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40화>
남은 돈은 505$.
어이없게도 생사의 칼날 위를 걸었던 절정 무인의 직감이 발동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동되기는 하는데 이 감이 계속 빗나가고 있었다.
이게 왜 이래!?
설마 목숨이 아니라 돈이 걸려서 그런가!?
천문석은 순식간에 그 이유를 깨닫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돈은 생명이다!
돈은 생명이다!
돈은 생명이다!
……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 됐다.
멘붕이 오는 상황!
천문석은 재빨리 마인드 전환을 시도했다.
VIP 초대권으로 환전한 10$ 칩 100개는 환전할 수 없는 서비스 칩이었다.
그에 반해 이 1$ 칩 5개는 환전 가능한 칩인 것이다!
‘즉, 자신은 495$를 잃은 게 아니라, 5$를 딴것이다!’
이 순간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특급 헌터의 목소리.
‘495$보다 5$가 더 크다고!? 500$로 5$를 땄다고!? 완전 이상하잖아! 알바!’
1000$ 자본의 주인, 전주(錢主) 특급 헌터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
말문이 턱 막히고 마인드 전환이 실패했다.
“하, 시바- 뭐가 이따위야.”
자신도 모르게 탄식이 터졌다.
아무리 천문석이라도 도저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카지노에서 나갔을 때는 이 1000$는 10$로 변해 있을 거다.
천문석은 칩이 든 상자를 들고 카지노 안을 걸으며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쩌면 기계식 슬롯머신에 앉은 게 문제였을 수도 있다.
기계가 아닌 인간과 승부하는, 제대로 된 게임을 찾는다면 무인의 감이 제대로 먹힐 거다!
천문석은 카지노 유람선을 걸으며 주위를 살폈다.
푹신한 카펫이 깔린 넓고 화려한 카지노 유람선.
자유로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얼굴 전체 혹은 일부가 가려지는 가면을 쓰고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환호성과 동전 구르는 소리.
갬블러들의 열기와 환호성에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다.
천문석은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카지노 게임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슬롯머신 뒤로 스크린 룰렛, 동전 떨어뜨리기 같은 게임기들이 죽 늘어서 있다.
입구 층 전체가 이런 게임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게임기가 있는 층의 끝.
벽이 보이는 곳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오르자, 아래층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룰렛, 블랙잭, 바카라, 포커까지…….
수많은 갬블 테이블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기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승부, 여기가 자신이 승부를 펼칠 전장이다!
천문석은 눈을 빛내며 갬블 테이블을 하나하나 세심히 살피며 걸었다.
이때 블랙잭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
“저 토끼 가면. 또 버스트 됐어!”
“와, 어떻게 저렇게 재수가 없냐!?”
“아니 12+10, 13+10……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
재수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철수 형!
동시에 마음속에서 탄식이 터졌다.
인간 마이너스 지표, 철수 형과 같이 와야 했는데!
철수 형이 거는 것 반대로만 걸어도 승률이 확 올라갈 텐데!
천문석이 짙은 아쉬움과 함께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얼핏 익숙한 탄성이 들려왔다.
“이겼다! 또 이겼어! 으하하-.”
‘어, 이 목소리!?’
천문석은 홀린 듯이 귀에 익은 탄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갔다.
“와, 이게 얼마야!?”
“어떻게 그렇게 게임을 잘하세요!?”
“제가 아까 말했죠? 카지노 전문가라고! 오늘 대박 내서 한턱 크게 쏘겠습니다! 하하하-.”
가까이서 듣자, 목소리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신 탄성을 터트리며 크게 웃는 목소리는 무빙워커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카지노가 자신 있다고 외쳤던 선생님!
곧 도박의 쓴맛을 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선생님의 앞에는 수북한 칩의 산이 쌓여 있었다!
이런 젠장!
절정 고수가 선생님에게 밀리다니!
두 배로 좌절한 천문석이 떠나가려 할 때,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떻게 할 때마다 버스트가 되세요? 하하하-.”
“제가 원래 도박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
천문석은 깜짝 놀라 구경꾼이 가득한 블랙잭 테이블로 파고들었다.
인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코끼리 가면을 쓴 선생님 옆에 앉은 사람이 보였다.
토끼 가면을 쓴 어깨가 축 늘어진 작은 체구의 사람!
가면을 썼는데도 어쩐지 눈에 익은 체형, 게다가 목소리도 귀에 익었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
“저는 그만할게요. 아무래도 블랙잭이랑은 잘 맞지 않은 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그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하하하-.”
“마음 편하게 하세요. 어차피 서비스 칩이잖아요?”
“맞아요. 어차피 웃고 즐기려고 온 거잖아요?”
다른 선생님들의 위로를 뒤로하고 블랙잭 테이블을 벗어나는 토끼 가면.
토끼 가면은 축 늘어진 어깨,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카지노 안을 걸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토끼 가면의 뒤를 쫓았다.
토끼 가면은 반도 안 남은 칩 상자를 손에 든 채, 바카라, 포커 테이블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걸었다.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감정이 뒤따라 걷는 천문석에게까지 느껴졌다.
토끼 가면은 이렇게 망설이며 계단을 내려가 마침내 전자식 룰렛 기계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게임!
탓, 탓, 탓-!
[1, 13, 21]
호쾌하게 베팅하고 구슬 발사!
파아앙, 또르르르르-
구슬이 멈춘 곳은 [33]!
토끼 가면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룰렛 게임을 했다.
[홀]에 베팅하면 [짝]에 멈추고, [흑]에 베팅하면 [적]에 멈춘다.
[1-18]에 베팅하니 [19-36]에 멈춘다.
으아악-!
