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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99화 (400/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99화>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잠시 떨어져 그 문제를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배송의뢰를 완료하지 못한 천문석은 최설과 함께 형제 찜질방으로 갔다.

젖은 옷을 코인 세탁기에 넣고,

메고 있던 배낭을 안전 금고에 맡긴 후.

샤워하고 열탕에 몸을 담그고 때를 밀고 한증막에서 땀까지 뺐다.

그리고 찜질방 식당에서 양지와 고사리가 가득 들어있는 얼큰한 육개장을 먹었다.

오래간만에 땀을 쫙 빼고 제대로 된 육개장을 먹으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천문석은 감탄했다.

"으아- 시원하다. 이 찜질방 육개장 진짜 괜찮네!"

"...."

절로 터지는 탄성!

과연 수십 년 경력의 운송선 선장님이 추천할만한 육개장이다!

"캬- 이 육개장! 무작정 대파를 많이 넣는 게 아니라!"

"...."

“파 기름으로 제대로 다데기를 만들어 맛을 냈네!”

"...."

"육개장 전문점보다 오히려 더 낫다! 그렇지 않냐? 최설."

"...."

천문석이 계속 말을 쏟아냈으나 묵묵부답 육개장만 먹던 최설.

탁-

최설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배송 목적지에 인수할 사람이 없다고?!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으으윽- 어쩐지 이상했어. 이렇게 순조로울 리가 없는데···. 젠장젠장젠장!"

머리를 잡은 최설이 괴로워하는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나한테 대책이 있다."

"어?! 진짜로?!"

반색하는 최설.

"당연하지! 하하하-"

천문석은 자신 있게 대답하고 자신 있게 웃었다.

그러나 당연히 천문석에게 대책은 없었다.

배송 물품을 인수할 의뢰인이 없는 황당한 상황이라니!

누가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대책을 미리 마련한단 말인가?!

그러나 부사장으로서 부하직원 앞에서 아무 대책 없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우선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냈다.

"이번 배송의뢰의 전달 기한은 2주!"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인수할 사람이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7층까지 6일 만에 도착했으니까 말야!"

"즉 여기서 며칠만 기다리면 이곳에 인수할 사람이 올 거다!"

탕-

천문석은 바닥을 가볍게 내려치며 말을 맺었고, 최설은 확 풀린 얼굴로 웃었다.

"아, 그렇구나! 진작 말하지···. 난 그냥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할까 봐 걱정했잖아. 하하하-"

천문석은 가슴이 찔렸다.

최설에게는 며칠이면 인수자, 의뢰인이 올 거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이미 시청 701호 회의실을 대관한 단체와 사람들의 한 달 치 명단을 확인했다.

-공방 도시 찜질방 연합.

-공방 도시 호남 향우회.

-동대문 게이트 소멸 미스터리 연구회.

-아동의 키즈 카페 놀이 문화 연구회.

-나이트 아머 프라모델 동호회.

....

배송 목적지 공방 도시 100번지 건물,

시청 7층 701호 회의실.

한 달 동안 이 회의실을 빌린 단체와 사람 중에 배송품을 인수할 ‘추이린’은 없었다!

즉, 최설이 방금 말한 대로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추이린이 701호 회의실에 나타날 때까지!

'아니지?!'

이때 머릿속에 번뜩이는 기억이 있었다.

배송의뢰서에 적혀 있던 문장!

[이번에도 고산 마을 때처럼 '화려한 배송'을 기대할게.]

화려한 배송!

이세계 쿠팡맨 때의 배송 목적지 고산 마을에선 난장판을 뚫고 배송 상자를 전달했다.

'이거 설마 이 도시 어딘가에 있는 추이린을 찾아야 하는 건가?!'

순간 7층 입구에서 본 거대한 분지와 그 분지가 가득 찰 정도로 넓게 펼쳐진 공방 도시의 모습이 떠오르고, 절로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넓은 도시에서 어떻게 추이린을 찾아?!’

이때 최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래도 다행이다. 기다리면 끝난다니. 이 커다란 공방 도시에서 무작정 찾아다녀야 했으면···. 와!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진다. 하하-"

이 녀석, 뭐 이리 날카로워!?

배 타는 것도 그렇더니 말할 때마다 정곡을 찌르고 있다!

"뭐? 하하하-"

천문석은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으로 웃음부터 터트렸다.

그리고 재빨리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벌써 내 머릿속에는 모든 대책이 세워져 있어!"

"역시, 그렇지···? 하도 재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네. 흐흐-"

"나 이제 행운의 사나이라니까? 최설 사원! 재수 좋은 부사장님을 못 믿냐?"

"믿습니다! 충성충성! 행운 부사장님!"

최설은 장난스럽게 경례했고.

천문석도 마찬가지로 장난스럽게 경례를 받았다.

"충성! 그럼 오늘은 여기 찜질방에서 쉬고 내일부터 내 계획대로 움직이자."

