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95화 (49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95화>

천공에서 천천히 떨어지던 명멸하는 태양, 불의 씨앗.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불꽃 마력의 폭풍, 불의 서약.

불의 서약이 불의 씨앗과 만나는 순간.

불의 씨앗이 단숨에 개화하고 그 안에 담긴 힘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각성력!

순간 마도 황제가 만들어 낸 각성력이 이 세계에 새겨졌다.

지구에 존재하지 않던 힘, 각성력이 세계에 새겨지자 기존 법칙이 흔들렸다.

EMP 마력 폭풍이 시작됐다.

서울이 갑자기 게이트 너머 이세계가 된 것처럼, 정전이 시작되고, 엔진이 꺼지고, 전자기기기가 먹통이 됐다.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탄환이 발사되지 않고 꺼진 엔진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화약과 휘발유의 급격한 연소반응이 사라졌다.

세계에 각성력이란 새로운 힘이 새겨지며, 기존 법칙이 뒤흔들렸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빛을 꺼트리는 EMP 마력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보이지 않는 불티가 떨어졌다.

마침내 개화한 불의 씨앗, 각성력이 보이지 않는 불티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불의 씨앗이 처음 개화한 곳이 서울이었기에, 각성력의 씨앗은 한국에 가장 먼저 떨어졌다.

-애써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안심시키는 역사 선생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청년.

-부산행 열차로 피난민을 안내하는 말년 병장.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는 붕대를 감은 남자.

-건물 위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삼색 고양이.

-언제나처럼 신나게 서해를 헤엄치는 새하얀 벨루가.

-아직 온기가 남은 바위 위에 앉은 거북이.

수많은 사람과 생명체 위로 보이지 않는 불티, 각성력의 씨앗이 떨어졌다.

보이지 않는 각성력의 씨앗은 몸에 닿는 순간. 작은 눈송이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려 영육과 혼백의 사이, 심상 공간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각성력의 씨앗을 품은 마력 폭풍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아시아, 유럽, 호주,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는 각성력의 씨앗.

이미 세계에 법칙이 새겨졌기에, 전자기기와 화약 무기를 무력화시키는 EMP 마력 폭풍의 효과는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한겨울에 맞지 않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각성력의 씨앗을 담은 불티가 심상 공간에 내려앉을 때.

모든 생명체는 처음 듣는 휘파람 소리가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걸 느꼈다.

휘이이, 휘이이이-

휘이이이, 휘이이-

옛 제국 기사의 노래는 바람이 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생명체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렇게 진혼진군가의 노랫소리가 세계에 울려 퍼지는 순간.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에 주저앉은 십자로 찢긴 텅 빈 갑옷이 움직였다.

텅 빈 갑옷은 마치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롱소드로 땅을 짚고 일어서 끝없는 바람이 불어오는 하늘을 바라봤다.

휘이이이이-

텅 빈 투구 안에 당장이라도 꺼질 듯 미약한 불꽃이 생겨났다.

미약한 불꽃은 마치 새겨넣듯 하늘과 대지를 바라봤다.

온 세계에 불티가 흩날린다.

대륙에 가득한 악과의 전쟁, 대륙 전쟁을 시작한 날처럼.

대륙 전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인류가 대협약에 합의한 그 날처럼.

마도 황제께서 모든 인류의 제국, 마도 제국을 선포한 그 영광된 순간처럼.

재의 기사는 흩날리는 불티 속에서 깨달았다.

돌과 철의 맹세, 불의 서약이 이뤄졌음을.

부모가 후손에게, 후손이 다시 그 자식에게 대를 이어 전해 주는 가문의 약속.

그리고 처음 검을 받은 그 날 스승님과 한 약속이 완성됐음을 깨달았다.

허약한 꼬맹이.

마도 제국의 기사.

옛 제국의 기사.

재의 기사.

길고 긴 시간 동안 불리는 이름은 몇 번이나 달라졌으나 그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이브리온의 기사는 텅 빈 갑옷을 지탱한 롱소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처음 롱소드를 손에 쥐었던 그 날처럼 온 힘을 다해 검을 내려쳤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이브리온.]

휘이이잉-

롱소 드가 바람을 가르는 순간.

텅 빈 갑옷과 투구는 하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휘이이, 휘이이이-

백운대의 바위 위에는 한 줌의 하얀 재와 긴 세월이 지났으나 여전히 예기를 잃지 않은 롱소드 한 자루만이 남겨졌다.

* * *

파아아아아-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

광화문 빌딩 위 모든 게 휩쓸렸다.

빈 중국집 그릇.

돌돌 말린 담요와 종이 박스, 스티로폼!

마력광이 사라진 마력 파동 발생장치!

……

온갖 잡동사니가 옥상을 구를 때.

