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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043화 (1,04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43화>

아가리!

이런 모욕적인 언행이라니!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야! 내가 의뢰인인데! 아가리는 심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튀어나온 수건.

“…….”

마혁진이 내민 수건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붉은 수건을 사이에 두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천문석은 벌떡 일어난 그대로 고개 숙이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미안. 그게 절대 고의는 아니었어. 갑자기 적이 튀어나온 줄 알고. 왜 하필 거기로 날아가냐? 하하-.”

“하, 시바. 미친 새끼. 어떻게 돌멩이를 던지면 염동역장을 뚫고 들어오냐. 하-.”

마혁진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염동력장도 일종의 감각 기관이거든. 손뼉 마주치기랑 비슷해. 우선 헛방을 때려서 감각을 교란하고…….”

“야, 그건 됐고. 방금 긍정적? 그거나 자세히 말해 봐.”

천문석은 바로 기절한 장철 헌터를 가리켰다.

“이태성 길드장 절친이다!”

하아아-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는 마혁진.

‘뭐야? 반응이 왜 이래?!’

생각과 다른 반응에 의문을 품는 순간, 마혁진의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태성 절친에게 잘 보이면 사면받기 쉬울 거다. 뭐 그런 거냐?”

“어. 뭐야? 짐작하고 있었냐?! 그렇지 이 헌터, 이태성 길드장 완전 절친이야! 지금 도와주면 다시는 인간재앙 이태성한테 안 찍힌다니까!”

“…….”

마혁진은 밤을 꼬박 새운 직장인처럼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네 의뢰해서 사면받는 게 맞는 건지 점점 의문이 든다. 아니 뭔 놈의 사고가 이렇게 터져. 푸저우. 아니지 신동대문에서부터 여기 남일도까지 난장판이 끝없이 이어지고. 개같이 구르고 뒤통수까지 깨졌는데…… 시바. 그냥 숨어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거 아냐? 하아아아-.”

연속으로 부장 승진에서 미끄러진 만년 과장처럼 어깨가 축 처진 마혁진!

앞으로 갈 길이 먼데 벌써 이렇게 힘이 빠져서는 안 된다!

“야! 힘을 내! 이번 의뢰만 끝나면 넌 깡패 두목이 아니라 염동력자. 그래! 염동 대협 마혁진이라고 불리게 될 거다!”

“염동 대협 마혁진? 하- 새끼!”

어이없다는 듯 웃는 마혁진.

그러나 천문석은 똑똑이 봤다.

사막에서 개같이 굴러 10년은 겉늙은 마혁진의 입술 끝이 꿈틀거리는걸!

염동 대협 마혁진!

이 말이 깡패 두목 마혁진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래! 염동 대협이다! 내가 그 이름이 사방에 울려 퍼지게 해 줄게!”

“됐어. 이 조그만 섬에 울려 퍼지면 뭐 하냐? 좀 잘 테니까 도착하면 깨워. 바로 부하들 연락하고 호텔로 가야겠다.”

마혁진은 쌀 포대 사이에 몸을 눕히자마자 곧 잠들었다.

‘휴- 어떻게 잘 넘어갔네.’

천문석은 내심 한숨을 내쉬고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다.

40kg 대형 쌀 포대를 빽빽하게 싣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트럭.

왼쪽에는 낙엽이 우거진 산이, 오른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트럭의 목적지는 도시.

마혁진은 기절한 장철 헌터를 의사에게 보이기 위해 도시로 가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이 맞았다.

단지 그 시간과 장소가 좀 달랐다.

남일도가 아닌 대한민국!

2020년이 아닌 2004년이다!

뒤통수가 깨진 마혁진은 여전히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

이곳이 남일도의 반대쪽 해안가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

애초에 트럭을 몰고 나타난 노신부와 운전기사는 한국어를 했다!

지금 자신과 마혁진, 장철 헌터가 트럭을 타고 가는 도시는 2004년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하기 전. 게이트 전쟁이 한창인 부산 옆 창원이었다!

즉, 뒤통수에 수건을 대고 잠든 마혁진의 생각과 달리. 난장판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장철 헌터가 간절한 바람을 투영한 2000년 세기말 서울이 아닌, 2004년에 부산에서!

‘하, 시바!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2004년으로 온 것 자체는 예상 범위 안의 변수다.

워커 실트가 급행이 아닌 완행이라고, 몇 개의 세계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두 눈으로 쭉 뻗은 빛의 길과 그 위에 가로로 놓인 수많은 길을 직접 봤다!

문제는 쭉 뻗은 빛의 길로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는 것.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천문석은 손을 활짝 펼쳤다.

틱틱, 틱틱틱-

워커 실트가 던져 준 회중시계.

회중시계 테두리에는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용두, 버튼이 두 개 달려 있었다.

파란 버튼이 앵커(anchor), 닻이라는 설명을 이미 들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빨간 버튼이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버튼이란 게 합리적 추론이다.

그러나 이 회중시계를 던져 준 녀석은 워커 실트다.

