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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91화 (39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91화>

으아아악-

최설은 악을 쓰며 몸을 일으켜 늪지 고블린 사체를 한곳으로 모았고.

휘이, 휘휘휘-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며 한곳에 모인 늪지 고블린 사체를 확인했다.

고품위 철광석으로 만든 조잡한 무기,

사이한 주술력이 깃든 토템,

늪지 고블린 마비독.

대단한 전리품은 없었지만, 거점 도시에서 팔면 쏠쏠한 물건이 많았다.

전리품 자루는 금세 가득 찼고 당연한 듯 최설이 다시 짊어진 지게 위에 실렸다.

툭-

"...."

"왜?"

천문석이 씨익 웃으며 묻는 순간.

최설은 머리에서 열기가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폴리머 선배가 왜 이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봤는지.

게릭과 클릭스 선배가 왜 도망치듯 휴가를 갔는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 수 있었다!

힘들다···.

너무 힘들었다!

무공 각성자의 피지컬로도 진짜 더럽게 힘들었다!!

으드드득-

지게 끈에 어깨가 끊어질 듯하고,

등에 실린 무게에 척추가! 골반이! 다리가!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만 같다!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

“수련이라 생각하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걸어. 알잖아? 일어서면 어떻게든 걸을 수 있는 거?”

“....”

"그리고 너 지금 메고 있는 지게 무게, 게이트 전쟁 때 사람들이 나르던 지게 무게랑 별 차이 없다."

“....”

“무공도 결국 사람이 펼치는 것! 같은 무공을 배워도 위력이 다른 건! 근성과 터프함 때문이다! 내가 괜히 너한테 지게를 지게 하는 게 아냐! 이게 다 수련이다!”

어린 시절 지금까지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공을 수련하면서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다.

짐이 가득 실린 지게를 짊어지고 근성과 터프함을 키우라니!?

말만 들으면 무공 수련이 아닌 짐 나르기 수련 같았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게도, 이게 효과가 있었다.

3층, 4층, 5층으로 내려오는 지난 4일.

시킨 대로 지게를 짊어지고, 가르쳐준 호흡법으로 호흡하고, 마종권을 수련하자 정체됐던 검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천문석의 한없이 가벼운 말과 행동과 달리, 그 가르침 만큼은 진짜였다!

이렇게 얼핏얼핏 드러나는 무학의 대종사 같은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존경심이 치솟다가도, 얄밉게 도발할 때면 머리끝까지 분통이 치솟았다.

지금처럼.

“야,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몰라? 당장 안 움직이면 지게 위에 올라간다?!”

이 녀석은 진짜 할 놈이었다.

으아아악-

최설은 악을 쓰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등에 실린 무게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지난 나흘 동안 그랬던 것처럼!

쿵, 쿵, 쿵-

최설은 힘겹게 발걸음을 떼어 나아갔다.

이때 천문석의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설 사원!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다!"

"...."

최설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곧 우리는 5층 거점 도시에 도착한다!"

"...."

마침내 1차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최설은 ‘그래서 뭐?’라는 생각만 들었다.

5층에 내려올 때까지,

지난 4일 동안 단 한 번도 거점 도시의 여관에서 잔적이 없었으니까.

몸으로 때우겠다는 말 그대로,

주로 야지에서 노숙했고, 거점 도시에서 자도 광장이나 뒷골목에 천막을 치고 잤다!

그런데 뭐?

거점 도시가 앞에 있다고?!

'이 새끼가 지금 약 올리나?!'

"야! 너 이 새···!"

최설이 폭발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이번에는 진짜 아니다. 여기 1차 목적지잖아? 정비해야지? 오늘은 진짜로 여관에서 쉴 거다."

"어?!"

당황하는 순간 잇달아 들려오는 목소리.

"정보 수집하고 배도 찾아야 하니까."

"오늘은 목욕하고, 옷도 세탁하고, 제대로 된 음식도 먹으면서"

"5층 거점 도시 여관에서 편하게 하루 쉴 거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최설 사원."

툭, 툭, 툭-

지게 끈이 깊게 파고든 어깨를 두들기는 다정한 손길.

"부사장님···."

최설이 울먹이며 대답할 때.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뒤처지면 넌 광장에서 노숙이다."

“네···?”

최설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파바밧-

천문석은 경쾌한 움직임으로 치고 나가며 말했다.

"나랑 100미터 이상 벌어지면 노숙이라고! 마지막이니까 끝까지 힘을 내라! 최설 사원! 가르쳐준 호흡법 유지하고! 마음을 담아 걷고!"

하하하하하-

천문석의 시원한 웃음 뒤로,

육중한 발걸음 소리와 절절한 분노가 담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쿵, 쿵, 쿠웅-

“야, 이 씹!!”

----

“저긴가?”

건물 사이로 보이는 얼핏 보이는 간판.

[...터 주점]

천문석은 골목으로 들어가 건물을 확인했다.

[형제 헌터 주점]

주점과 여관을 겸하는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이름을 보니 부산 던전에 들어오기 전 부산 던전대로 잡화점에서 소개받은 그 주점이 맞았다.

