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85화 (68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85화>

포대기 위, 눈처럼 새하얀 새끼 여우가 할짝, 할짝- 손에 묻은 초콜릿을 핥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일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천문석은 아니었다!

경계석 반지를 먹튀 하더니, 이제는 초콜릿을 먹고 배를 쨌다!

‘이 녀석 상습범이다!’

천문석은 번개같이 섬초를 낚아채 외쳤다.

“야, 토해 내! 초콜릿 당장 토해 내!”

냐야, 냐아앜-

까맣게 변한 혀를 쏙 내밀고 우는 섬초!

“말로 하라니까!”

“이거 바게 아나 마느데 하트네?”

“……이거 밖에 안 남았는데 핥을래?”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섬초는 초콜릿으로 까맣게 변한 혀를 내민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아!”

“……!”

‘뭐지!? 이 익숙한 듯 생경한 깊은 빡침은!?’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키즈카페 부사장 시절.

악마 꼬맹이 특급 헌터와 악마왕 앙꼬!

눈같이 새하얀 새끼 여우 섬초 안에는 특급 헌터와 앙꼬가 들어 있었다!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이글거리는 열기가 치솟고, 참을 수 없는 깊은 빡침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너 딱밤 10대만 맞자! 딱밤으로 퉁치는 거다!?”

“뭐!? 감히 대대대요괴 섬초님한테 딱밤을 때리겠다고!? 너 감당 할 수 있어!?”

당연히 감당할 수 있다!

천문석은 재빨리 전법륜인 딱밤을 날릴 준비를 했다!

마기에 물든 마석을 깨트렸을 때처럼, 이 새끼 여우의 꾀병을 깨뜨린다!

이야아압-!

기합을 지르는 순간 넋을 놓고 보고 있던 미호와 류호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야, 참아! 아직 어린 새끼야!”

“잠시만 기다려! 다른 방법 있어! 지금 정말 위험한 상황이에요! 반지! 경계석 반지 어디 있어요!?”

‘경계석 반지!’

류호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강과 배를 살폈다!

쿠릉, 쿠르르릉-

요동치는 강 속에 허공도의 제사장이 있고.

파아아아앙-

바람을 타고 하류로 내려가는 배 위에 자신이 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배 가 나아가는 속도가 빨랐다.

‘어떻게!?’

돛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돛 뒤에 떠 있는 곡옥(曲玉)!

이 곡옥에 담긴 주술이 바람을 끌어모아 배를 밀어내고 있다!

푸른 화염을 꼬리처럼 끌고 추적하는 제사장보다, 주술로 만든 바람을 이용해 질주하는 이 배가 더 빠르다!

‘더 빠르다!’

이게 핵심이다!

머리를 스친 아이디어에서 뻗은 가지가 순식간에 얼개를 갖춰 새로운 계획을 만들었다!

1. 가짜 경계석 반지를 들고 도발.

2. 제사장을 꼬리로 달고 하류로 이동.

3. 아카린과 동료들이 있는 고속선에 합류.

4. 안개 길잡이와 만나 열사의 사막으로 튄다.

‘될까? 가능할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지금 확인할 것은 두 가지.

경계석 반지와 바람 주술이 담긴 곡옥!

천문석은 섬초를 흔들며 외쳤다.

“야! 당장 경계석 반지……!”

이때 요동치는 강에서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앙-

높게 치솟은 강물이 산산이 부서져 쏟아지고 푸른 화염이 하늘에 떠올랐다!

[여우 요괴! 어디로 도망갔냐!]

제사장의 외침에 담긴 힘이 수백 미터 너머 배 위에 전해져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

“끝장이야! 우리는 모두 끝장이야!”

류호와 미호가 사색이 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외쳤다.

“바람 주술! 최대한 거리 벌려야 해요!”

“알았어!”

류호의 곡옥이 하나 더 돛으로 날아가고.

두 개의 곡옥이 끌어당긴 바람에 돛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파아아앙-!

