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3화>
“하- 금권 그놈이 도움이 되다니.”
주호는 기절한 마력 각성자를 암반 위에 눕히며 피식 웃었다.
던전에 가까워진 순간 발견한 마력 각성자!
마력 각성자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만만치 않은 강자다!’
어떻게 상대할지 머리를 굴릴 때 한 기억이 떠올랐다.
금권 개새끼와의 설산 비무!
그 상상도 하지 못한 처절한 비무가 떠오르는 순간 마력 각성자를 단숨에 제압할 묘수가 떠올랐다.
기습과 기만!
두 가지 묘수로 길게 끌 뻔한 승부를 순식간에 끝냈다!
이제 다른 녀석들이 도착하기 전에 대환단을 회수하면 된다!
암반 위에 수직으로 일어선 수면, 무림 던전에서!
주호는 수면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순간 깨달았다.
“뭔가 다른 던전이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이날을 위해 수많은 던전, 균열을 조사하고 직접 들어갔다.
그렇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던전은 그동안 자신이 확인한 던전, 균열과 무언가 달랐다.
그리고 무엇이 다른지도 곧 깨달았다.
일렁이는 수면에는 오직 빛뿐,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우선 부딪쳐서 확인한다!’
주호는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과 수면이 닿는 순간, 찰나의 순간에 상이 비췄다.
-만년설을 머리에 진 설산.
-수십 개의 섬을 품은 호수.
-하얀 소금이 가득한 벌판.
모두 눈에 익은 광경이다.
기련산, 청해 호수, 소금 벌판!
곧 높은 벽에 둘러싸인 백여 개의 전각으로 이뤄진 장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장원의 정문에 걸린 현판!
[鐵劍莊]
‘철검장! 무림 던전이 맞다!’
격동에 집중력이 깨지는 순간 흐릿해지는 상!
“……!”
주호는 무인의 직관으로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이 특이한 던전의 입구, 수면은 마음을 비추고 있다!
마음이 흔들리면 수면이 흔들려 상이 흐려진다!
지금 필요한 건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과 무아지경(無我之境)의 몰입!
그리고 그건 주호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명경지수, 무아지경의 몰입은 내공에 입문했을 때부터 평생 해 온 수련이니까!
주호는 심상을 일으키고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
수많은 벽을 넘고 넘어 인간의 한계마저 넘어섰으니.
초절정!
자신이 익힌 무공의 극의는 단혈(丹血)!
붉은 마음으로 하늘의 벼락을 벼려내어 마침내 하늘의 벼락, 검강(劍罡)에 닿았다!
하늘의 벼락을 벼린 마음으로 세운 심상은 현실과 같으니!
바람을 담은 심상을 우뚝 세우고!
우뚝 세운 심상을 수면에 투영한다!
거칠게 요동치는 수면이 고요하게 가라앉고 상이 또렷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두 개의 봉우리와 벽이 없는 문.
이 문 너머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나온다.
하남성 정주 숭산 소림사!
* * *
서쪽 암반 지대와 남동쪽 고지대.
하나의 시드에 투영되는 바람은 둘!
남일도에 두 개의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고, 두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천칭의 두 쟁반에 두 사람의 바람이 올라갔다.
단혈철검 주호와 강철 해머 장철!
무림 던전 소림사와 세기말 대한민국!
천칭의 한 쟁반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이 올라가듯이 열릴 통로는 하나뿐이다.
주호의 바람과 장철의 바람이 충돌하는 이 순간.
남일도와 그 주위 바다의 모두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두 개의 빛의 기둥을 봤다.
“빛의 기둥?”
“설마, 던전?!”
“이 마력 유동! 던전이다!”
“무림 던전이 열렸다!”
……
무림 던전이 열렸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각성자들에게 목적지가 생겼다.
하늘로 치솟은 빛의 기둥.
대환단이 있는 무림 던전!
각성자들은 둘로 나뉘어 서쪽 암반 지대와 남동쪽 고지대에 솟은 빛의 기둥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장강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이상 현상을 깨달았다.
여전히 던전은 고정되지 않은 상태!
그런데 뇌가 녹아내릴 듯 차오르던 고농도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신없이 이유를 확인하던 연구원들은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이유를 깨달았다.
감시 카메라에 잡힌 영상!