"최설! 여기야! 주점 겸 여관이네! 먼저 들어가서 방 얻을 테니까. 너도 바로 와라."

광장에 앉아 숨을 고르던 최설은 지게를 짊어지고 일어나 광장을 가로질렀다.

쿵, 쿵, 쿵-

최설이 산처럼 짐이 쌓인 지게를 짊어지고 걷자 단단한 광장 판석이 울렸다.

이 모습을 본 헌터들이 감탄했다.

"와! 몸은 가는 데 힘이 엄청나네!?"

"육체 각성자, 무공 각성자? 검을 봐선 무공 각성자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육체 각성자다."

"왜?"

순간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는 헌터.

그러나 최설의 귀에는 이 속삭임마저 그대로 들렸다.

"멍청한 육체 각성자가 아니면 도시 안에서까지 지게를 짊어지고 다닐 리 없잖아? 밀고 다니지."

'...밀고 다닌다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커다란 포대가 가득 실린 지게를 밀고 다니는 헌터들!

그리고 이 순간 지난 4일, 몇 번이나 봤던 이 모습의 의미를 깨달았다.

지게 다리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바퀴!?"

경악한 최설은 재빨리 여관으로 다가가 벽에 지게를 기대놓고 지게 다리를 확인했다.

자신이 맨 조립식 지게에는 바퀴가 달리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4일 동안 멍청하게 지고 다녔던 건 아니었다!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손님. 그 지게는 초창기 모델이라 바퀴가 안쪽에 숨겨져 있어요."

여관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조립식 지게 다리 아랫부분을 위로 밀어 올렸다.

철컥-

철봉 부위가 열리고 쏙 튀어나오는 바퀴.

"살짝 들어주세요."

직원은 지게가 들리자 순식간에 지게 다리에 바퀴를 빙글빙글 돌려서 고정했다.

"자 끝났습니다! 이제 밀고 다니시면 돼요! 그런데 어지간하면 이 지게 바꾸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거 게이트 전쟁 초기 모델이라 신형 지게와 비교하면 너무 무겁거든요."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최설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며 외쳤다.

"천문석! 너 이 지게!"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설?"

"네? 제가 최설이 맞는데."

최설이 당황하자,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열쇠와 종이를 불쑥 내밀었다.

"먼저 들어온 동료가 이 종이 전해주라고 하더군."

종이를 받는 순간 이어지는 목소리.

"방은 3층 305호. 뜨거운 물은 밤 10시까지만 나와. 세탁물은 바구니에 담아서 문 앞에 놔두면···."

여관 주인은 카운터를 향해 외쳤다.

"오늘 세탁 몇 시까지 가능하지?!"

"오후 5시까지 세탁돼요!"

카운터 뒤에서 몸을 일으키며 대답하는 직원.

"들었지? 오후 5시까지 주면 오늘 안에 세탁건조 가능해. 그 지게 들고 올라갈 때 계단 가장자리로 걷고. 그럼 난 자네 동료가 부탁한 일을 해야 해서···."

주인은 폭풍같이 말을 쏟아내고 문밖으로 나갔다.

텅 빈 여관 1층,

최설은 천문석이 남긴 종이를 확인했다.

[최설 편하게 쉬어. 내 방은 304호다. 방 안에 세탁물 있으니 세탁 맡겨주고, 마수랑 몬스터 부산물 처분하고, 강화 전투복 충전하고 장비, 무기 정비해둬. 그리고 수통 물 채우고 보존 식품 확인하고 장작은 팔고 고체연료······.]

편하게 쉬라는 말과는 달리 끝없이 이어지는 지시 사항.

최설은 천문석이 남긴 종이를 꾹꾹 눌러 아주 작게 구겨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단숨에 지게를 지고 3층 305호로 들어가 욕실 문을 열었다.

타일이 깔린 욕실 안 수세식 변기와 욕조가 있었다!

그리고 욕조에 달린 수전 손잡이를 돌리자 놀랍게도 물이 콸콸 쏟아졌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지난 4일 동안의 강행군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흥이 밀려오는 순간.

최설은 번개같이 욕실 밖으로 옷을 벗어 던지고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뜨거운 물이 몸에 닿는다!

몸에 쌓이고 쌓인 땀과 먼지가 씻겨져 내려가고,

무거운 지게에 짓눌려 터진 몸에 활력이 다시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온수 샤워를 하는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설레어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때 눈에 들어온 샴푸와 트리트먼트, 비누, 거품 타올!

최설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거품을 내서 몸까지 씻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몸을 누이며 욕조 덮개를 펼쳤다.

하아아아아-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에 몸에 쌓이고 쌓인 피로가 단숨에 날아간다!

단단하게 굳은 어깨가 스르륵- 풀리고, 뜨거운 열기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며 천천히 눈이 감겼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내려와 부산 던전에 들어온 지 4일째.

마침내 온기를 느끼며 잠드는 순간.