"알았어. 으아아- 난 불가마에 몸 좀 더 지져야겠다. 젖은 채로 칼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아직도 몸이 으슬으슬하네."

"어, 그래. 저기 보니까 1인용 토굴 있더라. 몸 지지고 거기서 자라."

"그래? 잘됐네. 나 먼저 일어날게."

솔깃한 표정으로 일어난 최설이 찜질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웹브라우저를 실행시켰다.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에는 인트라넷이 설치된 상황.

웹브라우저를 실행시키자 바로 공방 도시 종합 포탈 화면이 떴다.

[공방 도시 인트라넷]

검색창, 뉴스, 검색 차트, 메일, 블로그, 원자재 시세···.

대형 포탈과 비슷한 구조의 공방 도시 인트라넷.

천문석은 검색창에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를 입력했다.

'사람 찾기.'

내일 아침 최설이 일어날 때까지 그럴듯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

'사람 찾기' 검색어를 입력하는 순간 공방 도시 인트라넷 사이트에 가득 표시된 흥신소, 정보상 바이럴 마케팅!

"하, 여기도야?! 바이럴 마케팅 도대체 누가 시작한 거야?! 던전 7층에 인트라넷에도 바이럴이 판치네! 뭐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가 없으니···."

분통을 터트린 천문석은 재빨리 바이럴 마케팅 게시물을 넘기며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았다.

이때 태그가 가득 달린 블로그 게시물 하나가 나타냈다.

#이름으로 사람 찾기 #사진으로 사람 찾기.

#이름 사진 없이 사람 찾기

#바이럴 아님 #흥신소 아님 #정보상 아님

#앞 광고 아님 #뒤 광고 아님

....

"뭐야 뭔 태그가 이렇게 많아?"

천문석은 게시물을 터치해 들어가 스크롤을 끝까지 내려 마지막 부분부터 확인했다.

점점 고도화되는 바이럴 마케팅.

이제 어지간해서는 이게 바이럴인지 정보 글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이걸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이 게시글 마지막 부분, 결론 부분에 업체 홍보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업체 홍보는 없고···. 어? 이거 댓글이 뭐 이리 많아?”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 천 개가 넘었다!

[댓글 1,391]

터치 순간 펼쳐지는 댓글들.

-당장 이글 내려라.

-와, 이거 하려면 얼마나 얼굴이 두꺼워야 하냐? ㅋㅋㅋㅋㅋㅋ

-에휴. 한심하기는 이런 방법으로 사람 찾을 수 있겠냐?

-윗댓이 맞음. 요새 이거 하는 사람 너무 많아서 제대로 안 먹힘.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현정컨' 검색해서 의뢰하세요! 거기 실장님 훈남임.

....

천 개가 넘는 댓글 대다수가 부정적인 의견들!

감이 왔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이면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다.

즉, 이 게시물은 바이럴이 아닌 실제로 먹히는 진짜 정보다!

천문석은 바로 화면을 올려 게시물을 정독했다.

게시물이 말하는 사람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괜히 바이럴 마케팅에 낚이지 말고 도시 전체의 헌터들과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청 공고 게시판 옆에서 ‘외치기’를 하라는 거였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

방금 시청 앞 공고문 게시판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사람들!

‘아, 그래서!’

깨달음의 순간 신동대문의 기억, 부산 던전을 내려오며 겪은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공고문 게시판.

-거대한 공방 도시.

-게시판에 모인 수많은 헌터와 일반인들.

-사람 찾는 전단지와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던 사람들.

-배낭에 들어있는 보이스 피싱 전단지.

....

단편적인 기억이 모이자,

어렴풋한 계획이 하나 떠올랐다.

계획은 아직 러프했지만, 촉이 왔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한 달이 넘게 생활했던 신동대문과 달리,

이곳 공방 도시는 책과 다큐멘터리로는 많이 봤어도 직접 겪은 건 하루도 안 됐다.

영상과 실제는 차이가 있고.

계획의 성공은 언제나 디테일에 달렸다.

그리고 디테일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천문석은 공방 도시 인트라넷에 올라온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훑었다.

7층 공방 도시에 대한 정보가 빠르게 머리에 쌓이고,

부산 던전 7층까지 내려오면서 겪은 일들이 툭툭- 떠올랐다.

처음 러프한 계획이 디테일을 갖추고 점점 형태를 갖춰 간다.

이렇게 3시간이 지났을 때 천문석은 계획을 완성했다.

[배송의뢰 완료 계획!]

계획의 목적은 공방 도시 어딘가에 있거나 곧 공방 도시에 도착할 ‘추이린’을 찾아서 배송 물품을 전달하는 것!

그리고 이 계획은 먹힌다는 감이 왔다.

추이린은 배송의뢰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번에도 고산 마을 때처럼 '화려한 배송'을 기대할게.]

화려한 배송!

자신이 세운 계획과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단어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일으키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8시 30분.

