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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87화 (188/1,336)

#187

천문석은 유원지 주차장에 화물차를 주차하고, 바로 캠핑장으로 올라갔다.

“내가 일등이야!”

특급 헌터는 자기 몸 몇 배나 되는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앞장서 달렸고.

"우와아아- 특급 헌터가 달린다!"

"같이 가 특급 헌터! 언니 빨리 가요!"

그 뒤를 류세연과 한경석이 뒤따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문석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손에는 이동형 냉장고와 캠핑 장비가 담긴 손수레를 끌고 걸었다.

일행은 긴 도로를 한참 동안 걸어 캠핑장에 도착해 예약한 야영장 데크 위에 텐트를 쳤다.

나란히 쳐진 텐트 2개.

천문석과 특급 헌터.

류세연과 한경석.

두 명씩 머물 텐트였다.

텐트를 다 치자 어느새 야전삽으로 배수로를 판 특급 헌터가 땀을 쓱 닦으며 외쳤다.

"알바! 나도 다했어! 이제 비가 와도 우리는 안전해!"

역시 특급 헌터!

아주 깊고 튼튼하게 배수로를 팠다.

지면에서 30cm 이상 떨어진 야영장 데크 주위에!

천문석은 어이없었지만, 특급 헌터를 칭찬했다.

"고생했다. 역시 안전이 제일이지!"

"맞아. 안전이 제일이라니까!"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반짝이는 특급 헌터.

"그럼 이제···. 우리 워터파크 가는 거야?"

"맞아! 출발이다! 가자!"

이때 들려오는 류세연의 다급한 목소리.

"잠깐만! 나 화장 좀 하고!"

"앗! 세연 그러면 안 돼!"

"워터파크 가는데 무슨 화장을 해?"

특급 헌터와 천문석이 외쳤으나,

류세연은 뻘쭘하게 서 있던 한경석까지 끌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금방 끝나!”

"...큰일 났어! 알바. 큰일 났다니까!"

"너 왜 그러냐?"

"지금 화장한다잖아!"

특급 헌터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불안한 눈으로 류세연과 한경석이 들어간 텐트를 봤다.

“야, 걱정할 것 없어. 세연이는 원래 화장 안 해. 금방 나올 거다.”

“진짜로?”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5분? 그 정도면 나올 거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자.”

그리고 30분 후 천문석은 외쳤다.

"류세연! 아직 멀었냐?"

"이제 금방 끝나!"

10분 전, 20분 전과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천문석이 한숨을 내쉬려는 때 먼저 들려오는 한숨 소리.

하아-

특급 헌터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화장은 특급 헌터의 적이야. 그런데 너무 강한 적이야."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말에 담긴 깊은 감정을 느끼고 물었다.

"너 그건 어떻게 아냐?"

“항상 삼촌이랑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기다렸거든. '다 됐어!', '이제 끝났어!'라고 해도 절대 믿으면 안 돼···.”

누구를 기다렸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장철 헌터와 특급 헌터를 기다리게 할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장민 대표.

"어느 집이나 다 비슷하구나."

하아-

하아-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세연! 아직이야? 우리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이제 진짜 곧 끝나!"

특급 헌터의 절박한 외침에 몇 번인지 모를 같은 대답이 들려왔을 때.

천문석은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다. 우리가 먼저 준비하자."

"우리끼리 먼저 워터파크 가는 거야!?"

특급 헌터가 어쩐지 열망 어린 목소리로 묻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차피 밥 먹어야 하니까. 라면이라도 끓이자."

"좋은 생각이야! 라면 냄새나면 바로 나올 거야!"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천문석과 특급 헌터.

"물은 내가 맞출게! 나 라면 물 잘 맞춰!"

특급 헌터가 냄비에 물을 따르는 사이 천문석은 햄과 야채를 다듬고 라면을 끓일 준비를 했다.

이때 캠핑장 가장자리를 지나는 도로 위를 걷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전투복이나 등산복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허리에는 정글도 같은 무기를 착용한 사람들.

헌터라기에는 무장이 부족하고 등산객이라기에는 무장이 과했다.

천문석은 이들을 한눈에 알아봤다.

