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1032화>
“……제가 저 빛의 격류를 만들었다고요?!”
에코의 굳은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아리엘은 남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빛의 격류를 가리켰다.
“저게 네가 한 게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죠!”
“그럼 저게 왜 저래?”
“그러게요. 왜 저러죠?”
의아한 얼굴들.
얼빠진 물음과 반문.
빙글 고개를 돌려 빛의 격류를 다시 보는 순간.
구으으으으응-
천지를 뒤흔들며 밀려 가던 빛의 격류가 멈췄다.
남동쪽 고지대 정상에 우뚝 솟은 전파탑 앞에서!
“어. 저거 왜 멈춰?”
“그러게요? 왜 멈추죠?”
아리엘과 에코가 멍하니 말하는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껍질이 둘로 쪼개지는 듯한 광음이 터지고.
빠아아아아앙-
전파탑 앞에 멈춰 선 빛의 격류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동시에 역류했다!
“……!”
“……!”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었다!
거울에 닿은 빛이 되돌아오듯 엄청난 속도로 반전!
그리곤 암반 위에 수직으로 일어선 적층 마력회로에 빨려 들어갔다!
24개의 앵커에서 마력광이 뿜어지고, 48개의 마법 문자가 회전하는 순간.
거대한 빛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적층 마력회로 중앙에 차오른 수면이, 마치 태풍이 밀려온 듯 요동쳤다!
요동치는 수면 위,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
-하늘을 찌를 듯 끝없이 펼쳐진 산맥!
-끝없이 밀려오는 마수를 숯 더미를 만드는 뇌전의 폭풍!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와 대륙을 동서, 남북으로 가르는 강!
-산맥을 넘어 열점을 찾아 이동하는 노움의 이동 도시!
-지상에서 우주로 솟구치는 수백 개의 빛의 기둥, 마탑의 빛!
-강철의 폭풍이 대륙을 뒤흔들고 극에 달한 마도의 힘에 하늘이 요동친다!
……
“……!”
“……!”
아리엘과 에크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수면에 비추는 장면을 바라보다 동시에 외쳤다.
“대륙 전쟁?!”
“대륙 전쟁?!”
“미친 대륙 전쟁이잖아?! 너 던전을 어디로 연결한 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포켓 차원으로 연결했어요! 대륙 전쟁은 분명 갇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오류 수정하러 갔던……!”
“엇, 설마!”
“앗! 설마?!”
순간 시선이 마주치고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남동쪽에 하늘에 솟은 빛의 기둥!
빛의 기둥 아래에 자리한 전파탑!
전파탑 아래 울창한 숲과 능선에 가려진 건물 안에 있을 그것!
“시드!”
“시드!”
아리엘과 에코의 얼굴에서 핏기 사라졌다.
“시드! 시드!! 진짜 시드라고?! 왜 시드가 여기에 있어?! 왜?! 하필이면 차원 방벽을 뚫은 섬에! 왜 이 섬에 시드가 있는 거야?!”
“미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냥 대충 찍은 섬에 시드가 있었다고?! 샤, 군단장, 마도왕이 그렇게 찾아다닌 시드가 그냥 찍은 섬에서 나온다고?!”
에코는 정신없이 말을 쏟아 내다가 번쩍 깨달았다!
이상할 정도로 차원압이 높았던 남일도!
이 세계 자체가 차원압이 높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일도의 높은 차원압은 시드를 감싼 껍질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가짜 던전을 만들기 위해 차원 방벽을 뚫으며 시드의 껍질이 같이 깨졌다!
그 결과 시드, 가능성을 향해 자라나는 씨앗이 발아했다!
하늘을 향해 솟은 거대한 빛의 기둥 둘!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적층 마력회로와 멀리 전파탑 아래 있는 건물 안에서!
‘당장 시드를 닫아야 한다!’
“아리엘 님! 당장 저기 전파탑으로 가세요! 막아야 합니다! 껍질이 깨지고 시드가 발아했습니다! 어디로 연결될지 몰라요!!”
이미 몇 번이나 이야기한 내용!
아리엘은 에코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알았어…… 잠깐, 너 혼자서 여기 닫을 수 있냐?! 저거 대륙 전쟁이야! 허신, 마신, 용족. 아니, 신위에 달하지 못한 초월종 하나만 새어 나와도 끝장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에코의 손에 들린 회중시계 용두가 눌렸다.
찰칵-
순간 적층 마력회로 수면에 생겨난 상이 흐릿해지고. 파파파팟- 찰나의 순간 수십 개의 상이 덧씌워지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
밤하늘을 향해 솟은 거대한 산.
