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965화 (96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965화>

부아아아앙-

장갑 SUV가 언덕 아래로 사라지고.

[선물 9호, 15호, 반지 2개.]

류세연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때.

“안녕안녕안녕…….”

특급 헌터의 손이 멈추고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에휴- 완전 재밌을 것 같은데 아쉽네.”

“……!”

순간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황 비서는 바짝 긴장했다.

VIP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떠났다!

대표님이 오고 있는 지금, 강릉 이상 던전 사건 때처럼 VIP가 사라진다면?

상상만으로도 전율이 이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황 비서는 반사적으로 수신호를 보냈고 건물 주위 곳곳에 대기하던 경호팀, 비서실 직원들은 바짝 긴장했다.

이때 류세연은 특급 헌터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들은 것만으로도 옥탑방 오빠가 남중국으로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특급 헌터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귓속말 한 번에 옥탑방 오빠 혼자 남중국으로 가는 걸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고?!

자신이 아는 특급 헌터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뭐지, 무슨 말을 한 거지?!’

류세연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특급 헌터한테는 뭐라고 한 거야? 오빠.]

그리고 바로 돌아온 답장.

[@ㅁ@??]

“뭐야, 이모티콘?! 하-.”

류세연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특급 헌터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특급 헌터. 아까 삼촌, 아니 오빠가 귓속말하는 거 같던데…… 뭐라고 말한 거야?”

“앗! 그거 비밀인데? 완전 비밀인데?! 엄청 비밀인데?!”

대답과 동시에 특급 헌터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ㅁ@??]

‘아, 이래서! 그런 이모티콘을 보냈구나!’

깨달음의 순간 세연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야, 나 건물주 누나야! 이번엔 왜 안 따라간 거야?! 살짝 누나한테만 말해 줘. 강릉 때는 너 몰래 따라갔잖아?”

“에휴, 에휴, 에휴-.”

특급 헌터는 3연속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이건 경석 형의 프라이버시야! 절대 말할 수 없어! 에휴- 경석 형은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프라이버시? 경석 언니가 철이 없다고? 그거랑 안 따라가는 게 무슨 상관이야?”

좌우로 움직이던 고개가 우뚝 멈췄다.

그리고 특급 헌터의 얼굴에 드러나는 환한 웃음!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에 세연이 움찔하는 순간,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맞아! 상관없어! 카캬캌- 알바는 내가 아이인 줄 안다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몰래 따라가려고! 앗! 이번엔 전과 달라! 이번에는 날아서 따라갈 거야! 다람쥐 옷! 집에 오자마자 천공탑에 걸어 뒀어, 충전하려고! 카캬카캌-.”

웃음과 탄성 그리고 환호!

돌변한 특급 헌터의 모습에 류세연은 반문했다.

“어? 몰래 따라가? 하늘을 난다고? 다람쥐 옷? 너, 그게 무슨…… 설마 윙슈트?!”

류세연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당장 입구 막아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황 비서는 반사적으로 외치는 동시에 달렸다!

주위에 대기 중인 비서실 인원이 건물 밖으로 이어지는 길을 막고, 경호팀 직원들이 일제히 VIP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특급 헌터는 이미 빙글 몸을 돌려 건물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이야얍! 엄청난 힘이 솟는다!”

“멈춰! 멈추세요!”

황 비서가 특급 헌터 뒤로 따라붙고.

“VIP, 계단을 오르고 있다!”

“뛰어! 놓치면 안 돼!”

“위장일 수 있다! 도로! 움직이지 마라!”

……

정신없는 외침과 함께 경호팀 직원들이 단숨에 주차장을 가로질러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포그르르르-

이 순간 폭포수처럼 계단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방울!

황 비서는 한눈에 알아봤다.

몇 번이나 겪은 일!

VIP가 가지고 있는 이상한 아이템의 힘이다!

잽싸게 몸을 숙이고 난간을 잡은 채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황 비서.

포그르르르-

그러나 경호팀 직원들은 쏟아지는 물방울에 흠칫 놀라 머뭇거렸고, 다음 순간 완전히 삼켜졌다!

