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21화 (22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21화>

‘와, 이게 이렇게 연결된다고!?’

천문석은 감탄했다.

이번 ‘아니 땐 굴뚝 연기’ 작전은 처음 계획과 달리 엉망진창으로 굴러 갔다.

그 결과 신동대문 전체에 헌터 웨이브가 몰아치고, 삼합회가 아작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처음 계획대로 몬스터 스노우볼을 굴린 진짜 범인이 튀어나왔다.

삼합회, 칠성파, 야쿠자!

범인은 이 셋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범인이 밝혀져서는 곤란했다.

몬스터 웨이브로 대박을 치겠다고 신동대문의 모든 헌터가 들떠 있는데.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계략에서 시작된 거로 밝혀지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뿌리는 격이다.

싸움은 기세가 반 이상이다.

전투에 앞서 아군의 사기를 꺾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정의 구현이 중요해도 이 모든걸 밝히는 건 모기 잡자고 불 지르는 격이다.

‘아,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생각과 동시에 천문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최평과 최설 둘이 돌변한 천문석의 분위기에 눈치만 살필 때.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지고 철문이 문틀째로 떨어져 내렸다.

쿵-

육중한 굉음에 뒤이은 다급한 외침!

“야, 괜찮냐!?”

“도와주러 왔다!”

“여기 삼합회 보스가 있다고!”

자욱한 연기 너머, 갖가지 할로윈 가면을 쓴 헌터들이 나타났다.

얼굴을 가렸지만,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소총을 둔기처럼 들고 있는 이심.

가벼운 옷에 몽둥이를 든 헌터.

두꺼운 방패를 든 탱커.

……

중국계 헌터들이다.

그리고 이 뒤로 속속 밀려 오는 수많은 헌터들.

이들의 시선이 악어 가면을 쓴 천문석 너머 서로 부축하고 있는 최평과 최설에게 꽂혔다!

“공고문 떼간 삼합회 보스!?”

누군가 외치는 순간 헌터 무리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삼합회 보스를 아작낼 분위기!

그러나 일이 이렇게 돌아가면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정체가 밝혀진다.

천문석은 재빨리 부서진 문 앞으로 달려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잠깐!”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던 헌터들의 의아한 눈.

이심은 천문석을 향해 외쳤다.

“어, 뭐야!? 저놈이 공고문 사건 범인이잖아? 당장 작살을 내야지!?”

“아니다!”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큰소리로 외쳤다.

“아니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삼합회가 공고문 떼간 범인이 아니라고?”

……

천문석은 수많은 마인과 마도 18문을 다룬 전생의 경험으로 집단의 기세와 광기, 움직임에 정통했다.

군중은 끓어오르기도 쉽지만 식는 것도 빠르다.

의혹을 제기하자, 웅성거리며 기세가 누그러지고.

혹시 실수한 게 아닌가 찔끔하는 헌터들도 느껴진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이는 순간.

누그러지는 기세에 기름을 붓는다!

“삼합회! 칠성파! 야쿠자!”

“어!”

헌터들이 깜짝 놀랄 때, 천문석은 짧게 말을 끊어 외쳤다.

“이번 일은 이 세 집단이 함께 벌인 일이다!”

“우리가 책임을 물을 놈들이 더 있다!”

“여기 한국계 있냐?”

곳곳에서 손을 드는 헌터들!

“한국의 칠성파, 칠성 길드도 범인이다!”

“여기에 일본계 있냐!?”

다시 몇몇 헌터가 조심스레 손을 든다.

“일본의 규슈 야쿠자도 범인이다!”

“뭐!”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범인이 더 있었다고!?”

한국계 헌터와 일본계 헌터에게 불편한 시선이 쏟아질 때.

쿵-

천문석은 바닥을 크게 울리게 밟고, 앞으로 나서서 이심의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여기 중국계 헌터들은 앞장서서 삼합회를 조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중국계 헌터들!

“그렇지…….”

“우리가 앞장서서 조졌지!”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냐?”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한국와 일본 헌터에게 모이는 기대 어린 시선들.

대답은 즉각 튀어나왔다.

“칠성 길드를 아작 내야지!”

“당연히! 규슈 야쿠자를 박살 내야지!”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아작 내자!”

“박살 내자!”

우와아아-

폭발적인 환호성이 튀어나오고.

쿵, 쿵, 쿵-

미친 듯이 발을 구르고 몽둥이로 벽과 방패를 두들긴다.

폭력은 중독성이 강하고 군중의 광기는 모든걸 집어삼키는 불이다.

삼합회가 아작난 지금, 헌터들의 눈빛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기대감으로 번뜩였다.

천문석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헌터들에게 외쳤다.

“달려라! 헌터들! 우리 헌터는 모두 하나다! 우리의 적! 칠성파와 야쿠자를 박살 내자!”

우와아아아-

“우리는 하나다!”

“헌터는 모두 하나다!”

헌터들은 광기 어린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광기에 매몰되지 않은 이성적인 헌터들이 있었다.