거대한 산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등이 보였다.
“……이거 정말 해요?”
어이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별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산의 웃음이 보였다!
들릴 리 없는 소리와 보일 리 없는 웃음이 보이는 순간.
하늘의 소울 스트림과 대지의 라이프 스트림이 하나로 이어져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아리엘은 머리가 아닌 혼백에 새겨진 본능으로 깨달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세계,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진 세계가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도의 극에 닿았던 혼이, 승천의 길에 한 걸음을 내디뎠던 백이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세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길고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이자 숨겨진 비화!
세계의 비의 중의 비의(秘儀)!
아리엘은 어느새 홀린 듯 걸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순간 경악으로 얼어붙었던 에코는 다급히 움직였다.
“이게 왜 튀어나와! 멈추세요! 이건 절대 건드리면 안 돼요!”
찰칵, 찰칵, 찰칵-
에코는 미친 듯이 용두를 눌러 장면을 지우고, 아리엘을 향해 몸을 던졌다.
으아악-
뒤엉켜 바위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 멈추는 순간, 아리엘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며 외쳤다.
“야! 방금 그거 뭐야?! 너 뭘 하고 다녔던 거야?! 아니, 그보다 방금 그 장면! 그 말한 사람! 그 사람 뭐야?! 세계의 흐름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죄송합니다!”
에코는 사과하는 동시에 아리엘의 머리에 회중시계를 던졌다.
“미친! 너 무슨 짓을……!”
아리엘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피하는 순간.
쾅-
아무런 전조도 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온 책이 아리엘의 뒤통수를 때렸다.
“너!”
외마디 외침과 함께 픽- 쓰러져 기절하는 아리엘.
“죄송합니다! 절대 본의가 아닙니다! 이거 전부 다 아리엘 님을 위해섭니다! 이 장면을 본 게 걸리면 시간 오류 수정자로 강제 차출돼요!”
에코는 빠르게 말을 쏟아 내며 아리엘을 반듯하게 눕히고 회중시계를 잡고 강렬한 심상을 담았다.
‘전부 잊으세요!’
찰칵-
용두를 눌러 심상을 고정하고 회중시계를 아리엘의 머리에 올렸다.
파스슥-
동시에 회중시계에서 심상이 담긴 마력광이 퍼져 나왔다.
그러나 마력은 아리엘의 머리 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당연했다!
육체 내부는 절대 영역! 정신 계통 마법이라도 감정을 직접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하아- 마지막 경계석인데…… 아리엘 님. 전부 다 잊으시겠지만, 이걸로 오래전 빚 갚은 겁니다.”
에코는 깊은 한숨과 함께 회중시계 뚜껑에 붙은 작은 돌, 마지막 경계석 조각을 떼어 내 아리엘의 입 안에 넣었다.
파스슥-
아리엘의 머리 안으로 심상이 스며 들어가고.
짜악-!
에코의 양손이 부딪치는 순간 번쩍 눈을 떴다.
“어, 어? 뭐야?! 내가 왜 누워 있어! 방금 무슨 일이……?!”
“아리엘 님!”
에코는 버럭 소리쳐 말을 끊고 아리엘의 몸을 잽싸게 일으켰다!
“시드가 발아할 때의 충격파로 기절했습니다! 당장 움직여 닫아야 합니다! 보이시죠?!”
“충격파로 내가 기절해? 말도 안 되는…… 어, 저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하늘로 솟은 거대한 빛의 기둥 둘이 보였다!
“시드! 설마 가짜 던전 뚫다가 연결된 거야?!”
“네! 차원 방벽 뚫다가 시드가 발아했습니다. 가짜 던전이랑 진짜 시드, 양쪽 다 연결됐어요! 동시에 닫지 않으면 어디로 연결될지 몰라요! 마굴로 연결되면?!”
“……!”
아리엘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마굴!
대륙 전쟁에서 패배한 허신과 마신, 용족! 그리고 온갖 초월종을 가둔 감옥이자 허수 공간!
마굴과 연결되면 이 세계는 끝장이다!
“전파탑은 내가 처리할게!”
아리엘은 정제 마석을 손에 쥔 채 암반 위를 달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육체가 흐릿한 영체로 변해 화살처럼 쏘아지는 아리엘!
“하아- 어떻게 잘 넘겼네…….”
에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드는 강렬한 바람을 향해 뻗는 가능성이다. 마굴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 세계에서 마굴과 연결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전파탑의 시드는 아리엘 님에게 맡기고 자신은 시드와 연결된 적층 마력회로를 닫으면 이 난장판도 끝난다!
