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66화 (36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66화>

촤아아아-

커다란 파도가 해변에 밀려 오는 순간 처절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그리고 거친 파도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한 사람!

거친 파도와 용오름, 광기 어린 바닷물 생명체들이 들끓는 바다를 뚫고 마침내 해변에 도착한 천문석이었다.

촤아아아-

철퍽, 철퍽, 철퍽-

천문석은 파도에 밀려 온 온갖 잡동사니를 지나 해변 위 모래사장으로 올라갔다.

푹, 푹, 푹-

그리고 발아래 마른 모래가 느껴지는 순간.

풀썩-

쓰러지듯 마른 모래 위에 드러누웠다!

하아, 하아-

거친 호흡과 터질 듯 경련하는 팔다리!

간신히 폭풍우를 뚫고 제주도 해변까지 헤엄쳐 왔다.

구명조끼를 안 입었으면, 저 미친 바다에서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다.

지금 당장이라도 눈만 감으면 석 달 열흘이라도 잘 수 있을 듯 피곤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천문석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뭉게구름이 지나가는 푸른 하늘에는 뜨거운 태양이 떠 있고.

거칠게 요동치던 바다는 어느새 진정돼 거친 파도가 빠르게 잦아들고 있다.

지금 있는 곳은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제주도 서쪽 해변!

해변에는 용용이가 일으킨 폭풍에 밀려 온 자잘한 잡동사니가 잔뜩 있었다.

감이 왔다.

이곳에 이태성 길드장, 이세영 선생님도 밀려 왔을 거라는 감이!

천문석은 해변을 빠르게 걸으며 외쳤다.

“선생님! 길드장님!”

이때 멀리 해변 숲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곧 숲에서 뛰어나온 사람이 모래사장을 달렸다.

타다다닥-

꿀벌 가면을 쓰고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은 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사람!

“이세영 선생님?”

“나야! 선생님!”

선생님이란 외침을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자기소개를 선생님이라고 할 사람은 이세영 선생님뿐이다!

하하하-

천문석은 긴장이 풀려 무릎을 짚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몸에서 툭 떨어지는 칩.

[10,000$.]

“이게 왜 떨어져?”

칩을 줍는 순간 느껴지는 어쩐지 휑한 느낌.

벨트에 걸어 둔 카지노 칩 상자가 고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헤쳐 나올 때 어디론가 떨어져 나간 것이리라.

어차피 환전도 못하는 칩, 전혀 아깝지 않았다.

팅, 핑그르르르-

천문석은 가볍게 칩을 앞으로 튕겼다.

단숨에 모래사장을 달려온 이세영은 날아오는 칩을 반사적으로 낚아챘다.

“어, 이건 카지노 칩이잖아?”

“선생님. 환전은 안 되지만, 그 칩 카지노 나이트 기념품으로 받으세요. 밤새 고생 많으셨어요.”

팡, 팡, 팡-

이세영은 천문석의 등을 연신 두들기며 말을 쏟아 냈다.

“너야말로 고생했어!”

“어젯밤 우리 진짜 장난 아니지 않았냐?”

“우리 둘이 카지노 나이트를 완전히 지배했잖아! 하하-.”

이세영이 경쾌한 목소리가 이어질 수록.

천문석의 눈이 점점 커졌다.

“선생님. 지금 목소리가…….”

그리고 이세영의 웃음소리가 커지는 순간.

하하하하-

천문석은 확신했다.

맑고 경쾌한 웃음소리!

이세영 선생님의 목소리가 완전히 변했다!

“선생님 목소리가 달라지셨어요!”

“하하하- 뭐? 내 목소리가 이상…… 이거 뭐야!? 내 목소리 왜 이래!?”

깜짝 놀란 이세영은 주위를 살피더니 다급히 바다를 향해 달렸다.

찰팍, 찰팍-

무릎 높이까지 달려가 꿀벌 가면을 벗고 수면에 얼굴을 비추는 순간.

“선생님?”

“진짜로 이세영 선생님 맞으세요?”

“얼굴, 손, 머리카락까지!? 설마!? 각성하신 건가요!? 노화 역전 현상!”

경악한 천문석이 말을 쏟아 낼 때.

