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54화>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하지만 우선 동료들을 안전한 곳으로 빼내는 게 우선이다!
천문석이 마음의 결정을 한순간.
아카린이 악을 쓰며 외쳤다.
“으아악- 닻 올라온다! 모두 장대 잡고 배 밀어 낼 준비해!”
“알았어!”
천문석은 즉시 대나무 장대를 들고 선수 갑판으로 달렸다.
챠르르르릉-
쇠사슬 끌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닻이 선수에 걸리고.
쿵, 쿠우웅-
배가 바위에 충돌해 요동쳤다!
천문석은 재빨리 장대로 바위를 찍고 밀어냈다.
뒤이어 달려온 최설, 허준, 이원, 한호석 교수의 장대가 같이 바위를 밀어냈다.
으앗-
으아앗-
악을 쓰는 외침이 몇 번 터지고 곧 배는 바위틈에서 뒤로 빠져나왔다.
촤아아아-
호숫물이 크게 치솟을 때 타륜을 잡은 아카린이 외쳤다.
“배 반대로 돌려! 이대로는 돛 못 펼친다!”
“알았어!”
외침과 함께 바위를 밀고 노를 저어 배를 돌릴 때.
진교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수 북쪽에서 배가 접근하고 있어요!”
파아아아아-
외침과 동시에 폭음이 터졌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순간.
쒜에에에에-
날카로운 소리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대형 화살!
갤리선 세척에서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화살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은 점점 올라갔다!
‘높다! 이 배가 목표가 아니다!’
대형 화살은 하늘을 날아 바위 절벽 위 장원 성벽을 때렸다!
쾅, 콰앙, 콰아앙-
육중한 굉음이 터지고 대형 화살이 바위를 깨트리며 튕겨 나왔다.
쿠르르르릉-
그리고 깨진 돌 조각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낙석 떨어진다!”
천문석은 외치는 동시에 갑판 중앙으로 달려 대나무 장대에 내력을 담아 뻗었다!
훙훙, 훙훙훙-
10미터가 넘는 대나무 장대가 낭창낭창하게 휘어져 잔상을 흘리며 돌조각을 튕겨 냈다!
후두두두두둑-
대나무 장대에 튕겨 나간 돌 조각이 호수로 쏟아질 때.
파앙, 파아앙-
대형 화살이 잇달아 날아와 빈 성벽을 때리고 돌 조각이 쏟아졌다!
“멍청한 놈들! 야, 저 위에 아무도 없어!”
천문석은 분통을 터트리며 쉬지 않고 대나무 장대를 흔들어 낙석을 쳐 냈다.
촤아아아-
이때 배가 완전히 회전해 자리를 잡고 측풍이 불어왔다.
“옆바람이다! 최설! 돛 풀고 나머지 돛 줄 잡아! 아카린 타륜 잡고 준비해라!”
최설이 돛대를 오르고, 허준, 이원이 돛 줄을 잡았다.
“으앗!”
낙석을 피하며 돛대에 오른 최설이 돛을 고정한 밧줄을 끊고 측풍을 받은 돛은 단숨에 부풀어 오르는 순간.
으악, 으아악-
허준과 이원이 악을 쓰며 돛 줄을 잡아당겨 고정했다.
파아아아앙-
옆 바람을 받은 배는 기우뚱 기울며 앞으로 나아갔다!
꾸으으응-
나무 선체가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크게 회전해 낙석 지대를 벗어나는 배!
“됐어! 빠져나왔다!”
“성공했다! 하하하-.”
“제대로 해치웠다!”
동료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천문석은 재빨리 아카린에게 받은 적염성 지도를 펼쳐 도주 경로를 확인했다.
호수 갑문, 도시 수로, 강 하류를 거쳐 빠져나가면 된다!
하류에서 ‘안개 길잡이’를 만나 2, 3일 항해 하면 두 번째 목적지 열사의 사막이 나온다!
지도 위 강 하류 방향으로 점점이 이어지는 항구 마을과 도시가 보였다.
천문석은 몇몇 항구에 표시하고 호수 북쪽에 나타난 갤리선을 살폈다.
선체 한쪽에 나온 노가 10여 개, 노잡이는 모두 30에서 50명 정도.
갑판에서 전투준비 중인 선원들도 40명 정도.
중구난방인 복장과 무기를 보는 순간 바로 감이 왔다.
해적들이다!
100명 정도의 해적이 탄 갤리선!
이런 갤리선 3척이 빈 성벽에 대형 화살을 발사하며, 격전이 벌어진 광장과 접한 호숫가로 접근하고 있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아니, 아무도 없는 빈 성벽에 발리스타는 왜 발사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해적이다.
해적질하는 놈들의 생각을 파악하겠다고 시간 낭비할 틈은 없었다.
