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36화>
천문석은 성좌를 향해 기감을 뻗으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적은 무저갱의 마신 수백 수천이 뒤엉킨 중합체!
지금의 천문석으로서는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강적이다!
하지만 완전히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차원의 경계를 넘어오는 것만 막으면 된다.
이 중합체는 차원의 경계를 넘느라 무방비 상태다!
옥상에 서 있는데 몬스터가 가스관을 잡고 올라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넘어오지 못하게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
이런 전투야말로 자신의 특기다!
하지만 지금의 경지로는 부족하다.
지금 당장 초절정의 벽을 넘어 전생의 경지를 훔쳐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넘어오는 걸 막을 확률은 2할 정도다.
“……!”
순간 하늘이 천지간의 기를 몰아준 이유를 깨달았다.
초절정의 벽을 넘어 넘어오는 중합체를 상대하라는 뜻이다!
쿵-
천문석은 진각을 밟으며 강철봉을 앞으로 겨눴다.
폭풍 같은 기세가 끓어오르는 순간!
이 기세에 심상을 실어 하늘을 향해 쏘아 보냈다!
‘하늘님. 내력 몰아준 것만으로는 저울이 너무 가벼운데요? 뭐 좀 더 얹으시죠! 복권 1등 같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진동이 터져 나왔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하늘이 사기와 마력으로 검붉게 끓어오르고 중합체의 시선이 쏟아졌다!
한낱 인간은 개미처럼 밟아 죽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 수백이 뭉친 중합체의 시선이!
‘걸렸구나!’
까마득한 하늘에서 가공할 사기가 쏟아지는 순간!
천문석은 끌어올린 내력을 폭발시켰다.
급격히 시간이 느려져 마치 정지한 듯한 세상 속.
천문석은 생사팔문의 보법을 걸었다!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이 교차하는 팔문(八門).
생사의 간극을 걸어 사로에서 활로를 찾는 생사팔문의 보법을 역으로 펼친다.
쿵, 쿵, 쿵-
단숨에 사문으로 걸어 들어가 사로(死路)를 걷는다.
생사가 뒤섞인 팔문에서 생문이 하나 사라지는 순간.
영육을 짓누르는 강대한 사기에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사로를 걷는 발에서 올라오는 섬뜩한 살기에 무인의 혼백이 올올히 깨어난다.
무인이 벽을 넘는 것은 죽음이자 탄생이다!
벽 앞에 선 자신을 죽이고, 벽을 뛰어넘어 다시 태어난다.
만장단애를 올라 그 정점에 서고, 아무것도 없는 하늘로 나아가야 한다.
그 결과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라 비상하거나, 거꾸러져 까마득한 대지에 처박혀 박살 난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생사팔문의 보법을 역으로 펼쳐 사문으로 이어진 사로를 걸었다.
팔문이 모두 사문으로 변한 곳!
만장단애의 정점에 서서 존재할 리 없는 생문을 찾아 몸을 던진다!
이것이 지금 당장 초절정의 벽을 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다.
초절정의 경지를 넘은 후 다시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경지를 훔쳐야 한다.
무저갱의 마신 수백이 뒤엉킨 듯한 중합체를 이 세계에서 밀어 낼 경지를!
이 모든 건 하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하늘의 저울은 당연하단 듯 전생의 경지를 훔친 대가를 가져갈 것이다.
언제나 상상 이상의 대가를 가져가던 하늘의 저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대가를 가져갈지 알 수 있었다.
세계를 살리는 일이다.
저울의 반대쪽에 놓일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명운(命運).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하나로 잇는 삶, 생명 그 자체뿐이다.
* * *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은 기울어졌다!
하-
정지한 듯 느려진 시간 속에서 실소하는 순간.
쿵, 쿵, 쿵-
생사의 간극을 걷는 발걸음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고 곧 끝장날 현생의 기억이 떠오른다.
부모님의 실종, 보험금을 날름한 친척들, 빡센 학창 시절, 알바알바알바…….
‘나 정말 힘들게 살았구나…….’
끝없이 이어지는 알바의 기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때 얼굴들이 떠올랐다.
류세연, 특급 헌터, 철수형, 이세기, 임옥분 여사님, 이세영 선생님, 장민 대표, 장철 헌터, 한경석, 최후식, 이태성…….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얼굴과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천문석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건물주가 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전생의 최후 마공에 먹히기 전 스스로 천마신공의 12성 대성을 넘어 천강의 불길에 훅- 간 것보다야 훨씬 좋은 삶이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천문석은 몸에 새겨진 천강흔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선연한 기운을 흘리며 전신을 타고 흐르던 천강흔이 깜박였다.
피식 웃으며 생사팔문의 보법을 밟아 나가며 현생의 전투를 떠올렸다.
전생을 자각하고 심법에 입문하려 발버둥 치던 날부터 오늘까지 수많은 적과 싸웠다.
