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98화 (39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98화>

쿠웅-

운송선이 부두에 닿는 순간.

후드득-

천문석은 계류용 밧줄을 던지고 부두로 뛰어내렸다.

"바로 고정하겠습니다!"

꽈드드득-

천문석은 운송선과 이어진 밧줄을 끌어당겨 운송선을 계류용 기둥에 단단히 고정했다.

운송선은 미동도 없이 부두에 계류됐고,

최설이 지게를 짊어지고 부두에 내렸다.

천문석은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선장님 배 태워주신 거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키를 잡고 있던 선장은 갑판으로 나와 대답했다.

"짐 날라줘서 내가 더 고맙네! 둘이서 다섯 사람 몫을 했어! 헌터 은퇴하면 언제든 찾아와! 내가 배 소개해 줄게! 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휙휙- 날아오는 캔맥주들.

"그거 가져가라! 선물이다! 그리고 얼큰한 육개장 생각나면 형제 찜질방 가봐라! 거기 육개장이 이 도시에서 최고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캔맥주를 챙긴 천문석은 다시 한번 손을 흔들고 바로 몸을 돌렸다.

“으으으- 추워. 얼른 도시로 들어가자. 몸이 완전히 젖었다.”

최설이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저기 사람들 모인 곳이 부두 출입구 같은데? 바로 가자."

천문석은 앞장서서 크고 작은 운송선이 가득한 부두를 지나 공방 도시 입구로 이동했다.

5층 광산 도시를 출발한 지 2일째 저녁.

부산 던전에 들어온 지 6일 만에 천문석과 최설은 배송의뢰 목적지인 공방 도시에 도착했다.

추이린이 예상한 날짜보다 며칠이나 빨리, W. S. 인더스트리와 재금 그룹이 도착하기도 전에 배송의뢰 목적지에 도착했다.

낚시감이 어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끼를 가진 어부, 천문석이 어장에 도착했다.

---

천문석과 최설은 간단한 신원 확인 후 바로 부두 지역을 벗어났다.

부두 지역을 벗어나 도시로 들어갈수록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광화문 지역 같은 엄청난 유동인구가 몰리는 번화가만은 못해도, 공방 도시는 던전 7층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무기를 든 사냥 헌터, 전동 지게를 짊어진 생활 헌터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반인들도 많았다.

"여기 던전 7층인데 생각보다 일반인이 많은데?"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는 최설.

천문석은 로브를 걸친 사람을 슬쩍 가리켰다.

"저기 로브 걸친 사람들 보이지? 여기 공방 도시에 마력 각성자들이 차린 공방이랑, 길드, 기업에서 만든 연구소가 많거든. 거기서 일하는 일반인들이 많아. 그리고 돈이 흐르면 사람들이 모여들잖아?"

천문석은 주위 건물에 가득한 간판을 가리켰다.

명품 판매장, 프랜차이즈 카페, 사진관, 노래방, PC방, 찜질방, 식당, 헌터 상점···.

서울 번화가를 걷는 듯 주위에는 온갖 상점이 가득했다.

“아···.”

최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판을 보더니 새삼 감탄했다.

"전기 가로등에 LED 간판이라니···. 이건 뭐 던전 속 도시가 아니라 지구 휴양지라고 해도 믿겠다."

최설의 말대로였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자,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

5층, 6층 건물과 유리창 너머 환하게 전등을 밝힌 상점들.

높게 솟은 빌딩에 붙은 LED 전광판에선 광고 영상이 재생되고.

넓은 도로에는 마력 엔진이 아닌 조용한 전기모터를 단 자동차와 전기 버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는 광범위하게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던전 속 도시가 아니라 지구의 친환경 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저 탑으로 전기를 만든다고?"

최설이 건물 위로 높게 솟은 증기를 흩날리는 탑을 가리켰다.

"맞아. 증기탑. 이 도시를 세우기 전부터 있던 유적을 재활용한 거다."

저 증기탑이 공방 도시가 이렇게 엄청난 양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였다.

천문석은 걷고 있던 인도 판석을 툭 건드렸다.

치이-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판석 틈에서 새어 나오는 하얀 증기.

