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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8화 (96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8화>

휘이이이잉-

이 순간 싸늘한 바닷바람이 갑판 위로 불어왔다.

바람을 맞는 순간 주호는 몇 달 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휘이이잉-

냉기를 품은 칼바람이 불어오고.

퐁, 퐁, 퐁-

절로 울화통이 터지는 검명이 울려 퍼지는 한겨울 설산!

주호 자신.

자칭 금권 대협.

강호 초출 이세기.

셋은 비무와 대환단으로 얽혔다.

그렇다.

그때도 난장판의 시작은 비무였지만, 그 끝은 대환단이었다!

하-

주호는 생각만으로도 헛웃음을 터졌다.

자신이 이 세계로 오게 된 이유가 ‘대환단’ 때문이다.

순간 불과 몇 달 전 일이 10년은 지난 듯 아득하게 다가왔다.

금권 대협, 그 미친놈과의 비무와 설산 추격전!

기다렸다는 듯이 뒤통수를 때린 조카의 반란!

비밀 연무장으로 데려다주는 대가로 약속한 ‘대환단’!

그러나 비밀 연무장은 결국 수몰됐고 자신은 처량하게 도망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 현상으로 이 세계에 떨어지게 됐다.

처음에는 거대 괴수를 보고 요마괴이가 득실거리는 마굴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계는 무림과 다름없는 강자존의 세계였다.

아니, 무림과 달리 이 세계는 자신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무림맹, 사자련, 마도 18문 같은 정사마를 단단히 틀어쥔 절대 강자가 없는 전국시대였으니까!

마수와 몬스터!

던전, 균열, 마경, 게이트!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영약까지!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 기회가 널려 있었다!

주호는 당연히 이 기회를 낚아챘다!

영약을 쓸어 모아 비무에서 입은 내상을 치료하고, 뒷골목 헌터들을 모아 사공과 영약으로 힘을 키워, 순식간에 철검장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해 삼합회를 먹는 데 성공했다.

무림에서 자신이 이룩한 철검장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마천루와 엄청난 이권이 손에 들어왔다.

삼합회는 뿌리가 깊은 조직, 이제 숨을 고르며 내실을 다질 때가 왔다.

하지만 지금껏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삼합회가 일방적인 휴전 요구에 응할 리가 없었다.

지금 철검장에 필요한 건 삼합회와의 사이를 중재해 줄 권력자.

지방의 권력자로는 안 된다.

삼합회가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할 절대 권력자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주호는 그 절대 권력자를 향해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이 세계에 떨어진 무림인.

설산 비무에 끼어든 금권 대협 놈의 친구.

곧 남중국의 모든 헌터 군벌을 거느릴 절대 권력자.

천검 이세기.

우드득-

주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환단!

천검 이세기의 호의를 사는 데 필요한 건 금권 대협이 이세기에게 줬던 대환단이다.

대환단을 찾기 위해 심복 중의 심복. 왕체, 최림과 정예 무사들을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거지꼴, 빈손으로 돌아와 혼이 나간 얼굴로 미친놈처럼 횡설수설했다.

-계단 산, 그림자 마수, 원숭이 요괴, 하늘을 나는 거대한 고래!

-요마괴이의 도시, 농악을 울리는 요괴 무리, 난장판이 된 도시!

-수백 척의 배가 뒤엉킨 해전, 화염의 비를 뿌려 대는 용과 상상을 초월한 격전!

-사막 도시 탈출, 사막을 달리는 배와 뒤를 쫓는 성채, 용권풍에 휩쓸려 도착한 열사의 사막!

-도시를 등에 짊어지고 달리는 거대한 거북이, 압류 딱지를 붙이는 곤충과 미친 듯이 딱지를 떼던 일!

……

‘이세기’라는 이름의 헌터와 엮여.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겪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건!

한두 녀석이라면 이놈들이 구라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심복 왕체와 정예 무사, 삼합회의 최림까지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대환단을 구하기 위해 준비한 막대한 자금은 손도 대지 않은 상황!

주호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한국에 보낸 부하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대환단은 찾지 못했고, 도망친 상해 삼합회주를 잡을 미끼도 데려오지 못했다!

게다가 심복 왕체와 최림, 정예 무사들은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해야만 했다.

