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03화>
펑, 퍼벙, 펑, 펑-
거대 괴수의 육체가 폭발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봉을 잡고 길게 늘였다.
10m, 20m…….
순식간에 길게 자라나는 봉 아래 거대 괴수 전신에서 터지는 폭발이 보였다.
펑, 퍼버벙-
폭음과 함께 후두둑- 잘려 나가는 촉수들!
사방에 흩어진 촉수가 잘린 낙지 다리처럼 꿈틀거렸다.
잠시 후 폭음이 그쳤을 때 거대 괴수는 촉수가 모조리 잘려 나가 밋밋한 본체만 남겨졌다.
그리고 구멍 뚫린 상수도처럼 본체 곳곳에서 체액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거대 괴수의 염동력을 막고 있었는데.
갑자기 거대 괴수가 스스로 자폭을 해 버렸다.
“이놈 뭐야?”
천문석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길어진 봉 위에서 하늘과 땅을 살폈다.
어느새 마력 안개가 흩어지는 하늘과 땅.
마신의 눈은 집중공격을 박고 추락하고, 거대 괴수는 스스로 자폭해서 아작이 났다.
안개가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내는 마수들은 잘려 나가 꿈틀거리는 촉수와 충돌해 실시간으로 박살 나고 있었다.
“허무하게 이게 뭐야? 왜 갑자기 자폭하냐…….”
자신도 모르게 말한 순간, 머리를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자폭!
코어!
이런 미친!
자폭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서 코어를 깜박했다!
천문석은 봉을 잡고 본체를 향해 미끄러지며 외쳤다.
“내 코어!”
단숨에 거대 괴수의 본체에 떨어진 천문석은 짧은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구웅-
검에 극음의 냉기가 서리고 검명을 울리는 순간.
파앗-
천문석은 거침없이 거대 괴수 본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중추신경계를 찾을 때, 거대 괴수의 코어가 있는 곳은 이미 확인했다!
중추신경계 안쪽 20미터!
부식성 체액을 막을 강화 전투복의 마력 필드가 간당간당하지만, 몸으로 때우는 건 익숙하다.
모자라는 건 극음도의 냉기를 이용하면 코어를 뽑아낼 때까지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천문석은 거대 괴수의 본체에 만든 십자 상처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흐흐흐흐흐흐흐
이때 머릿속을 울리는 강력한 사념이 느껴졌다!
마신의 사념!
그릇이 깨지고 추락 중인 마신이 냈다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사념이 울려 퍼지고 있다!
천문석이 몸을 빼내 하늘을 보는 순간.
쾅, 콰아앙-
사방에서 공기를 울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마신의 사념이 퍼져 나가자, 마력 안개 속의 마수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이 마수 사체 위에서 잘려 나간 촉수가 꿈틀거리는 순간.
마수 사체는 순식간에 촉수 안으로 빨려 들었다.
사체뿐만이 아니다.
피와 체액, 촉수 주위 마력이 담긴 안개마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흐흐흐흐흐흐흐
정신을 울리는 사념이 퍼지는 모든 곳에서 폭음이 터지고 시야를 가린 마력 안개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구멍이 뚫린 것처럼 짙은 안개가 사라진 곳마다 꿈틀거리는 촉수가 보였다.
마수의 사체와 피, 체액, 마력의 안개를 빨아들이는 촉수가!
분명 거대 괴수 주위로 떨어졌던 촉수는.
어느새 멀리 항구 가장자리, 모래사장, 시가지 곳곳에 흩어져 마수의 사체를 빨아들이고 있다!
천문석은 기이한 직감에 기감을 퍼트렸다.
기감을 막던 마력 안개가 급격히 사라지고, 넓게 퍼진 기감에 잘려 나간 촉수가 느껴졌다.
마수와 마력 안개를 폭식한 촉수들이 한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천문석은 이 촉수들이 모이는 곳을 봤다.
안개가 모두 사라져 탁 트인 이곳에서는 사방에서 모여든 촉수가 꿈틀거리며 뒤엉켰다.
뒤엉키는 촉수는 거대한 덩어리, 어인의 몸통을 닮은 육체를 만들고 있었다.
천문석은 이 거대한 덩어리 바로 위로 시선을 옮겼다.
형광 체액을 쏟아 내며 추락하는 거대한 눈.
마신의 눈이 떨어지는 곳에 촉수가 뒤엉켜 어인의 몸통을 만드는 장소가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신의 눈.
대지에서 수많은 촉수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몸통.