이 사이에서 같이 구르는 동물이 있었다.

차원 도약 직전 흑요석 헤드에 착 달라붙어 마력 파동에서 튕겨 나온.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다른 모두가 차원 도약해서 사라진 2000년 1월 1일의 광화문 빌딩 위. 남겨진 새끼 다람쥐와 서리 늑대는 정신없이 구르면서 울었다.

킥, 키키킼키킼킼-

깽, 깨애앵깽깽깽-

새끼 다람쥐에게는 케페니안의 빛이, 서리 늑대에게는 서리혼이 폭발할 듯 가득했다!

그러나 EMP 마력 폭풍을 맞는 순간, 둘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EMP 마력 폭풍에 담긴 것은 세계의 법칙조차 변화시키는 마도 황제의 힘!

한 개체가 품고 있는 케페니안의 빛, 서리혼으로는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새끼 다람쥐와 서리 늑대가 데굴데굴 구르는 동안, 마력 파동 발생장치는 작동을 멈췄고 천공에 남았던 차원 좌표는 사라졌다.

옥상 바닥에 새겨진 3차원 적층 마법 회로도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각성력이 세계에 완전히 새겨지는 순간 EMP 마력 폭풍은 멈췄다.

마력 폭풍은 평범한 거센 바람이 되어 각성력을 품은 불티를 담고 세계로 불어 갔다.

이때 데굴데굴 구르던 새끼 다람쥐와 서리 늑대가 난간에 걸려 멈췄다.

몸이 멈추는 순간 새끼 다람쥐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킥, 키키키킥-

‘마법사! 마법사!? 차원 좌표!?’

타다다닥-

새끼 다람쥐는 번개같이 난간을 달리며 하늘을 샅샅이 훑었다!

차원 좌표를 찾아야 한다!

먹튀 한 마법사가 도망친 차원 좌표를 찾아 쫓아가야 한다!

그러나 없었다!

케페니안의 빛으로 하늘을 아무리 훑어도 차원 좌표는 흔적도 없었다!

하늘에서 느껴지는 것은 눈처럼 흩날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티!

불티에서 생경한 힘이 느껴졌지만,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연했다!

사기꾼을 놓치고 빚쟁이가 확정된 것이다!

-……!

거대한 충격에 새끼 다람쥐가 우뚝 굳어 있는 순간.

쿵-

정신없이 구르다가 난간에 처박힌 서리 늑대가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서리 늑대는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깨애앵-!?

없다!

아무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주고, 업어 주고, 빗질해 주던 친구가 없다!

우오오오오-

서리 늑대는 다급히 하울링 하며 옥상을 달려 친구의 흔적을 쫓았다.

그리고 뒤엉킨 잡동사니 위에서 발견했다.

친구의 냄새가 남아 있는 검은색 돌을!

검은색 돌에 묶인 밧줄이 잡동사니 속으로 이어졌다!

파바바밧-

서리 늑대는 밧줄이 들어간 뭉쳐진 잡동사니를 파헤쳤다.

나무판자, 스티로폼, 담요, 가죽 수첩, 빈 그릇, 빈 병, 마력광이 사라진 금속 상자…….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졌다!

그러나 잡동사니 속에 친구는 없었다!

-……!

서리 늑대는 충격에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그리고 굳어 버린 서리 늑대의 눈에 보이는 난간에 내려선 새끼 다람쥐!

도토리 숲의 악마!

종족의 원수!

저놈 때문에 친구가 사라지고 자신 혼자 남겨졌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터지는 하울링!

우오오오오오-

하울링이 터지는 순간 서리혼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휘이이이이잉-

서리 늑대는 서리혼을 휘감은 채로 번개같이 돌진했다!

탓-

처음 뛰는 순간 이미 몰아친 서리혼이 새끼 다람쥐를 휩쓸었고,

탓-

두 번 뛰었을 때, 서리 늑대는 새끼 다람쥐를 푸른 송곳니로 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깨애애앵, 깽깽깽-

서리 늑대는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킥, 키키키키키킼키킼킼-!

엄청난 냉기를 뿜어내는 얼음 불꽃, 서리혼을 쏟아부었지만, 분노한 새끼 다람쥐를 막을 수는 없었다!

먹튀 한 마법사를 놓쳐 분노한 새끼 다람쥐는 서리 늑대를 쫓아가며 마구마구 물었다!

콰득, 콰득, 콰드득-

깨앵, 깨앵, 깨애앵-

서리 늑대는 고통스럽게 울며 데굴데굴 굴렀다!

깡-

이때 갑자기 쇳소리가 울리고, 마력광이 솟구쳤다.

깜짝 놀란 새끼 다람쥐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가 봤다.

데굴데굴 구르는 늑대 아래 깔린 금속 상자!

이 상자에서 솟구친 마력광에서 차원 좌표가 느껴진다!