시야를 가리는 엄청난 물방울에 속도가 확 죽는 순간, 계단 위에서 노래하듯 들려오는 외침!

“다람쥐 옷! 다람쥐 옷! 하늘을 휭휭 날아! 남중국으로 가야지! 앗! 제주도 할머니 집에도 들려야지! 뀰뀰, 맛있는 감뀰! 카캬카카카캌-.”

“안 돼! 그러지 마세요! 이번엔 진짜 잘린다고요!”

“걱정 마! 황 비서 누나!”

“네? 설마?! 감사합……!”

“황 비서 누나 잘리면 김철수 사무실에 취직시켜 줄게!”

“네……?”

“나 김철수 사무실 특별 사원이야! 철수 사장 형이랑 엄청 친해! 내 밑으로 고용해 달라고 부탁할게!”

“야, 이! 악마 꼬맹이! 멈춰! 멈추라고!”

“특급 헌터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카캬카카캌-.”

신나게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애원과 분노를 쏟아 내며 뒤를 쫓는 황 비서.

물방울에 휩쓸려 기어가듯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경호팀.

옥탑방 오빠가 출발하고 3분 만에 난장판이 된 상황!

류세연은 미소 띤 얼굴로 이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특급 헌터가 달리자 그 누구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특급 헌터는 다람쥐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 도주하리라!

다람쥐 옷, 윙슈트를 입고 서울에서 남중국까지 날아간다고?

정제 마석을 가득 가지고 있는 마력 각성자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특급 헌터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나온 옥탑방 오빠 앞에 다람쥐 옷을 입고 착- 착륙하며 외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에게 불가능은 없다! 알바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팔을 번쩍 들고 자랑스레 외칠 특급 헌터.

‘와- 이 정신 나간 녀석! 다람쥐 옷 입고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경악과 황당함에 굳어 버릴 옥탑방 오빠.

그리고 남중국에 제주도 이상의 난장판이 펼쳐지리라!

후흐흐흐흣-

상상만으로 웃음이 터지는, 직접 보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쉬운 광경이 상상 속에 펼쳐졌다!

“이거 나도 남중국에 가 봐야 하나?”

문득 말하는 순간, 눈빛이 흐릿하게 변하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일변하는 기세!

찰나의 순간에 분위기가 변한 류세연은 번쩍 고개를 들어 옥상을 바라봤다.

장난기 가득했던 눈동자에 어린 심원한 현기!

‘느껴진다!’

돌멩이가 사건·사고에 구르며 원인과 결과, 인과를 씨줄 날줄 삼아 짜 올린 천문(天問)의 대답이!

그리고 이 천문의 대답에서 삐죽 솟구친 한 줄기 인과의 실마리가 보였다!

이 인과의 실마리를 잡아당기는 순간, 천문의 대답은 올이 풀려 흩어지고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상상도 하지 못한 곳으로 이어지리라!

돌멩이가 불운 속에서 구르며 준비한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이 인과의 실마리는 다람쥐 옷, 윙슈트!

이 실마리를 잡아당기려 계단을 뛰어오르는 건 특급 헌터라는 이상한 꼬맹이!

“이 꼬맹이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렇게 자꾸 끼어들면 안 되는데…… 하아-.”

한숨과 탄식이 새어 나오는 순간.

류세연은 건물 옥상을 바라보며 딱- 손가락을 튕겼다.

삐죽 솟구친 인과의 실마리는 꼬맹이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으로 이동했고.

류세연은 빙글 몸을 돌려, 돌멩이가 탄 장갑 SUV가 사라진 도로를 봤다.

천문(天問).

돌멩이는 하늘에 물었고.

하늘은 그 대답을 위한 대가를 받기 위해 기울어진 저울을 내밀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평생을 바친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하늘의 저울.

그러나 돌멩이는 그 저울을 움직였다.

대대로 쌓아 올린 천문사의 업을 올리고.

불운과 재앙이 일으킨 사건·사고에서 정신없이 데굴데굴 굴러서.

극에 닿은 무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불운!

그 불운 자체가 기울어진 하늘의 저울에 올리는 대가였다!

그리고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하늘의 저울의 수평이 맞춰진다.