천문석은 하얀 증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 증기탑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열점의 열에너지와 강의 물을 이용해 증기를 만들어 내고. 그 증기가 도시 지하에 깔린 증기관을 통해 이 공방 도시 전체로 공급되거든. 그 증기로 발전기를 돌려서 이 도시 전체에 공급할 전력을 생산하는 거다. 일종의 지열 발전이지.”

"그래서 바람은 찬데 땅은 따뜻하구나."

최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었다.

"그래도 신기하네. 마력장 간섭 현상 때문에 던전 안에서는 전자기기는 사용이 안 될 텐데 말야."

"저기 산에 세운 마력 통신 안테나로 무슨 결계 같은 걸 만들었다고 하던데?"

천문석은 산등성이에 세워진 안테나를 가리켰다.

"저걸로 전자기기 사용이 가능한 결계를 만들었다고···? 게이트 안정화 구역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한 거였어?"

어이없어하는 최설을 이해시키는 건 간단했다.

천문석은 누구나 듣는 순간 납득하는 이름을 댔다.

"저거 재금 그룹에서 만든 거다."

“에휴- 진짜 뭐 좀 신기한 거만 있으면, 전부 재금 그룹이네. 재금 그룹 있는 한국이 부럽다.”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했다.

"흐흐흐- 한국 사람도 재금 그룹은 신기해. 그보다 빨리 움직이자, 배송의뢰 바로 끝내야지."

"지금 의뢰 완료하려고? 이제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최설의 말대로 석양이 드리우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오니 해가 산맥 너머로 떨어지면 순식간에 밤이 될 거다.

하지만 천문석은 미루지 않고 지금 바로 배송의뢰를 끝낼 생각이었다.

"이곳 숙박비 엄청 비싸! 의뢰 끝내고 상점가 들렸다가 바로 적당한 배 타고 나가자!"

"몸이 완전히 젖었는데? 좀 씻고 옷은 갈아입어야지. 이거 봐라."

최설은 어이없어하며 옷을 꾹 쥐어짰다.

후드득-

옷에서 쏟아지는 강물.

그러고 보니 7층 입구 급류를 지나며 전신에 물을 뒤집어썼다.

훈훈한 지열에 아직은 괜찮지만, 해가 지고 기온이 빠르게 떨어지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럼 의뢰 완료하고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씻고 옷만 갈아입자. 어, 저 찜질방?!"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데 운송선 선장이 육개장 맛집이라고 소개해 준 찜질방 간판이 보였다!

[형제 찜질방]

"잘됐네. 의뢰 끝내고 저기서 육개장 먹자!"

천문석은 배낭에서 배송 서류를 꺼내 배송 목적지를 확인했다.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중앙광장 100번지 701호]

[반드시 의뢰인에게 직접 전달할 것!]

"중앙광장 100번지. 중앙광장이 어디지···."

천문석이 던전 지도를 꺼내 확인하자 최설이 외쳤다.

"여기 버스 정류장! 여기에 주변 간략도 있어!"

"잘했다! 최설!"

천문석은 버스 정류장에 있는 지도를 확인했다.

중앙광장은 대략 800미터 정도 거리.

"걸어가도 되겠는데. 바로 움직이자."

천문석과 최설은 오래 걸리지 않아 중앙광장에 도착해, 광장에 접한 상점 주인에게 100번지 건물의 위치를 확인했다.

"100번지? 저기잖아."

상점 주인은 중앙광장 북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다른 건물과는 달리 대리석을 외벽에 붙인 10층 건물.

"하, 일이 착착 진행되네. 바로 의뢰 끝낼 수 있겠다."

천문석은 바로 중앙광장을 가로질러 100번지 건물로 다가갔다.

"어라,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모여있지?"

최설의 말대로 목적지 10층 건물 앞에는 헌터와 일반인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왠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광경.

"길드 사무실이 모인 건물인가?"

의아해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모여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공고문이 붙은 게시판을 보고 있는 헌터들!

그리고 일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헌터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외쳤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은···.”

“새로 개입한 메이드 카페입니다.”

....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신동대문 시청 앞 공고문 게시판!

그렇다면 이 건물은?

"여기 시청이잖아!"

"어, 진짜네. 여기 시청 건물이잖아? 여기가 진짜 배송 목적지야? 의뢰인이 공무원인 거냐?"

“아닌데···.”

천문석은 다시 한번 배송 서류를 확인했다.

