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04화>
갑자기 염동력을 사용하는 마신의 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천문석은 바로 알아챘다.
마신의 눈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가는 촉수 한 가닥.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촉수가 한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무너진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인 곳, 이곳에 있는 존재가 보였다.
촉수가 모두 끊어져 나가 확 작아진 거대 괴수 본체.
이 본체에 마신의 눈에서 뻗어 나온 한 가닥 촉수가 이어졌다.
코어.
염동력의 힘을 담고 있는 거대 괴수 코어 와 마신의 눈이 이어진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천문석이 연결을 끊기 위해 몸을 날리는 순간.
엄청난 염동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생각도 하지 못한 것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잘려 나간 촉수들!
항구, 시가지, 해수욕장!
사방으로 풀려 나가 마수와 몬스터의 사체를 포식하던 촉수들!
이 촉수들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하늘을 거슬러 올라 너덜너덜해진 마신의 눈으로 모여들었다!
쾅, 콰앙, 콰아앙-
이상을 감지한 군함과 전차, 헬기에서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하늘을 거슬러 오르는 촉수들이 너무 많았다.
촉수가 마신의 눈에 닿는 순간,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너덜거리던 마신의 눈이 빠르게 재생했다.
이 순간 수강과 뇌전공으로 촉수를 박살 내던 바라카스는 힐끗 이 모습을 살폈다.
아직 괜찮다!
촉수가 닿는 순간 마신의 눈이 재생하고 있지만, 재생 속도가 파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사방에서 몰려드는 촉수의 수는 한정적이다.
이대로면 재생 전에 박살 낼 수 있다!
바라카스는 뇌전공이 담긴 수강을 다시금 촉수에 박아넣었다!
콰앙-
뇌전공의 천둥 벼락이 떨어지고.
쾅, 쾅, 쾅-
사바에서 날아온 마력 포탄이 터졌다.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결국 이긴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때, 거대 괴수 본체를 향해 달리는 천문석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끝장이다!’
하늘의 초절정 고수와 바다와 육지의 아군은 아직 모르고 있다.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수많은 촉수!
이건 코어에 담긴 힘, 염동력으로 날아오르는 거다!
마신의 눈은 아직 염동력을 이용한 공격은 시작도 안 했다!
이때 사방에 널린 컨테이너, 불타는 지게차, 나뒹구는 선박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중력이 역전된 것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쾅, 콰아앙-
쏟아지는 마력 포탄에 박살 나고 불타면서도 하늘로 솟아오르는 컨테이너와 차량들!
이 거대한 물체들이마신의 눈 주위를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천천히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시 후 너무나 귀에 익은 폭음이 터졌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폭음!
음속폭음이 터져 나온 순간.
이 뒤에 일어날 일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빠앙-
거대한 물체가 공전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쐐애애액-
초음속의 염동포탄이 되어 대기를 꿰뚫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폭발음이 터졌다.
콰아아앙-
엄청난 질량과 속도에 단숨에 마력장이 날아가고, 구축함 하루사메의 선미가 으스러지듯 떨어져 나갔다.
거대 괴수의 염동포탄의 위력을 몇 배나 웃도는 엄청난 위력!
바다의 제주 함대와 호위대군 함대, 지상의 전차와 기갑 차량.
하늘의 시호크 헬기.
염동포탄이 2호위대군 구축함에 직격한 순간 이들 모두는 직감했다.
좆됐다!
* * *
항구를 달리는 천문석은 마신의 눈을 힐끗 봤다.
“그래, 이렇게 깔끔하게 전투가 끝날 리가 없지! 젠장!”
하지만 아직은 괜찮다!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
내력과 존재감을 감춘 천문석은 괴수 본체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염동포탄이 쏟아지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촉수의 규모가 확 줄어들었다.
저 염동포탄에 아군이 모두 박살 나기 전에 코어 와의 연결만 끊어 내면 된다!
이 순간 섬뜩한 사념이 울려 퍼졌다.
-흐흐흐흐흐흐흐
천문석은 이 사념에서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는 득의만만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신은 특이했다.
혼돈에 잠든 마신은 광기와 혼돈에 물든 존재다.
경계를 넘어 미쳐버린 요마괴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마신이다.
당연히 마신의 생각과 감정은 사람은 물론 요마괴이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마신은 자신이 만난 다른 마신들과는 달리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을 퍼트리고 있다.
“이 녀석 어쩐지 마안(魔眼)이랑 비슷한데?”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보니…….