헌터 무리 곳곳에서 의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깐! 뭔가 이상해!”

“모두 잠깐! 이거 말이 안 되잖아!?”

“거대 범죄조직 셋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공고문을 떼어가!?”

“이거 조폭 수백 명이 꼬맹이 사탕을 뺏었다는 말이잖아! 잠깐 멈춰 서 생각 좀 해 보라니까!”

……

그러나 늘 그렇듯이 하나로 결집하여 움직이는 군중에게 냉철하고 합리적인 의견은 먹히지 않았다.

잠시 후 창밖에서 들려오는 외침들.

“야! 다른 범인들 찾았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범인들?”

“삼합회가 범인 아니었어?”

“다른 범인들이 더 있었다!”

“칠성파가 범인이다!”

“야쿠자! 규슈 야쿠자도 범인이다……!”

……

우와아이아!

가자아아-!

다시 한 번 거대한 함성이 터지는 순간.

헌터 웨이브는 새로운 먹잇감, 칠성파와 야쿠자를 향해 움직였다.

*   *   *

“와! 이런 귀신 같은 놈! 칠성파랑 야쿠자가 관련된 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어느새 텅 빈 사무실, 이심은 연신 감탄했다.

어쩌다가 얻어걸린 상황.

천문석은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어쩌다 보니까?”

이심은 천문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했다. 난 이만 간다. 넌 안 가냐?”

“먼저 가라. 난 여기 정리하고 갈게.”

천문석은 멍한 얼굴로 사무실 한쪽에 서 있는 최평과 최설을 슬쩍 가리켰다.

“수고해라!”

이심은 천문석의 등을 툭 치고, 목소리를 확 낮춰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큰일 날 뻔했는데…… 네 덕분에 잘 해결됐다.”

이심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윙크했다.

“……!”

이 순간 천문석은 이심의 무리한 행동이 계획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심은 화살 출처가 상해로 확인되자마자, 삼합회를 적으로 규정하고 선동하듯 중국계 헌터를 몰아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보여 주듯한국인인 자신을 끼워 넣었다.

이 무리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신동대문에서는 외국계 헌터와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었고, 중국계 헌터인 이심도 당연히 이걸 느꼈으리라.

마침 공고문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사용한다는 ‘붉은 화살’이 증거물로 제시됐다.

그런데 붉은 화살의 출처가 ‘상해’로 밝혀졌다.

그대로 있다가는 중국계 헌터와 주민 모두가 범인 취급을 받을 상황.

자칫 군중의 분노가 쏟아지면 중국계 전체가 약탈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개인이 아닌 군중은 이성보다 감성으로 움직인다.

분노하는 군중에게 이성과 합리로 호소해도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감성에는 감성으로 대응해야 한다.

마침 상해에는 중국계 헌터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헌터들이 싫어하는 조직이 있었다.

‘삼합회.’

‘공통의 적‘은 언제나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이심은 삼합회를 제물 삼아 중국계 헌터와 주민에게 쏟아질 분노를 막아 낸 것이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계획.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생각하고 실행하는 건 쉽지 않은 계획이었다.

그러고 보니 무기 공방에서 나오자마자, ‘삼합 길드’로 헌터들을 이끈 것도 눈앞의 이심이었다.

이심은 처음부터 삼합 길드가 삼합회의 비밀 길드라는 걸 알고 있던 것이다!

이런 용의주도함이라니!

하-

천문석이 헛웃음을 터트릴 때.

이심은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손을 흔들었다.

“난 사람들 안심시키러 가야겠다. 요즘 분위기 때문에 주민들이 걱정이 많았거든. 다음에 만나면 신세 진 거 꼭 갚을게! 오늘 정말 고맙다!”

“야, 됐어. 신세는. 조심해서 가라!”

천문석은 이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창으로 움직였다.

분분히 사방으로 달려가는 헌터들을 보며 새삼 느낀다.

감성으로 움직이는 군중이 때로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감성대로 움직이는 군중 속 사람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멍청해서 이성과 합리의 호소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이들 군중 속 개개인은 알면서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휩쓸린 것 같은 사람조차도, 다수 군중에 끼어드는 게 유리하다는 생존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폭도가 되면, 폭도에게 당할 일은 없어지는 거니까.

하-

천문석은 난장판을 바라보며 탄성을 터트리고,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삼합회 보스?”

텅 빈 사무실 안쪽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최평은 경악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칠성파, 야쿠자가 관련됐다는 작은 정보만 가지고, 분노한 헌터들을 순식간에 설득해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엄청난 무공실력에 더해, 경악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와 군중 장악력!

“…….”

최평은 한참 동안 악어 가면을 쓴 상대를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질문을 들은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가면을 쓴 사람에게 정체를 묻다니 어이없는 녀석!

그러나 최평에게는 아직 쓰임새가 있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악어 가면 뒤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 창천검 이세기다.”