"공방 도시 중앙광장 100번지 701호. 맞는데? 뭐지, 의뢰인 지금 시청에 와 있는건가?"

천문석은 바로 시청 입구 직원에게 물었다.

"저 이 건물 701호로 배송 왔는데···."

"....네? 어디로 배송을 오셨다고요?"

"701호에 배송 왔습니다. 던전 밖, 서울에서 온 물품입니다."

천문석은 배송 서류를 직원에게 보여줬다.

"701호요? 이상하네···. 잠시만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직원은 전화를 들고 내선 번호를 눌렀다.

"과장님. 701호에 서울에서 배송 왔다는데요?"

=....

"네, 네. 아, 그렇군요! 그럼 바로 올려보내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직원이 방문자용 명찰을 건네주며 설명했다.

"저 입구로 들어가시면 홀 맞은편에 엘리베이터 있습니다. 7층 올라가시면 통로 끝에 701호 보입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다니까 바로 701호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최설에게 말했다.

"얼른 배송 끝내고 내려올게. 저녁은 형제 찜질방에서 몸 좀 녹이고 육개장 먹자."

"어, 갔다 와. 으으으- 점점 추워지네. 빨리 내려와."

"알았어. 금방 끝날 거야."

배송 상자를 든 천문석은 바로 시청으로 들어가 1층 홀을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땡-

기다렸다는 듯 바로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와! 이번일 왜 이리 재수가 좋은 거야!"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7층까지 올라갔다!

“캬-! 연속 행운!”

천문석은 가벼운 탄성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직원의 말대로 통로 너머로 보이는 701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휘이, 휘휘휘-

발걸음은 너무나 가볍고,

절로 휘파람마저 나왔다.

어쩐지 이번 의뢰가 자신의 헌터 생활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만 같았다.

모든 계획이 제대로 들어맞는 의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가 이상했던 거다.

삼겹살 구워 먹다가 서울 사태가 터지고,

이세계 쿠팡맨 하다가 마수와 몬스터, 하늘 고래가 나타났다!

신동대문에서는 고블린 잡다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리고,

지하터널에선 거대 괴수 위에서 개같이 구르다가 이세계 사막에 조난할뻔했다!

여기에 제주도가 정점을 찍었다.

20년 동안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안전지대 제주도.

그곳에 휴가를 가자마자 거대 괴수, 마신의 강림체, 카지노 나이트의 난장판을 잇달아 겪다니!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이어지는 사건·사고·고난!!

천문석은 힐끗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은 법!

그동안 사건·사고·고난이 겹겹이 놓인 깊은 계곡을 지나왔으니.

이제는 당연히 행운·영광·재부가 높게 쌓인 산이 나오는 게 하늘의 이치였다!

“마침내 하늘의 저울이 공평무사함을 찾았구나!”

카캬카-

크게 한번 웃은 천문석은 헌터 생활의 전환점이 될 701호 문을 두들겼다.

쿵, 쿵, 쿵-

"수석 연구원님. 배송 왔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701호.

넓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

잠시간의 침묵 후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회의실 곳곳에서 들려왔다.

"수석 연구원?"

"...저게 무슨 소리야?"

"안동소주 배송 온 거 아니에요?"

"여기 사장 중에 누구 연구원 있어?"

"최 사장이 어디 대학 나왔다고 했던 거 같은데?"

"최 사장은 군대 나왔고."

....

"...."

천문석은 조용히 문을 닫고 명판을 다시 확인했다.

[701]

701호가 맞다!

다시 문을 열고 회의실 안을 살피자,

회의실 벽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중앙광장 상가 번영회 18차 정기 총회]

“....”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천문석은 굳어버렸다.

배송의뢰를 한 추이린의 계획대로라면,

천문석은 재금 그룹과 W. S. 인더스트리가 비밀 협상 중일 때 이 회의실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재금 그룹과 W. S. 인더스트리의 도착이 늦어지고,

천문석이 추이린의 예상보다 빠르게 공방 도시에 도착하면서 타이밍이 어긋나버렸다.

아주 약간의 어긋남.

이건 그냥 2, 3일만 기다리면 저절로 타이밍이 맞춰질 그런 아무것도 아닌 작은 어긋남이었다.

그러나 추이린에겐 불행하게도 천문석은 문제가 생겼는데 그냥 기다릴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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