요마괴이의 사념이 담긴 정수 마안과 진짜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 마신의 사념에서 느껴지는 방심이다!
그래서 천문석은 내력을 갈무리하고, 존재감과 살기마저 지운 채 육체의 힘만으로 은밀히 달리고 있었다.
목표는 컨테이너 더미 사이!
이곳에 숨어 있는 거대 괴수의 본체와 마신의 눈을 잇는 ‘한 가닥 가는 촉수’다.
이 촉수만 재빨리 끊어 버리면 된다!
이때 군함이 긴급 회피기동을 하며 5인치 함포를 발사했다.
군함뿐만이 아니었다.
전차와 헬기까지 미친 듯이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콰아앙-
염동포탄이 날아오는 사정거리 안에서 화력을 쏟아붓는 아군!
쿵, 쿵, 쿵-
쾅, 콰앙, 콰아앙-
음속폭음에 뒤섞이는 폭음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아군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지금 마신의 눈을 박살 내려 한다.
엄청난 위력의 염동포탄을 버티며 재생력을 압도하는 화력을 쏟아부을 생각이다!
아군의 생각이 먹혀드는 것 같았다.
염동포탄이 가속해서 한발 한발 날아올 때, 수십 수백 발의 마력 포탄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한쪽이 끝장나는 순간에야 끝나는 치열한 인파이팅 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갑자기 항구 앞, 바다가 출렁이더니 벽이 되어 솟아 올랐다.
군함에서 발사된 마력 포탄이 마신의 눈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벽처럼 솟아오른 바다에 먹혀 버렸다!
촤아악, 촤아아악-
바다의 벽에 들어간 마력 포탄은 급속히 운동에너지를 잃었다.
이 포탄이 마신의 눈에 닿았을 때는 아무 위력도 없이 튕겨 나왔다.
전차가 120mm 활강포를 쏟아붓고, 시호크 헬기가 기관총과 헬파이어 미사일을 갈겼지만, 함대의 포격 없이는 화력이 부족했다!
“힘을 내! 곧 염동력을 끊는다!”
항구를 달리는 천문석이 아군을 응원하는 순간.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물체들이 보였다.
“……어?”
팔뚝 정도 길이, 앞은 원뿔 뒤는 원통.
마신의 눈에서 튕겨 나와 땅에 떨어지는 물체들.
깡, 깡, 까앙-
천문석의 시선이 떨어지는 물체들의 궤적을 거슬러 움직였다.
땅, 허공, 마신의 눈, 바닷물 벽.
그리고 군함의 함포.
“함포!?”
이 순간 천문석은 이 물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런 미친! 이거 마력 포탄 탄두잖아!”
5인치 마력 철갑탄과 고폭탄!
운동에너지를 잃고 터지지 않은 탄두가 우박 쏟아지듯 후드득- 떨어지고 있다!
자신의 주위에!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냥 떨어지는 걸 맞아도 어디 한군데 부러져 나갈 쇳덩이다.
하지만 저 마력 포탄이 터지는 순간 어디 한군데 부러지는 거로 끝나지 않는다!
마탄의 마력!
거대 괴수의 엄청난 반발장조차 깎아내는 마력이 폭풍처럼 몰아칠 거다!
지연신관, 충격신관, 감응신관!?
지연신관이면 벌써 터졌어야 한다.
충격신관이라면 땅에 닿는 순간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제발 반발장 감응식 신관이기를!’
천문석은 우박처럼 떨어지는 탄두 사이를 전력으로 달렸다.
소총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대한 마력이 이 탄두에서 느껴진다!
감이 왔다!
재금 공업의 정품 마력 포탄이다!
순간 안심이 되면서 불안해졌다.
정품인 만큼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터지지 않을 거다.
그러나 반대로 정품인 만큼 터지면 엄청난 마력 폭풍이 연쇄적으로 몰아칠 거다!
지금 천문석은 지뢰밭을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 됐다!
‘이런 젠장!’
전력 질주하는 이 순간 그동안 겪은 사건·사고가 뇌리에 떠올랐다.
키즈 카페 부점장 때 겪은 서울 사태 이후로 천문석은 엄청난 속도로 강해졌다.
그런데 상대하는 적은 더 빨리 강해졌다.
랩터 -> 거대 괴수 -> 마신의 강림체.
게임이었다면 레벨 디자인 거지 같다고 분통을 터트릴 생각만으로도 말문이 턱 막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력 포탄 탄두가 우박처럼 쏟아지다니!
“하, 시바! 뭐가 이따위야!?”