멀쩡히 대화하다가 돌연 극심한 분노과 공포에 휩싸여 발작하듯 외쳤다.

‘이세기 미친 새끼!’

‘으아악- 이세기! 이 새끼!’

……

병명은 극심한 과로와 정신적 고통 PTSD!

황당하게도 자신의 부하들을 굴린 미친놈의 이름이 천검과 같은 ‘이세기’였다!

천검의 이름이 ‘이세기’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퍼져 나갔지만, 여전히 일부의 사람밖에 모른다.

그러나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은 남중국 권력의 핵심들!

부하들이 ‘이세기 미친 새끼’라고 외치는 게 걸리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결국, 주호는 심복과 정예 무사들을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이렇게 자신이 직접 움직여야 했다.

‘하필 이세기란 이름을 가진 헌터랑 엮여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지는 순간, 시선이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갑판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멍청한 부하 놈들이 한국에서 얻은 유일한 소득!

한국 헌터 업계의 권력자에게 찍혀 남중국까지 도망쳐 온 조폭 길드 칠성파 보스 마혁진, 중간 보스 김기태와 수십 명의 조폭 헌터들이다.

저들은 이 배의 목적지, 남중국 푸젠성에서 펼쳐질 난장판에 뛰어들어, NTM_CHS의 대환단을 자신에게 안겨 줄 노림수였다!

이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주님! 바다의 재앙이 대만 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예보가 나왔습니다. 바로 항로를 수정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호는 출발 전 봤던 황당한 영상을 떠올렸다.

산이 솟구치듯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바닷물 장벽.

이 장벽에서 엄청난 물방울이 쏟아지고 바닷물 상어, 가오리, 고래가 튀어나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서해와 남해에서 주로 활동하는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는 신수의 힘이었다.

제주도라는 섬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신수가 얼마 전부터 남중국 방향에 출몰하고 있었다.

문득 먼바다로 시선을 돌리고 내력을 끌어올리자, 아득히 먼 곳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과 소리가 느껴졌다.

쏴아아아-

엄청난 규모의 폭포가 쏟아지는 진동.

포그르르르-

어쩐지 귀에 익은 물방울 흩날리는 소리.

거대한 성채 같은 배조차 단숨에 부러트린다는 위험한 신수였으나, 거리는 충분했고 별다른 기척도 전해지지 않았다.

“언제 도착하지?”

묻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푸저우시에 도착하는 건 내일 아침, 월요일 오전이 될 것 같습니다. 현지 거점은 이미 준비됐고 푸젠 군벌과도 약속을 잡았습니다.”

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횡무진 남중국을 누비던 천검 이세기가 푸젠성 푸저우시에 도착하는 건 수요일!

월요일, 화요일. 2일의 시간이 있다.

천검은 곧 남중국 연방 총통 자리에 오를 절대 권력자.

그런 천검을 만나기 위해 푸젠성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이 몰려들 거다.

2일의 시간으로 천검을 만날 약속을 잡는다는 건 어지간한 인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주호는 이미 오래전 푸젠성에 관계를 쌓아둔 권력자가 있었다.

천검의 줄을 잡아, 해안 부대 사령관에서 푸젠 군벌 수장으로 벼락출세한 장웨이 사령관!

푸젠성, 푸저우시에 도착해서 할 일은 간단했다.

자신은 장웨이 사령관을 만나 관계를 다지며 천검을 만날 약속을 잡고!

마혁진과 칠성 길드 헌터들은 푸젠성 어딘가에 있을 NTM_CHS를 찾아 대환단을 회수한다!

최선의 결과는 대환단을 찾아, 천검 이세기에게 바치고 그 호의를 사는 것!

하지만 대환단을 찾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주호는 무림 던전에서 이미 천검 이세기를 겪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세기는 신의를 아는 대인(大人).

금권 대협 놈의 친구라는 게 믿기지 않은 군자(君子)였다!

절대 자신을 모른 척하지 않으리라!

자신이 필요한 건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권력자 앞에서. 남중국의 절대자, 연방 총통이 될 천검 이세기가 웃으며 건넬 한마디다.

‘주 대협. 오랜만이군요.’

