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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633화 (63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633화>

“……뭐지, 꿈인가?”

멍하니 하늘을 보는 순간 들려오는 함성!

“경천동지 이세기!”

“초절정 고수 이세기 대주님!”

“성주님을 수호하는 검!”

“경천동지 이세기가 남궁휘와 싸운다!”

……

꿈이 아니다.

당면한 현실이다!

‘뭐지, 이 미친놈들은!? 내가 왜 비무에 나가!?’

마음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고, 이성을 뛰어넘는 직감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스노우볼이 되어 눈이 가득 쌓인 비탈을 데굴데굴- 구르고 굴러 거대한 눈사태로 변해 돌아왔다!

‘경천동지 이세기!’란 이름으로!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성벽 위, 호랑이 일족.

성벽 앞, 남궁휘와 천여 명의 무사들.

모두가 사방을 훑으며 외친다!

“어디 계시지!?”

“이세기 대주님!”

“경천동지? 그게 누구야!?”

……

내원 성벽 아래 구석, 시야의 사각.

이곳에 찰싹 달라붙은 자신을 보는 찾은 시선은 없다!

천문석은 재빨리 내원 성벽을 훑었다.

각진 암석을 석회 반죽으로 쌓아 올린 울퉁불퉁 요철이 심한 성벽!

사다리가 없어도 충분히 기어 오를 수 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로 요철 사이로 기어 올라 바로 도망치면 된다!

쓰스스스슥-

천문석은 찰싹 성벽에 달라붙어 재빨리 기어 올랐다.

이때 남궁휘가 외쳤다.

“경천동지 이세기! 앞으로 나서라! 비무를 시작하자!”

이세기를 찾아 주위를 훑던 모두가 다시금 외쳤다.

“이세기 대주님!”

“어디 계십니까? 대주님!”

“어디로 가신 거야!?”

……

자신을 찾는 외침이 점점 커질 때.

천문석은 못 들은 척 내원 성벽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어 기척을 죽였다.

이때 섬뜩한 살기가 뒤통수에 느껴졌다!

“……!”

번개같이 피하는 순간.

성벽을 때리는 돌멩이!

콰앙-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손을 뻗은 남궁휘가 보였다!

‘걸렸구나!’

이 순간 성벽 위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닷!”

“성벽! 성벽에 있다!”

“이세기 대주님이 성벽을 타고 내려가신다!”

“과연 경천동지! 언제 저기까지 내려가신 거야!?”

그리고 성벽 위 합창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경천동지! 이세기!”

“초절정 고수 이세기!”

“경천동지! 이세기!”

“초절정 고수 이세기!”

……

점점 커지는 함성에 하늘이 요동치고, 성벽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그리고 성벽 위와 아래에서 쏟아지는 수천 명의 시선!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내원 성벽을 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슬쩍 사라지는 계획은 실패했다.

게다가 이 어이없는 녀석들이 성벽을 오르는 자신을 보고, 내려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때 성벽 위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허준과 최설.

“경천동지! 이세기!”

허준은 어이없게도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고.

“…….”

최설은 세상에서 제일 불운한 사람을 보듯 애잔하게 보고 있었다.

“야, 전부 다 내 계획대로야!”

반사적으로 외치는 순간.

“역시 이세기 대주님!”

“대주님이 계획이 있으시단다!”

우와아아아아-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환호성!

하아아-

최설이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여기서 도망치면 환호성을 지르는 호랑이 일족 무사들마저 적이 된다!

‘외통수에 걸렸구나!’

천문석은 성벽을 잡은 손을 놓았다.

땅에 내려선 천문석은 남궁휘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이때 남궁휘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대가 경천동지 이세기인가?”

“…….”

그동안 이름을 댈 일만 생기면 무릎반사처럼 팔았던 이름.

그러나 이 순간 목에 턱 하니 걸려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경천동지 이세기?”

남궁휘가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천문석은 간신히 입을 열어 외쳤다.

“그래, 내가 바로 경천동지 이세기다!”

‘하, 인생…….’

