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80화>
“……헬스장 철봉?”
뭐지, 미친놈인가!?
헬스장 철봉을 왜 메고 다녀!?
왕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야, 저기 버스 위에 헌터! 저놈 등에 멘 거 뭐냐?”
바로 줌을 당겨 버스 위를 살피는 철검장 헌터들.
“뭐야, 저거!?”
“……봉 같은데요?”
“어라, 봉이라기에는 좀 짧은데?”
“용역 헌터 같은데…….”
“지금 꺼내서 손에 잡았습니다!”
“어…… 저거? 봉 아닙니다!”
“……헬스장 철봉! 헬스장 철봉입니다!”
“와, 진짜 별 희한 놈이 다 있네!”
“미친놈! 무슨 헬스장 철봉을 무기처럼 들고 다녀?”
부하들에게서 튀어나오는 어이없어하는 목소리.
왕체는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님을 깨달았다.
진짜 헬스장 철봉이다!
갑자기 나타나 천검 이세기의 이름을 외친 헌터는 헬스장 철봉을 무기처럼 등에 메고 있었다!
‘……뭐지, 저 미친놈은!?’
왕체는 한참을 이 헌터를 노려봤다!
저런 미친놈이 천검의 이름을 외쳤다고!?
이 헌터가 진짜 천검이 아니란 건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천검’과 ‘이세기’!
별호와 이름 모두 일치하는 기막힌 우연이 발생한 거다!
우연이란 걸 알았지만 왕체의 묵직하게 가라앉은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남중국 연방 선포는 천검의 승리를 상장하는 증표나 마찬가지!
지금 남중국의 헌터 군벌들은 천검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것!
그야말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었다!
-천검을 이용하다 폐기처분 하려던 군벌.
-모시던 군벌 수장이 날아가 얼떨결에 군벌 수장으로 벼락출세한 군벌.
-군대로 밀고 들어왔다가 지휘관이 줄줄이 죽어 나가 항복한 군벌까지.
원래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이 더 열심히 충성을 바치는 법!
헌터 군벌들은 과거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엄청난 충성경쟁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런 충성경쟁이 늘 그렇듯.
헌터 군벌들은 스스로의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른 군벌들의 충성심을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에 자신이 천검의 이름을 외친 놈을 보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건 자신의 윗선 철검장주, 푸젠성 군벌 수장까지 줄줄이 문제가 생길 일이다!
즉, 지금 당장 움직여 저놈을 어떻게든 응징해야 했다.
왕체는 바로 외쳤다.
“움직인다!”
“네?”
“어디를……?”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하는 부하들!
왈칵 짜증이 치솟은 왕체는 부하를 걷어차며 버럭 소리쳤다!
“움직인다니까! 이 새끼들아! 당장 밖으로 튀어 나가!”
“네!”
“넵!”
철검장의 헌터들은 다급히 강릉역 밖으로 나갔다.
광장에 펼쳐진 난장판의 고함과 함성, 열기가 후끈 날아올 때.
왕체는 천검이라 외친 헌터가 있는 버스 위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우리는 저 새끼를 밟는다!”
왕체의 손끝으로 움직이는 시선들!
난장판이 된 광장 너머, 타이어 가 터지고 창문이 모조리 박살 난 채 강판이 휘어 주저앉은 버스가 있었다.
이 버스 지붕 위 헬스장 강철봉을 손에 쥔 헌터가 보였다.
철검장 헌터들은 왕체가 말한 타겟이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그러나 버스 사방에서 용역 헌터 수십 명이 달라붙어 기어 오르는 중.
광장을 가로질러 버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작이 난 후일 거다.
그냥 둬도 아작이 날 놈을 밟으러, 이 난장판을 뚫고 달리라고?
“…….”
“…….”
힐끗힐끗 서로 눈치를 보던 철검장 헌터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조장님. 그냥 둬도 저놈 아작나겠는데요?”
“그래서? 그럼 멀쩡한 널 대신 아작내 줄까!?”
왕체가 눈을 부라리는 순간.
찔끔한 철검장 헌터들은 바로 난장판으로 뛰어들며 외쳤다!
“아작내자!”
“끝장을 내주마!”
“너 이 새끼 박살을 내주마!”
……
천문석이 나타나고 불과 몇 분이 지났을 뿐이다.
어느새 잠시 멈췄던 패싸움이 다시 시작됐고, 광장의 난장판은 점점 심해져 갔다!