북한산 지역의 명물, 심마니 헌터들이다.

이들은 북한산 곳곳에 있는 뽀미가 사냥하고 버려둔 마수와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헌터들이었다.

헌터 부대 수색팀에서 지속적인 수색으로 마수와 몬스터 사체를 회수하지만.

북한산 지역은 광활하고 지형이 험해서 헌터 부대 인력만으로는 뽀미가 사냥한 마수와 몬스터를 모두 회수하지 못했다.

그래서 방치된 마수와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헌터들, 일명 심마니 헌터들이 생겨났다.

심마니 헌터들은 마수와 몬스터 사체, 일명 '뽀미 로또'를 찾아 사체를 처리하고 부산물과 마석을 찾아 돌아온다.

별다른 진입장벽 없이 간단한 입산 허가만 받으면 할 수 있다는 북한산의 심마니 헌터일.

종종 뉴스에서 심마니 헌터가 대박을 터트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 이었다.

"하- 나도 저 일 할까 했었는데."

천문석은 어쩐지 묘한 기분을 느낄 때.

훙, 훙, 훙-

하늘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어?"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보는 순간,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수거팀이 떴다! 북쪽이다!"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저소음 헬기가 북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헬기 바닥에 선명히 새겨진 부대 마크.

‘산을 배경으로 잠든 고양이.’

북한산 헌터 부대 마크다.

"한 대가 아니다. 두 대, 아니 세대다!"

"한두 무리가 아닌 것 같은데!?"

"신둔계곡 방향이다!"

"바로 가자!"

...

헌터 부대의 헬기가 나타나자,

심마니 헌터들은 다급히 소리를 지르더니 북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달려갔다.

뽀미가 사냥한 마수와 몬스터의 마석과 부산물을 채취하려는 것이다.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말한 순간.

뽀그르르-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오고 맛있는 라면 냄새가 풍겨왔다.

문득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모습,

어느새 특급 헌터가 진지한 얼굴로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너 라면도 끓일 줄 아냐?"

"삼촌이랑 테라스에서 자주 끓여 먹었어. 그런데 삼촌 장민한테 냄비로 맞았어."

"....장철 헌터님이 장민 대표님한테 냄비로 맞았다고?"

타아악-

특급 헌터는 호쾌한 동작으로 계란을 깨뜨려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장민 화나면 엄청 무서워. 삼촌 저번에는 가지로 맞았다니까!"

"...혹시 왜 맞았는지 알아?"

"라면 먹어서? 내가 보기에 장민은 뭔가 입맛이 좀 이상한 거 같아. 맨날 어른의 맛 고등어랑 건강한 맛 샐러드만 주고. 맛있는 라면을 엄청 싫어해. 으으으-"

두렵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몸에 발진이 났었다는 특급 헌터 꼬맹이.

꼬맹이 엄마 장민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라면 줘도 되는 건가?'

장민 대표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예전 상황을 들은 천문석은 어쩐지 꺼림칙했다.

"너, 혹시 요새 몸에 뭐 나고 그러진 않냐?"

특급 헌터는 라면에 야채를 넣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전혀!"

이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어? 이거 무슨 냄새야? 라면이잖아!"

류세연이 드디어 나왔다!

"야, 왜 이리 늦게···!"

한소리 하려던 천문석은 깜짝 놀랐다.

짧은 반바지에 하얀 티셔츠를 입은 류세연.

그리고 그 뒤에 한경석도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한경석이 짧은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것이다!

게다가 푹 숙인 얼굴에 보이는 화장 흔적!

류세연은 암살검 한경석의 모자와 긴 팔 후드티, 청바지를 모두 벗기고 가벼운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시켰다!

천문석이 감탄하는 순간,

분노한 특급 헌터가 외쳤다.

"세연, 경석 누나! 빨리. 라면 먹어! 우리 바로 놀러 가야 한단 말야!"

---

라면을 먹고 캠핑장에서 한참을 걸어 내려와 도착한 북한산 워터파크.

특급 헌터는 워터파크 탈의실로 들어가자마자 훌훌 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이미 입고 있던 짧은 반바지 수영복과 허리춤에 꽂힌 짧은 나무 막대기가 드러났다.