마신의 눈과 거대한 몸통에선 자성에 끌리는 철가루처럼 솟아난 촉수가 서로를 향해 뻗어간다.
마치 하나로 이어지려는 것처럼!
천문석은 직감했다.
항구와 시가지, 해수욕장에 가득 차오른 마력 안개.
이건 의식이었다.
마수를 제물로 바쳐 마신이 강림하기 위한 의식!
이 순간 천문석은 촉수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몸통에서 뻗어 나올 팔, 다리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눈 하나로도 개고생을 했는데 마신의 몸통과 팔, 다리까지 가진 놈이 강림한다면!?
끝장이다!
* * *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훑었다.
급속히 사라지는 마력 안개, 다행히 항구의 시계가 살아나고 있다!
함대와 기갑부대가 추락하는 마신의 눈을 완전히 박살 낼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천문석은 봉을 뽑아 들고 달리려다가 문득 멈춰 섰다.
쿵, 쿵, 쿵…….
거대 괴수의 본체에서 느껴지는 맥동이 점점 약해진다.
이 진동을 느낀 순간 이 안에 있을 그것이 생각났다.
거대 괴수 코어.
15분!
아니 11분만 있으면 코어를 뽑아낼 수 있는데!
감이 왔다.
여기서 코어를 뽑다가는 좆될 거라는 감이!
“젠장!”
그러나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천문석은 검을 뽑아 코어가 있는 부위에 코어가 있다는 표시를 하고 재빨리 짧은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봉을 빼 들고 거대 괴수의 본체 위를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달렸다.
그리고 봉을 내려치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휘이이잉-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다.
목표는 촉수로 만들어지는 몸통!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신의 눈과 촉수 몸통 이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천문석은 길게 늘인 봉을 연속해서 내려쳐 사방에서 몰려드는 잘린 촉수 위로 날아갔다.
꽈드드득-
휘이이잉-
촉수로 만들어지는 몸통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이 순간 중력이 강해진 듯 몸이 무거워지고 강화 전투복의 마력 필드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엄청난 반발장이다!
천문석은 구인창의 기합을 지르며, 뽑아 든 봉에 구인창의 경력을 담아 내려쳤다!
이얍!
쿵-
구인창의 경력이 실린 봉이 촉수에 닿는 순간.
촉수는 단숨에 굳어 버리더니 파르르 경련했다!
천문석은 거대한 촉수 몸통 위로 떨어지며 구인창을 폭풍처럼 펼쳤다.
얍, 얍, 야얍!
쿵, 콕, 쿵, 콕콕-
구인창의 기합과 경력이 터질 때마다.
촉수는 파르르 경련하며 힘을 잃고 투둑, 투두둑- 바닥에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떨어져 나가는 촉수보다 사방에서 모여드는 촉수가 더 많고 반발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어느새 몸통의 팔, 다리 부위가 볼록하게 솟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앗-
천문석은 기합을 터트리며 왼손에 검을 뽑아 들고 극음도의 내력을 터트렸다.
콰드득-
짧아진 봉을 꿈틀거리는 촉수 사이에 박아넣어 틈을 벌리고!
파스슥-
극음의 냉기가 서린 검을 앞세워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전신을 내리누르는 뒤엉킨 촉수의 압력을 짧아진 봉을 기둥처럼 받쳐서 버티고.
앞을 막은 촉수를 극음의 검으로 얼리고 부숴 버리며 전진했다!
천문석은 이렇게 촉수 몸통 안으로 파고들면서 기감을 퍼트렸다!
반발장이 사라진 촉수 몸통 내부, 기감이 뒤엉킨 촉수를 훑으며 안쪽으로 뻗어 나갔다.
촉수, 촉수, 촉수, 촉수…… 허공!
기감이 거대한 덩어리를 모두 훑는 순간.
천문석은 경악했다.
“이놈 뭐야!?”
마석도 중추신경계도 핵도 없다.
이 녀석은 말미잘 거대 괴수와 달리 본체없이 촉수만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한 반발장을 펼친다고!?
의문을 품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본체가 없는 게 아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원격 스트리밍이다!
마신과 사도!
서버와 플랫폼.
이 촉수로 만들어 낸 몸통은 마신이 사념을 통해 원격 스트리밍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플랫폼이다.
저 마신의 눈, 사념자체가 서버 본체다!
즉 서버와 플랫폼의 연결을 끊기 위해서는…….
“……!”
생각을 이어 가던 천문석은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본체, 서버, 플랫폼, 클라우드, 스트리밍.
이런 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 자신은 물건을 공들여 해체하는 게 아니라 박살 내려는 거다.
