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71화 (67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71화>

콰드드드득-

엄청난 무게가 실린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는 순간.

쿵, 쿠웅, 쿠우웅-

엄청난 힘에 작은 배들이 으스러지고, 불쑥 하늘로 튀어 올라 다른 배 위에 올라갔다.

중형선은 갑판이 터질 듯 휘어지고, 대형 상선들도 틈 하나 없이 단단히 고정됐다.

연이은 충돌에 사방으로 나뒹굴었던 선원들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본 순간 말을 잊었다.

어느새 수백 척의 배들이 뒤엉켜 동심원을 그린 인공섬이 생겨났다.

움직이기는커녕, 갑판이 으스러지고 선체에 구멍이 난 배가 부지기수.

동심원의 중심에 있던 이세기가 타고 있던 갤리선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이세기를 쫓다가 생각지 못한 사고가 터졌다!

“…….”

“…….”

“…….”

이세기를 쫓던 모두가 망연자실 서로를 바라볼 때.

이 상황을 예상하고, 유도까지 한, 천문석은 탄성을 터트렸다.

“모든 건 계획대로! 카캬카카-.”

천문석은 반으로 부러진 갤리선 돛대에 서서 재빨리 주위를 돌아봤다.

강 한복 판, 서로 선체를 맞대고 쇠사슬과 삭구가 뒤엉켜 연결된 수백 척의 배가 있다!

이렇게 뒤엉킨 배들을 제외하면 강에 남은 배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

계획이 완벽하게 먹혔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다.

천문석의 시선이 뒤엉킨 배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갤리선, 소형상선, 중형상선, 상선, 상선…….

적월 상단의 대형범선 그리고 사략 선단의 대형 갤리선까지!

한 시간 동안 뺑뺑이를 돌렸던 자신과 특급 헌터의 뒤를 쫓을 배들은 모조리 하나로 뒤엉켜 움직이지 못한다!

이제 상황은 단순해졌다.

뒤엉킨 배의 가장자리 사략 선단 갤리선까지 포위망을 뚫은 다음, 배를 뺏든 보트를 내려 도망치면 된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돌연한 상황 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

‘바로 움직인다!’

덧입은 옷을 벗어 던진 천문석은 단숨에 돛대를 미끄러져 갑판에 내려서 임시 동료들을 훑어봤다.

남궁휘.

하누만 농악대.

왕체, 최림, 김기철과 용역 헌터 40인!

그리고 얼떨결에 줄 사다리를 타고 갑판에 오른 멍한 표정의 선원들!

“제군들 내 계획은 심플하다!”

번쩍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갤리선을 가리키는 천문석.

“저 사략 선단 갤리선까지 길을 뚫고! 보트를 내려 튀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동료들과 눈을 맞췄다.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 가주.

지이이이잉-

씨익 웃으며 징을 때리는 하누만.

“허억, 헉-.”

“시바, 개시바…….”

“빌어먹을! 젠장!”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임시 동료들!

핏발 선 눈, 파르르 경련하는 팔다리로 널브러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조폭 트리오 왕체, 최림, 김기철과 40인의 용역 헌터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들 모두는 같은 생각을 했다.

대형 화살을 피해 달리고.

노잡이들이 노를 젓게 만들고.

각성력을 담아 적들을 도발하면서.

제대로 된 헌터용 장비와 도구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들과 쉴 새 없이 싸웠다!

미친 듯이 빡셌다!

육체는 비명을 지르고 정신은 말라 버린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눈만 감으면 일주일은 기절할 것 같았다!

이 모든 게 이세기의 미친 계획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 이제 다시 수천 명 사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조폭 3인조와 용역 헌터 40인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세기를 노려봤다!

그리고 조폭 김기철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야, 이! 씹!”

천문석은 툭 던지듯 말했다.

“아, 혹시 너희들 체력이 한계에 달한 거야?”

헌터들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뭐!?”

“야, 이 새……!”

“와, 미친 이세……!”

용역 헌터들의 분노어린 외침이 터지는 순간 돌연 튀어나온 알 수 없는 외침.

“칙칙폭폭-!”

그리고 바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구행 열차 출발합니다!”

뿌우뿌우-

천문석은 입으로 기차 경적을 흉내 내며 외쳤다.

“안 따라오는 사람은 버리고 갑니다! 카캬카카카-.”

* * *

짙은 노을이 깔리고 어둑어둑해지는 강 위에 생겨난 인공섬!

이 위를 수십 명의 사람이 달렸다.

시작은 쉬웠다!

선두의 천문석은 기울어진 갑판을 달리고 난간을 뛰어넘어 부러진 돛대를 밟고 줄줄이 이어진 선박을 달렸다.

선원들은 절망 어린 얼굴로 박살 난 선체와 하나로 뒤엉킨 배들을 보고만 있었다.

“파산이다!”

“빌어먹을 어떻게 빼내라고!”