특급 헌터는 벗은 옷을 돌돌 말아 옷장에 넣어 잠그고 다급히 외쳤다.

"알바! 빨리빨리! 구명조끼 입혀줘! 급하단 말야!"

"다 갈아입었다. 잠깐만!"

천문석은 번개같이 수영복을 입고 특급 헌터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느껴지고 문득 불어오는 산 내음 가득한 바람.

하아아-

한껏 숨을 들이쉴 때,

특급 헌터가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알바! 내가 가서 누나들 데려올까?! 왜 이리 늦는 거야!"

"뭐?"

깜짝 놀란 천문석은 당장이라도 여자 탈의실로 달려가려는 특급 헌터를 낚아챘다.

"야, 그러면 안 돼!"

"너무너무! 늦잖아!"

특급 헌터가 분통을 터트릴 때,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입은 류세연과 한경석이 나타났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새빨개진 귀만 보이는 한경석,

수영복위에 긴 셔츠를 입었는데도 한경석은 얼굴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암살검 한경석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라니!

천문석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말했다.

"단체 사진 한 장 찍자!"

앞쪽에 선 천문석과 특급 헌터 그리고 서로 팔짱을 낀 류세연과 한경석이 뒤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자 류세연은 선글라스를 끼며 말했다.

"우리는 따로 놀게! 특급 헌터 나중에 보자."

류세연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석의 팔짱을 끼고 워터파크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니, 따로 놀 거면. 왜 기다리라고 한 거야···."

천문석이 어이없어할 때,

특급 헌터가 외쳤다.

"알바!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지금 중요한 건 놀이기구야! 급해! 우리 빨리 놀이기구 타러 가자!"

"...!"

그렇다!

지금 중요한 건 놀이기구였다!

"가자. 특급 헌터! 오늘 우리! 여기 있는 놀이기구 모조리 타는 거다! 하하하-"

"출동! 우히히-"

신나게 외치고 바로 달려 워터파크 놀이기구를 찾는 두 사람.

롤러코스터, 슬라이드, 파도풀, 서핑장, 유수풀···!

와아아아-

우와아아-

꺄아아아-

즐거운 비명의 쏟아지는 보기만 해도 재밌어 보이는 수많은 놀이기구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엄청난 길이의 줄이 있었다···.

"..."

"..."

신나게 달려왔던 두 사람은 어느새 힘없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오늘 화요일 아니었나?"

"맞아···."

천문석의 물음에 힘없이 대답하는 특급 헌터.

"아니 평일 아침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냐?"

특급 헌터는 번쩍 고개를 들고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내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계속 말했잖아!"

"원래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움직여야 하는 거라고!"

"우리나라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빨리 빨리란 말야!"

"이제 어떡할 거야! 느려서 망했잖아!"

"..."

주먹을 흔들며 분통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에게,

천문석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서울 안정화 권역 안에 있는 워터파크라고 해도 화요일 아침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외국인도 곳곳에 보이고, 아이들뿐 아니라 젊은 연인들.

그리고 특이하게도 혼자 온 것 같은 청장년층 남녀도 많았다.

이때 천문석의 눈에 멀리 줄이 하나도 없는 놀이기구가 보였다!

"특급 헌터! 저기! 저 놀이기구는 줄 없다! 바로 탈 수 있어!"

"뭐? 진짜로!?"

천문석은 솔깃해하는 특급 헌터를 허리에 끼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

띠리링, 띠리리링-

천천히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빙글빙글 회전하는 대형 원판.

화려한 조명이 밝혀진 대형 원판 위에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십 개의 봉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봉을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 코뿔소, 하마, 사자, 기린, 곰 모양의 귀여운 탈 것들.

회전목마.

특급 헌터는 넋 나간 얼굴로 귀여운 하마를 타고 있었다.

"특급 헌터 여기 봐라! 사진 찍자!"

"으아악- 분노한다! 특급 헌터는 분노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휴대폰으로 분노한 특급 헌터의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화려한 회전목마 조명 아래,

귀여운 하마를 탄 분노한 특급 헌터.

아주 생동감 있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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