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81화>
위잉, 위이잉-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애민 공원! 그곳으로 몰고 있다!”
무리 지어 골목과 인도를 달리는 용역, 조폭, 헌터 무리.
승합차 안, 마혁진은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푸저우시에 도착해 대환단 회수를 위한 비밀 거점을 만들고 바로 NTM_CHS 추적을 위해 시가지로 나섰다.
그런데 그 몇 시간 만에 푸저우 시가지는 들끓는 가마솥 같은 거대한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마혁진의 외침에 대답하는 부하는 없었다.
당연했다. 방금 전까지 같이 비밀 거점에 있었으니까!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승합차가 멈추고 조수석의 중간 보스 김기철이 노점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곧 깜짝 놀란 얼굴로 돌아와 말을 쏟아 냈다.
“NTM_CHS 정체가 밝혀졌답니다!”
“CHS, 최후식! 최후식이 ‘그것’을 가지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 최후식 행방을 아는 동료를 쫓느라 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애민 공원 방향입니다!”
마혁진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것, 대환단!
비밀 거점을 만들고 나오자마자 이렇게 단서가 나타난다고?!
철검장주 주호는 약속했다.
대환단만 찾아오면 남중국에 탄탄한 기반을 만들 자금과 인맥, 뒷배가 돼 주겠다고!
승합차 안 부하들은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몸을 들썩였다.
“길드장님 바로 움직이죠! 기회입니다! 북동쪽 애민 공원에서 꼬리를 잡았……!”
마혁진은 손을 들어 김기철의 말을 끊었다.
“…….”
그리고 고개를 돌려 승합차 밖 도시를 빠르게 훑어봤다.
술렁이는 거리와 정신없이 달리는 각성자, 질주하는 차량 행렬!
이 모든 것에서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자신이 이 먼 남중국까지 도망쳐 철검장 밑에서 일을 하게 된 원인.
신동대문 사건.
그때도 지금과 같았다!
도시 전체가 술렁이더니.
삼합회와 야쿠자가 개박살이 나고.
광장에 깃발을 꽂았다가 거대 괴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하 터널을 달리는 거대 괴수 위에서 펼쳐진 3인 대전!
그 결과 열사의 사막에 떨어져, 스카라베 놈들에게 끌려가 개같이 구르고 구르고 굴렀다!
간신히! 그야말로 간신히 지구로 돌아와 이곳, 남중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이 모든 일의 원인, 이세기!
대환단의 흔적이 나타난 지금!
북 치듯 둥둥- 울리는 심장과. 등골을 흐르는 저릿한 감각!
어째선지 ‘이세기 새끼’와 얽혔던 때와 같은 기시감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1세대 헌터, 초능력 각성자인 자신의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잘못 대응하면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제 자신은 충동적으로 행동하던 예전의 마혁진이 아니다!
우선 생각하고 움직인다!
“보스?”
“형님……?”
“길드장님?”
그래서 승합차에 탄 부하들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명령했다.
“잠시 기다려라!”
마혁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대환단으로 연결되는 흔적이 나타났는데도 난장판이 된 도시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철검장주와 만났을 때부터 NTM_CHS, 대환단을 추적할 생각이 사라졌다.
처음 상해에 왔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상해에 도착해 확인한 현지 철검장의 상황은 남중국행을 주선한 왕체의 말과는 달랐다.
철검장은 삼합회와 분쟁 중인 신흥조직.
조직 보스 주호는 엄청난 힘과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그뿐.
철검장에는 힘과 돈은 있어도, 뒷배가 되어 줄 인맥과 뿌리 깊은 역사는 없었다.
철검장주 주호가 대환단을 구하는 것도 부족한 인맥과 역사를 채울 배경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걸 아는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배경 없이 힘과 재력만으로 쌓아 올린 세력이 얼마나 쉽게 바스러지는지 이태성 길드장과 엮였을 때, 신동대문 사건에서 이미 경험했었으니까.