그러나 천문석의 계획대로 난장판이 된 광장에 있던 최설의 어그로가 끌렸다!
그리고 계획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어그로도 같이 끌렸다.
최설의 뒤를 쫓는 최림과 용역 헌터.
천문석을 밟으러 달려오는 왕체와 철검장 헌터들.
목적은 달랐으나, 이들 모두가 달리는 목적지는 같았다.
천문석이 올라선 버스 위!
수십 명의 헌터가 천문석을 노리고 난장판을 가로질렀다!
* * *
이때 천문석은 정신없이 주저앉은 버스 지붕을 달리고 있었다.
경쾌한 리듬의 탭댄스를 추면서!
얍얍, 얍얍얍!
입으로 장난스러운 기합을 지르는 매 순간.
꾹꾹, 꾹꾹꾹-
안전화가 버스 지붕에 올라온 수많은 손을 밟았다!
으악, 으악, 으아악-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과 함께 버스에 매달린 용역 헌터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버스 지붕은 넓고 천문석은 혼자였다.
몇 번을 떨어진 용역 헌터들은 기어이 버스 위로 올라와 분통을 터트리며 돌진했다!
“이 새끼 작살을 내주마! 으아아악-.”
“우선 붙어서 넘어뜨려!”
“잡고 늘어져!”
……
“와, 너희들 근성이 대단하네! 컴온!”
순간 천문석은 도발하듯 철봉을 까닥였고, 이들은 예전 수많은 헌터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강화전투복도 없이 혼자서 철봉을 까닥이는 천문석.
이런 천문석을 만만하게 보고 근접 개싸움을 걸었다는 것!
일주일도 안 걸리는 배송 의뢰 동안, 최설에게 야성과 폭력성을 심어 준 게 천문석이었다!
근접 개싸움이야말로 천문석의 특기 중의 특기!
천문석은 파리를 쫓듯 가볍게 손을 휘젓고, 헬스장 강철봉을 휘둘렀다.
휙, 휙, 툭-
아무 위력도 없어 보이는 움직임.
그러나 이 손에 담긴 건 감각을 무너트리는 구인창의 경력!
“어, 어어!?”
제풀에 버스 밖으로 떨어지고!
데굴데굴데굴-
정신없이 굴러 버스 밖으로 튕겨 나갔다!
“잡았다! 이 새끼!”
그리고 손을 피해 붙잡으려는 순간.
툭-
발끝을 가볍게 건드리는 헬스장 강철봉!
헬스장 강철봉이 발끝에 닿자 단단히 박힌 돌부리에 걸린 듯 버스 밖으로 고꾸라졌다.
으악-
꺼억-
아앗-
쉴 새 없이 비명이 터지고, 버스에서 헌터들이 떨어졌다.
천문석은 춤추듯 헌터들을 날려 버리던 중 이상을 깨달았다.
따끔따끔 전신에 쏟아지는 살기!
살기가 쏟아지는 강릉역 방향, 십여 명의 헌터가 직선으로 달려 오고 있었다.
지금 상대하는 자잘한 용역 헌터들이 아닌 헌팅 장비로 제대로 무장한 베테랑 헌터들이다!
보는 순간 직감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 오고 있다!
“뭐야? 쟤들 왜 나한테 달려와!? 가명까지 썼는데!?”
‘이세기란 이름으로 원한을 샀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그동안 이세기란 이름으로 원한을 산 놈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뭔 일만 생기면 이세기 이름을 팔아먹고 다녔으니까…….
휘이이잉-
이때 뒤통수로 훅 날아오는 바람!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숙여 각목을 피하고 뒤로 발을 찼다.
끄어어어억-
처절한 비명과 함께 상대가 쓰러지는 순간 바짓가랑이를 틀어쥐고 빙글빙글 돌리다 던져 버린다!
쿵, 쾅, 쿵-
뒤엉켜 나뒹굴다 버스 아래로 떨어지는 용역 헌터들!
단숨에 용역 헌터들을 밀어내고 잠시 찾아온 소강상태!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시 시작된 난장판으로 점점 속도가 늦어지는 최설.
최설 뒤로 육체 각성자로 보이는 헌터와 용역 헌터들이 꼬리로 붙었다!
게다가 제대로 무장하고 살기를 쏟는 헌터 십여 명까지 자신을 향해 달려 오고 있다!
감이 왔다.
최설은 도착하기 전에 꼬리가 잡히고, 자신은 제대로 무장한 저 헌터들에게 발목이 잡힌다!