이세영은 믿기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도 얼굴 가득 했던 주름도 모두 사라졌다.

짙은 검은빛이 도는 머리카락.

티 없이 깨끗한 피부와 맑은 눈동자.

손으로 더듬는 순간 느껴지는 탄탄한 신체.

20살, 아니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수면에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녀의 얼굴은 너무나 익숙했다.

20년 전 처음 각성했을 때 본 그 얼굴이니까!

게다가 몸에서 넘치는 활력과 그 근원.

그릇이 깨져 흩어져 버린 각성력이 다시 느껴진다!

이세영은 가볍게 발을 차올렸다.

퐁-

물속을 때려 튀어 오른 돌멩이를 줍는 순간 멀리 보이는 숲을 향해 던졌다.

파앙-

짧은 폭음과 함께 나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돌멩이!

1km에 가까운 거리를 나아간 돌멩이는 이세영이 목표했던 나뭇가지를 정확히 때렸다!

이 순간 돌멩이는 당구대 위의 당구공처럼 움직였다.

탁-

나뭇가지를 때리고 튕겨.

까악-

지나가던 까마귀의 머리를 때린 후.

톡, 토르르르-

나뭇가지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더니.

툭-

줄기에 난 옹이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1km 이상 날아간 돌멩이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 그대로 움직였다!

이세영은 깨달았다.

노화 역전만 일어난 게 아니다.

각성력, 전성기의 힘이 돌아왔다!

“어떻게!?”

이세영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과 이름이 있었다.

이태성.

그리고 이태성과 신동대문에서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야, 그냥 가지 말고 이야기 좀 들어 봐! 네 각성력을 다시 찾을 방법이 있다니까!]

분명 각성력을 다시 찾을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릇이 깨져 흩어진 각성력을 다시 채우다니 한 번도 듣지 못한 일이다.

하지만 이태성이라면!?

한국 탱커 랭킹 부동의 1위.

한국 최대 길드, 태성 길드 길드장.

서울 수복 작전에도 참여한 1세대 헌터.

어젯밤 카지노 나이트에서 개고생을 같이했던 이태성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세영은 확신했다.

이태성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한 거다!

모든 것을 깨닫는 순간 이세영은 울분을 담아 외쳤다.

“이태성!”

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각성력!

파르르-

고요한 바다가 요동치고.

휘잉, 휘이잉-

모래사장에 일진광풍이 불어왔다!

“선생님! 이 힘! 선생님 각성자 되신 거 맞죠!?”

“…….”

천문석이 감탄해서 연신 외쳤다.

“와!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각성을 하세요!”

“하하, 하- 그러게 말야…….”

“대박 완전 대박이네요! 축하드려요!”

“하, 하하- 그렇지 대박이구나…….”

“겉모습만 보면 제 조카라고 해도 믿겠어요!”

“설마, 그 정도는 아니지 않니!?”

급격히 얼굴색이 어두워진 이세영이 묻는 순간.

“아니에요!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아요! 완전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 같아요! 선생님 제자들도 절대로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

이세영은 말없이 얼굴이 비치는 수면을 다시 내려다봤다.

자신이 봐도 10대 중반, 중고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

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하룻밤 사이 가르치는 학생들보다 어린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 모습으로는 더는 교사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순간 이세영 교사(전)는 깨달았다.

카지노 유람선에서 VIP룸으로 들어갈 때 느꼈던 아주 싫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직감!

이게 그 직감의 결과라는 것을!

이세영은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 해변을 훑어봤다.

분명 이태성도 이 해변에 밀려 왔을 거다.

그러나 각성력이 돌아온 지금도 어째선지 전투 예지가 흐릿해서, 이 모든 일의 원흉 이태성의 위치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이태성 어디 있냐?”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해변 한쪽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영! 힘을 되찾은 걸 축하한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으하하하하-.”

“이태성! 너, 거기 그대로 있어라!”

파바바밧-

각성력을 담아 외친 이세영은 번개같이 달려가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이태성! 이 미친 게임 폐인 놈! 아주 그냥 아작을 내주마!”

* * *

그러나 이태성은 레이드 메인 탱커이자 커맨더였다.

수천의 마수와 몬스터가 뒤엉키는 레이드에서, 보스를 탱킹하며 수백 명의 길드원에게 레이드 지시까지 하는 게 이태성이다.