결국, 이번 대환단 회수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칠성파의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환단을 찾아 바치고 흡수당하거나.
대환단을 찾지 못하고 토사구팽당하거나.
둘 다 최악의 상황!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 이태성 길드장과 만나 깃발을 꽂는 게 나았다.
이태성은 시바 새끼지만, 뒤끝은 없었다.
깃발을 꽂고 뒤지게 처맞은 다음 던전 광산에서 몇 개월 구르면 자신에게서 신경을 끌 거다.
결국, 지금 선택지는 넷이다.
1. 대환단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태성과 깃발을 꽂는다.
2. 대환단을 찾아 철검장주에게 바치고 상해에 새로 기반을 닦는다.
3. 대환단을 찾아 다이렉트로 남중국 군벌 수장에게 바치고 배경으로 삼는다.
4. 대환단 추적은 그냥 보여 줄 정도로만 하고 홀로 독립할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한다.
2번은 당연히 아웃!
3번은 군벌 수장과 연결될 라인도 없고 걸림돌이 있었다.
힐끗 백미러를 살피자 승합차에 구겨 탄, 철검장에서 박아 넣은 감시자가 보였다.
대환단을 빼돌리려는 기미만 보여도 철검장주 주호에게 끝장난다!
결국, 선택지는 1번과 4번!
1번 이태성과 깃발 꽂기는 어차피 언제든 가능한 최후의 선택.
4번에 따라 움직이다가 여의치 않으면 1번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결심하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감이 왔다.
북동쪽 애민 공원!
이 난장판의 중심이자 대환단과 이어진 꼬리! 최후식의 동료가 나타난 장소에서 가장 먼 곳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서쪽으로 움직인다!”
“네? 보스! 북동쪽 애민 공원에 나타났다는데……!”
“나한테 계획이 있다! 우선 서쪽으로 이동한다!”
열사의 사막에서 개같이 구르며 성장한 마혁진의 두 눈에 담긴 이글거리는 각성력!
부아아아앙-
칠성파 조폭 헌터들을 태운 승합차는 바로 도시 서쪽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마혁진은 스마트폰을 꺼내 푸저우시 지도를 띄우고 빠르게 훑었다.
찾아야 할 것은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피할 안전한 장소.
그렇다고 아예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면 의심을 사게 된다.
난장판이 된 도시 중심으로 언제든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한 발 떨어져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어디냐? 어디?!’
곧 마혁진의 시선이 푸저우시를 가로지르는 푸른 선에서 멈췄다.
북서쪽 내륙에서 흘러와 푸저우시를 북, 중, 남 셋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 민장강!
난장판으로 변해 가는 푸저우 도심지에 가까우면서도 안전한 장소.
강 위다!
‘민장강 위에 배를 띄우고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
결심을 굳히자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보였다.
배와 유람선이 모여드는 푸저우 서쪽 항구, 민장강 북항!
마혁진은 바로 명령했다.
“민장강 북항으로 간다!”
마혁진과 칠성파 조폭 헌터들을 태운 승합차는 민장강 북항으로 향했다.
* * *
민장강 북항으로 이동하는 관광버스 안.
“학생. 이거 좀 먹어 봐. 동과탕이랑 자스민차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천문석은 꾸벅 인사하고 단체 관광객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과자와 음료수를 받았다.
그리고 널찍한 관광버스 좌석에 ‘편안히’ 앉아, 창밖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뇌가 녹아내릴 듯이 단 동과탕을 씹고, 꽃내음이 올라오는 자스민 차를 마셨다.
천문석은 ‘편안히’. 그리고 ‘느긋하게’ 먹고 마셨다!
서호 공원에서 김태희 대령과 맞닥뜨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진짜 단체 관광이라도 온 듯 편안하고 느긋한 상황!
천문석이 이렇게 편안히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민장강 북항!