* * *

“……경천동지 이세기다!”

천문석이 힘없이 외치는 순간.

성벽 위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초절정 고수!”

“경천동지 이세기!”

모두가 환호할 때.

최설은 고개를 저었다.

“하필이면 지금! 뭐가 이렇게 꼬이냐?”

최설이 탄식하자, 상기된 얼굴로 환호하던 허준이 외쳤다.

“야, 걱정할 거 없어! 무협 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이세기가 반드시 이겨! 원래 기존 고수랑 청년 고수가 싸우면, 청년 고수가 이기는 게 클리셰야! 장강의 앞 물결은 뒷 물결에 밀려나는 법! 내가 검강을 직접 보게 되다니!”

허준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쏟아 내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최설은 주위를 돌아봤다.

허준만이 아니다.

이세기가 적룡방주를 꺾은 모습을 본 모두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어느새 주위로 퍼져 나가 이세기를 직접 보지 못한 이들조차 승리를 확신하게 했다!

내당 당주라는 사람이 처음 본 이세기를 비무에 내세운 것이 이 확신의 정도를 보여 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최설은 어째선지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세기가 패배할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예감이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남궁휘 vs 이세기]

일대일 비무?

비무에 올린 ‘이세기’란 이름부터 구라다!

그리고 그동안 천문석과 엮었던 수많은 일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천문석이 제대로 된 비무를 할 것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불안하게 말한 최설은 신발과 장검, 퇴로를 확인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 * *

호랑이 일족의 무사.

남궁세가, 청혈회, 수로 18채의 무사.

천명이 훌쩍 넘는 무사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내원 성벽 앞, 천천히 걷는 한 사람에게로!

새로운 성주를 지키는 수호의 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난 초절정 고수.

경천동지 이세기.

내원 성벽을 걸고 겨루는 피할 수 없는 건곤일척의 승부가 곧 시작된다!

모두는 피가 마르는 듯한 표정으로 이세기와 남궁휘를 바라봤다.

생사 대결을 앞둔 무인처럼 한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천문석.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단어만 들어 있었다.

‘타이밍!’

사기, 기세, 명분. 그리고 승리?

승리하건 패배하건 은원이 쌓이는 상황.

어떻게 되든 자신에게 득이 될 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경지는 절정!

초절정의 고수와 싸우면 잘해야 양패구상이다.

천문석은 이 자리에서 남궁휘와 비무를 벌일 생각이 1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굉천수’의 눈뽕을 터트릴 최적의 타이밍!

처음 겪으면 99% 성공하는 굉천수를 최적의 타이밍에 때려 박고 번개같이 도망친다!

최설과 허준을 데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궁휘뿐만이 아니라, 그 뒤의 무사들과 성벽 위의 호랑이 일족 무사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눈뽕을 먹여야 한다!

문제는 굉천수의 성공률이 99%라는 것!

1 퍼센트!

처음 굉천수를 당하는데도 안 먹히는 존재들이 있다.

특이 개체 마수.

감각 기관이 특이한 괴이.

경지를 넘어서는 고수, 초절정의 무인도 여기에 포함됐다.

천문석은 오감에 육감, 기감을 총동원해 남궁휘의 견적을 뽑았다!

그리고 탄식했다.

‘하- 남궁휘 저 녀석…… 진짜 초절정 같은데!?’

같은 초절정이라도 경지, 무공, 체질 기타 등등에 따라 수준이 천지 차이다.

당연히 굉천수를 사용한 결과도 제각각이다.

단혈철검 주호처럼 120% 먹힐 수도, 천검 이세기처럼 아예 이빨도 안 들어갈 수도 있었다.

[주호], [남궁휘], [이세기]

천문석은 머릿속에서 남궁휘를 주호와 이세기와 견줬다.

[주호] << [남궁휘] <<< [이세기]

주호와 이세기 사이!

굉천수의 눈뽕이 먹힐 확률과 먹히지 않을 확률이 반반이다!