백곰 포효를 터트리며 맹호 출격이라 외치고, 쇠 구슬을 몰래 던지고!

무한 맹타라 외치며 강철 줄자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예측 불가의 기인(奇人)!

혹시 빨간 버튼이 긴급 탈출 버튼이라면?!

장철 헌터의 바람이 끝장나는 대참사가 터진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계속 기다릴 수도 없다.

이성이 아닌 감성과 느낌, 촉으로 알 수 있었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에 가로에 걸쳐졌던 빛의 길과 충돌해 이곳에 떨어졌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 초보 운전자처럼 엉뚱한 길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누를 것인가? 말 것인가?!’

천문석은 한참을 고심하다 결정했다.

‘우선 장철 헌터를 의사에게 보이고 깨어날 때까지는 기다린다!’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정면을 바라봤다.

휘이이이잉-

쭉 뻗은 해안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

드르르르륵-

오리배 악어를 뒤에 매달고 쌀 포대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2004년의 부산, 역사의 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몇 겹의 저지선을 통과해 도착한 봉화산 초소.

“…….”

초소장은 멍하니 트럭 뒤에 매달린 오리배 악어를 봤다.

“……저게 뭔가요?”

천문석이 대답하기 전.

노신부가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 나가서 득템한 거다! 어때 대단하지? 캬-!”

쿵, 쿵-

노신부는 악어를 두들기며 탄성을 터트렸고.

초소장은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악어가 한국에서 어떻게 나와요?! 애초에 살지를 않는데!!”

“뭔 소리야? 그럼 고블린, 오크는 애초에 살아서 나오냐? 당연히 악어 좀 나올 수도 있지!”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오리배! 악어 등에 저 오리배는 뭔데요?!”

“멋지지 않냐? 저거 물에 띄우고 페달 돌리면 쭉쭉 나가! 용용이 덕분에 부산 일본 항로 열렸잖아? 저걸로 일본하고 교역할 거다!”

“지금 저 오리배로 일본이랑 교역한다고요? 그러니까 japan, 日本, 거기랑요? 바다를 건너서요?!”

“그렇지! 자, 봐! 저 오리배 밑에 붙은 악어 덕분에 자잘한 마수는 접근도 안 해! 저 오리배 악어로 초대박을 터트릴 거다!”

“…….”

초소장의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천문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이 신부님 뭐야?!’

표정, 몸짓, 목소리에 실린 확신!

지금 당장이라도 오리배 악어를 타고 일본으로 출발할 것만 같았다!

“…….”

노신부를 보는 초소장의 얼굴을 스치는 수십 가지 감정!

초소장의 얼굴에서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계산대에 소주를 올려놓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가방에서 더덕을 꺼내 쓱 내밀던 손님!

“…….”

“…….”

소주와 더덕이 놓인 계산대.

그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자신과 손님.

그 순간 흐르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지금 이 순간, 초소장과 노신부 사이에 흘렀다!

“…….”

“…….”

초소장과 노신부는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초소장이었다.

“통과!”

드르르륵-

오리배 악어를 매단 트럭은 초소를 지나 창원시로 달렸다.

그리고 더는 검문을 당하지 않았다.

치열한 게이트 전쟁 중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널널한 분위기!

‘이렇게 쉽다고?’

천문석이 의아한 얼굴로 초소를 바라보자 운전석에서 설명이 들려왔다.

“우리 할배, 꼴통 신부라고 소문나서 어지간하면 안 얽히려고 보내 준 거야.”

“내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노신부.

“그리고 저 오리배 악어? 저 정도면 상식적인 수준이야.”

“네? 저게 상식적이라고?”

등에는 오리배가 붙었고 뱃가죽에는 바퀴가 달린, 부리가 120도로 꺾여서 신체 곳곳이 휘어진 거대 악어가 상식적이라고?!

‘뭐지 농담하는 건가?!’

트럭 운전기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창원시에 가까워지자 바로 납득하게 됐다.

트럭, 자동차, 카트, 리어카, 자전거, 지게에 실린 온갖 마수와 몬스터 사체가 보이고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이 썅! 방수천이라도 좀 깔지! 이 피 뭐야?!”

“리어카! 사이드로 비켜! 차가 못 나가잖아!”

“또라이 새끼야! 도로 위에서 거래하지 말라고!”

……

도로와 인도, 공터에 탈것과 헌터, 상인, 사람들이 뒤엉킨 거대한 난장판 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오리배를 짊어진 거대 악어를 트럭이 끌고 이동하는 건, 호기심을 끌 순 있어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와, 누군지 대박 터졌네!”

“저, 저! 악어 흉악한 거 좀 봐!?”

“딱 봐도 견적이 천은 넘겠는데!”

“어이! 거기 뒤에 악어 파는 거야?!”

“잠깐! 상도의는 지켜야지! 호객 금지 몰라?!”

“그 악어 팔 거면 나한테 팔아! 큰 거 2장! 아니, 식량, 가스, 기름으로 줄게!”