정신없이 위장 건물을 향해 달려오는 각성자들!
위장 건물 옥상에서 솟아오른 빛의 기둥!
그리고 섬 반대쪽 암반 지대에서 솟아오른 빛의 기둥까지!
“암반 지대! 저 빛의 기둥으로 던전 마력이 빨려 갔습니다!”
“지금 입구를 고정할 정도의 마력압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열지 못합니다!”
……
장철은 가슴이 타들어 갔다.
연구원들의 외침을 듣기 전에 이미 상황을 짐작했다.
빛의 격류가 몰아치자 화면을 가린 뿌연 껍질이 깨지듯 상이 또렷하게 맺히고 현실감이 살아났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모든 게 선명해는 순간, 긴 세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은 마음을 담아 간절히 바랐다!
그 찰나의 순간 한순간도 잊지 않은 시간, 장소, 사람 모든 것이 수면 아래 생겨났다!
차마 부르지 못하고 손을 뻗어 움켜잡으려는 순간.
구멍 뚫린 그릇처럼 마력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심상에 하나의 상(想)이 그려졌다.
천칭(天秤), 양팔 저울!
간절한 바람이 담긴 저울의 한쪽이 내려가는 순간 반대쪽 저울에 갈망이 실리고 저울을 수평을 이뤘다.
장철은 바로 상황을 알아챘다.
누군가 섬 반대쪽 빛의 기둥에 자신처럼 간절한 바람을 투영해 던전을 열고 있다!
가슴이 타들어 가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붙잡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지만, 집중이 깨지는 순간 저울은 완전히 기울어지고 마침내 찾은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장철이 할 수 있는 건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는 것뿐이었다.
‘으아아악-!’
이를 악물고 간절한 바람을 담아 수면에 투영했다!
그러나 수면에 투영된 바람이 선명하게 초점이 맞으려는 순간, 돌연 불어온 바람에 수면에 비추는 상이 흐려지듯 흐트러지기를 반복했다.
이때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버텨! 반대쪽! 내가 처리!]
암살검 한경석!
핏, 피피피핏-
한경석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창문 너머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연구원! 지면 뒤진다!]
“네……?”
사색이 된 연구원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장비 준비해!”
“암살검이 터는 순간이 기회다!”
“한번에 밀어붙여야 한다!”
“마석! 정제 마석 모조리 가져와!”
“각성자들 몰려오고 있습니다! 보안팀 부르고 당장 건물부터 봉쇄해야 합니다!”
……
이때 한 사람이 투명한 몸으로 건물 옥상에 내려섰다.
화려한 원피스에 샌들!
휴양지 관광객 같은 화려한 모습, 아리엘 무겐다흐!
딱-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원피스와 샌들은 사라지고 로브와 마도구가 전신에 씌워졌다.
아리엘은 푸른 마력광이 빛나는 눈으로 옥상을 훑는 즉시 발을 굴렀다.
쿵-
가볍게 발을 구르는 순간 북을 치는 듯한 파문이 옥상 전체로 퍼져 나갔다.
두우우우우웅-
옥상을 훑은 파문은 순식간에 기둥, 벽, 바닥을 타고 건물 전체를 훑고 대지로 흩어졌다.
아리엘의 머릿속에 건물 안의 모습과 사람들의 형상이 그려지고, 시드에 붙어 있는 이 세계의 강자, 각성자를 확인했다.
“미친! 무슨 저런 괴물이 있어?!”
경악한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던전 시드에 심상을 투영 중인 각성자는 각성력의 여섯 계통 중 육체 각성자였다!
강체술을 익힌 기사와 비슷한 육체 각성자!
어중간한 육체 각성자는 마법사의 밥이다!
그러나 육체 각성의 극에 달해 강철 같은 육체에 강철조차 부수는 의지가 담기는 순간, 마력조차 그 의지를 뚫지 못한다!
마법사의 극상성 능력자가 강체술을 극한으로 익힌 기사였다!
그런 극에 달한 육체 각성자가 시드에 심상을 투영하고 있다!
게다가 이 각성자의 주위에는 마력 각성자들이 건물 안에는 보안팀이 바글거렸다!
이 세계의 오파츠, 빌어먹을 마탄으로 무장한 보안팀이!
정면으로 싸우면 앗 하는 순간 개박살이 난다!
