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81화>
064 헌터 부대가 다급히 움직이고 있을 때, 제주도의 여러 유력자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장 헬기 띄워!”
“헬기가 안 되면 배라도 띄우라니까!”
-탈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국회의원.
“거대 괴수라고!?”
“젠장! 거대 괴수면, 이 벙커도 뚫릴 수 있잖아!?”
-애써 준비해 둔 벙커가 무용지물이 되어 분통을 터트리는 기업인.
“하- 시바. 3년 만에 온 휴가인데 뭐 이리 재수가 없어!”
“원래 우리 길드가 재수가 더럽게 없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장비까지 다 챙겨서 온 거 아니냐?”
“젠장, 휴가지에서까지 전투라니! 빌어먹을!”
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강화 전투복과 장비를 착용하는 휴가 중인 헌터들.
이렇게 제주도의 수많은 사람이 각자 도망치고, 숨고, 싸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한적한 도로 위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 한 명이 통화하고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에 옮겨져 쌓이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 사체에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바짝 긴장한 경호원.
장강 유통의 제임스였다.
“아닙니다! 대표님!”
“바로 VIP분들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표님!”
“문제없습니다! 오시기 전에 조치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뚝- 전화가 끊긴 순간 제임스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도로에 쌓인 해양 마수와 몬스터 사체를 나르던 경호원들이 우뚝 멈춰 섰다.
바짝 긴장한 채 자신만 보고 있는 경호원 수십 명!
“이 멍청한 새끼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제임스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경호원이 몇 명인데 아이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다니!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아이는 그냥 애가 아닌 악마 꼬맹이였으니까!
제임스는 긴장한 경호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긴말 않겠다. 대표님이 화가 나셨다.”
“…….”
신입 경호원과 선임 경호원 모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장강 유통의 장민 대표.
장민 대표는 언제나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모습만 보여 줬다.
그들이 아는 장민 대표는 수백억의 손실을 보거나, 헌터 군벌의 위협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장민 대표라도 머리끝까지 화가 날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안전지대 제주도에 나타난 거대 괴수!
사실 거대 괴수가 나타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VIP 일행이 제주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제주 지사에서는 안전 가옥과 긴급 탈출 준비를 끝내고 관계자의 협조까지 받아놨다.
거대 괴수가 나타난 순간 보호 대상인 VIP들과 안전 가옥으로 이동, 준비된 탈출로를 통해 탈출하면 일은 깔끔하게 끝날 거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보호 대상인 VIP들에게서 잠시 눈을 뗀 순간 이들 셋 모두가 사라졌다!
이때 제임스가 선글라스를 벗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본사에서 긴급 대응팀이 출발했다.”
“그리고 장민 대표님도 회의를 취소하고 오고 계신다.”
“긴급 대응팀이 찾기 전에 VIP를 확보 못하면.”
“너희들 모두 던전 광산으로 발령 날 거다.”
던전 광산 발령!
사실상의 해고 통보다.
아니, 해고 통보보다 더 안 좋았다.
장민 대표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동종 업계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의 그 누구도 이들을 채용하지 않을 거다.
경호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할 때, 제임스는 손을 움직여 항구를 가리켰다.
타다다다다-
거대 괴수가 연신 바닷물을 퍼 올리고, 헌터 부대원들의 마탄 사격음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항구!
제임스의 손이 항구 옆으로 움직였다.
새하얀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
그리고 해수욕장에서 잠시 멈췄던 손이 계속 움직였다.
자동차 경주장을 가리키고, 박살 난 건물과 도로를 지나, 폭격이라도 맞은 듯 부서진 시가지의 한 호텔에서 멈췄다.
해수욕장, 자동차 경주장, 호텔.
세 명의 VIP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장소들이다.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하는 순간.
제임스는 외쳤다.
“당장 찾아라!”
경호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장갑 SUV를 향해 달려갔다.
제임스는 누굴 찾아야 할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이들 모두는 누굴 찾아야 할지 이미 머리에 새겨 두고 있었다.
어제 제주도에 도착한 세 사람.
자동차 경주장에서 부가티 헌터 미니를 타고 튀어나와, 단숨에 추적을 따돌리고 해수욕장으로 달려간 꼬맹이.
일명 특급 헌터, 코드네임 악마 꼬맹이!
그리고 호텔에서 사라진 악마 꼬맹이의 친형, 친누나나 다름없는 두 사람.
천문석과 류세연.
부으으으응-
십여 대의 장갑 SUV가 흩어져 해수욕장과 호텔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특급 헌터, 천문석, 류세연.
세 명의 VIP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문제가 생기면 장민 대표의 분노가 쏟아진다!