작은 배는 물 위를 날듯이 질주했다!

순식간에 허공도의 제사장과 거리가 벌어질 때 하늘에서 훑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

천문석, 류호, 미호 셋은 동시에 갑판에 납작 엎드리며 기척을 죽였다!

이때 제사장의 시선을 느낀 섬초가 털을 곤두세우고 외쳤다.

“하악-! 나 여기……!”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재빨리 포대기로 섬초를 꽁꽁 감싸고!

“으으! 으으읍!”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려 섬초를 주위와 분리했다.

순식간에 섬초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이대로 빠져나가면 되겠어!”

납작 엎드린 미호와 류호가 환해진 얼굴로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미봉책이야! 빡친 제사장이 적염성…….”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한 외침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여우 요괴! 숨지 말고 나와라! 계속 숨어 있으면 모조리 불태우겠다!]

파아아앙-

푸른 섬광이 폭발해 거대한 불의 원을 만들어 냈다!

이글거리는 불의 원은 빠르게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강을 넘어 적염성까지!

미호와 류호는 미봉책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대로 기척을 죽이고 도망치면 적염성이 잿더미가 된다!

천문석은 바로 미호와 류호에게 외쳤다.

“괜찮아! 나한테 계획 있어!”

“계획!?”

“무슨 계획인데!?”

“그전에 확인부터 할게! 지금 돛에 바람을 모으는 주술! 저 곡옥만 있으면 기능한 거야!?”

“뭐, 갑자기 무슨 말……!?”

“가능해! 이 곡옥에 바람 주술이 담겨 있어! 그냥 돛에 던지면 돼!”

류호가 미호의 말을 끊고 곡옥을 내밀었다.

곡옥에서 느껴지는 주술력!

이걸로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천문석은 빠르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이 강 하류에 아카린과 동료들이 탄 고속선이 있어!”

“그 고속선 안개 길잡이의 도움을 받아 열사의 사막으로 이동할 거야!”

“내가 경계석 반지로 제사장 유인해서 열사의 사막으로 튈게. 너희는 몰래 배에서 내려서 도망쳐!”

스스로 미끼가 되겠다는 말!

“너…….”

“…….”

미호와 류호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천문석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 마. 나 도주의 전문가다. 바람 주술 담긴 곡옥만 건네줘. 절대 안 잡히고 열사의 사막으로 튈게. 너희는 이 새끼 여우랑 같이 몰래 숨으면 된다.”

“야, 그냥 같이 도망쳐! 왜 혼자 하려고 그래!”

미호의 외침에 대답하기 전, 류호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여우 일족이 같이 있는 걸 제사장이 봐서는 안 돼…….”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지구에서 온 자신과 미호, 류호는 다르다.

제사장이 경계석 반지를 먹튀한 섬초와 적염성의 여우 일족이 한패라는 의심을 품는 순간 적염성에도 화가 미친다.

“……!”

미호는 바로 상황을 깨달았다.

그리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횡설수설했다.

“아니, 그래도! 왜 외지인인 네가! 이런 위험한 일을! 이거 정말 위험한데……!”

미호는 가슴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류호는 미호의 손을 잡고 대신 질문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순간 수많은 사람,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엉망진창 농악을 연주하는 하누만 농악대.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도시를 달리는 인간, 수인, 도깨비 꼬맹이.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미호.

-제사장을 유인해 멀리 떠나기 위해 금괴 상자를 배에 실은 류호.

……

이유는 많았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리고 마음이 동한 순간 행하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감이 오거든. 99% 성공한다는 감이. 그리고 저기 금괴 10상자라는 덤도 있고 말야.”

“…….”

“…….”

미호와 류호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할 때.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돌려 섬초를 봤다.

“야, 이렇게 됐으니까. 얼른 경계석 반지 건네줘. 제사장은 내가 유인할게.”

“이 반지 말야?”

섬초의 앞발 사이에 놓인 돌 반지!

“맞아. 그거 가짜 경계석 반지야. 그러니까…….”

