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52화>
장철의 아파트로 향하는 길.
천문석은 종로에서부터 시작된 장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귀인분과 만나게 된 겁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장철을 봤다.
1999년의 장철과 2020년의 장철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이유가 감이 왔다.
‘아니,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장철은 벌써 몇 번이나 몬스터와 싸우고 쫓겼다!
그 결과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고 전신에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자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장철은 어떻게든 뚫고 나왔을 거다.
그러나 자신이 도와줬는데도 이 정도다.
홀로 몬스터를 뚫었으면 엄청난 악전고투를 겪고 그 과정에서 지금 이상의 부상을 입었을 거다.
외모가 망가진 것도 부상이 악화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즉, 자신은 장철의 외모를 지켜 미래를 바꾼 것이다!
‘이거 2020년으로 돌아가면 영화배우 장철이랑 만나는 거 아냐?’
천문석이 내심 웃음을 삼킬 때.
장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집 보입니다! 이제 저 혼자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을 너무 뺏어서 죄송합니다.”
장철은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가리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 모습에 천문석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과 2020년.
외모가 완전히 다르고 가진 힘도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장철은 장철이었다.
장철은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가려 했다.
문득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떠올랐다.
동대문 게이트가 사라지고, 안전화 권역에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진 2020년 서울 사태.
그때 장철은 랩터와 싸워 치명상을 입은 자신을 구해 주고 상급 포션까지 사용해서 치료해 줬다.
그리고 상급 포션을 언급하는 자신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한 번 피식 웃고 말았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득과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해 타인을 돕는 사람.
하지만 이런 사람이 모든 사람을 그렇게 돕는 건 아니다.
이들에게는 내 사람과 타인을 가르는 분명한 선이 있고. 이 선 안에 들어간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돕는다.
장철, 장민이 그런 사람이었다.
장철과 장민은 자신을 친구로 대하고 깊은 호의를 보였다.
호의에는 호의로 보답해야 하는 법!
그건 과거로 돌아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괜찮습니다. 혹시 모르니 집까지 같이 가도록 하죠.”
휘이익-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어 정찰 중인 서리 늑대에게 신호하고 앞장서 달렸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바로 뒤에 붙어 오세요!”
“알겠습니다!”
골목길을 달리길 한참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상급 포션!
북한산에서 마법사에게 받은 상급 포션이라면 먼 미래의 빚을 지금 갚을 수 있었다.
천문석은 잡낭에서 바로 유리병을 꺼내 장철에게 넘겼다.
“이거 일종의 외상약입니다. 지금 입은 상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료가 가능하다고요?”
장철은 유리병을 바라보며 반문했다.
“네, 이걸 사용하시면 외상은 거의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체질에 따라 48시간 이내에 쇼크가 오고 기절하듯 잠들게 됩니다. 반드시 안전한 곳에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유리병을 받은 장철은 문득 대검과 손에 낀 장갑을 봤다.
엄청난 강도의 대검.
칼날이 박히지 않는 장갑.
이제는 외상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약까지.
아무 보답도 하지 못하고 계속 받기만 하고 있었다.
이 정체불명의 귀인에게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깊은 호의가 느껴져 장철은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
단지, 외상약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조심스럽게 넣으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보답은 벌써 받았습니다.”
“네?”
천문석이 재킷 주머니에 넣어 둔 주택복권을 꺼내 흔들었다.
“1등이 될 주택복권 주셨잖아요?”
컹-
이때 정찰 중인 서리 늑대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문석이 손을 들고 벽에 몸을 붙이고, 장철이 뒤따라 벽에 바짝 몸을 붙일 때.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끼이익-
컹, 커어엉-
날카로운 비명과 개 울음소리!
큰길로 살짝 고개를 내밀자 보였다.
코볼트 무리가 들개 마수와 싸우고 있다!
둘 다 머릿수는 20마리 내외.
건물 옥상에 엎드린 서리 늑대가 서쪽을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다.
사방에 마수와 몬스터가 깔린 상황.
우회해도 다른 마수와 몬스터를 만난다.
그냥 빠르게 뚫고 지나가는 게 낫다!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끝내고 바로 뛰어나가 처리하려 할 때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게이트 전쟁!’
자신은 결국 2020년으로 돌아갈 사람이다.
자신이 계속 장철과 함께할 수는 없었다.
장철은 홀로 가족을 지키며 험난한 게이트 전쟁 시기를 버텨야 한다.
그런 장철에게 가장 필요한 걸 지금 자신이 줄 수 있었다.
‘몬스터와 싸울 힘!’
그러나 무공과 전투 기술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장철은 조만간 각성 후 강철해머라는 별명에 맞는 자신만의 전투법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지금 가르칠 건 하나였다.
먼 미래 장철 스스로가 확립할 강철해머의 전투 스타일!
그 전투 스타일을 보다 빨리 확립하도록 방향성만 잡아 주면 된다!
“저놈들 잡고 가죠.”
천문석이 마음의 결정을 하고 말하는 순간.
장철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대검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대검은 위력만큼이나 한계가 분명하고 강철해머의 전투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재의 숲에서 얻은 해머 헤드!
그리고 마침 제설함이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설함을 열자 생각했던 대로 삽이 있었다.
천문석은 삽자루를 뽑아내 적당히 깎아 해머 헤드에 끼워 넣고 못을 박아 고정했다.
“이 해머를 무기로 사용하세요.”
“네? 해머를 무기로 쓰라고요?”
장철은 해머를 받고 당황했다.
한 번도 쥐어 본 적 없는 묵직한 해머는 철거용으로나 사용할 것 같은 오함마였다.
“이 해머가 대검보다 장철님에게 맞을 겁니다. 제 자세를 봐주세요.”