* * *
부으으으으응-
천문석이 운전하는 부가티 시론이 도로와 인도를 오가며 질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곳곳에 버려진 차량 때문에 운전하기 힘들었지만, 거대 괴수가 나타난 항구가 가까워질 수록 운전이 편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로 위에 버려진 차량이 새어 나온 해양 마수와 몬스터에 박살 나 도로가 뚫려 있었다.
철컹-
이때 도로 옆 골목에서 쇳소리를 내는 거대한 집게가 튀어나왔다!
끼이익-
천문석은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콰아앙-
거대한 집게가 아스팔트에 박히는 순간.
부으으으응-
급가속해서 튀어 나가는 부가티 시론!
콰지지직-
거대 집게가 아스팔트를 잘게 부수며 뽑혔다.
그리고 거대 집게를 가진 해양 마수, 대형 게가 엄청난 속도로 부가티 시론을 쫓았다!
파바바박-
파바바박-
검은 아스팔트 조각을 흩날리며 달리는 5미터가 넘는 몸통의 대형 게 마수!
그러나 천문석이 운전하는 차와 게 마수 간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당연했다.
부가티 시론은 직선으로 달렸지만, 대형 게 마수는 갈지자, 좌우로 달려서 쫓고 있었으니까!
하하하-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린 순간.
탁-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
문득 돌아보니 류세연이 사촌 언니의 손을 움켜잡은 채 물었다.
“아직 멀었어? 벌써 도착할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는 두려워하는 사촌 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질문이었다.
“걱정할 거 없어. 막힌 도로를 좀 돌아가서 안 보이는 거야. 곧 농장에 도착할 거야.”
천문석은 웃으며 대답했지만, 사실 지금은 농장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슬쩍 본 백미러에 더 커진 검은 먼지구름이 보였다.
부가티 시론의 뒤를 쫓는 자욱한 검은 구름, 저게 문제였다.
저 검은 먼지의 정체는 박살 난 아스팔트와 기름 화재다.
저 검은 먼지를 일으키는 건 헌터 부대의 화망에서 새어 나온 10여 마리의 해양 마수와 몬스터들.
부가티 시론으로 시가지를 뚫고 달리는 동안 이놈들의 어그로가 끌려 버렸다.
대부분은 크게 뒤처졌고, 바로 뒤에 붙은 놈은 셋뿐이었다.
갈지자로 달리는 대형 게 마수 2마리, 꿈틀꿈틀 기어 오는 거대한 촉수 덩어리 마수 1마리.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들은 아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맨몸으로도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차가 농장 근처에서 멈추면, 뒤에 붙은 마수와 몬스터들이 농장으로 쏟아져 들어갈 거란 거다.
자신의 몸은 하나, 모든 마수와 몬스터를 한자리에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고심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하는 순간 답은 나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천문석은 류세연에게 슬쩍 눈짓했다.
“세연아. 뒤에 놈들 농장에 더 가까워지기 전에 처리해야겠다. 내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네가 운전석에 앉아서 농장으로 차를 몰아.”
“알았어.”
류세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도, 걱정도, 의문도 없었다.
“……그게 끝이야?”
“응? 뭐가?”
류세연이 의아해하는 순간 천문석은 말했다.
“야, 당연히. 괜찮아? 위험한 거 아냐? 그냥 같이 올라가자!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 아냐?”
“…….”
“해양 마수랑 몬스터를 혼자 막는다고 말했는데. ‘알았어.’라는 건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천문석이 농담하듯 묻자, 류세연도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놈들 상대할 자신 있는 거 아냐?”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걱정은 해야지!”
“왜? 각성했잖아?”
“어?”
천문석은 당황해서 류세연을 봤다.
신동대문의 일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특급 헌터의 엄청난 친구소환 능력에 놀라고.
뒤이어 다급히 제주도에 오느라 세연과 특급 헌터, 철수 형 모두에게 자신이 각성한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류세연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한다.
“……너 나 각성한 거 어떻게 알았냐?”
흐흐흐-
류세연이 대답 없이 음흉하게 웃는 순간, 불타는 자동차로 막힌 도로가 보였다.
끼이익-
부으으응-
천문석은 재빨리 핸들을 돌려 인도로 올라갔다.
그리고 불타는 자동차를 지나 도로로 내려 순간 거대한 농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농장까지 이어진 언덕 도로는 버려진 차 몇 대만 있을 뿐 뚫려 있었다.
“세연아 준비해라! 여기서 막을게.”
세연은 사촌 언니의 손을 놓고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농장 입구가 500여 미터쯤 남았을 때.
천문석은 외쳤다.
“지금!”
류세연의 손이 핸들을 잡고 발을 엑셀 위에 올리며 운전석으로 넘어오는 순간.