다행히 해적 놈들은 동료들이 탄 배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이 배가 향하는 도시 수로는 좁다.
자신이 탄 길이 10여 미터 폭 4, 5미터가량의 소형 범선은 통과해도 갤리선은 통과할 수 없다.
위기는 끝났다.
동료 모두는 배를 타고 바로 적염성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제 성벽에서 내려오며 생각했던 일을 할 때다.
은혜는 갚는 것!
탁-
천문석은 아카린에게 받은 지도를 접어 최설에게 건넸다.
“최설 받아라. 지도다.”
“지도? 이건 왜?”
“필요할 거다.”
천문석은 최설의 어깨를 두들기고 특급 헌터를 찾았다.
선체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담요를 펼친 진교은의 품에 안긴 특급 헌터가 올라왔다.
특급 헌터는 언제나 씩씩하던 평소와 달리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친구끼리 싸우면 안 되는데…….”
천문석은 성큼성큼 걸어가 특급 헌터의 어깨를 쳤다.
“야, 괴로울 때 웃어야 진짜 ‘특급’ 헌터인 거야!”
안겨 있던 품에서 뛰어내린 특급 헌터는 광장을 가리키며 외쳤다.
“친구끼리 싸우고 있잖아! 재밌게 놀라고 내가 대회까지 열었는데! 전부 싸우고 있단 말야! 그런데 어떻게 웃어!”
쿵쿵, 쿵쿵쿵-
특급 헌터가 분한 듯 갑판을 발로 구르는 순간 목에 걸린 펜던트가 튀어나와 흔들렸다.
돌조각을 엮어 만들어 펜던트!
“앗! 아앗! 이게 있었지!”
특급 헌터는 펜던트를 번쩍 들고 외쳤다.
“특급 로봇! 출동! 지금이야 얼른 나와!”
순간 펜던트에 빛이 맺혔다!
“뭐야, 웬 빛이……!”
고개를 갸웃하던 천문석은 흠칫 놀랐다.
특급 헌터가 들고 있는 펜던트에는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다.
세기말 대한민국, 북한산에 나타나 수천의 마신들을 박살 낸 신화적인 힘을 보여 준 나이트 아머가!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는 펜던트에 빛이 생겼다! 딱 봐도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빛이!
‘설마, 설마! 불렀다고 진짜로 나오는 거야?!’
경악한 천문석이 얼어붙는 순간.
펜던트에 맺힌 빛은 거짓말처럼 픽 꺼졌다!
“특급 로봇?! 안 돼!!”
당황한 특급 헌터는 펜던트를 번쩍 들어가운데 말간 돌을 태양에 비췄다.
“자고 있잖아!? 일어나! 지금 할 일 있다니까!”
버럭 외친 특급 헌터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일어나라니까!”
-펜던트에 대고 크게 소리치고.
“일어나! 빨리빨리 일어나!”
-펜던트를 쾅, 쾅, 쾅- 갑판에 내려찍고.
“이야압- 하늘을 잇는다!”
-펜던트에 따악- 딱밤을 날렸다가 아픈 손을 잡고 찔끔 울었다.
“니케, 니케! 이거 좀 아프게 물어봐!”
-그리고 집에 있는 니케를 불러 물라고까지 시켰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펜던트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으아- 왜 안 나와!”
마침내 특급 헌터가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특급 헌터의 리액션이 너무 찰져서 원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성주 장원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특급 로봇은 이제 특급 아냐 그냥 로봇이야! 강등이야 강등!”
천문석은 분노한 특급 헌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걱정 마. 쟤들 이제 안 싸울 거야.”
“뭐?! 내가 엄청 열심히 말했는데도 계속 싸우는데!? 앗! 설마 알바한테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특급 헌터의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천문석.
“그래 나한테 방법 있어. 걱정하지 마.”
천문석은 대나무 장대를 차올려 손에 잡고 갑판을 달리며 동료 모두에게 외쳤다.
“아카린 먼저 하류로 내려가고 있어!”
“난 갚을 빚이 있다. 그거 갚고 바로 따라갈게!”
“최설! 방금 건네준 지도에 만날 장소 표시해 뒀다!”
“뭐?!”
“야, 멈춰!”
“뭘 갚아!”
“지금 뭐 하려고!”
“알바아아!”
……
돌연한 상황에 놀란 동료들이 외치는 순간.
갑판을 달려가속한 천문석은 내력을 쏟아부은 장대를 선수에 박아 넣었다.
콰드드드득-
장대가 부러질 듯 휘어지는 순간.
콰아앙-
내력을 실어 갑판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휘이이잉-
천문석은 투석기로 쏘아낸 탄환처럼 허공으로 날아가며 소리쳤다!
“빚 갚고 올게! 그럼 나중에 보자!”
