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92화>
서리혼이 끊기는 동시에 픽- 쓰러지는 서리 늑대!
“너 왜 이래!? 혹시 아까 다친 거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쓰러진 서리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보였다!
용조수의 약손과 폭풍 칭찬에 번뇌가 모두 사라지고 법열마저 느끼는 듯한 눈이!
서리 늑대는 다친 게 아니었다!
‘그럼 왜!?’
의문을 품는 순간 서리 늑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상태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ㅁ/ㅁ/ㅁ/ㅁ/ㅁ]
서리혼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창이!
“…….”
이때 서리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컹, 컹컹-!?
‘뭐지? 갑자기 왜 안 나오지!?’라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 서리 늑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에라이! 야, 아까 게이트 앞에서 싸울 때! 서리혼을 막막! 뽑아 썼잖아! 그렇게 뽑아 썼는데 당연히 다 떨어졌지!’
마음속으로만!
지금 화내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약간, 약간만 더 있으면 된다!
어떻게든 뽑아내야 한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왜 멈춘 거야!?”
“설마? 혹시 지금……!?”
추이린의 다급한 외침과 김철수 발명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올 때.
천문석은 서리 늑대를 번쩍 안아 들고 외쳤다.
“어떻게든! 쥐어짜네 보겠습니다!”
깨애앵-?
서리 늑대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서리 늑대 육체 내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전신이 뻣뻣하게 굳는 서리 늑대!
천지를 잇는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육체로 들어오자, 서리 늑대는 단숨에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하울링 했다.
우오오오오오-
새하얀 털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푸른빛이 맺혔다!
“조금만 더! 으아악-.”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밀어 넣자, 젖은 수건을 쥐어짜듯 서리혼이 털끝에 맺힌다!
이렇게 맺힌 서리혼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뚝-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듯 떨어졌다!
마력 파동 발생 장치로!
‘된다! 되고 있다!’
그러나 중단된 시간 동안 마력압이 떨어졌다!
서리혼이 더 필요하다!
으아아악-
천문석은 악을 쓰며 서리 늑대에게 끊임없이 내력을 밀어 넣었고.
똑, 똑, 똑-
서리혼이 한 방울 한 방울 모여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파슥, 파스슥-
서리혼이 푸른빛과 함께 흡수되자, 마력 파동 발생장치의 진동이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쿵, 궁, 쿵쿵, 궁궁-
넘을락 말락!
터질락 말락!
마력 파동 발생장치가 작동할락 말락을 반복했다!
순간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이 외쳤다.
“조금만 더!”
“넌 할 수 있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더!”
“화이팅! 힘을 내! 조금만 더!”
……
그러나 점점 고갈되는 내력!
이야아악-
천문석은 이젠 기경팔맥을 쥐어짜네, 내력을 밀어 넣었다!
기경팔맥을 흐르는 내력이 점차 가늘어진다.
하천이 되고, 작은 개울이 되더니, 가닥가닥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서리혼의 간격이 점차 길어진다!
뚝…… 뚝…… 뚝……
천문석은 직감했다.
‘내력이 곧 바닥을 드러낸다!’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절정의 경지에 올랐어도 벌써 3일째, 쉴 새 없이 달리고 싸우고 내력을 뽑아 썼다!
지금까지 내력이 남아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내력이 끊기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서리혼도 끊기고 끝장이 난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장치가 작동한다!
어떻게든 쥐어 짜내야 한다!
천문석은 기경팔맥과 기해혈의 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이렇게 쥐어 짜낸 내력을 서리 늑대의 몸으로 모조리 쏟아부었다!
서리 늑대의 전신에 맺히는 푸른빛, 서리혼!
서리혼이 마력 파동 발생장치 위, 서리 늑대의 털끝에 모였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크기를 키워.
똑…….
마력 파동 발생장치 위로 떨어졌다.
마지막 서리혼이 떨어지는 순간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던 내력이 끊겼다.
물이 끊겨 지하수 펌프가 공회전하듯, 기경팔맥과 기해혈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내 내력이 완전히 말랐다!
그리고 마력 파동 발생장치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 * *
이 순간 천문석은 폭발했다.
“아! 진짜로 못해 먹겠네! 진짜로! 정말로! 이 타이밍에! 이런 시깁니까!?”
거대한 심적 고통!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천둥 같은 외침을 터트렸다.
순간 추이린과 김철수 발명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말라!?”
“서리혼!? 조금만 더! 아주 약간만 더 뽑아내면 된다!”
“야, 어떻게든 쥐어짜 봐! 할 수 있어!”