……

사방에서 부산물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순간 노신부가 트럭 창문으로 상체를 내밀고 버럭 소리쳤다.

“야, 이거 내 거다!”

“미친! 꼴통 신부잖아!”

“도망쳐! 강제로 기부금 낸다!”

달려들던 상인들은 깜짝 놀라 흩어졌고, 트럭은 재빨리 속도를 내 시장을 통과해 달렸다.

부아아아아앙-

그리고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창원 대학교 교내, 건물 앞.

노신부는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에 내가 아는 의사가 있어.”

“기숙사예요?”

“지난달에 창원까지 전선을 밀어 올리면서. 기숙사를 임시 병원으로 사용하거든. 그 기절한 동료 데리고 나랑 같이 가고. 야, 트럭 잘 지키고 있어라!”

노신부는 40kg 쌀 포대를 번쩍 들며 외쳤다.

“알았어! 할배. 빨리 나와 늦으면 버리고 간다!”

귀찮은 듯 손을 흔드는 트럭 운전기사.

짐칸의 마혁진은 어느새 잠든 상황.

천문석은 장철 헌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노신부 뒤를 쫓아 기숙사로 들어갔다.

신부의 말대로였다.

1층 로비는 병원 접수대로 기숙사 방은 병실로 변해 있었다.

2, 3, 4층으로 올라가 복도 끝 방에 명패가 보였다.

[박찬호 과장]

“여기야.”

노신부는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야! 박 의사! 쌀 가져왔다!”

“뭐? 쌀?!”

군복 위에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노신부는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책상 위에 쌀 포대를 내려놨다.

“이거 적당히 의료품으로 바꿔서 다음에 진료 올 때 가져와라.”

“아니, 내가 장사꾼도 아니고 맨날 물물교환이야?”

어이없어 하며 쌀 포대를 연 박 의사는 깜짝 놀랐다.

“뭐야! 이거 도정도 안 됐잖아? 설마! 너 또 호남평야 갔다 온 거야? 너 그러다 죽는다니까!”

“야, 이거 안 보이냐?”

노신부는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염주, 십자가, 부적이 얽혀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 검은 폭풍 장군님이 지켜 주신다!”

“검은 폭풍 장군님? 미친! 카톨릭 신부라는 녀석이! 너 그러다 파문당해!”

“우리 꼬맹이들이 만들어 준 거라 괜찮아. 그리고 지금 내가 한국에서 제일 높아. 누가 날 파문하냐? 그것보다 화약 냄새나는데? 너 전투 갔다 왔냐?”

“간만에 수류탄 좀 던지고 왔지. 공세 시작 전에 전선 정리한다고 난리야.”

“의사란 놈이. 너야말로 그러다 훅 가.”

……

노신부는 박 의사와 정신없이 말을 주고받다 문득 천문석을 가리켰다.

“말이 길어졌네. 이분 좀 봐줘. 도움받은 각성자 일행분이신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시다네.”

“그래? 이쪽으로. 이 침대에 눕히면 됩니다.”

천문석은 장철 헌터를 의료용 침대 위에 눕혔고, 박 의사는 바로 상태를 확인했다.

“동공 반응 정상, 맥박, 호흡도 정상. 그냥 탈진해 잠든 거로 보이네요. 강제로 깨우면 몸에 부담이 갈 수 있으니. 수액 맞고 하루 정도 상태를 보는 게 좋겠습니다.”

박 의사는 수액을 꺼내 가방에 담아 노신부에게 건넸다.

“나는 환자 봐야 하니까. 이 가방, 수녀님한테 드려. 간호사 출신이니 알아서 하실 거다. 진료 시간 다 됐어! 훠이, 얼른 가라!”

“그럼 수고.”

순식간에 진료가 끝나고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박 의사는 노신부의 옷깃을 잡았다.

“어디서 그냥 튀려고. 진료비 주고 가야지?”

“쌀 가져왔잖아? 저기서 적당히 덜어.”

“뭐야? 호남평야 갔다 왔으면 김밥 있을 거 아냐? 수녀님 김밥 얼른 내놔!”

“귀신 같은 녀석.”

노신부는 품 안에서 포일에 쌓인 김밥을 꺼내 건넸고.

박 의사는 김밥을 한입 베어 물고 탄성을 터트렸다.

“와! 우리 수녀님 김밥 마는 솜씨는 점점 더 대단해지신다니까! 당장 분식집 차리는 거 어떠냐? 너랑 수녀님 이름 따서 철수&영희 분식, 어떠냐?”

“우리 수녀님이 좀 대단하시지. 그럼 간다. 나중에 보자.”

웃음기 어린 대답을 끝으로 천문석과 노신부는 트럭으로 돌아왔다.

진료를 보고 돌아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5분!

짐칸의 마혁진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트럭은 바로 출발했다.

부아아아앙-

트럭은 창원, 김해시를 지나 부산을 향해 달렸고 더는 미룰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

낙동강 전선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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