순간 토끼 가면이 괴성을 토하고 주먹을 부르르 떨며 외쳤다.
“왜! 왜!? 도대체 왜 한 번도 맞지 않는 거야!?”
그리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베팅한다.
[흑] 3$.
[적] 6$.
무조건 승리하겠다는 비대칭 베팅 전략!
그리고 바로 구슬이 발사됐다!
파아아앙-
또르르르르르르-
구슬이 스크린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CG일 뿐이지만 규정대로 20바퀴 이상 회전한 구슬이 숫자판에 떨어져 내려, 구르기 시작했다.
또르르-
톡, 톡, 톡-
“제발, 빨강!”
“제발, 빨강!”
“제발, 빨강!”
토끼 가면이 두 손을 꼭 움켜잡은 채 기도하듯 외칠 때 마침내 룰렛이 멈췄다.
툭-
구슬이 멈춘 곳은 [00]이었다.
1에서 36까지의 숫자.
홀수, 짝수. 흑색, 적색.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두 칸, [0], [00].
구슬은 여기에 걸렸다.
“…….”
한동안 멍하니 있던 토끼 가면은 기도하듯 움켜잡았던 손을 뻗어 화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그러나 아무리 게임기 화면을 문지른다고 결과가 바뀔 리는 없었다.
“이게 뭐야…….”
토끼 가면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움켜잡는 순간.
천문석도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하- 이세영 선생님. 지금 여기서 뭐 하세요…….”
* * *
천문석은 토끼 가면이 전자식 룰렛에 앉아 게임을 하는 순간 정체를 깨달았다.
작은 키, 작은 몸.
찍을 때마다 빗나가는 불운.
포기하지 않는 강철 같은 근성까지.
게다가 선생님들과 블랙잭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었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헤어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토끼 가면을 쓴 사람이 이세영 선생님이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카지노와 이세영 선생님의 이미지가 매칭되지 않았다.
이세영 선생님은 로또 번호는 찍어 주셔도 복권은 사지 않는 성실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카지노라니!
그리고 저런 어이없는 베팅이라니!
천문석이 당황으로 굳어 있을 때.
광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이 방법이 있었지!?”
탓, 탓, 탓, 탓-
토끼 가면을 쓴 이세영 선생님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베팅을 시작했다.
[1-36]까지 룰렛 판의 모든 숫자, 방금 자신을 물 먹인 [0], [00]까지 총 38칸에 놓이는 1$ 칩들!
그야말로 필승법!
이 방법이면 무조건 이길 수 있었다!
구슬이 어디에 멈추든 36배의 배당을 받을 수 있다!
1$ x 36배 = 36$
38$의 칩을 사용해서 36$를 받는 방법!
[36$] - [38$] = [-2$]
이건 승리와 2$를 맞바꾸는, 뼈를 주고 살을 취하는 전략이었다!
‘선생님…….’
천문석은 깊은 탄식과 함께 깨달았다.
이세영 선생님이 로또를 사지 않았던 건 성실해서가 아니었다.
2$ 손해가 예정됐음에도 초집중 상태에서 신중하게 레버를 당기는 저 모습!
이세영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승리에 목마른 승부사의 절절한 갈망이 느껴졌다!
이세영 선생님은 복권이나 도박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패배할 것을 이미 짐작하고 계셨던 것뿐이었다.
“엇!?”
이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방금 마이너스 인간 지표, 철수 형이 없어서 아쉬워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철수 형을 넘어서는 꽝의 상징이 나타났다.
이세영 선생님!
찍는 것마다 헛다리를 짚는 이세영 선생님이!
“이거 설마!?”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세영 선생님의 저 미친 듯한 헛다리를 이용한다면!?
천문석은 재빨리 슬롯머신 의자로 다가가 살며시 토끼 가면을 쓴 이세영 선생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선생님.”
으아앗-
얼마나 집중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는 선생님.
“누구세요!?”
선생님이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저예요! 놀라지 마세요. 선생님.”
천문석이 악어 가면을 슬쩍 들어 얼굴을 보이자 순간적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는 선생님.
“헤어진 지 며칠 안 됐죠? 선생님 어떻게 여기서…….”
이 순간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사람 잘 못 보셨어요!”
“네? 생님. 저 며칠 전에 봤던 천문석이에요. 선생님 제자.”
“저는 바빠서 이만…….”
대답 없이 다급히 도망치려는 이세영 선생님.
이때 게임기에서 음성이 나왔다.
[no more bet!]
도망치려던 이세영 선생님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추고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이세영 선생님의 시선이 향한 곳은 게임기 화면에서 돌아가는 구슬!
회전하던 구슬이 힘을 잃고 숫자판으로 떨어졌다.
또르르르-
그리고 구슬이 멈추려는 순간.
지이이잉-
게임기 화면이 프리징이 걸려 버렸다.
“어!?”
이세영 선생님의 당황한 외침이 터지고, 프리징이 걸린 화면은 곧 너무나 익숙한 화면으로 변해 버렸다.
윈도우 블루스크린.
“으아악- 이런 빌어먹을 젠장!”
쿵, 쿵, 쿵-
분노한 토끼 가면의 주먹이 게임기에 꽂혔다.
이 모습을 보는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2$]로 얻고자 했던 상처뿐인 승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사람!
세상에 이런 사람이 둘이나 있을 리 없었다.
토끼 가면은 이세영 선생님이 맞았다!
아무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신분으로 카지노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정체를 숨기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원하시는 대로 모른 척하면 된다!
잠시 후 분노한 토끼 가면이 진정 됐을 때.
천문석은 은근한 어조로 말을 걸었다.
“토끼 가면님. 저랑 팀 하지 않으실래요?”
“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제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필승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