만만한 놈들도 있었지만, 쉽지 않은 놈들이 더 많았다.
특히 처음 무공에 다시 입문하기 전 무쇠 칼 들고 랩터와 싸웠을 때, 전생의 경지를 훔쳐서 강철 와이번과 싸웠을 때는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천문석은 일부러 벽을 넘는 걸 늦추고 늦췄다.
벽을 넘는 순간 전생·현생·후생, 삼생이 이어져, 혹시라도 천마의 업이 다시 찾아올까 걱정해서다.
그러나 이제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이 마경이 된 상태에서 게이트까지 열리면 어차피 모두 끝장난다.
엄청난 마력과 사기를 쏟아부어 마경을 만들어 내는 중합체.
저 중합체가 세계를 넘어오는 걸 어떻게든 막아 내야 했다!
초절정의 벽을 넘고.
전생의 경지를 훔쳐서!
천문석은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경지를 무업을 빠르게 훑었다.
하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초절정의 초입일 뿐이다.
그 정도 수준으로 저 중합체가 경계를 넘는 걸 막아 낼 전생의 경지는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스승님께 낚여 천문사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입문하게 된 무공.
평생을 벗어나기 위해 정사마의 무공과 유불선의 경전을 참오한 무공.
그러나 결국, 12성 대성을 넘어 전인미답을 경지에 올라, 한 방에 훅 간 후에야 벗어난 무공.
그 무공에 다시 입문해야 한다.
마도 18문의 지존공, 천마신공!
천마신공에 다시 입문하면 저 중합체가 경계를 넘어오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천마신공의 입문 구결은 사라졌다.
육체의 기억, 혼백에 새겨진 전생의 경지 무업, 심상 공간 그 어디에도 흔적도 없었다.
마공을 다시 배울 생각이 없기에 의도적으로 무시했지만,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무공을 배운다는 건 영육에 무(武)를 세우고, 혼백에 공(功)을 쌓는 행위다.
설령 명이 끊겨 영체가 하늘로 날아가고 육체가 대지로 스러져도, 혼백에 새겨진 공(功)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유한하나 본질은 무한한 법이기에 무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천마신공은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천마신공을 훔치지 않으면 당장 세계가 아작나게 생겼는데, 영혼육백 어디서도 천마신공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
하지만 실망하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천문석은 사라진 천마신공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역으로 펼친 생사팔문의 보법이 끝나 팔문이 모두 사문이 되고.
만장단애의 정상, 초절정의 벽 앞에 서는 순간.
천문석은 마음으로 물었다.
‘천마신공은 어디로 갔을까?’
천강흔을 향해.
어느새 멈춘 천강흔에선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 * *
천강흔(天罡痕).
현생 알바 천문석이 전생을 자각한 순간 몸에 생겨난 흔적.
그러나 천강흔이 처음 생겨난 건, 전생을 자각한 현생에서가 아니었다.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 천문석.
전생 천마가 천마신공의 12성 대성을 이루는 순간.
천마신공의 강기(罡氣)가 영육과 혼백에 새겨지고, 하늘과 땅을 잇는 천강(天罡)의 불꽃 속에서 한 방에 훅 갔을 때.
그 순간 전생 천마의 영혼육백에 천강흔이 새겨졌다.
현생에서 다시 한번 초절정, 초인경의 벽 앞에 서자 천문석은 모든 것이 생생히 기억났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천마신공의 12성 대성을 넘어 극에 달하고 다시 그 극을 넘자 마침내 뜻이 닿았다.
하늘에서 영과 혼을 받고, 대지에서 육과 백을 얻어 태어난 사람.
그 사람의 본질 영혼육백의 뜻이 하늘과 대지를 잇는 순간.
천강(天罡)의 불꽃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 천강의 불꽃 속에서 영혼육백에 새겨진 천마신공의 강기가 변화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12성 대성에 도달하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간 천마신공은 마침내 반전했다.
천강흔(天罡痕)으로!
삶은 유한하나 본질은 무한한 법!
그 말 그대로 무한한 본질에 새겨진 천마신공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있었다.
천마신공의 반(反), 천강흔이란 이름으로!
이 순간 천문석은 나아갔다.
만장단애 앞 허공.
사문(死文)의 중심.
초절정의 벽을 향해서!
단숨에 비상하여 초절정의 벽을 넘고, 반전된 천마신공 천강흔을 훔친다!
기경팔맥을 거칠게 흐르는 일기일원공이 폭풍처럼 일어나는 순간!
마음을 둔다.
영육도 혼백도 아닌 곳.
본질에 새겨진 반전된 천마신공.
천강흔에!
천문석은 초절정의 벽을 향해 나아가며 마음을 둔 ‘천강흔’을 일심으로 불렀다.
‘오라! 천마신공 나의 업이여!’