*   *   *

깡-

쇠파이프로 바닥을 내려치는 순간 찔끔하는 호객꾼 헌터!

도를아십니까 길드의 호객꾼 헌터는 겁먹은 얼굴로 주위를 돌아봤다.

사방에 늘어선 흉악한 인상의 헌터 100여 명!

이들 모두가 칠성 길드, 칠성파 소속의 조폭 헌터들이다!

‘아니, 거점 도시에 무슨 조폭이 이렇게 많아!?’

호객꾼 헌터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도를아십니까 길드의 호객꾼 헌터들은, 각성 헌터에게도 들러붙는 호객의 프로들이지만 조폭과는 상극이었다.

대화가 가능한 각성 헌터와 다르게 조폭과는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칠성파 조폭들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전에 호객꾼 헌터는 모든걸 다 말했다.

마혁진은 붉은 화살을 내밀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붉은 화살. 다른 헌터에게 받은 거라고?”

“네! 맞습니다! 시청 헌터 부대에서 나오는 걸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놈 능숙한 사기꾼 같아 보이는 게…….”

호객꾼 헌터는 순식간에 길게 말을 쏟아 냈다.

깡-

순간 바닥을 때리는 쇠파이프!

“……!”

움찔해서 입을 닫는 순간.

조폭 한 명이 버럭 소리 질렀다.

“간단히, 새끼야! 간단히! 길드장님이 물으시는 말씀에 간단히 요점만 대답하라고!”

“넵!”

호객꾼 헌터가 겁먹은 얼굴로 대답하자, 마혁진은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그 헌터 연령대가 어떻게 되지?”

“20대 초반입니다!”

“혹시 길드나 헌터팀에 들어갔나?”

“아닙니다! 분명 개인으로 활동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마혁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 여기까지는 일치하는데…… 미치겠네! 그 녀석 이름이 뭐라고 했지!?”

호객꾼 헌터는 마혁진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세기‘입니다! 분명 ‘창천검 이세기‘라고 했습니다!”

“……진짜 이세기냐? 잘 생각해 봐 다른 이름 아니었어?”

호객꾼 헌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설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혹시 다른 이름이 필요하시면. 말씀만 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기억을…….”

“…….”

마혁진은 답답해졌다.

정황상 김 중령에게 들은 이름 ‘천문석‘이 나와야 하는데…….

엉뚱한 창천검 ‘이세기‘란 이름이 튀어나왔다!

‘설마, 고블린 평야에서 증거를 가지고 온 사람이 천문석 하나가 아닌건가?’

마혁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처음 공고문이 사라지고 헛소문이 돌았을 때는 칠성파를 노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화살을 회수하라고 칠성 길드의 부하들을 도시로 내보내고 얼마 후.

붉은 화살의 출처가 상해란 소문이 퍼졌다.

소문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삼합회가 공고문을 떼간 범인으로 지목됐고, 곧 삼합회의 비밀 사무실을 찾았다는 외침이 시가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 신동대문의 시가지에는 공고문 사건의 범인 삼합회 비밀 사무실로 달려가는 헌터들이 가득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칠성파, 야쿠자, 삼합회 순으로 꼬리가 드러나야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단계를 휙휙 뛰어넘어 너무나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똘마니에서 조직 보스에 오르기까지 온갖 일을 겪은 마혁진은 직감했다.

이 부자연스러운 전개는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 모든 건 시청 공고문을 떼간 녀석, 그 녀석이 꾸민 계략이다.

공고문을 떼가고 그 범인으로 붉은 화살의 출처 삼합회에 죄를 뒤집어씌운 거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계략!

붉은 화살이라는 물증이 나온 이상, 삼합회에서 공고문을 떼간 범인이 아니라고 해 봤자 믿어 줄 헌터는 없었다.

아니 범인이 아니게 되면 더 큰 일이 된다.

범인이 아니란 게 밝혀지면, 당연히 몬스터 몰이용 붉은 화살로 무엇을 했는지 의심을 할 것이다.

그리고 붉은 화살로 만든 몬스터 웨이브는 공고문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범죄다.

하-

마혁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계략이었다.

실제로 한일과 하지 않은 일을 붉은 화살이라는 물증으로 하나로 엮어 삼합회에 뒤집어씌웠다!

부인하는 순간 더 큰 죄를 인정하는 상황이 되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게다가 분노한 헌터들을 선동해서 신동대문 전체에 풀어 놓기까지 했다.

이런 미친 잔머리에 선동력이라니!

마혁진의 머릿속에서 이 모든걸 계획했을 이세기란 헌터의 모습이 그려졌다.

자잘한 잔챙이는 이런 큰 그림을 그려낼 안목도 수많은 헌터들의 마음을 움직일 능력도 없었다.

큰 그림을 그리는 안목.

완벽한 덫을 만드는 머리.

그리고 헌터들을 움직이는 선동력까지.

이세기는 엄청난 거물이다.

김 중령이 말한 천문석은 이세기에 비하면 잔챙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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