순간 새끼 다람쥐의 시선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위, 하얀 늑대.

아래, 금속 상자.

하얀 늑대를 가볍게 물자.

깨애애애앵-

고통스러운 울음과 함께 쏟아지는 얼음 불꽃!

파스스스스-

금속 상자에서 느껴지는 차원 좌표가 강해진다!

-……!

이 순간 새끼 다람쥐는 마법사를 쫓을 방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바로 움직였다.

콰드드드드득-

서리 늑대의 꼬리를 물고 흔들었다!

깨애애애애앵-

서리 늑대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폭발하듯 쏟아지는 서리혼!

파스스스스스-

마력 파동 발생장치가 당장이라도 작동할 듯 진동했다!

킼키! 키키킼키킼-!

‘된다! 되고 있다!’

콰득, 콰득, 콰드드득-

새끼 다람쥐는 작은 손으로 서리 늑대를 붙잡고 전신을 연속으로 물었다!

깨앵, 깨앵, 깨애애앵-

서리 늑대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며 쏟아지는 서리혼도 더 강해졌다!

서리혼은 천문석이 쥐어 짜낼 때보다 더 빠르고 거세게 쏟아졌다!

어느 순간 거대한 서리 늑대의 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서리 늑대가 강아지처럼 작아지는 순간.

뚝-

서리혼이 끊겼다!

그러나 여전히 작동하지 않은 마력 파동 발생장치!

키킥, 키키킼킼-!

‘안 돼! 이러면 안 돼!’

새끼 다람쥐는 번쩍 손을 들어 금속 상자를 내려쳤다!

탓-

새끼 다람쥐의 전신에 서린 황금빛, 케페니안의 빛이 마력 파동 발생장치로 스며들었다!

파아아아앙-

순간 폭발하듯 뻗어 나오는 황금빛!

케페니안의 빛과 서리혼이 금속 상자 안에서 충돌하여 허공으로 자라났다!

나무처럼!

황금빛 거대한 줄기가 쑥쑥 자라나고, 이 거대한 줄기에서 갈라진 가지가 사방으로 뻗었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가 훌쩍 넘는 빛으로 이뤄진 나무가 생겨났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빛의 나뭇가지 하나하나에서 쏟아지는 마력 파동!

천문석 일행이 차원 도약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마력 파동이 쏟아졌다!

이 순간 케페니안 차원 용병은 기원했다!

키킼키! 키킼키키키키키킼킼-!

‘제발! 제발! 먹튀 한 마법사를 찾게 해 주세요!’

파아아앙-

순간 빛의 나무에서 사방으로 뻗은 수십 개의 가지 끝에 금이 가고 생겨났다!

수십 개의 균열이!

케페니안 차원 용병은 재빨리 균열을 훑었다!

‘먹튀 한 마법사를 찾아야 한다!’

마치 수십 개의 영사기를 동시에 돌린 것처럼.

나뭇가지 끝에 생겨난 수십 개의 균열에서 각기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을 달리는 수백 척의 배.

-지게를 지고 눈보라 치는 설산을 묵묵히 오르는 상인들.

-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바다를 퐁, 퐁, 퐁- 헤엄치는 작은 빛의 고래.

-거대한 늪지를 건너 마침내 도착한 숲에서 나무 열매를 주워 먹는 늑대들.

-등에 도시를 짊어지고 폭풍우 치는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거북이.

-꼬맹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도로 위를 질주하는 온갖 바퀴 달린 탈 것들.

-수십 척의 갤리선이 뒤엉킨 바다, 한 자루 창을 들고 춤추듯 적을 압도하는 무희.

-무너진 건물과 빌딩, 폐허가 된 도시에서 빛나는 게이트와 그 게이트를 향해 달리는 각성자들.

///

수십 개의 균열에 나타난 풍경이 실시간으로 변해간다!

이때 케페니안 차원 용병은 외쳤다.

킥, 키키킼키킼-!?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차원 용병은 도망친 마법사를 찾아 계속 케페니안의 빛을 쏟아부었다.

휘이이, 휘이이잉-

상자에서 자라난 거대한 빛의 나무가 노래하듯 흔들리고, 그 가지에 생겨난 시공의 균열이 비추는 풍경이 빠르게 변화했다.

이때 문득 한 균열에서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팟-

재빨리 탐색을 멈추고 익숙한 느낌이 전해지는 균열에 집중했다!

거대한 산맥 한가운데, 강이 관통하는 분지에 세워진 도시!

휘이이이잉-

하늘에선 거센 바람이 불고.

피시시시시-

도시 곳곳에선 새하얀 수증기가 흩날린다.

처음 보는 도시였다.

그러나 이 도시를 보는 순간, 먹튀 한 마법사의 흔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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