반반 확률도 첫 번째 굉천수의 경우, 두 번 째부터는 먹히지 않을 확률이 99%다.

멀쩡한 초절정 고수 앞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건 죽여달라는 것과 다름없다.

즉, 어떻게든 첫 번째 굉천수를 성공시켜야 한다.

자신보다 강한 초절정의 고수를 상대로!

천문석은 남궁휘와 자신을 견주며 머릿속으로 공방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마공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정사마의 온갖 무공이 익혔다.

하지만 폐쇄적인 무림 세가, 남궁세가의 무공은 이름만 들어 봤을 뿐이다.

대연신공, 제왕검형, 천뢰권……!

일기일원공, 구인창, 굉천수, 생사팔문의 보법!

무공 자체로는 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이 무공을 펼치는 자신과 남궁휘가 경지가 절정과 초절정으로 차이 난다는 것!

절정과 초절정 간에는 일류와 절정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시바. 이거 밀리겠는데…….’

전생의 경지를 훔치면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남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하늘의 저울에 대가를 올리고, 전생의 경지를 훔치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다!

‘무슨 신박한 방법이 있을 텐데!’

천문석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릴 때.

남궁휘가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휘다.”

최대한 천천히 걸었음에도 어느새 남궁휘 앞에 도착했다!

천문석은 마주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이세기입니다.”

파앙-

순간 남궁휘가 장포 자락을 떨치며 내력을 실어 외쳤다.

“선수 삼초를 양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천문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무에서는 펼칠 수 없는 기술을 펼쳤다!

느리게 더 느리게!

극에 달한 느림에 천만 근의 무게를 실어 태산을 무너트린다!

둔보(鈍步)!

휘이이잉-

내기의 움직임에 대기가 소용돌이치고.

쿠르르르르

한없이 느림 발걸음에 대지가 진동한다!

이 순간 어깨에 걸린 강철봉에 담기는 엄청난 힘!

선수 삼초를 양보하는 순간.

남궁휘는 이미 패배했다!

백 년 동안 한 걸음 나아가는 빙하가 거대한 산맥을 깎아 내는 보법, 둔보(鈍步)!

이 둔보로 모든 힘을 모아 첫 일초로 승리한다!

‘카캬카카카카- 이렇게 간단히 끝나다니!’

천문석이 내심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일보를 내딛는 순간.

쿠우웅-

남궁휘가 외쳤다.

“일초!”

‘어, 지금 뭐라고……?’

쿠우웅, 쿠우웅-

그리고 이보, 삼보를 내딛는 순간 잇달아 들려오는 외침.

“이초! 삼초!”

아니아니! 잠깐만……!

선수 삼초를 양보한다며!?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출 수도 입을 열 수도 없는 둔보!

‘그냥 걷기만 했는데, 무슨 일초야!?’

천문석이 마음으로 외치는 순간.

남궁휘가 포권을 취하며 외쳤다.

“역시 경천동지 이세기! 정정당당한 비무를 위해 선수 삼초를 이렇게 흘려 보내다니! 과연 대협다운 풍모! 이 남궁휘 소협에게 크게 감탄했네!”

‘뭐, 정정당당? 내가 양보를 해?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럼 소협의 뜻대로 정정당당히 비무에 임하겠네!”

순간 남궁휘의 입가를 스치는 미소!

‘당했다! ’

천문석이 깨닫는 동시에 왼손을 등 뒤로 감추고 오른손을 늘어트리는 남궁휘!

쿵, 쿵, 쿵-

남궁휘가 구부정한 자세로 세 걸음 걷는 순간!

콰드득-

늘어진 오른손이 비틀린 고목처럼 꿈틀꿈틀 움직였다!

백보신권(百步神拳)!

남궁세가의 가주가 소림 칠십이 절예를 쓴다고!?

천문석이 경악하는 순간.

남궁휘의 비틀린 주먹이 허공을 때렸다!

콰아아앙-

극한의 격공권, 백보신권!

멈출 수 없는 공격 둔보를 펼치는 천문석에게 백보신권의 원거리 공격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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