목적지가 가까워지는데도 창밖 어디를 봐도 뒤를 쫓는 각성자도, 요소마다 펼쳐진 검문소도 없었다!
서쪽으로 갈수록 거리의 각성자 수가 확확 줄어들고 도로가 빠르게 휑해지고 있었다.
이번 일의 파트너, 파티마가 생각 이상으로 잘 대응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도시 동쪽 하늘을 바라봤다.
한여름 아지랑이가 지듯 일렁이는 대기.
수많은 전장을 거친 무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끓어오른 투지와 기세가 충돌하는 현상!
지금 도시 동쪽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누가 격전을 벌이고 있을지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서호 공원에 남겨 둔 파티마와 김태희 대령.
두 사람이 최후식과 대환단을 찾는 녀석들을 모조리 동쪽으로 유인하며 싸우고 있었다.
숙소가 있는 ‘남쪽’도 항구가 있는 ‘서쪽’도 아닌 동쪽으로!
파티마는 자신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일부러 적들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120% 임무를 수행하는 이 모습!
이번 남중국행의 파트너로 바람검 파티마 알사우드를 선택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대로 한경석의 동선을 확인하고 재빨리 파티마를 빼내면 미션 클리어다!
‘카캬캌-.’
내심 웃음을 터트릴 때 목적지 민장강 북항에 도착했다.
관광버스는 바로 항구 주차장에 멈춰 섰고, 단체 관광객들이 하나둘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내릴 차례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이제 단체 관광객을 따라 은근슬쩍 같은 유람선에만 타면 이번 일은 두 단계만 남는다.
-유람선이 멈추는 곳, 한경석의 동선과 현재 위치를 확인.
-한경석과 만나 난장판으로 이동, 파티마를 잽싸게 빼낸다.
그리고 남중국을 떠나면 미션 클리어!
늘 그러하듯 계획은 쉽고 간단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온갖 변수가 터져 나올 거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암살검 한경석!
각성력을 억제하는 마력장이 펼쳐진 성채 빌딩 안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연속 점멸하는 한경석이 있었으니까!
이번 난장판의 피날레가 눈에 선하게 보였다!
핏핏, 피피핏-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파티마는 사라지고.
콰아아아아앙-
감각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굉음과 섬광이 시가지에서 터진다.
연속 점멸과 굉천수!
그것도 해가 진 시가지에서의 연속 점멸과 굉천수다!
‘된다! 이건 반드시 먹힌다!’
천문석은 확신과 함께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라텍스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유람선 타러…….”
“유람선? 학생. 유람선 탈 거면 우리랑 같이 타!”
라텍스 아주머니의 호의 어린 제안!
천문석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물었다.
“저, 그래도 괜찮을까요?”
“인원이 몇 명인데 한 명 정도야 당연히 괜찮지. 외국에서 같은 한국 사람끼리 도와야지. 우리 부부가 이 여행사 단골이야. 잠시만 기다려. 내가 얼른 가이드 아가씨한테 말해 줄게. 가이드 김 양! 여기 학생, 유람선 탄다는 데! 우리 유람선에 한자리 괜찮지?”
라텍스 아주머니는 한달음에 달려가며 외쳤고.
라텍스 아저씨는 ‘도대체 왜?’라는 표정으로 천문석을 바라보다가 문득 탄성을 터트렸다.
“아! 자네도 라텍스 베개 사려고? 그냥 내가 몇 개 줄까? 아주 많은데…….”
“…….”
잠시 후 천문석은 단체 관광객들과 유람선에 탑승했다.
유람선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승객을 태우더니 오후 3시에 민장강 북항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민장강 북항이 멀어지고 천천히 푸저우시 중심으로 나아갈 때.
유람선 갑판 위 천문석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네? 지금 어디라고요?”
“타이페이.”
“…….”
천문석은 다시 확인했다.
“그러니까 이 유람선 목적지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텍스 아저씨의 대답이 들려왔다.
“대만 타이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