에코는 빙글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로 솟은 빛의 기둥!
항구를 향해 질주하는 파도와 몰려오는 배!
도망치는 각성자들로 난장판이 된 중앙 항구!
하늘로 솟은 빛의 기둥을 향해 달리는 각성자들!
나무나 익숙한 난장판!
하지만 이 난장판은 이제 곧 끝난다!
시드가 발아했지만, 아직 연결되지 않았고 시간 오류 수정자인 자신과 마도 전쟁 승리 직전까지 갔던 마도왕 무겐다흐가 있다!
자신과 아리엘 님이 양쪽에서 동시에 입구를 닫으면 사고가 터지기도 전에 끝난다!
“우선 반쯤 닫아 놓는다!”
외침과 함께 중첩 마력회로로 손을 뻗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림 던전을 닫는다고? 그건 안 되겠는데.”
“……!”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구르는 순간.
탓-
암반을 달리는 발소리가 울리고 붉은 섬광이 시야를 갈랐다!
유형화된 붉은 오러!
공간을 찢어발기는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
순간 자동방어 마법이 작동했다.
빵빵, 빠아앙-
압축 공기가 연속으로 터지고.
차르르르륵-
셔터가 내려오듯 실드가 중첩됐다.
엄청난 풍압이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순간,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두 번 공간을 갈랐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러가 십자로 얽히는 순간 압축 공기가 종잇장처럼 잘려 나가고.
찰나의 순간 중첩 실드와 오러가 수십 번 충돌했다.
깡, 까가가가가깡-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금속성 굉음과 우수수 쏟아지는 마력 불꽃!
콰직, 콰지직-
에코는 정신없이 정제 마석을 깨트려 자동 방어 마법을 재생했다!
까가깡-
깨져나가는 즉시 복원되는 중첩 실드!
빠아앙-
연속으로 폭발하는 압축 공기 마법!
‘모자라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 단순한 검격에 걸리는 순간.
압축 공기는 열풍이 되어 흩어지고, 실드 하나를 복원하면 둘을! 셋을 복원하면 다섯을 찢어발긴다!
무작위 점멸로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우르르르르-
붉은 오러 블레이드에서 쏟아진 기파가 마력장을 흔들어 좌표가 고정되지 않는다!
까가가가가강-
피처럼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그려 내는 열십자 강철의 폭풍이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하필이면 지금!’
시계의 힘과 마지막 경계석을 사용한 타이밍에 마스터, 기사단장급 강자에게 기습을 당해 근접전을 하고 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공격에 살기는 없다!
상대의 목적은 자신을 제압하는 것!
하지만 자신이 제압당해 던전이 뚫리면 대참사가 터진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진심을 담아 호소하는 것!
에코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외쳤다.
“잠깐!!”
순간 우뚝 검이 멈췄다!
‘말이 통한다!’
에코는 전심전력을 다해 말을 쏟아 냈다.
“이거 무림 던전 아닙니다! 방송에 나온 남일도에 무림 던전 나왔다는 것 전부 사기입니다! 무림이 진짜로 있을 리 없잖아요?! 사람들 낚으려는 가짜예요, 가짜! 이 던전 열리면 대참사가 터집니다! 당장 닫아야 합니다!”
“가짜? 사기?! 대참사가 터진다고?! 어떻게 된 건가?! 자세히 설명을……!”
다급히 검을 거두고, 경악한 얼굴로 한 걸음 다가서는 마스터급 강자!
‘진심이 통했구나!’
에코는 반색해서 재빨리 설명했다.
“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순간 팔에 무언가 닿았다.
“……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자 팔을 잡은 손이 보였다.
그리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뭐? 무림이 구라라고? 무림 던전이 전부 뻥이라고?! 어딜 가던 이런 사기꾼 놈들이 있다니까! 새꺄야! 내가 바로 주호다! 그 있을 리 없는 무림에서 온 단혈철검 주호! 그런 개구라에 내가 속을 줄 알았냐?! 하하하-.”
“아니, 잠깐만……!”
다급히 외치는 순간 팔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괴적인 힘!
‘내공?! 무림인? 이 세계에서 무림인이 왜 나와?!’
이 순간 에코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림인 앞에서 무림이 없다고 사기를 친 꼴이다!
“이 던전 절대 열면 안 됩니다! 닫힌 세계에서 시드가 발아하면! 그 무게로 분기점에서 뒤엉킨 나뭇가지 전체가 부러질 수도……!”
반사적으로 외치는 동시에 팔을 타고 스며든 내력이 폭발했다.
“……!”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지고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순간 정신이 뚝 끊겼다.
에코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픽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