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96화 (197/1,336)

#196

끼이이익-

크아아아-

사방에서 경쟁하듯 들려오는 포효와 함성!

천문석은 랩터와 오크의 기감이 느껴지는 순간 달리는 방향을 바꿨다.

랩터를 가능한 무력화시키지 않은 건 이런 상황에서 쉽게 몸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한 난장판이 만들어지게 생겼다.

랩터 무리.

오크 부대.

오크 라이더.

비늘 코뿔소.

랩터 무리와 오크 부대 간의 전투.

수는 비슷하지만, 기동력은 랩터가 압도적.

당장은 랩터 무리가 유리하다.

그러나 오크 라이더 기병이 가세하면 상황은 변한다.

하지만 오크 라이더 뒤에는 전차나 다름없는 비늘 코뿔소 무리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갈대밭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들!

끼이이이익-

크아아아아-

당장 격돌 중인 랩터와 오크가 다가 아니다!

사방에서 또 다른 랩터와 오크가 밀려들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 랩터 무리 사냥을 했을 때 많아야 100마리 정도의 랩터가 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랩터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까지 어그로가 끌려 버렸다···.

"이게 뭐야! 하나둘이 아니잖아!? 몇 마리나 나타난 거야!?"

엠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엠마. 걱정할 것 없다. 굉천수 있잖아?"

"그렇지! 굉천수가 있었지!"

엠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앞장서 달리는 천문석의 얼굴은 어두웠다.

엠마는 굉천수를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굉천수에도 약점은 있었다.

좀 전에 굉천수로 랩터 백여 마리를 무력화시킨 것은 불을 질러 탁 트인 공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렇게 사방에 빽빽한 갈대밭에서는 굉천수의 섬광이 막혀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굉천수의 굉음도 문제다.

수백의 오크과 랩터가 격돌하는 전장에서 굉천수를 터트리면, 오크와 랩터의 어그로를 동시에 끌게 된다.

지금 굉천수는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

천문석은 갈대밭을 달리며 어이없어했다.

'신동대문 지역 안정화 됐다며!'

신동대문 서쪽 바위산에 사냥 캠프를 차린 지난 일주일.

처음에는 진짜 안정화 된 것 같았다.

마수와 몬스터는 각자 자신의 영역을 지켰고,

천문석은 보통 헌터처럼 사냥터를 설정하고 안전하게 치고 빠지며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곳 갈대 늪지는 분명 랩터의 영역인데,

북쪽에 있어야 할 오크 부족의 오크 라이더가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다.

위험을 감지한 천문석은 무리해서라도 빨리 의뢰를 끝내기 위해 랩터 몰이 사냥을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랩터 몰이 사냥을 한 오늘!

오크 라이더뿐만 아니라 무장한 오크 본대에 비늘 코뿔소까지 나타났다.

게다가 기존에 갈대 늪지에 있던 랩터 수를 몇 배나 넘어서는 랩터까지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다!

하나같이 자기 영역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마수와 몬스터들이 영역을 침범해 싸우고 있는 상황.

천문석은 직감했다.

신동대문 인근 지역, 이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

휘이잉-

순간 바람 방향이 바뀌고 훅 불어오는 랩터 체취!

미쳐 방향을 바꾸기도 전에 갈대밭에서 랩터가 튀어나왔다.

"위···."

엠마가 외치기도 전에 랩터의 목을 휘감는 천문석의 팔!

천문석은 달리는 힘 그대로 랩터의 목을 휘감은 채 땅으로 내리찍었다.

우드득-

단숨에 부러져 나가는 랩터 목!

천문석은 빙글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서며 외쳤다!

"숙여!"

엠마가 몸을 숙이는 동시에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

끼이이익-

엠마가 소스라치게 놀란 순간.

훙-

천문석의 강화 해머가 엠마의 머리 옆으로 날아가 랩터 머리를 때렸다.

콰아앙-

깜짝 놀란 엠마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거대한 랩터를 탄 오크 라이더가 땅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빠져!"