그리고 무언가를 박살 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냥 때려 부수는 거다!
천문석은 재빨리 뒤로 기어 촉수 몸통에서 나왔다.
그리고 굉천수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촉수 몸통, 이곳에 사격 표적지를 만들어 함포 사격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이때 항구 입구 방향과 하늘, 바다 사방에서 확성기에 실린 음성이 들려왔다.
-사선 확인!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 * *
음성이 들려온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봉을 촉수 틈에 박아넣고 길게 늘이며 밀어붙였다.
콰드드드득-
봉이 활대처럼 크게 휘는 순간 이 탄성을 이용해 단숨에 몸을 쏘아 보낸다!
파아아앙-
천문석이 쏘아지는 동시에 하늘에서 미사일이 떨어졌다.
쐐애애애액-
엄청난 속도로 날아온 미사일이 촉수의 강력한 반발장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펑, 촤아아아악-
폭발 순간 반짝이는 가루가 터져 나와 촉수 몸통 전체에 달라붙었다!
사격 지시용 마커!
이때 하늘로 날아오른 천문석의 귀에 사방에서 다가오는 기동음이 들렸다.
타다다다다-
하늘을 가르는 시호크 헬기들!
쿠와아아앙-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모여드는 전차와 장갑차량!
항구 앞, 바다에는 어느새 이십여 척의 군함이 함포를 겨누고 있다!
천문석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사격 표적지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마수와 싸워 온 헌터 부대와 제주 함대, 호위대군 함대는 유능했다.
마력 안개가 사라지고 시계가 열리자 촉수로 만들어지는 거대한 몸통이 나타났다.
게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신의 눈과 몸통이 이어지려 하고 있다.
척 봐도 뭔가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다.
이 순간 헌터 부대와 호위 대군 함대는 헌터 업계의 오랜 격언을 따랐다.
뭔가 위험한 게 보이면 마탄부터 갈기라는 격언을!
이때 사격 지시용 마커의 위치 정보가 시호크 헬기를 거쳐 이지스 구축함으로 전해졌다.
이지스 구축함은 표적의 제원을 순식간에 뽑아내 바다 위 이십여 척의 군함, 육지의 수십 대의 전차, 하늘의 시호크 헬기로 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다, 육지, 하늘에서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쿵, 쿵, 쿵-
쾅, 쾅, 쾅-
타다다다다-
시차를 두고 발사된 5인치 마력 포탄, 120mm 활강 포탄, 분당 700발의 기관총탄이 동시에 촉수로 이뤄진 몸통에 작렬했다!
그러나 첫 공격은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했다.
쾅, 콰아앙-
엄청난 화염과 마력 섬광이 터졌지만,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강력한 반발장에 막혔다.
하지만 일제 포격이 이어지며 상황은 점차 변했다.
강력한 반발장은 어느새 마력 포탄에 새겨진 마력 섬광에 불타고, 포격의 엄청난 물리력과 마탄의 저주가 촉수로 이뤄진 몸통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이 순간 타워 크레인을 향해 날아가는 천문석은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역시 현대 무기!
아무리 반발장이 강하다고 해도 계속 마력 포탄을 쏟아부으면 결국 박살 나는 건 마찬가지다!
“하, 이번 일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촉수로 만들어지던 몸통은 작살나고 있고, 마신의 눈은 너덜너덜해져 추락 중이다.
곧 전투는 끝나고,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아니 할 일이 하나 있다!
천문석은 눈을 반짝였다.
전투 보상, 거대 괴수 코어!
탁-
타워 크레인 위에 내려선 천문석은 재빨리 거대 괴수 본체를 찾았다.
그런데 거대 괴수의 본체가 쓰러진 자리에 없었다.
“뭐야. 이 녀석 힘이 남아서 바다로 기어 갔나?”
천문석은 높게 솟은 타워 크레인에서 기감을 퍼트리며 주위를 살폈다.
“……!”
이 순간 전에 한 번 겪은 감각이 천문석의 몸을 스쳐 지나간다.
공기가 무게를 가지고 내리누르는 듯한 감각.
천문석은 이 감각의 정체를 바로 깨달았다.
신동대문에서 마혁진과 싸웠을 때, 거대 괴수가 염동포탄을 끌어올릴 때의 감각이다.
염동력장!
거대한 염동력장이 항구 전체를 넘어 멀리 시가지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염동력장을 쓸 놈은 하나뿐이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추락하는 적을 봤다.
마신의 눈.
너덜너덜해져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마신의 눈에서 염동력장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