잽싸게 오리배 악어로 달렸다.

그리고 오리배 악어의 꺾인 입으로 기어들어 가려는 꼬맹이를 낚아챘다.

“아앗! 누구야?!”

“사이다 사 주기로 약속한 형. 아까 신부님이랑 온 거 봤지? 나랑 사이다 사러 갔다 오자. 사이다 어디서 파는지 알지?”

꼬맹이의 깜짝 놀란 얼굴이 단숨에 환하게 펴지고 번쩍 들린 손이 정문을 가리켰다.

“언덕 아래 거북이 마트! 사이다는 꼭 거기서 사야 해!”

“좋아 출발!”

천문석은 꼬맹이를 목말 태우고 단숨에 정문을 통과해 비탈길을 달리며 물었다.

“거북이 마트? 거기가 제일 싸냐?”

꼬맹이는 휙휙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수 형이 거북이 마트 사장님이랑 딜해서! 빈 병 가져가면 비싸게 사 줘!”

“빈 병?”

활짝 핀 손을 내미는 꼬맹이.

“거북이 마트는 빈 병 모아서 가져가면 10원이나 비싸게 사 줘! 비명 5개 모아 가면 100원! 철수 형이랑 빈 병 날라서 이것도 샀어!”

꼬맹이는 주머니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반지 사탕을 꺼내 자랑스레 내밀었다.

“엄청 멋지지? 영희 주려고 산 거야!”

‘뭐지, 이 익숙한 짠 내는?’

철수 형?!

지금 꼬맹이가 말한 철수 형!

방금 전 노신부님이 찾았던 아이, 김철수!

그리고 아이들의 외침 사이사이에도 ‘철수 형’이 끼어 있었다!

어째서일까?

2004년 부산, 서울대성당의 ‘철수 형’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고액 알바 알선의 황제!

어디에도 적이 없지만, 불운과 개고생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

첫 연애가 현실판 러브 시그널, 타의에 의한 양다리로 고통받는 남자!

철수 형!

‘혹시 진짜 철수 형 꼬맹이 시절 아냐?!’

철수 형은 보육원에서 재벌 가문에 입양됐다고 들었다!

서울대성당이 그 보육원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천문석은 목말을 태운 꼬맹이에게 확인했다.

“야, 꼬맹이. 그 철수 형, 내가 만날 수. 아니지. 나갔다고 했지. 혹시 사진 없냐?!”

꼬맹이는 비장한 얼굴로 휙휙- 고개를 가로저었다.

“철수 형! 비밀 임무 중이라 사진 없어! 지금도 비밀 임무 때문에 나갔잖아!”

“비밀 임무? 수녀님은 누구 만나러 나갔다고 하던데?”

“……!”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확인한 꼬맹이는 귓가에 입을 가져와 작게 속삭였다.

“이건 나한테만 말해 준 비밀인데! 철수 형이 엄청난 발명을 했거든! 그거 때문에 나간 거야!”

“엄청난 발명? 아니 잠깐! 비밀인데 나한테 말해도 괜찮은 거야?”

꼬맹이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두목 신부님이랑 같이 왔는데? 김밥 파티 열어 주고, 사이다 사 주기로 했잖아? 우리 친구 아니었어?”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같이 음식 나눠 먹으면 친구 맞지. 자 받아라.”

잡낭에서 꺼낸 초코바를 내밀자 깜짝 놀라는 꼬맹이.

“초코바! 이거 엄청 비싼 건데! 나 이거 살 돈 없어?!”

“됐어. 친구잖아.”

“아냐! 철수 형이 거래는 공정해야 한다고 했어! 앗! 그렇지 대신 내 보물 줄게!”

작은 손에 자랑스레 들려 있던 보물이 얼굴 앞을 지나 포켓에 쏙 들어갔다.

빈 병을 모아 산, 영희에게 줄 보석 사탕 반지.

“……이건 내가 너무 이득 아닐까?”

“괜찮아! 철수 형 빈 병 엄청 잘 모으거든!”

“좋아! 딜!”

“딜!”

콩, 콩-

커다란 손과 작은 손이 부딪혔다.

그리고 서울대성당 철수 형의 엄청난 비밀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숨결에 담겨 전해졌다.

“우리 금방 서울 돌아갈 수 있어! 몬스터 나오는 문! 철수 형이 그 문 닫는 열쇠 만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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