천문석은 단숨에 창문 밖으로 몸을 빼내 뛰었다.
쾅, 탁, 탁, 탁-
가볍게 땅을 박차 충격을 죽이고 뒤따르는 해양 마수에게 돌진하며 외친다.
“멈추지 말고 달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대형 게 마수 두 마리!
파바바박-
갈지자로 달려 오던 대형 게 두 마리가 좌우에서 맞물려 다가오는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린 채 몸을 낮추고 이 사이로 뛰어들었다.
팟, 팟, 팟-
땅을 박차고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천문석.
대형 게의 사거리에 들어가는 타이밍, 두 마리 게의 몸이 겹쳤다!
뒤에 있는 놈의 시선이 가려지고, 앞에 있는 놈은 뒤에서 날아오는 집게발에 균형이 흔들렸다.
철컹, 철컹-
쇳소리를 내는 거대한 집게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순간.
천문석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차에 뛰어내린 순간부터 끌어올린 내력을.
지금 폭발시킨다!
목표는 강도가 약한 배 부위!
강하게 짓누른 스프링이 튕겨 오르듯 날아가는 육체와 비틀려 꽂히는 주먹!
대형 게의 배 아래에 천문석의 내력이 실린 주먹이 꽂히는 순간.
탁-
엄청난 내력이 실린 공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작은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천문석의 내력이 폭발했다.
콰지직-
연약한 배가 으스러지듯 깨지고, 거친 경력이 내부로 쏟아져 들어가 헤집는다!
파아앙-
녹색 내장과 체액이 솟구치는 순간.
천문석은 앞으로 넘어졌다.
철컹-
섬뜩한 굉음과 함께 머리가 있던 공간을 잘라 버리는 거대한 집게발!
몸이 겹친 대형 게 마수 둘 중 뒤에 있던 놈의 공격이다!
천문석은 앞으로 넘어진 채 옆으로 굴렀다.
여름 한낮의 열기에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 이글거리는 열기가 확 올라왔다.
열기에 전신이 익을 듯했으나, 이걸 신경 틀 틈은 없다!
쾅, 쾅, 콰지직-
거대한 집게발이 연속으로 떨어져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산산조각냈다.
대형 게는 반격할 틈도 없이 파박, 파바박-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연속으로 공격을 쏟아 냈다!
이때 버려진 SUV가 보였다.
천문석은 차고가 높은 SUV 아래로 단숨에 굴러 들어갔다.
콰아앙-
거대한 집게발이 SUV에 박혀 들고 도난 경보기가 울릴 때.
위잉, 위이잉-!
천문석은 SUV 차체를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차체에 박힌 집게를 타고 올라 집게발 위를 달렸다.
타다닥-
5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집게발!
천문석이 거대한 집게발 위를 달리는 순간 반대쪽 집게발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깡, 깡, 깡-
대형 게가 천문석의 몸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때리는 매 순간, 강철을 때리는 듯한 쇳소리가 터지고 불꽃이 튀어 올랐다.
엄청난 강도의 갑각!
천문석은 대형 게의 공격을 피하며 머리까지 달려 눈을 걷어차고 등 갑각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눈을 차인 충격에 파르르 경련하다가 공격을 이으려 했지만, 게는 구조상 등 뒤를 공격할 수 없다.
짧은 시간을 번 이 타이밍.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아스팔트를 밟고 선 대형 게의 다리를 끊었다!
쾅, 꽈드드득-
다리가 뚝 끊어져 나가고, 대형 게가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 순간.
천문석은 경력이 실린 등으로 기대듯 대형 게의 등껍질을 강타했다!
첩산고((貼山靠)!
콰아아아앙-
다리가 끊긴 대형 게가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는 순간.
단단한 등껍질 위로 뛰어올라 마종권의 마보(馬步)를 취한다!
머리는 태양을 향하고, 어깨에는 태산을 짊어진다!
기경팔맥을 몰아치는 내력이 심상 공간에 태산을 구현하는 순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허벅지와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는 전신!
천문석은 태산을 지고 걷는 거인이 되어 마종권의밟아 나갔다.
쿵…… 쿵…… 쿵…….
한없이 느리게, 스치듯 움직이는 마보.
그러나 이 느린 한 걸음 한걸음에는 산을 무너트리고 대지를 깎아내 거대한 협곡을 만들어 내는 엄청난 무게와 힘이 실려 있었다.
이 거대한 무게에 대형 게의 강철보다 단단한 등껍질이 와그작- 깨지고!
녹색 내장이 폭발하듯 치솟았다!
집게발을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무게가 해양 마수, 대형 게를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천문석의 마보가 게 마수의 머리를 박살 내기 직전.
후드드득-
하늘에서 형광 촉수 다발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