“그 장치는 마력으로는 작동 안 돼! 영성이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서리혼을 쥐어짜야 해!”
‘어떻게든!’
동료들의 외침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렇다!
지금은 하늘을 원망할 때가 아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어떻게든 쥐어짜 내야 할 때다!
“멋지고 잘생기고 공명정대하신 하늘님!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으아아악-.”
재빨리 말을 바꾸고 내력을 끌어올렸지만!
기경팔맥과 기해혈에선 헛바퀴를 돌리듯 헛헛한 느낌만 밀려 온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건 마른 수건 정도가 아니다!
10년 동안 열사의 사막에서 달궈진 돌 수준이다!
수분이, 내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경팔맥과 기해혈이 완전히 텅텅텅 비어 버렸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단어!
‘20년 존버!’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 1999년에 떨어졌을 때 자신이 직접 말한 계획이다.
하지만 진짜로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20년 버티기라니!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시계!
[00:08:31]
EMP 마력 폭풍이 터지고, 진짜로 20년 존버를 시작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8분 31초!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무엇이라도 아무거나 도움 될 건 뭐든지 해야 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허리벨트에 걸린 잡낭을 열었다.
-헌터용 붕대, 바늘, 실, 내복약, 펜던트, 검은 동전…….
“아니, 뭐 이렇게 쓸모없는 것만……!”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보였다!
“포션!”
장철 가족에게 포션을 모두 넘긴 줄 알았는데, 남은 포션이 한 병 있었다!
돈 아까워서 제정신일 때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은 포션이!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같이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포션은 신체의 자연 치유력을 끌어써서 외상을 치료한다!
포션 쇼크로 기절하듯 잠드는 것도 그것의 반향이다.
즉, 포션은 신체의 ‘힘‘을 당겨쓴다!
‘힘!’
포션을 먹으면 신체 내부에 깃든 힘, 포텐, 잠재력! 무엇이 됐든 내력을 더 쥐어 짜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꽈드드득-
천문석은 바로 포션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야! 포션은 왜 열어!?”
“지금 포션 쇼크로 기절하면 끝장이야!”
경악한 동료들의 외침이 들려왔으나, 어차피 이대로면 20년 존버 확정이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어차피 서리혼 쥐어 짜내지 못하면 끝장입니다!”
천문석은 단숨에 포션을 들이켰다.
포션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몸 전체로 스며든다!
신체의 자연 치유력을 뽑아내는 포션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으아아악-
천문석은 10년 동안 달궈진 돌에서 한 방울의 수분을 쥐어짜듯 내력을 쥐어짰다.
그러자 포션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바람에 흩날리다 퐁퐁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치 이 신체에서는 더는 뽑아낼 힘이 없다는 듯이!
마지막 희망, 포션의 기운이 사라지는 순간.
천문석은 돌처럼 굳어 버렸다.
“…….”
“어떻게 된 거야!? 효과 있어!?”
“여기 상급 포션 있는데! 이걸로 해 볼래!?”
“야, 어떻게 된 거냐니까! 될 거 같아!?”
동료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자, 천문석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웃음부터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야, 너 그 웃음!”
웃음을 들은 추이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웃지 마! 그렇게 웃으면 안 돼! 그만! 멈춰! 야! 웃지 말라니까!”
천문석이 웃음부터 터트리고 했던 황당한 말들!
추이린은 천문석이 웃음 뒤에 할 말을 짐작하고 발작하듯 외쳤다.
그리고 웃음이 멈추는 순간.
천문석은 추이린의 짐작 그대로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뭐, 지금 무슨 말을……?”
“너 설마!?”
동료들의 물음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긍정적 마인드로 답했다.
“사실 20년 존버가 꼭 나쁜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재금 공업 찾아가서 취직하면…….”
으아아악-
순간 괴성을 지른 추이린이 번개같이 달려와 바닥에 드러누운 서리 늑대를 끌어안고 흔들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제발, 제발! 조금만! 서리혼! 조금만 더 내보내 줘! 제발!”
-……
힘겹게 머리를 든 서리 늑대는 ‘더는 안 돼. 안 나와.’라고 말하듯 머리를 휙휙 젓더니 픽- 다시 고개를 떨궜다.
마치 영화 속 최후를 맞이하는 주인공처럼!
“시바, 시바! 뭐가 이따위야!”
추이린이 분통을 터트리고.
“하아-.”
김철수 발명가가 난간에 놓인 시계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00:07:13]
모든 게 끝장날 EMP 마력 폭풍이 터지기까지는 불과 7분이 남은 상황!
서리혼 배터리는 방전되고, 배터리를 쥐어짜 내던 일기일원공도 바닥났다.