당연히 이태성은 위기 감지 능력과 눈치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래서 이세영이 처음 외쳤을 때.

“이태성!”

이 목소리에 담긴 울분과 각성력을 느끼는 순간 바로 깨달았다.

‘이세영, 검은 폭풍이 힘을 되찾았다!’

저릿저릿한 몸을 풀고 있던 이태성은 황당하면서도 기뻤다.

“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계획대로 솔의 눈, 엘릭서를 이세영이 마셨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각성력과 존재감 그리고 황당함과 분노까지!

하하하하하-

이태성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전성기 검은 폭풍의 각성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엘릭서를 마셔서 깨진 그릇이 붙은 이상 완전한 힘을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순간 웃음을 뚝 그친 이태성은 눈을 빛냈다.

지금 당장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도망치는 것!’

지금의 이세영에게 잡히면, 한두대 쥐어박히는 거로는 끝나지 않는다!

검은 폭풍은 재앙급 마수를 몇 마리나 달고 며칠 동안이나 도망치던 도주의 달인.

이건 역으로 말하면 추적의 달인이라는 말과 같았다.

지금 당장 바로 도망쳐야 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비서가 준비한 비행편으로 가장 가까운 완도 게이트로 튀었을 거다.

그러나 손에 가득한 500원짜리 동전!

힘들게 깡통 모아서 바꾼 동전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준 꼬맹이를 찾아야 했다.

그 건방진 꼬맹이에게 금융 치료를 해 줘야 하니까!

‘어떻게 할까?’

생각과 동시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언제나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

이태성은 슬리퍼를 벗어 모래사장에 글을 남기고 번개같이 몸을 돌려 도망치며 외쳤다.

“이세영! 힘을 찾은 걸 축하한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으하하하하-.”

“이태성! 너, 거기 그대로 있어라!”

이세영은 이태성의 외침을 듣는 순간 번개같이 달려왔다.

그러나 잠시 후 이태성이 있던 해변에 이세영과 천문석이 도착했을 때.

이태성은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젠장! 하필이면 지금 먹통이 돼서는!”

분통을 터트린 이세영은 사방을 향해 연신 외쳤다.

“이태성 나와봐! 나 화 안 났어! 고마워서 그래! 지금 당장 나와! 빨리 나와 이태성! 야! 빨리 나오라니까!”

이때 천문석은 모래사장에 써진 글을 발견했다.

“선생님! 여기 모래에 글이 있어요! 이태성 길드장이 남긴 것 같아요!”

“뭐?”

천문석과 이세영은 나란히 서서 모래사장에 써진 글을 봤다.

[꽝의 여신! 힘을 되찾은 거 ㅊㅋㅊㅋ! ㅋㅋㅋ]

[나는 절대 찾지 못하는 곳에 숨어 있을 것임. ㅋㅋㅋㅋ]

[님. 괜히 들쑤시고 다니지 말고. 화 다 풀리면 길드로 찾아오셈. ㅋㅋㅋㅋㅋ ^^9]

“…….”

뭐지, 이 초딩이 약 올리는 것 같은 글은?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이거 이태성 길드장이 남긴 글이 맞을까요?”

천문석이 모래사장에 써진 글을 가리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이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이거 이태성 그놈이 쓴 거 맞아.”

이세영의 손이 이모티콘을 가리켰다.

[^^9]

“이 이모티콘 이태성 녀석 옛날에 무슨 게임 할 때부터 쓰던 사인이야.”

이세영은 모래사장에 쓰인 이모티콘을 가리키던 손을 들어 주먹을 말아쥐고 눈가에 대는 경례를 했다.

“걔네 길드 사람들 정모하면 이렇게 인사하거든.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인사했고.”

“아, 그래서!”

천문석은 깨달음의 탄성을 질렀다.

1세대 헌터 상당수가 특정 온라인 게임을 같이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었다.

“이태성. 이 게임 폐인 놈이랑 엮여서는 안 됐는데…… 하아-.”

이세영은 땅이 무너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수학여행 일정 어떡하지…….”

호텔로 돌아가면 바로 수학여행 학생 인솔을 시작해야 했다.

10대로 돌아간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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