천검 이세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넬 이 한마디는, 그대로 삼합회가 감히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할 목줄이 되리라!

하하하하-

주호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새삼 안도했다.

이 이상한 세계에 같이 떨어진 게 천검 이세기라 정말 다행이었다!

천검 이세기의 자리에 금권 대협, 그 또라이가 있었다면?

마치 미래를 보듯 일어났을 장면이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주호! 그 얍삽한 새끼?! 뭐야?! 너 여기 왜 있어?!’

친구를 만난 건지 원수를 만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외침!

군벌 수장들의 어리둥절한 시선이 모이는 순간 그 얼굴에 떠오를 야비한 미소.

금권 대협은 씩 웃으며 품에서 문서를 꺼내 흔들며 외쳤을 거다.

‘야! 너 이거 기억나지? 100만 냥! 네가 직접 피로 적고 수결한 지급 문서!’

금권, 그놈은 어떻게 해서든 100만 냥을 받아 내고도 남을 놈이었다!

상상만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상황!

금권 대협, 그놈이 천검 이세기의 자리에 있었다면 반드시 일어났을 일이다!

하아-

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시선을 내려 손을 봤다.

손끝에 느껴지는 강대한 내공!

금권 대협과 설산에서 처절한 개싸움을 벌이며 얻은 심득을 붙잡고, 영약을 쏟아부어 마침내 완전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새옹지마!

금권 그놈과 비무를 했다가 개고생을 하고, 결국 이 세계에 떨어진 게 오히려 복이 됐다.

주호는 문득 금권 대협과 지금의 자신을 견주어 봤다.

금권 대협 그놈은 도발과 도주, 무공과 잔머리의 천재!

아득한 현기가 담긴 무공을, 퐁, 퐁- 거리는 기괴한 검으로 펼쳤다!

하지만 내공의 양은 그야말로 한 줌!

완전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상, 금권 그놈은 더 이상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만약 다시 싸운다면 도주는 꿈도 꾸지 못하게 폭풍같이 몰아붙여 10초면 제압할 수 있다!

십초지적!

자신은 금권 그놈을 압도하는 경지에 올랐다!

내상을 치료하며, 금권 그놈을 다시 만나면 개박살을 내 주겠다고 수십 수백 번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헛된 꿈이 돼 버렸다.

자신은 이 세계를 떠나 무림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고.

금권 그놈이 자신이 있는 이 세계에 떨어져도 개박살 낼 수는 없었다.

금권 대협, 그 미친놈의 친구가 곧 남중국의 절대자가 될 천검 이세기였으니까.

“하아- 이 더러운 인맥 사회…….”

주호는 깊게 탄식하며 뱃머리가 향하는 바다를 바라봤다.

남중국 푸젠성 푸저우시.

복건성(福建省), 복주시(福州市)!

3일 후 천검 이세기와 만날 장소!

금권 대협과 얽힐 일은 더는 없다.

이제 그놈 생각은 날려 버리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신 철검장의 미래를!

* * *

서울 상공, 재금 그룹 본사가 있는 천공의 섬에서 남중국 방향으로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 비행기에는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 타고 있었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창문 너머로 천공의 섬, 일명 전능 옥좌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거대한 천공의 섬 위에 펼쳐진 시가지가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 거대한 부유 도시의 심장, 마도 엔진실에 있었음에도 눈앞의 광경이 새삼 경탄스러웠다.

중심의 공원과 그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시가지!

맨해튼 1/3 크기의 섬이 밤하늘에 떠서 어둠을 밝히는 모습은 현실이 아닌 꿈만 같았다.

어쩌면 비행기를 타고 출발하기 전 엔진실에서 봤던 경이로운 광경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몰랐다.

하아-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광화문 골목에서 발견한 빛의 나무!

그 빛의 나무가 그려진 바닥과 벽을 통째로 들어내 천공의 섬 연구실로 옮겼다.

이 순간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꼬맹이가 그린 낙서 같은 빛의 나무와 마도 공학 기술의 총화, 마도 엔진이 공명한 것이다!

다른 계통의 힘이 공명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

자신과 김철수 발명가는 바로 확인에 들어갔고, 곧 결론이 나왔다.

빛의 나무와 마도 엔진은 같은 계통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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