“어, 어어어?!”
“야, 야야야!!”
“알바아아아!!”
경악한 동료들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절규하듯 외쳤다.
“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니, 아니아니……!”
“야, 그게 아니라……!”
“알바아아아아!!”
……
“……!”
이 순간 천문석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적염성의 난장판에서 개고생한 동료들.
동료들이 자신에게 지르는 외침에 담겨 있는 뜨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진심!
진심에는 진심으로!
천문석은 뜨거운 진심을 담아 마주 소리쳤다.
“나는 진짜진짜! 괜찮아! 모두 하류에서 만나자!”
휘이이잉-
그리고 투석기 탄환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던 천문석은 떨어졌다.
첨벙-
호수 속으로.
“컥- 호수!? 아차! 바람! 측풍을 깜빡했구나!”
첨벙, 첨벙-
호수에 빠진 천문석이 허우적거릴 때 멀어지는 배 위에서 이 모습을 보는 모두는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
“…….”
“…….”
이때 선수 난간에 매달린 특급 헌터가 평소처럼 씩씩한 목소리로 외쳤다.
“알바아아아아! 괜찮은 거 맞지?! 호수 빠진 것도 알바 계획 맞지?!”
“……!”
순간 천문석은 허우적거리는 팔을 멈추고 물속에 꼿꼿이 서서 외쳤다!
“당연하지! 전부 내 계획대로야! 모두 내 걱정하지 말고! 빨리빨리 빠져나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난 언제나 알바를 믿고 있었어! 힘내! 화이팅!”
특급 헌터의 탄성이 길게 이어질 때.
최설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그놈의 계획. 하- 저럴 때 보면 쟤 강한 것도 구라 같아…….”
“…….”
“…….”
배 위의 모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으아악-
악을 쓰며 호수 바위 위로 몸을 끌어올리는 순간.
쏴아아아-
흠뻑 젖은 전신에서 물이 쏟아졌다!
호숫물에 흠뻑 젖은 옷이 질척질척 전신에 달라붙는 이 더러운 느낌!
대여, 정비, 보험비가 아깝다고 강화 전투복을 빌리지 않은 게 뼈저리게 후회됐다.
“하, 시바! 건물 올리면 강화 전투복부터 산다!”
팡, 파앙-
천문석은 젖은 옷을 털어 내며 멀어지는 배를 확인했다.
동료들이 탄 배는 호수 남쪽으로 크게 돌아 갑문으로 움직이고.
대형 화살을 연신 쏘아대던 갤리선은 광장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생각대로 갤리선은 동료들이 탄 배에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제 계획대로 움직이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달렸다.
타다다다닥-
호수 위 미끄러운 바위를 단숨에 가로질러 흔들리는 로프를 낚아챘다.
로프를 잡고 절벽을 기어 올라 성벽 위에 내려서는 순간.
천문석은 미호가 달려간 방향, 성문을 향해 달리며 주위를 살폈다.
이미 시야를 가리던 증기는 모두 사라졌다.
탁 트인 시야에 전장의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천문석은 전장을 살피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지금 주전장은 두 곳이다.
성주 장원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
주위를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광장!
주력이 맞부딪힌 주전장은 광장이다!
수레와 방벽으로 단단히 방어를 굳힌 무인들이 ‘모루’.
대형 사각 방패로 방패진을 만들고 밀고 들어오는 정예병들이 ‘망치’.
이 모루와 망치 사이, 양면 포위당한 무사들이 호랑이 일족의 가주, 탄이 이끄는 주력이다.
“어?!”
광장을 살피는 천문석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탄의 주력은 앞뒤로 포위돼서 단숨에 무너질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탄이 이끄는 무인들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절정 고수들이 틈을 벌리고 일류 이하 무사들은 뭉쳐서 합벽진을 펼쳤고.
방패진을 펼친 정예병들도 제자리에서 방패를 끊어치며 싸우고 있었다!
전투는 격렬했다.
그러나 배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게 이곳에선 보였다.
포위된 무인과 공격하는 정예병.
둘 다 치명타를 넣을 결정적인 순간에 살수를 펼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었다!
게다가 탄은 견제만 하지 제대로 싸우지 않고 있다.
“뭐야? 쟤들 영화 찍나?!”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벼락 치듯 머리를 때리는 생각!
어린 시절부터 마도 18문의 지존이 될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싸움을 겪은 전생 천마는 바로 눈치챘다.
탄과 정예병 모두 다른 생각이 있다!
탄은 최대한 버티며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정예병과 지휘하는 기사들에게선 남의 싸움에 끌려 나온 듯 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용병! 이 녀석들 용병으로 고용됐구나!”
어차피 대가를 받고 싸우는 남의 싸움, 기사들과 정예병은 피를 보지 않으려고 싸우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