* * *
정지한 듯한 시간 속.
천강흔이 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이 새끼 진짜였구나!?’
반신반의하며 찍었는데, 진짜 천마신공인 상황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준비했다.
일기일원공으로 반전된 천마신공, 천강흔을 잡아 하늘의 저울에 올릴 준비를!
천문석은 천강흔을 하늘의 저울에 명운 대신 대가로 넘길 생각이었다.
당연했다!
아무리 반전했어도 마공은 마공이다!
천기를 뚫고 넘어와 세계를 마경으로 바꾸는 저놈들을 치워 버리는 즉시, 하늘의 저울에 올려 대가로 넘기는 게 나았다!
완벽한 계획이다!
자신은 초절정에 오르고, 세계는 마경이 될 위기를 벗어난다.
게다가 심복지환 숨어 있던 천마신공, 천강흔을 깔끔히 처리하고.
하늘의 저울은 명운 대신 극을 넘은 천마신공이란 대가를 챙긴다!
어쩌면 거스름돈을 두둑이 받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해도 이번 계획의 성공확률은 3할 이하!
계획대로 될 가능성보다 안 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진인사대천명을 넘어 질척질척 끈질기게!
최후의 최후, 죽는 순간까지 발버둥 치는 게 삶이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다시 한번 불렀다!
‘오라! 천강흔 나의 업이여!’
순간 찬란한 영기로 세상을 밝히는 천강흔!
‘시바! 이거 천강(天罡)이잖아?!’
12성 대성에 달한 천마신공의 강기!
하늘과 대지를 잇고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그 강기가 튀어나왔다!
이런 걸 숨기고 있었다니!
경악한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됐다! 이건 먹힌다!
성공확률이 3할을 넘어섰다!
이 천강으로 초절정의 벽을 넘고, 세계를 넘어오는 저놈들을 밀어 버린다!
천문석은 바로 초절정의 벽을 향해 나아갔다!
천강흔을 발판으로.
일기일원공을 날개 삼아.
초절정의 벽을 향해 비상하려는 순간!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느려진 시간 속, 까마득한 하늘에서 쏟아지던 가공할 사기가 연기처럼 흩날려 사라지고.
핏-
천강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던 천강흔이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꺼졌다.
그리고 세상이 격변했다.
휘이이이잉-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
부르르르르-
가볍게 진동하는 대지.
어느새 느려진 시간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는 순간 느껴진다.
마경이 먼지처럼 바스러지고 있다.
바위, 돌멩이, 흙, 얼어붙은 풀과 나무, 허공 그리고 하늘까지.
세상 모든 곳에서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1999년의 희박한 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공기의 흐름, 바람.
바다의 흐름, 해류.
진기의 흐름, 영맥.
지구에 진기에 흐름, 영맥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진기가 흐르고 있었다.
천문석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아니, 천문석뿐만이 아니었다.
천기에 구멍을 뚫고 마력과 사기를 쏟아 내던 중합체.
어느새 빛을 되찾은 달과 끝없이 펼쳐져 성좌를 그리는 별들.
대지 위 생명 있는 모든 존재와 생명 없는 모든 것까지.
천지 만물, 세계가 멈춘 채로 이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는 곳을 보고 있었다.
하늘 꼭대기, 천정에 무언가 있었다.
빛도 소리도 진동도 없이 나타나,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자리한 존재.
이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무저갱의 마신 수백 수천을 모아 놓은 것 같던 중합체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마치 태양 아래 촛불이 빛을 잃는 것처럼!
그리고 세계 자체를 떨어 울리는 거대한 심상이 터져 나왔다.
[ㅁㅁㅁ?! ㅁㅁ! ㅁㅁㅁ ㅁㅁㅁㅁ! ㅁㅁ ㅁㅁㅁ! ㅁㅁ ㅁㅁㅁㅁ!!]
고고성(呱呱聲)!
아이가 태어나 첫 번째 호흡하여 세계에 존재를 알리는 울음, 고고성.
지금 하늘에서 터진 심상은, 하늘 꼭대기 천정에 나타난 존재가 이 세계에 알리는 고고성이었다.
이 고고성은 언어를 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울림이기에 천지 만물이 이 울림을 따라 진동했다.
천문석은 고고성이 전하는 뜻을 마음으로 이해했다.
[ㅁㅁ산?! 한ㅁ! ㅁㅁㅁ 돌아ㅁㅁ! 김밥 ㅁㅁㅁ! 내가 ㅁㅁㅁㅁ!!]
너무나 높은 격을 지닌 존재의 고고성이기에, 초절정의 벽을 향해 나아가던 천문석도 가닥가닥 끊긴 일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 고고성의 빈 공간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채워졌다.
천문석은 입을 열어 고고성을 소리로 말했다.
“북한산?! 한국! 마침내 돌아왔다! 김밥 먹으러! 내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