자신은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마법사. 그중에서도 마도의 극에 달한 마도왕이다.
어차피 발아한 던전 시드만 닫으면 되는 일!
싸울 필요 없이 스스로 포기하도록 무게만 좀 실어 주면 된다!
아리엘은 앵커를 뽑아 하늘로 치솟은 빛의 기둥을 향해 던졌다.
파스슥-
3개의 앵커가 삼각형을 그리는 순간 산이 무너지듯 혼백을 짓누르는 거대한 마력압이 가해졌다.
간절한 바람을 투영하는 육체 각성자, 장철을 향해서!
* * *
‘으아아아악-.’
장철은 악을 쓰며 정신줄을 잡았다.
콰드드드득-
갑자기 중력이 강해진 듯 전신에 엄청난 무게감이 걸렸다!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갈린다!
전신에서 쏟아지는 극통에 육체와 정신이 비명을 질렀다!
이 순간 장철은 오히려 웃었다.
정신이 타들어 가는 극통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 극통은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증거였으니까!
눈앞의 던전은 꿈이 아니다.
수없이 꿨던 꿈. 눈을 뜨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이 아닌 진짜 현실이다!
20년 동안 후회했다.
각성력이 사라지고, 마력 오염이 일어나고,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져도 상관없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던전이 거울에 비친 허상이어도, 깨지 않는 꿈일 뿐이어도 괜찮다.
후회를 지울 수만 있다면.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리라!
‘으아아악-.’
장철은 각성력과 육체의 모든 힘을 쥐어짜 내, 버티고 버티며 바람을 투영했다.
육체와 정신은 왼발과 오른발과 같다.
걷는 순간 양다리가 동시에 움직이듯이, 육체 각성자의 ‘육체’가 물리적 한계를 넘어 극에 달하는 순간, 그 ‘정신’ 또한 한계를 넘어 극에 달한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도 정신이 꺾이지 않는 한 그 육체는 불멸!
그게 바로 강철 해머.
비주류 육체 각성으로 극에 달한 1세대 헌터 장철이었다.
장철의 정신은 고통이 강해질수록 선명하게 깨어났고 천칭에 가해지는 부하는 강해졌다!
그러나 천칭의 반대편에 자리한 이도 만만치 않았다.
단혈철검 주호!
서자로 태어나 강호의 밑바닥에서 마침내 적자를 제치고 가문을 먹고 초절정의 경지에까지 오른 30년!
그 권력에 대한 갈망이 무아지경에 담겨 천칭을 내리눌렀다!
그럼에도 주호의 갈망은 장철의 간절한 바람에 모자랐다.
그 모자란 무게를 아리엘 무겐다흐가 채워 주고 있었다.
초절정,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주호.
육체와 정신이 극에 달한 장철,
두 사람의 갈망과 간절한 바람과 시드를 닫기 위해 끼어든 아리엘 무겐다흐까지 세 사람이 천칭의 양 접시에 올라 천칭을 뒤흔들었다.
이 순간 가짜 무림 던전에 낚인 각성자들이 천칭의 양 접시, 빛의 기둥을 향해 달렸고.
아득한 하늘의 인과로 남일도 사건에 얽힌 사람들 또한 둘로 나뉘고 달리고 있었다.
주호의 무림 던전 - 에코, 한경석!
장철의 세기말 대한민국 - 아리엘, 마혁진!
그리고 이 저울에 올라갈 사람들이 남일도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촤아아아아-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항구에 접근하는 오리배와 미궁 악어 7호.
“저 빛의 기둥? 설마?!”
“오너! 당장 세워야 합니다! 계속 움직이면 언제 엔진 터질지 몰라요!”
워커 실트와 케인 이사!
부아아아아앙-
난장판이 된 항구와 빛의 기둥을 확인한 보트.
“야! 항구 난장판이야?! 이대로 계속 가?!”
“저 빛의 기둥! 무언가 있습니다!”
구으으-
히이이-
김태희 대령과 파티마!
쿨쿨 잠든 퐁퐁이와 용용이!
이 모든 난장판의 시작 천문석!
천문석은 난장판이 된 항구와 섬 동쪽과 서쪽에서 솟아오른 빛의 기둥을 보는 순간 외쳤다.
“시바! 어쩐지 이럴 거 같더라니! 치와와, 운전대 잡아! 계획 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