“으아악- 괜히 끼어들어서는!”

절규하는 선원들은 천문석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줄줄이 사람들이 이어지며 조금씩 상황이 변했다.

소리 없이 달리는 남궁휘.

“어, 저 사람? 무공이 눈에 익은데……?”

숨소리조차 죽이며 달리는 용역 헌터 40인.

“쟤들 어디 가는 거야?”

“어, 잠깐만. 저 녀석들……?”

고개를 갸웃하는 선원들 앞에 멈춰 선 하누만 농악대.

하누만 농악대는 일제히 고개를 돌려 갤리선 갑판에 뻘쭘하게 서 있는 선원들을 바라봤다.

“야, 준비해라!”

“……네?”

구조된 선원들이 반문하는 순간.

하아압-

크게 숨을 들이켠 하누만들은 반문하는 선원들을 향해 동시에 외쳤다.

[이세기! 거기 있지 말고 빨리 도망쳐라!]

“……!”

“……!”

‘이세기’란 이름은 마법의 주문이었다.

절망에 빠져 정지 상태였던 모든 사람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을 움직였다!

배 위를 달려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세기가 있던 갤리선 위에 멈춰 선 선원들을 향해서!

우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사방에서 몰려 오는 살기 어린 사람들!

이 순간 갤리선 갑판에 서 있는 선원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야, 그 마음 변치 마라.’

‘맞아! 나중에 우리 욕하면 안 된다!’

줄사다리로 자신들을 구해 준 직후 하누만들이 했던 말!

‘이놈들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야, 우리 아군이야!”

“여기에 이세기 없어!”

“시바- 우리 아니라니까!

“달려간 녀석들! 저기에 있다니까!”

그러나 이 자리의 모두는 이세기의 잔머리에 수없이 농락당했다!

도망치는 사람과 갑판에 남은 선원.

둘 중 어디에 이세기가 있을지 모른다!

결론은 하나였다.

“둘 다 때려잡는다!”

“모두 놓치지 마라!”

“반드시 이세기를 잡아야 한다!”

“배! 다시 배 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살기 어린 외침이 끝도 없이 울려 퍼지는 순간.

갑판에 남겨진 선원들의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다.

지이이이잉-

둥둥, 둥둥둥-

크하하하하하-

“이세기 이 멋진 새끼!”

“달려라! 뛰어라! 던져라!”

“최고의 난장판을 만들자!”

쉴 새 없이 악기를 두들기며 달리는 정신 나간 하누만들을 따라 달리는 것!

“으아악- 빌어먹을 젠장!”

선원들은 괴성을 지르며 달렸다.

그리고 이 선원 사이에는 데이몽 발도도 있었다.

“더럽게 재수 없네! 이게 다 대사형 때문이야! 시바시바, 개시바!”

수백 척의 배가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섬 위에.

‘쫓고 막는’, ‘쫓기며 돌파하는’ 엉망진창 추격전이 시작됐다.

이세기, 남궁휘, 용역 헌터 40인과 조폭 헌터 3인조, 하누만 농악대, 데이몽 발도와 선원들이 ‘쫓기며 돌파하는’ 사람들이고.

수천의 선원과 해적들이 ‘쫓고 막는’ 사람들이었다.

머릿수는 선원과 해적들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세기는 난전과 도주, 사람을 빡치게 만들어 빈틈을 만드는 달인!

남궁휘는 초절정 고수, 하누만 농악대는 예측할 수 없는 요괴들이다.

이들 모두는 머릿수를 앞세운 선원과 해적들로는 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강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난장판을 만들며 도망치는 것 같은 이세기!

그러나 강자들은 이미 이세기가 보통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검을 맞대거나 대화를 나눌 틈도 없었다.

웃음소리를 따라 달려가 보면 어느새 사라졌거나 아군이 밀려 와 뒤엉켜 버린다.

이세기는 강자들과는 싸우지 않고 귀신같이 도망쳤다.

그런 이세기가 마침내 도망칠 장소가 없는 강 위에 고립됐다!

남방 공국 기사.

남방 마탑 마법사.

적월 상단 당종.

사략 선단 제독 에리히 우론.

곰 일족의 태웅.

호랑이 일족의 탄.

여우 일족의 미호.

의도는 다르지만 노리는 건 같은 모두가 이세기를 향해 달렸다!

인장 반지!

지금이야말로 이세기를 잡아 인장 반지를 얻을 때였다!

* * *

격전이 펼쳐지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무사인 카이류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사형. 난장판이 된 강 위에서 데이몽 사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얀 암반에 숯으로 거대한 나무를 그리던 대사형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거야. 일기일원공은 서로를 끌어당기거든. 흑전이 불운을 모아들이듯이 말야.”

“…….”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개파조사님 때문이야. 일기일원공에 불운을 심은 후에 인과가 이어지지 않게 둘로 나눠서 전수하셨거든. 게다가 세계의 나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사고를 일으켜서.”