더는 2020년 행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20년 존버가 시작될 때까지 7분이 남았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은 머리를 쥐어뜯고, 김철수 발명가는 동료들을 보며 괴로워했다.
이때 천문석이 다시 입을 열고 행복회로를 돌렸다.
“우리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20년 존버! 얼핏 생각하면 암울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기회입니다!”
“…….”
“…….”
“서울 수복 작전에 참여해서 1세대 헌터가 될 수도 있고!”
“게이트 전쟁에서 활약할 수도 있습니다!”
“…….”
“…….”
“게다가 재금 공업에 취직하면!?”
“제주도에 땅을 사면!?”
“…….”
“…….”
우와아아아-!
천문석은 과장된 탄성을 터트리며 외쳤다.
“마침내 건물주가 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순간 멍하니 듣고만 있던 추이린이 이마를 짚으며 외쳤다.
“와! …… 긍정적인 새끼! 망했어! 개판이야! 완전히 망했어! 처음부터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으아악-.”
추이린이 분통을 터트리자, 김철수 발명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문석에게 물었다.
“하아- 고생했다. 레이 오면 같이 튀자. 너 몸은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대답하는 순간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
“어……?”
천문석은 위화감이 느껴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폈다.
그리고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어, 왜 이렇게 멀쩡하지?”
* * *
내력만 느껴지지 않을 뿐 몸이 멀쩡하다!
평소와 같은. 아니, 평소보다 오히려 컨디션이 좋았다!
포션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몸에 있는 힘과 내력을 모조리 쥐어짰는데!
너무나 멀쩡하다!
“어, 뭐지? 내력이 완전히 고갈됐는데…… 뭐가 이렇게 멀쩡해?”
문득 말하는 순간 번개 치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내력은 쓰고 싶다고, 모조리 쓰고 고갈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뇌에 리미트가 걸려, 육체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절정의 무인이라고 해도 내력의 8할 이상을 뽑아 쓰지는 못한다!
내력의 2할은 목숨, 생의 근원을 이루는 진원과 선천지기이기 때문이다.
10할의 내력을 모조리 뽑아 썼다는 건, 진원(眞源), 선천지기마저 모두 사라졌다는 것!
진원과 선천지기가 마르면 하늘과 땅에서 받은 명(命)이 사라지고 당연히 목숨도 끊긴다!
지금처럼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어떻게 된 거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천문석은 단숨에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영육과 혼백의 사이, 물질과 정신에 걸쳐 존재하는 심상 공간을 관조했다.
심상 공간에 자리한 기경팔맥과 기해혈은 텅 비었다!
마치 길고 긴 가뭄을 겪은 듯, 단 한 방울의 내력도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완전한 공(空)!
내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순간 마음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질문.
‘어디로 갔는가?’
묻는 순간 돌연 깨달았다!
질문이 잘못됐다!
‘어디로 갔는가?’가 아니라, 이렇게 물어야 했다.
‘어디서 왔는가?’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전율이 영혼육백을 일깨웠다!
3일!
지난 3일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고 달리고 싸우며 내력을 뽑아 썼다!
천마 심법이라면 가능했다!
전생 천마의 천마 심법!
셀 수도 없이 많은 정, 사, 마, 주술공의 심법을 모조리 삼켜 극(極)을 넘어선 전생 천마의 천마 심법 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은 천마 심법의 구결을 모두 잊었다.
현생 알바가 익힌 심법은 하나고, 기경팔맥을 흐르는 내력도 단 하나다.
일기일원공!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3일 동안 뽑아 썼다고!?
이건 말이 안 된다!
일기일원공은 정통 우도 심법 중의 우도 심법!
천 년 동안 떨어지는 물방울이고, 만 년에 걸쳐 켜켜이 쌓이는 빙하다!
가장 느리게 산을 오르는 법이고, 나는 것도 달리는 것도 아닌 걷는 법이다!
즉, 3일 동안 뽑아 쓸 수 있을 정도의 일기일원공의 내력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없었다!
지난 3일.
아니, 이 시대로 온 후 자신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쓴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천문석은 문득 하늘을 봤다.
두껍게 깔린 구름과 요동치는 마력장으로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을까!?’
‘어떻게 이걸 느끼지 못했을까!?’
기경팔맥의 내력을 단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비웠다.
그렇기에 마침내 깨닫고, 마침내 느낄 수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천기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인과를!
그리고 2020년에는 사라졌으나, 2000년 이 시대에는 너무나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
영맥(靈脈)!
끝이 가늠되지 않는 거대한 영맥이 천지를 잇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