천문석은 방패와 단검을 뽑아 든 채 엠마 앞으로 돌진했다.

쾅, 쾅, 콰쾅쾅-

순간 터져 나오는 굉음들!

오크 라이더의 창이 쉴 새 없이 쏘아졌다.

천문석은 방패를 빙글빙글 돌려 창의 타점을 흘리며 타이밍을 잡았다.

그러나 오크 라이더는 능숙한 창술로 연신 거리를 벌리며 함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게다가 강화 해머를 맞고 바닥을 굴렀던 거대 랩터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투 소음!

전장이 가까워지고 있다!

이때 엠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지원한다!"

후드드득-

우박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속사로 쏘아지는 화살!

창술로 거리를 유지하던 오크 라이더의 전신에 화살이 쏟아졌다.

다급히 창을 돌려 화살을 걷어 내려 하지만.

크아아-

원을 그리며 휘어져 발등을 꿰뚫는 화살!

오크 라이더의 분노한 시선이 화살을 쏜 엠마에게 향한 순간.

어느새 뒤를 잡은 천문석의 방패가 오크 라이더의 목을 찍었다.

콰득-

오크 라이더는 일격에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천문석은 강화 해머를 회수해 랩터도 마무리했다.

끼이이익-

크아아악-

그러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전투 소음이 점점 커지고, 갈대밭 전체가 미친듯이 진동하고 있었다.

“이거 설마···. 포위된 거냐?”

엠마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할 때.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로 기감을 퍼트렸다.

주위 어느 곳이나 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랩터와 오크의 밀도가 적은 곳이 있었다.

"아직 빠져나갈 수 있다. 엠마. 내 뒤에 바짝 붙어! 뚫고 나가야 한다!"

천문석은 방패와 강화 해머를 들고 전장으로 돌진했다.

"젠장!"

그리고 이 뒤를 엠마가 활을 꺼내 들고 바짝 따라붙었다.

끼이이익-

크아아아-

사방에서 들려오는 랩터와 오크의 포효 속에 생경한 외침이 섞여들었다.

“시바, 시바! 개시바!”

---

천문석과 엠마가 갈대 늪지를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3시간이 걸렸다.

랩터와 오크 라이더의 엄청난 기동력으로 전장이 빠르게 변화해 뚫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천문석은 오크 라이더에게 뒤를 잡히지 않기 위해 갈대 늪지를 빠져나온 후에도 크게 우회해서 계곡을 타고 바위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한 무렵.

평평한 계곡을 걷는 천문석과 엠마 두 사람은 말라붙은 진흙과 갈대, 피에 젖은 옷으로 엉망이 된 상태였다.

"야, 그래도 무사히 빠져나와서 다행이지 않냐?"

천문석이 활기차게 말한 순간,

엠마는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천문석을 보다가 자신의 옷을 가리켰다.

"야! 3시간 동안 개고생을 하면서 간신히 전장을 빠져나왔는데! 뭐, 다행이라고?! 너 이 옷 안 보이냐!?"

"원래 헌터 일하면 이런 일도 있는 거야."

천문석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순간,

엠마는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하- 이 더럽게 긍정적인 새끼!"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처음이라면 오만불손한 직원을 빡세게 굴려 다시 존경심을 심어 줬겠지만.

사냥 캠프를 차리고 일주일, 엠마는 훌륭하게 미끼 역할을 해냈다.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훌륭한 직원 엠마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뭐야? 직원이 지금 부사장님에게 욕한 거야? 너 감봉 맛 좀 볼래?"

"나 무급이잖아!!"

"...그래도 내가 안전은 보장하잖아?"

엠마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계곡 아래 갈대 늪지를 가리켰다.

파도치듯 흔들리는 갈대 늪지에서는 아직도 랩터와 오크, 다른 마수와 몬스터가 뒤엉킨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안전? 랩터 몰이 사냥하다가 저 꼴을 만들었는데 말이지?"

천문석은 겸연쩍게 웃으며 허리벨트의 잡낭을 툭 건드렸다.