천문, 그 대답을 들을 순간이 오고 있었다.

분명 상상 이상의 난장판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될 거다.

재앙석, 불운의 성좌, 더럽게 재수 없는 돌멩이라 불렸던 그때처럼!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수많은 선연이 돌멩이와 이어졌으니까.

머릿돌, 센트라 잎, 대대대환단, 불 수 없는 피리.

강철봉, 장총신 리볼버, 차원 좌표가 담긴 추적기.

그리고 인지를 빗겨 나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이 모든 선연이 자석처럼 또 다른 인연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자신이 돌멩이와 만났던 아주아주 오래전 그날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의 산에서 만난 소년.

판자와 천, 나뭇잎으로 막힌 문을 지나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던 온기.

그리고 아주아주 소중한 보물이라도 주는 것처럼 조심조심 건네주던 뜨거운 죽 한 그릇.

그 뜨거운 죽 한 그릇은 보물이 맞았다.

꽁꽁 얼어붙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녹였으니까.

길고 긴 시간을 헤맨 지금도 그 온기를 잊지 못하니까.

류세연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나 천기는 아득하고.

두 발로 땅을 밟고 섰으나 용맥은 멀기만 하다.

영혼이 날아가는 천기도 육백이 스러지는 용맥도 그 틈을 허락하지 않으니.

아득한 하늘의 인과는 수십 수백의 세계를 헤매며 쌓아 올린 지혜로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 돌멩이, 옥탑방 오빠는 찢어진 옷, 흙먼지가 자욱한 얼굴로 허탈하게 말할 거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처음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리고 언제나처럼 옥탑방 소파 위에 늘어져 자신에게 말하겠지.

‘야, 나 이번에 엄청 빡셌어! 진짜로 좀 쉬어야 한다니까!’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른 웃음이 찬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는 순간.

휘이, 휘이이잉-

류세연은 흠칫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앗! 갑자기 뭐야? 왜 웃고 있는 거지? 깜빡 졸았던 건가?!”

이때 처절한 비명 소리가 옥상에서 들려왔다.

“안 돼에에에엣!”

특급 헌터!

류세연은 한달음에 계단을 달려 옥탑방에 올라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잠겨 있는 옥탑방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숨을 몰아쉬는 황 비서와 경호원들을!

그리고 창문 너머 옥탑방 거실의 광경을!

폴짝, 폴짝-

하늘로 뛰어오르며 처절하게 외치는 특급 헌터!

“다람쥐 옷!”

“내, 아니 알바! 다람쥐 옷!”

“누구야?! 누가 저기다 매달아 놨어!”

“이얍, 이야압!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다앗!”

……

거실 천장에서 내려온 줄과 그 줄에 데롱데롱 매달린 옷가지.

다람쥐 옷, 윙슈트!

특급 헌터는 이 윙슈트를 향해 연신 뛰어오르며 퐁퐁검을 휘둘렀다.

포그르르-

쏟아지는 물방울에 닿은 옷가지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안 돼! 안 닿잖아! 니케! 사슴이! 반짝이! 냠냠이! 출동! 당장 출동! 저 줄 좀 끊어 줘! 으아앗-.”

특급 헌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지만, 동물 친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부으으으응-

장갑 SUV 엔진음!

류세연은 시선을 돌려 옥상 난간 아래 주차장을 봤다.

장갑 SUV 5대가 줄줄이 주차장에 멈춰 서고,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2번째 차량에서 낯익은 사람이 내렸다.

장민 언니!

“언니!”

눈이 마주치는 순간.

‘쉿-.’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댄 장민 대표는 성큼성큼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모든 걸 날려 버릴 태풍이 다가오는 지금 이 순간.

특급 헌터는 나뭇가지에 달린 달콤한 포도에 정신이 팔린 새끼 여우처럼 폴짝폴짝 다람쥐 옷을 향해 뛰어오르며 외쳤다.

“이야압! 할 수 있다! 난 잡을 수 있다! 으아! 안 닿잖아! 으아악- 누구야! 누가 여기다가 걸어 놓은 거야?!”

류세연은 깊이 애도했다.

“RIP. 특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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