천문석은 말하는 도중 번개같이 손을 뻗어 돌 반지를 낚아챘다!

그러나 섬초가 한발 빨랐다!

손에 잡힌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휘잉-

손이 허공을 가르듯 돌 반지를 그냥 지나쳤다!

영체화!?

‘뭐야, 이 녀석 이제 힘 못 쓴다며!?’

“안 돼! 절대 안 돼! 기억 찾으려면 이거 필요하단 말야!’

섬초는 꼬맹이처럼 고개를 휙휙휙- 저었다!

“아니, 몇 살이나 먹었다고 기억을 찾아!?”

천문석이 버럭 소리치는 순간.

섬초는 꿈꾸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이을 인과의 고리.”

“여우 일족이 가야 할 나뭇가지.”

“안개길을 걸어 나와 언니가 만나게 될 사람.”

……

섬초의 눈이 호선을 그리고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천문석은 류호와 미호에게 눈으로 물었다.

‘얘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

‘걔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홀린 듯이 섬초를 바라보는 류호.

고개를 저으며 입 모양으로 대답하는 미호.

천문석은 깨달았다.

섬초!

이 새끼 여우 녀석 완전히 맛이 갔다!

설득이 먹힐 상태가 아니다!

어떻게든 가짜 경계석 반지를 회수해야 한다.

문제는 영체화!

하지만 해결방법이 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 떨어졌을 때 서리 늑대에게서 서리혼을 뽑아낸 방법을 사용한다!

천문석은 순수한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손에 모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섬초의 등을 쓸어 주며 아기를 달래듯이 살살살 밀어 넣었다.

“그래, 그래…….”

“착하지, 착하지…….”

“그랬구나, 그랬구나…….”

“어, 어- 왜 갑자기 졸리지…….”

섬초의 눈이 서서히 감기고 영체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포대기를 잡은 손에 무게가, 쓰다듬는 손에 솜털 같은 털이 느껴졌다!

섬초의 고개가 잠에 취해 꾸벅 숙여지는 순간.

천문석은 용조수를 펼쳐 가짜 경계석 반지를 단숨에 낚아챘다!

휘이이-

그러나 허공을 가르는 손!

“뭐!?”

순간적으로 영체로 변한 섬초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경계석 반지를 삼켰다!

“속았지! 냐아아아캌카캌캌-.”

섬초가 몸을 흔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

천문석이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어, 어어! 그거 먹으면 안 돼 뱉어! 어서 뱉어!”

미호가 다급히 외치고.

“그거 가짜예요! 그걸 지금 삼키면!”

류호가 경악할 때.

분노한 제사장의 외침이 이글거리는 열기에 담겨 쏟아졌다.

[겁쟁이 여우 요괴야! 당장 나오지 않으면!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겠다!]

“뭐, 내가 겁쟁이라고? 너 조금만 기다려. 힘 돌아오면 불째로 꽁꽁 얼려줄 테니까!”

이야압-!

이야아압-!

분통을 터트린 섬초는 새하얀 팔다리를 쭉 뻗고 연신 기합을 질렀다.

“어, 이상하네? 뭐지? 왜 반응이 없지?”

“이야압, 얍얍-! 얼른 힘아 돌아와라!”

아무리 기합을 질러도 힘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섬초가 삼킨 돌 반지는 가짜니까!

그러나 그 가짜 경계석 반지가 적염성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젠 끝장이야!”

“망했어! 완전히 망했어……!”

미호와 류호가 절망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 말했다.

“……계획 변경이다.”

“계획 변경이라고!?”

“설마! 방법이 있는 건가요!?”

천문석은 포대기에 싸인 섬초를 들어 올렸다.

“이얍, 얍얍-!”

“제사장은 아직 얘가 경계석 반지를 삼킬 걸 몰라.”

“앗!”

“설마……!”

류호와 미호의 눈에 깨달음의 빛이 스쳐 지나갈 때.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섬초! 내가 데리고 열사의 사막까지 튈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