차륵-

"그래도 그 덕분에 랩터 갈고리발톱은 모두 모았잖아?"

"야, 이!"

엠마가 분통을 터트리려는 순간,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순간 엠마는 솔깃한 얼굴로 외쳤다.

"서울로 돌아가는 거야!?"

"당연히 아니지. 아직 일거리 남았어. 우선 신동대문으로 돌아가서 재보급하자."

서울은 아니지만 거점 도시 신동대문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벌써 일주일째 야지에서 구르던 엠마의 얼굴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천문석과 엠마는 곧 계곡 중간, 사냥 캠프가 있는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는 높이가 작은 바위와 위장용 나무판으로 막혀 있었다.

천문석은 엠마에게 자동차 키를 던져주고 위장용 나무판을 밀어냈다.

"여기는 내가 치울게. 안에 화물차 네가 몰고 나와라."

"알았어."

엠마는 바닥에 깔린 바위를 뛰어넘어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천문석은 화물차가 나올 수 있게 동굴 입구를 막은 작은 바위들을 밀어냈다.

그르르르륵-

바닥을 긁으며 좌우로 밀려나는 바위들.

곧 동굴 입구는 트였고,

천문석은 바닥에 흩어진 자잘한 돌을 차내며 주위를 훑어봤다.

바닥이 평평한 계곡으로 이어지는 사암질 바위산 중턱.

주위에는 평소대로 낮은 수풀과 드문드문 있는 나무와 바위뿐 아무것도 없이 황량했다.

이 산 아래 아직도 전투가 벌어지는 갈대 늪지가 보이고.

갈대 늪지 너머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같은 참나무가 뒤섞인 거대한 도토리 숲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 직접 도토리 숲을 보니 광화문 게이트 지역, 건 스미스 직원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신서울과 신동대문 사이에 도로를 뚫으려면 도토리 숲에 길을 내야 한다는 말.

직원의 말 대로였다.

도토리 숲이 요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숲 주위에는 험한 바위산이나 무른 늪지, 하천이 사방에 깔려있었다.

저 도토리 숲을 우회하려면 신서울과 신동대문을 잇는 도로를 내는 게 몇 배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직원의 이야기와 다르게 처음 이곳에 사냥 캠프를 차렸을 때는,

저 도토리 숲에 마수와 몬스터, 야생동물이 드문드문 보였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저 도토리 숲에 보이던 마수와 몬스터, 야생동물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갈대 늪지에서 격렬히 싸우는 랩터와 오크, 마수 무리 모두 도토리 숲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천문석은 문득 기감을 일으키고 일기일원공으로 시력을 강화해 도토리 숲을 훑어봤다.

휘이이-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는 나무들,

광활한 대지에 펼쳐진 도토리 숲은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광화문 게이트 지역, 맹호 건 스미스에서 들었던 '보이지 않는 악마'가 산다는 이야기 때문일까?

평소대로 마수는커녕 야생동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도토리 숲에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분노. 기쁨. 슬픔. 고통. 아쉬움. 그리움.'

순간 작은 소리와 진동이 들려왔다.

퐁, 퐁, 퐁-

문득 시선을 내려보니 허리벨트에 걸린 퐁퐁검이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 아직 있었냐?"

천문석은 반가운 마음에 퐁퐁검을 뽑아 흔들었다.

휘이이잉-

휘파람 소리를 닮은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고,

미약한 하늘 고래의 소리와 진동이 작게 퍼져나갈 때.

구으으응-

동굴 안쪽에서 화물차가 나왔다.

엠마는 운전석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외쳤다.

"늦어서 미안. 화물차 바퀴에 오소리가 둥지를 틀었더라. 그거 치우느라 시간이 걸렸어."

이때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분노한 오소리 울음소리!

깨개개개객개객-

천문석은 재빨리 화물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평평한 계곡을 타고 내려가 신동대문 방향으로 달렸다.

사냥 캠프를 차린 지 7일째 되는 날.

천문석과 엠마는 게이트가 사라진 게이트 거점 도시, 신동대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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