천문석은 기억 속 강철해머의 전투 스타일을 떠올리며 시범을 보였다.
“오른손에 든 강철봉을 어깨에 걸치고. 이런 식으로 중심을 낮춰서 가볍게 스텝을 밟는 겁니다.”
쓱, 쓱, 쓱-
미끄러트리듯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천문석.
“중심을 낮추고 항상 두 발로 땅을 디뎌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타이밍을 잡는 순간 스냅을 걸어! 온 힘을 다해 내려치는 겁니다!”
“이렇게! 긁듯이!”
후우우웅-
강철봉이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 공간에 원을 그렸다!
때리는 게 아니라 탄성을 실어 발사하는 듯한 움직임!
장철은 바로 천문석의 움직임을 따라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장철이지만 곧 능숙하게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해머를 내려쳤다.
훙, 후웅, 훙-
장철의 손에 잡힌 해머가 공기를 가르고 떨어져 원을 그려낸다.
천문석은 빠르게 기본 스타일을 잡아 주고 바로 큰길을 가리켰다.
“바로 저놈들 상대로 실전으로 들어가죠. 제가 싸우는 모습 잘 보시고. 타이밍 잡아 들어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장철이 굳은 얼굴로 대답할 때.
천문석은 마지막 조언을 했다.
“해머를 단단히 잡고. 온 힘을 다해 때려 박으세요. 주저하지 말고 일격에 끝장내는 겁니다.”
그리고 큰길로 돌진했다.
어느새 전투는 소강상태.
코볼트와 늑대 마수는 10마리 정도 남아 대치 중이었다.
쿵, 쿵, 쿵-
천문석은 직선으로 돌진하며 강철봉을 어깨에 걸었다.
대치하는 몬스터와 마수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깜짝 놀란 시선이 모이는 순간.
하앗-
천문석은 기합을 지르며 발로 땅을 짓밟았다.
쿵-
순간적으로 몸이 용수철처럼 눌렸다가 펴지는 순간.
이 탄력으로 어깨에서 튀어 오른 강철봉을 손목에 스냅을 줘서 발사하듯 쏘아낸다!
후우웅-
육중한 파공음을 내며 쏘아진 강철봉에 스치는 순간.
콰드득-
단숨에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져 나갔다.
코볼트와 들개 마수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두 모이는 순간 장철이 돌진해 들어왔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해머를 내려치는 장철!
천문석은 바로 옆으로 빠져 장철에게 공간을 열어 줬다.
콰아앙-
일격에 등뼈가 으스러진 들개 마수가 주저앉고 돌진력에 코볼트가 튕겨 나갔다.
천문석은 장철의 등 뒤를 지키며 잇달아 외쳤다.
“해머는 대검과는 다릅니다!”
“급소를 노려 정타를 넣을 필요 없습니다!”
“해머 헤드로 긁어 내듯이 원을 그리세요!”
“멈추면 포위됩니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주도권을 놓치면 끌려다니다가 말라 죽습니다! 기세를 유지하세요!”
……
조언을 들은 장철은 순식간에 전투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곧 폭풍처럼 코볼트와 들개 마수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각성하기 전인데도 장철은 장철이었다!
탁월한 전투 감각과 투지!
몇 번 시범을 보여 주고 자세를 교정한 후에 바로 실전에 들어갔는데도 제대로 싸우고 있다.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닭을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상대는 마수와 몬스터!
야성과 흉성이 터지면 대담한 사람이라도 오금이 저려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
그러나 장철은 순식간에 해머 전투 스타일에 적응해서, 마치 오랫동안 이렇게 싸운 것처럼 몬스터를 몰아치고 있었다!
‘심법을 가르쳐 볼까?’
불쑥 생각이 튀어나왔지만, 심법의 기초를 잡아 주는 건 전투 스타일을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장철은 1세대 헌터다.
늦어도 한 달 안에는 각성하고 빠르게 강해질 거다.
그때까지 조금 쉽게 버티게 해 주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깨애앵-
이때 장철이 마지막 남은 들개 마수를 처리하는 게 보였다.
헉, 허억-
장철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 상태 어떻습니까? 움직이실 수 있습니까?”
천문석이 묻는 순간.
장철은 형형한 눈으로 대답했다.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천문석은 앞장서 달리며 외쳤다.
“이제 피하지 않고 뚫고 달리겠습니다! 제가 먼저 돌진하면 타이밍을 잡아서 들어오세요!”
“알겠습니다!”
장철은 굳은 얼굴로 대답하고 천문석을 따라 달렸다.
1시간 동안 천문석과 장철은 5번 마수와 몬스터 무리와 싸웠다.
천문석이 먼저 뛰어들어 헤집는 순간.
장철이 오함마를 어깨에 걸고 밀고 들어와 흩어진 놈들을 정리했다.
연속해서 실전을 겪으며 장철은 빠르게 해머 전투에 익숙해졌다.
힘보다 유연함.
속도보다는 타이밍.
그리고 마지막 전투.
장철은 혼자서 랩터 3마리를 상대했다.
짧은 대검 한 자루만 가지고도 랩터 무리를 상대로 버텼던 장철이다.
대형 해머를 사용하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투 스타일에 익숙해진 순간.
장철은 스치듯 랩터를 지나가며 대형 해머를 내리쳐 원을 그렸다.
핏, 핏, 핏-
대형 해머의 궤적에 걸리는 순간 충격파에 랩터의 뼈가 으스러지고 비늘이 깨져나가며 전투력이 훅훅 깎였다.
장철은 랩터 3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인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끼이이익-
크아아아앙-
아파트 단지 안에는 빈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수와 몬스터가 득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