“…….”

“그냥도 복잡하게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라 인과를 찾기 힘든데. 불운까지 담겨 버리니! 쯧- 일기일원문의 제자들에게 고생길이 열린 거지.”

“…….”

“끊어진 인과의 고리가 지구, 원대륙, 타대륙의 과거·현재·미래에 흩어져서.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너무 힘들어졌어…….”

“…….”

“하, 시바! 이거 이상하네…… 분명 인과의 고리를 이었는데…… 왜 연결이 안 되지? 뭐가 빠진 거야.”

대사형은 암반 위에 숯으로 그린 거대한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짚으며 혼잣말을 이어 갔다.

“조사님과 스승님이 만났으니, 스승님은 곧 입문하실 테고.”

“우론 공국에 여대공이 나타났으니, 천무지희(天武之喜)는 벌써 펼쳐졌고.”

“곧 난장판이 끝나고 결혼식이 열리면 도박에서 한탕 하고, 뱀술도 손에 들어오고, 보쌈도 예정대로 될 텐데…….”

대사형은 번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뭐지, 뭐가 빠진 거지!? 으으윽- 미래로 경계를 넘으면 이게 문제라니까! 아, 시바! 생각이 날 듯 말 듯 안 나네! 젠장! 이래서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과거로 넘어가면 바로 조직 만든다!”

“…….”

이해할 수 없는 외침을 말없이 듣고 있던 무사인 카이류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사형. 데이몽 사제가 지금 아주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아. 괜찮아! 원래 일기일원공은 고생을 해야 경지가 오른다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흔드는 대사형을 향해 무사인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사제가 어째선지 검을 뽑지 않고 있는데 혹시 내상을 입은 게…….”

“내상? 야, 데이몽 그 뺀질이 녀석이 몰래 훔쳐 먹은 영약, 금단, 영술 생각하면 걱정할 거 하나도…….”

순간 벼락 치듯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검!”

손을 뻗는 순간 모닥불에 꽂힌 검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손끝으로 검신을 훑자!

화르륵-

검신을 뒤덮은 그을음이 불꽃에 삼켜지고 흠하나 없이 매끄러운 검신이 드러났다!

없다! 없었다!

있어야 하는 구멍!

검신에 뚫린 구멍이 없다!

이 검은 자신의 칠공검이 아니다!

‘그렇다면!’

절벽 아래 수백척의 배가 뒤엉킨 난장판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부러진 몽둥이를 들고 몰려 오는 해적들과 격전을 펼치는 데이몽 발도!

‘으아악- 젠장! 대사형! 이거 전부 대사형 때문이야!’

“와, 이 어이없는 녀석! 야,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대사형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검을 본 무사인 카이류는 다급히 외쳤다.

“그 검! 사형! 데이몽 사제가 바뀐 검을 가지고 갔습니다! 당장 구하러 가야 합니다!”

데이몽 발도의 경지는 절정 초입!

스물도 안 된 나이를 생각하면 놀라운 경지지만, 저 난장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 준 입문검을 드는 순간 절정의 무위를 아득히 넘어서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데이몽 발도는 입문검이 아닌 자신의 검을 가져갔다.

검신에 일곱 구멍이 뚫린 칠공검(七空劍)!

도박에서 써먹으려고 액운을 몰아둔 칠공검을 가져갔다!

그러나 무사인 카이류를 보내면 모든 인과가 엉망진창이 된다.

결론은 하나!

자신이 직접 가서 난장판에 빠진 막내 사제를 빼내야 한다.

“사제는 여기서 기다려라! 절대 움직여선 안 된다!”

다급히 외친 후 강으로 달리려는 순간 깨달았다.

세상의 소리와 천천히 내려앉던 어둠이 어느새 사라졌다!

거대한 고요 속, 빛이 천지를 밝히고 있다.

늦은 저녁을 다시 대낮으로 바꾼 건 소리 하나 없이 허공에 똬리를 튼 거대한 빛의 뱀이었다!

보통의 사람은 존재조차 인지할 수 없는 빛의 뱀.

거대한 고요를 품은 빛, 대적광(大寂光)을 뿌리는 뱀이 나타났다.

나가대정(那伽大定)!

상(上)이 혼돈에 경계를 긋고 영혼육백을 태워 세계의 나무를 키워냈을 때, 남은 빛을 몰래 먹고 큰 벌을 받은 태초의 뱀이다!

“나가대정!? 아직 잠에서 깨어날 때가 아닐 텐데!?”

재빨리 암반에 그린 세계의 나무를 확인했다.

잠든 상이 깨어나 엄마, 아빠를 만나려면 몇 년의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면 누가?”

문득 말한 순간 나가대정과 한 다리 건너 인과가 엮인 사람이 떠올랐다.

허공도의 제사장!

대사형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생사팔문진에 가둬둔 허공도의 제사장이 빠져나왔다!

예상보다 몇 배는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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