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57화>
기울어진 고속선 선수 끝에 앉아 있는 어린 다람쥐, 니케.
니케는 깨진 구슬을 두 손으로 잡은 채 어쩐지 낯이 익은 인간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쾅-
펄쩍 뛰어올라, 배 위를 달리더니.
딱, 딱, 딱딱딱-
손으로 배 곳곳을 두들기고 다니는 이상한 모습.
이 인간은 곧 볼록 솟은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볼록 솟은 구멍에서 뭔가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킥-!?
갑자기 보이지 않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자라나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느낌!
킥, 킼키키키키킼킼-!?
‘이거 전에 어디서 느꼈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니케는 번쩍 깨달았다.
느낌의 정체가 아닌, 방금 구멍으로 들어간 인간의 정체를!
킥-!?
그 인간 이상한 꼬맹이랑 같이 있던 사람이다!
자신이 꼴찌인데, 2등상을 받은 건방진 인간 놈!
킥, 키키킥-!?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의문을 품는 순간 손에 잡은 구슬이 느껴졌다.
앗!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니케는 번쩍 손을 들어 잡은 깨진 구슬을 요리조리 살폈다.
분명 맛없는 사탕이 맞는 것 같은데, 전과는 달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툭, 투둑, 툭툭-
니케는 손에 든 맛없는 사탕을 바닥에 내려치고 혀로 날름날름 핥았다.
원래라면 톡톡 쏘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무 느낌도 전해지지 않았다!
사탕이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
니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사탕을 깨물었다!
와그작-!
청록색 안광을 숨긴 채, 조금의 사념도 흘리지 않고 쥐죽은 듯 있던 깨진 마안!
그러나 니케에게 물리는 순간, 쥐죽은 듯 있던 마안의 사념이 폭발했다!
-ㅁㅁ ㅁㅁㅁ ㅁㅁㅁ ㅁㅁㅁ!!?
니케는 깨달았다.
내 맛없는 사탕이 맞구나!
순간 니케는 깜빡 잊고 있던 걸 기억했다.
맛없는 사탕을 발견하고, 이상한 꼬맹이에게 복수하러 여기까지 날아왔다.
이상한 꼬맹이에게만 정신이 팔려 깜빡 잊고 있었다!
사탕 도둑!
내 사탕을 가져가고는 하늘 고래의 힘이 담긴 나뭇가지를 주지 않고 도망친 그 도둑놈!
그 사탕 도둑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머리에 사탕 도둑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 니케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볼록 솟은 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탕 도둑과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 사람의 모습이 하나로 합쳐졌다!
툭, 또르르르-
니케는 손에 쥔 사탕을 흘린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킥킼, 키킼키킼키-!
‘사탕 도둑, 사탕 도둑이 쟤구나!’
이상한 꼬맹이에게 2등상을 받은 건방진 인간이 사탕 도둑이었다!
이 사실을 니케가 깨달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니케는 까먹었다가 기억했다가, 다시 까먹었다가 지금 다시 기억해 낸 거였다.
그러나 원래도 자주 까먹는 니케는 처음 이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무섭게 분노했다!
니케는 벌떡 일어나 다다닥 기울어진 갑판 위를 달려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르며 외쳤다.
킼, 키킼키킼-!
킥, 키킼키킼키키-!
‘분노를 노래하여라!’
‘케페니안 황금 일족이여!’
휘이이잉-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른 니케는 사탕 도둑이 도망친 발사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점점 난장판으로 변해 가는 전장에 분노한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가 뛰어들었다!
그리고 니케가 한번 깨물고 버려 두고 간 맛없는 사탕이 기울어진 갑판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와그작, 와그작- 수도 없이 깨물려 부서지기 직전인 마안이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다.
‘ㅁㅁㅁ ㅁㅁ!’
‘ㅁㅁ ㅁㅁㅁ!’
……
요사스러운 청록빛 눈동자를 뜬 채로 폭풍 같은 사념을 쏟아 내는 마안.
그러나 마안이 홀릴 존재들은 아직 고속선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마안은 부서지기 직전인 모습으로 갑판 위를 점점 빠르게 굴러.
톡, 또르르르르르-
기울어진 공작선에서 떨어져 거대 거북이 갑각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부서지기 직전인 마안이 굴러 가는 곳에는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 거대 거북이 머리가 있었다.