마신을 기습하기 위해 내력과 존재감을 숨겼지만, 기습하기 전에 여기서 작살이 나게 생겼다!
전력 질주하는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을 펼치고 내력을 살짝만 끌어올렸다!
깡, 깡, 까강-
맑은 쇳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탄두 사이로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고,
카르르르릉-
시멘트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수많은 탄두를 차마 밟지 못하고 미친 듯이 뛰어넘는다!
으아아아악-
탄두가 떨어지는 곳에 자리한 불타는 자동차를 괴성을 지르며 밀어내고.
데굴데굴데굴-
사방의 잡동사니에 튕겨 날아오는 탄두 아래로 미친 듯이 굴렀다!
천문석은 비를 피하려는 광인처럼 쏟아지는 탄두 사이로 질주했다!
헉, 허어억, 헉-
호흡은 목 끝까지 올라왔고, 심장은 지금 당장 터질 듯 요동친다.
사방으로 뻗은 기감에 전해지는 정보로 달아오른 머리까지!
천문석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쐐애애액-
쾅, 쾅, 쾅-
머리 위에서는 염동포탄이 음속폭음을 터트리고, 육지와 하늘에서 쏟아진 전차 포탄과 기관총, 미사일이 폭발한다.
이 난장판을 구르고 뛰고 몸을 비틀어 달리며 천문석은 다짐했다.
이 난장판만 끝나면 바로 서울, 내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휴가 기간 내내 빈둥거릴 거다!
이렇게 마력 탄두가 우박처럼 쏟아지는 지대를 벗어나는 순간.
마침내 목표가 보였다!
무너진 컨테이너 더미 사이에 처박혀 있는 거대 괴수 본체!
그리고 본체와 연결된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는 촉수!
생각할 것도 없다!
천문석은 짧은 검을 뽑아 들고 극음도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쿵, 쿵, 쿵-
땅을 밟는 발걸음에 내력을 실어 매 순간 가속한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가속해, 거대 괴수 본체를 짓밟고 뛰어올랐다!
콰직-
본체에 남겨진 형광 체액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순간.
검에서 흩날리는 극음의 냉기!
쩡-
천문석은 단숨에 코어 와 마신의 눈을 잇는 가는 촉수를 때렸다!
순간 촉수에서 솟아나는 마력장!
쾅-
엄청난 진동과 반발력이 돌아올 때.
천문석은 미친 듯이 극음도를 때려 박았다.
자신에게 공격이 가해지기 전에 끊어야 한다!
쩡, 쩡, 쩡-
절정 고수의 내력을 담아 손이 찢어질 정도로 내려쳤는데도 촉수는 끄떡없었다!
그러나 촉수 위에 생겨난 얼음이 점점 두꺼워졌다!
‘극음의 냉기가 먹혀들고 있다!’
천문석은 벌목하듯 극음의 검을 내려치고 다시 내려쳤다!
쩡, 쩡, 쩡-
쩡, 쩡, 쩡, 쩡-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하늘에서 마신의 시선이 느껴진다.
지금 당장이라도 염동포탄이 떨어질 듯 가슴이 옥죄어 온다!
그러나 천문석은 일심으로 극음도를 내려쳤다!
쩡, 쩡, 쩡-
콰드드득, 툭-
그리고 마침내!
얼어붙어 점점 패이던 촉수가 바스러지듯 잘려 나갔다!
이 순간 하늘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쐐애애애애액-
쾅, 콰앙, 쾅, 쾅-
천문석은 재빨리 무너진 컨테이너 더미 위로 올라갔다.
마신의 눈 주위를 돌던 염동포탄이 통제력을 잃고 사방으로 날아가고, 벽처럼 솟아 올라 함포 사격을 막던 바닷물 벽도 어느새 사라졌다!
몸을 짓누르던 염동력장 특유의 압박감도 빠르게 흩어지고 있다!
해 냈다!
마신의 염동력을 끊어 버렸다!
그러나 이 순간 컨테이너 위에 선 천문석은 웃을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추락하던 마신의 눈, 대지에서 만들어지던 거대한 몸통.
둘이 만났다.
마신의 눈을 머리처럼 이고 있는, 촉수로 만들어진 거대한 어인(魚人)이 일어서고 있었다.
이 촉수 어인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존재감.
마신의 힘이 촉수로 만들어진 육체에 강림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땀, 터질 듯 가쁜 호흡, 깨질 듯 지끈거리는 머리.
천문석은 당장이라도 쓰러질듯한 몸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시바…… 못해 먹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