난장판에서 빠져나가기는커녕 난장판에 끌려들어갈 상황!
그러나 천문석은 미소 지었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기술이 있었으니까!
어쩐지 정말 오랜만에 사용하는 것 같은 기술!
지상에 떨어진 태양, 최고 출력 굉천수를 터트려 모든 헌터들을 땅 위로 데굴데굴 굴린다!
이것이야말로 땅에 바치는 자신의 경의였다!
“공명정대하고 훌륭하신 땅님을 위해 최고의 경의를 바치겠습니다!”
천문석은 광장을 바라보며 웃었다.
카캬카카카카-
그리고 바로 움직였다!
지붕 위로 기어 오르는 용역 헌터들을 적당히 상대하며 타이밍을 잡는다.
어느새 주저앉은 버스 20여 미터 앞까지 다가온 최설!
25, 24, 23, 22, 21미터……!
난장판을 뚫는 최설의 속도는 예상보다 더 늦었고.
7, 6, 5미터……!
그 뒤를 쫓는 육체 각성자와의 거리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좁혀졌다!
버스에 도착하기 전에 난장판에서 꼬리를 잡힐 상황!
괜찮다! 상정 범위다!
굉천수를 터트려 무력화시키고 달려가 빼내면 된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굉천수의 구결에 따라 움직였다.
쿠르르르-
몸 주위의 공기가 요동칠 때.
최설을 향해 내력을 담아 신호했다.
[전방 섬광!]
배송 의뢰 중 몇 번이나 주입해 몸에 새겨 준 신호!
익숙한 신호가 들려오는 순간.
최설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질끈 눈을 감고 몸을 던지는 최설!
엄청난 기세로 도약해 최설을 덮치는 각성 헌터!
천문석은 바로 양손을 마주쳤다.
팟-
왼손과 오른손 양손바닥 사이에서 굵은 뇌전이 튀어 오르고.
콰아아아아앙-
굉음이 터지는 동시에 거대한 섬광이 광장 전체를 밝혔다!
이목을 모으지 않고 터트린 굉천수!
그러나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진 듯한 굉음에 단숨에 청각이 사라지고, 작열하는 빛에 시야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
“…….”
모든 비명과 외침이 굉음에 삼켜진 공간!
콰르르릉, 쾅, 쾅, 쾅-
굉천수의 굉음과 빛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터져 나왔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20초 남짓!
그러나 시야과 청각이 무너진 헌터들에게는 이 20초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굉천수를 터트린 천문석이 최설에게 달려가는데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휙, 휙휙-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지 연신 손을 휘젓는 최설!
그러나 손이 걸리는 순간!
단숨에 끌어당겨 기술을 넣으려 한다!
“야, 나야 나!”
“……부사장?”
“그래 부사장! 눈만 감을 게 아니라 손으로 가렸어야지!”
천문석은 바닥에 쓰러진 최설을 끌어당겼다!
이때 최설의 아래에서 딸려 오는 손!
최설의 몸 아래 깔린 손을 맞잡은 여자가 보였다.
천문석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깨달았다.
이 여자를 구하느라 눈을 못 가렸구나!
“……친구! 내 친구를…….”
최설이 힘없이 말하고 픽 정신줄을 놓았다.
“확인했다! 걱정 마라!”
툭, 툭-
천문석은 최설의 어깨를 두들기고, 기절한 두 사람을 양어깨에 둘러업었다.
그리고 바로 가로질러 달렸다.
으아, 으아악-
어엇, 어어억-
굉천수를 맞고 광장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수많은 헌터들 사이를!
아직 해가 쨍쨍한 대낮에 야외에서 터트린 굉천수!
헌터들이 무력화된 시간은 길지 않을 거다.
길어야 2, 3분!
그러나 그 정도면 광장을 벗어나기에, 충분했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광장을 가로질러, 가장자리에 세워진 버스를 통과했다.
몇몇 헌터들이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으나, 여전히 대부분은 바닥을 구르고 있다.
최설의 뒤에 붙었던 꼬리와 자신을 향해 달려 오던 무장한 헌터들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 틈에 바로 튀면 된다.
천문석은 광장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금성 편의점까지 이어지는 지름길!
이대로 금성 편의점까지 달려가 택시를 잡아타고 법왕사로 간다!
그러나 천문석이 골목길을 반쯤 달렸을 때.
십여 명의 헌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앞을 막아섰다.
이 헌터들은 하나같이 소총을 들고 있었다.
마탄이 들었을 게 분명한 소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