* * *
부아아아앙-
고속 구명정 한 척이 점점 밝아지는 바다 위를 빠르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고속 구명정에는 아직도 꿀벌 가면을 쓴 사람, 이세영이 타고 있었다.
이세영은 힐끗 서쪽 바다를 봤다.
밝아오는 바다 위 카지노 유람선이 어느새 작은 점처럼 보였다.
카지노 유람선은 서쪽으로 크게 우회해, 제주도 북서쪽 애월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면 유람선 안의 승객들은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게 계획대로 됐다.
유람선 선체를 기어 오르던 마수의 어그로를 돌렸고, 서쪽 바다에서 튀어나온 고속선도 거대 거북이 위로 튕겨 냈다.
천문석과 이태성, 두 사람이 생각 그대로 너무나 잘해 줬다.
두 사람 덕분에 밀려 오는 사건을 떨쳐 낸 카지노 유람선은 이제 안전했다.
이제 그 두 사람을 이 고속 구명정으로 거대 거북이 위에서 빼내기만 하면 이번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끝이 다가오는데도 가면 뒤 이세영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몸은 긴장으로 굳어 있고, 고속 구명정 타륜을 잡은 손은 잘게 떨리기까지 했다.
이세영은 밝아오는 북서쪽 하늘과 거대 거북이가 있을 동쪽 바다를 번갈아 봤다.
오늘 밤 겪은 모든 사건을 다 합한 것보다 커다란 사건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 요동치고, 육감이 미친 듯이 경고를 보낸다.
이 느낌은 재앙급 마수 이상!
엄청난 존재가 북서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동쪽 거대 거북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ㅁㅁ ㅁㅁㅁ!’
감도가 나쁜 방송을 듣는 것처럼 머릿속에 전해지는 사념!
‘끼르르르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는 거대 거북이의 존재감!
그리고 인력(引力)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전자석에 전력이 공급되어 엄청난 자기장이 생겨난 것처럼.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엄청난 인력이 거대 거북이가 있는 곳에서 방금 전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이 인력이 나타나는 순간.
전투 예지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아니 이건 흐려지는 것과는 달랐다.
이세영은 전투 예지에 대해 오래전 호석이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
“보통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 선택이라는 원인이 미래라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소장님은 그게 반대예요.”
“결과와 원인. 최선의 미래, ‘결과’를 확정하고. 그 최선의 미래에 닿기 위한 ‘원인’. 수많은 선택을 하는 거죠.”
“이건 답을 본 후에 과정을 써 내려가는 거나 마찬가지죠. 전투 예지라고 부르고 있는데 사실 이건…….”
===
호석이의 말대로였다.
전투 예지가 발현되는 순간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수많은 미래.
자신은 원하는 미래로 향하는 선택을 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저 인력의 존재를 느낀 순간.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지던 미래가 뿌옇게 흐려져 흔들리고 있다.
미래, 결과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곳에 닿기 위한 선택, 원인도 알 수 없었다.
전투 예지를 얻은 후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일에, 빛 한점 없는 절벽 위를 걷는 것처럼 두려움이 치솟고 손이 덜덜 떨렸다.
이 두려움은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커졌다.
그러나 이세영은 거대 거북이를 향해 달리는 고속 구명정의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거대 거북이 위에는 자신을 기다리며 악전고투를 펼치고 있을 천문석과 이태성, 제자와 동료가 있었으니까.
언제나 그러했듯 이세영은 두려움 속에서도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이세영이 천문석과 이태성을 구하기 위해 고속 구명정을 타고 달려올 때.
거대 거북이 위에서는 이세영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고속 공작선에 달라붙어 밀고 있었다.
으아아악-
끄어어억-
악을 쓰는 괴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
텔레파시 능력자가 광역 텔레파시를 터트렸다.
[하나에 밀어붙인다!]
[하나!]
쿵-
[하나!]
쿠웅-
[하나!]
쿠우웅-
콰르르르륵-
들썩이던 고속선이 마침내 움직이는 순간.
우아아아악-
정예 공작원들은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급히 움직였다!
염동력자가 고속선 앞에 염동력장을 깔고.
마력 각성자들이 이 위에 마찰계수를 낮추는 마법을 중첩해서 걸었다.