최설은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행복은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가 달린 욕조에 있었다.

그렇다면 불행은 어디에 있을까?

문득 든 질문의 답 또한 바로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각서. 거기에 사인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최설은 기절하듯 욕조 안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끔찍한 악몽을 꿨다.

"안돼···."

"따라가면 안 돼···."

"폴리머, 폴리머를 보내······."

---

"자 5천 원."

"와, 던전에서 현금을 받을 줄 몰랐네요?"

상점 주인은 5천 원 지폐를 받고 나무젓가락에 꽂힌 기다란 과일을 건네며 웃었다.

"여기는 한국 아닌가?"

"그렇긴 하네요. 하하-"

확 올라오는 꽃냄새와 붉은 과육을 가진 과일.

이곳 5층의 특산품 던전 멜론이었다.

천문석 꿀처럼 단 던전 멜론을 먹으며 거점 도시 시장을 걸었다.

늦은 여름 오후.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천천히 기울어가고,

물 냄새가 가득 담긴 신선한 공기가 불어온다.

넓게 뚫린 도로에서는 커다란 포대 자루를 실은 수레와 마력 엔진 차량이 이동하고,

인도와 접한 상점에는 지게에 묵직한 포대 자루를 올린 채 상점 주인과 흥정 중인 헌터들이 보였다.

평범한 시장의 늦은 오후였다.

단, 여기가 부산 던전 지하 5층만 아니라면!

천문석은 태양을 향해 기감을 뻗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질러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가는 기감!

그러나 기감은 결코 태양에 닿지 못했다.

우주에 떠 있는 진짜 태양처럼!

태양뿐만이 아니다.

물기 가득한 바람, 신선한 공기, 넓게 퍼져나가는 소리.

기감이 오감이 말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은 닫힌 공간 던전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열린 공간이라고!

부산 던전 지하 5층이 마치 게이트 너머 이세계처럼 열린 공간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4층 전형적인 지하 던전을 내려오자 나타난 공간이 지상과 같으니 마치 던전 밖으로 나온 것만 같았다.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보게 되자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진짜로 초월적인 존재가 부산 던전을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있다면 서울에 땅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을 때,

마침 찾던 게 보였다.

푸르게 반짝이는 광석이 가득 담긴 포대!

한 헌터가 상인에게 푸른 광석이 담긴 포대를 넘기고 헌터 카드를 받고 있었다.

상인은 곧 직원을 불렀고 직원은 푸른 광석이 담긴 포대를 수레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수레를 미는 직원을 뒤쫓았다.

저 푸른 광석은 5층의 주요 원자재,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품위 철광석이었다.

저 고품위 철광석은 마력회로가 새겨지는 보안등급 강화 강철, 나이트 아머, 강화 해머 같은 마력 물품을 만들 때 사용된다.

5층에서 생산된 저 고품위 철광석이 갈 곳은 두 군데였다.

위와 아래.

[위]

5, 4, 3, 2, 1층을 거쳐 던전 밖 '포항 제철소'에서 제련되거나.

[아래]

6층의 제련 도시를 거쳐 7층의 '공방 도시'에서 마력 각성자들이 만드는 마력 무구의 재료로 쓰이게 된다.

7층의 공방 도시.

그곳이 이번 배송 의뢰의 목적지였다.

이때 철광석을 실은 수레가 멈추고,

물기를 물씬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자,

넓은 호수로 뻗어 나간 커다란 부두가 보였다.

이 부두에 정박한 십여 척의 배에 철광석과 원자재, 생필품이 실리고, 봉인된 안전 상자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눈앞의 호수와 배가 천문석이 5층의 여러 거점 도시 중 이곳 광산 도시로 온 이유였다.

이곳 광산 도시가 자리한 호수에서 뻗어 나가는 강은 던전 6층, 7층으로 이어진다.

저 배들은 이곳 5층의 광산 도시에서 철광석을 싣고 출발해.

6층 제련 도시에 철광석을 내려놓고 제련된 철괴를 싣고,

7층 공방 도시에 제련된 철괴를 내려놓고 마력 무구를 싣고 돌아온다.

즉, 이곳 부두에서 배를 타면 7층 공방 도시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부두를 직접 확인하러 오기 전 이미 형제 헌터 주점 주인에게 7층 공방 도시행 배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일 이 부두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면 길어야 2일이면 7층 공방 도시에 도착한다.

7층의 공방 도시의 지정된 배송장소에서 의뢰인에게 배송 물품을 전달하면 의뢰는 끝.

6일 만에 깔끔하게 의뢰가 끝나는 거다!

의뢰는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나고,

최설은 생각보다 더 지게를 잘 옮기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뻔했다.

티끌 모으기!

7층 공방 도시에서 최대한 많은 물건을 사서 던전 밖으로 나르는 거다.

튼튼한 무공 각성자 최설의 지게에 실어서!

빠른 의뢰 달성.

몬스터 사냥 소득.

던전 물품 판매 이익.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캬카-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며 헌터 형제 주점으로 향했다.

휘이, 휘휘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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