가장 먼저 할 일은 공방 도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선불 휴대폰을 구입하는 것,

그다음에 미리 검색해둔 '잡화점, 메이드 카페, 고양이 카페, 인쇄소'를 들린다.

상점이 닫기 전에 준비를 끝내고, 아침이 될 때까지 밑 작업을 해야 했다.

천문석은 최설이 들어간 찜질방 입구를 힐끗 봤다.

지금 최설을 데리고 나갈 필요는 없었다.

최설은 내일 정말 중요한 일을 해줄 테니까!

순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최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혼자라면 이 계획을 차마 실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카캬카-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바로 찜질방에서 나가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1인용 수면 토굴에서 잠든 최설을 깨웠다.

"최설. 일어나 이제 계획을 실행할 때다."

"으아아- 뜨뜻하게 잘 잤다."

최설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하룻밤 사이에 초췌해진 천문석의 얼굴!

"너 얼굴이 왜 그래?! 밤새 한숨도 못 잔 거야? 혹시 너 밤새워 일한 거야?"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원래 부사장이 직원보다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야. 괜히 부사장이겠냐?"

"아니 그래도···. 잠은 자야지."

"됐어. 의뢰 끝내고 자면 돼. 그보다 얼른 씻고 아침 먹자. 우리 오늘 할 일 많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렸고,

이 모습을 본 최설은 어쩐지 뭉클했다.

천문석의 초췌한 얼굴을 보는 순간,

무공을 전수 받을 때 이상의 감흥이 밀려왔다.

대학, 회사, 삼합회에서 겪은 수많은 사람 중에서 천문석 같은 사람은 없었다.

부하직원은 편하게 자게 하고,

자신은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뛰어다녔다니!

천문석 부사장은 최설이 그동안 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이 순간 가슴이 간질거리고,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문득 김철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건 너무나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설은 앞서 걷는 천문석을 빠르게 따라잡아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금방 씻고 나올게. 오늘은 같이 일하자."

샤워하고 식사하고 옷을 갈아입고,

찜질방 밖으로 나온 천문석과 최설.

"어제 내가 준비한 것들이 있거든. 그거부터 찾으러 가자."

천문석은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최설이 바짝 따라붙어 걸으며 활기차게 외쳤다.

"빨리 가서 단숨에 해치워버리자!"

그리고 1시간 후 최설은 황당해하는 눈으로 테이블을 봤다.

이동식 간판,

메이드 복,

고양이 인형 옷,

상자에 가득 담긴 전단지.

"....그러니까 이걸로 뭘 한다고?"

천문석은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설 넌 이 메이드 복을 입고, 이 상자에 들어있는 전단지를 나눠주면 된다."

쓰윽-

상자에 담긴 전단지 한 장이 최설 앞에 놓였다.

///

[재금 그룹 오너의 후계자, 레이 실트를 찾습니다.]

[레이 실트를 발견하면 꼭 이 [보안 번호]로 연락해주셔야 보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

손으로 만든 조악한 전단지는 낯이 익었다.

"이거 보이스 피싱 전단지잖아? 어, 전화번호는 왜 지웠어?"

천문석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보이스 피싱 전단지. 전화번호 지운 건 여기로 전화 걸면 안 돼서고. 그보다 중요한 건 여기랑 여기, 그리고 이 뒷면이다."

천문석은 전단지 위쪽과 아래쪽 작게 인쇄된 문장을 가리켰다.

[이면지 활용]

[이면지 활용]

그리고 전단지를 뒤집자 나타난 뒷면.

[추이린 수석 연구원을 찾습니다.]

[090-222-1212 찾으신 분은 이곳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게 뭐야? 아래 문장은 왜 거꾸로 인쇄한 거야?"

최설이 의아해하는 얼굴로 보는 순간 천문석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잘 봐라."

천문석은 전단지를 가로로 한번 접고 세로로 다시 한번 접었다.

두 번 접힌 전단지를 보는 순간.

최설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

[재금 그룹 오너의 후계자 | 추이린 수석 연구원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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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22-1212 찾으신 분은 이곳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재금 그룹 오너의 후계자, 추이린!

단 두 번 접은 것만으로 ‘레이 실트’를 찾던 전단지가 ‘추이린’을 찾는 전단지로 변했다!!

이 순간 최설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청난 무공,

대인대덕한 마음,

훌륭한 직장 상사.

....

이런 건 천문석의 본질이 아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분노한 헌터들.

박살 나는 사무실.

수백 명이 뒤엉킨 패싸움.

뻥뻥 터져나가던 상수도와 폐허가 된 광장.

아무 전조 없이 광장을 뚫고 나온 거대 괴수.

....

이 모든걸 포함하는 한 단어.

난장판!

천문석의 본질은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지금 천문석은 자신의 본질을 다시 한번 펼치려 하고 있었다.

이곳 공방 도시에서!

모든걸 깨닫는 순간 최설은 외쳤다.

"야, 이 미친놈아! 지금 뭐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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