으아악-
육체 각성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공작선을 끌어당길 때.
으아, 으아악-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공작선 선체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탄 각성자와 몇몇 공작원들이 사방에서 밀려 오는 마수들을 저지하며 소리쳤다.
“멈추지 마!”
“한번 멈추면 다시 움직이기 몇 배로 더 힘들다!”
“새끼들아 앞! 앞에 봐! 가재 마수!”
[3시 방향! 말미잘 마수! 부식성 체액 위험해! 저놈부터 먼저 처리해라! ]
타다다다다-
다급한 외침과 텔레파시가 쏟아지고, 마탄 총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피라미드를 쌓을 돌을 옮기는 이집트인들처럼, 공작원들은 온 힘을 다해 물 밖으로 나온 배를 바다를 향해 끌고 밀고 있었다!
이렇게 배를 밀고 있는 건 공작원들만이 아니었다.
선체 내부에 있던 선원들과 정보보안 요원들까지 항해에 필수적인 몇 명만 빼고 모두가 밖으로 나와서 배를 밀고 있었다.
“으아악! 시바!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야!?”
“하, 빌어먹을 젠장! 이거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거다!”
타겟을 납치하러 왔다가 물 밖으로 나온 공작선을 밀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
이들이 악을 쓰며 분통을 터트릴 때.
공작선 선체 위에서 얄미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열심히 안 하지? 빡세게 밀어라. 제대로 안 하는 녀석은 그냥 여기다 버리고 간다!”
공작선 선체에 쪼그려 앉아 얄밉게 외치고 있는 사람, 천문석이었다.
순간 죽을힘을 다해 공작선을 밀고 있는 모두는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삼키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세기, 저 미친 새끼!’
끓어오르는 분노가 육체를 타고 흘러 육중한 공작선 선체로 전해졌다!
콰르르르륵-
공작선이 거대 거북이 갑각 위를 미끄러지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그거 봐! 하면 된다니까! 자 모두 외쳐! 나는 할 수 있다!”
“시바- 나는 할 수 있다!”
“으드득- 나는 할 수 있다!”
……
모두가 이를 갈며 공작선을 밀 때, 주위 마수에게 마탄을 쏟아붓던 각성자가 팀장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이세기. 저놈 저대로 둘 겁니까?”
“그냥 안 두면……?”
팀장이 힘없이 말하는 순간, 공작선 외부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들 열심히 하고 있냐!?
“걱정하지 마십시오! 용 형님! 제가 확실히 감시 중입니다!”
천문석은 바로 대답하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킥, 킼키키키킥-!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공작선 주위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젠장…….”
공작팀 팀장은 이를 갈며 방금 전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공작원들이 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배가 이세기에게 점거된 후였다.
배 안에 있었던 선원들과 정보보안 요원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사력을 다해서 배를 밀고 있었다.
그러나 적은 한 명!
다시 배를 찾기 위해 밀고 들어가려 할 때.
용 가면을 쓴 남자가 도착했고 스피커가 울렸다.
=용 형님 바로 안으로 들어오세요! 문 열렸습니다!
막을 새도 없이 용 가면을 쓴 남자는 선체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타겟, 이세기가 스스로 갑판으로 나왔다.
타겟이 알아서 밖으로 걸어 나온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당장에 이세기를 인질로 잡으려 할 때.
이세기는 번쩍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고.
그 녀석이 나타났다!
킥, 키키키킼-!
이때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가 회상을 깨웠다.
기억을 떠올리던 팀장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하늘로 향했다.
휘이이이잉-
공작선 하늘 위,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활강하는 귀여운 새끼 다람쥐가 있었다.
하지만 저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세기가 손으로 가리킬 때마다.
번개같이 날아와 단단한 방어 장비를 무는 새끼 다람쥐!
강화 심문마저 웃으며 버티던 정예 요원들이 픽, 픽- 쓰러져 목이 터질 듯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저 다람쥐에게 물리는 순간.
모든 방어 장비가 무력화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고통이 밀려 온다!
팀장은 정보국이 타겟에 대해 완전한 오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세기는 사냥감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세기가 세팅한 전장으로 들어온 자신들이 사냥감이었다!
이세기는 용 가면을 쓴 오러 각성자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고 알려진 각성 동물까지 데리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을 수 없는 공격을 하는 악마 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