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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121화 (122/1,336)

#121

천문석은 한동안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젊은 무사를 봤다.

“저 왜 그러신지?”

"야, 됐고. 뒷골목 객잔으로 안내해라.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다."

"네, 뒷골목 객잔요? 위험합니다!"

젊은 무사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검대에 걸린 롱소드를 툭 쳤다.

"이 검 보이지. 나 엄청 세다!"

천문석이 당당히 외쳤으나,

젊은 무사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대번에 알아챘다.

‘이 사람이 어디서 구라를?!’

검으로 경지를 올리니 이게 문제였다.

본신의 수준을 드러내 압도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고 여기서 검강을 만들어 보일 수는 없는 일.

천문석은 보다 간편한 해결책을 사용했다.

툭-

천문석은 롱소드 옆에 걸린 전낭(錢囊)을 끌러서 흔들었다.

차르륵-

총관 장일이 전낭 안에 가득 채워준 은자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설마! 그게 전부!?”

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은,

젊은 무사의 미심쩍어하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천문석은 은자가 가득 든 전낭 안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젊은 무사에게 튕겨줬다.

팅-

맑은소리를 내며 눈앞으로 튀어 오르는 은자!

“허억!”

젊은 무사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은자를 잡았다.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어깨에 슬쩍 어깨동무하며 은근히 말했다.

"뒷골목에 구파일방, 마도 18문 같은 건 신경을 안 쓰는 객잔이나 주루 많이 있잖아? 낭인이나 일거리 찾는 무사들이 모이는 그런 곳 말야. 조용히 듣기만 할 거니까 앞장서라."

젊은 무사는 한참이나 주저주저하다가 말했다.

“진짜로 듣기만 해야 합니다. 정말로! 꼭 이요!”

젊은 무사는 몇 번이나 다짐하며 뒷골목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뒷골목 깊숙한 곳의 허름한 2층 객잔.

천문석은 익숙하게 2층으로 올라가 1층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손님. 무엇을 가져다드릴까요?”

객잔의 점소이가 다가오자,

천문석은 능숙하게 주문했다.

“안주는 돼지고기 볶음. 술은 화주 아무거나. 너 저녁은 먹었냐? 아직이라고. 그럼 만두도 좀 내와라.”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사라지자,

젊은 무사는 의아해하는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기존에 모셨던 장원의 손님들과는 다르게,

이 분은 여러 번 이런 뒷골목 객잔에 왔던 것처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총관님이 장주실에 극진히 모시는 손님이 뒷골목 객잔에 익숙하다니···.

빡빡 민 머리카락을 보고 스님인가 했는데···.

스님이 고기와 술을 먹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정파의 사람이 저렇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닐 리는 없는데···.

‘혹시 사파의 인물인가?’

어쩐지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이 거침없는 움직임이 딱 사파의 인물이었다.

이때 주위를 훑어본 천문석이 의아한 눈으로 젊은 무사를 봤다.

“아직 시간이 이른가? 여기 저녁인데도 손님이 별로 없는데? 1층에도 혼자 있는 사람들만 있고?”

젊은 무사는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1층 탁자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 탁자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일거리를 주선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는 은밀한 일거리 찾는 낭인이나 무사들이 모이는 주루라 보통 해가 지고 늦은 밤이 돼서야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합니다.”

“그래?”

천문석은 창밖을 슬쩍 봤다.

겨울이지만 아직 해가 지려면 한 시간은 걸린다.

그동안은 이 젊은 무사에게 정보를 들으면 될 것이다

천문석은 바로 질문을 했다.

"지금 무림 맹주가 누구냐?"

"화산파의 청양진인이시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까···.

자신이 아는 무림 맹주는 이세기 밖에 없었다.

"...!"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누가 무림 맹주인지 들어도 항렬 계산이 안 되니 전생의 자신이 죽은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 강호에 관심 좀 가질걸···.'

문득 드는 후회.

능구렁이 같은 마도 18문과 마인들을 관리하고 마굴을 막느라 바빠,

마도 18문 밖 강호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렇게 빡세게 살다가 마기가 골수에 사무치기 전에 스스로 선택해서 한 방에 훅 갔다니!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벼락 치듯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방에 훅 갔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

전생 천마, 천문석은 진짜 화려하게 갔다!

천강의 불꽃이 영혼육백을 태우면서 천지를 이었던 그 장엄한 모습!

그 장엄함은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엄청난 광경이었다.

천지를 밝히는 초거대 인간 횃불!

그게 나였다는 게 슬프지만.

그 신화적인 모습이 강호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 리 없다!

설령 몇백 년이 흘렀어도 자신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다.

천문석은 바로 질문했다.

"마도 18문의 천마 중에 엄청 장엄하게. 인간 횃불···. 아니, 우화등선 비슷한 걸 한 천마 모르냐?"

"우화등선···. 말인가요? 천마가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젊은 무사.

천문석은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장엄한 천강의 빛이 천지를 잇는 순간. 하늘, 천의가 지상을 내려다보는 거다. 그때 승천 비슷한 걸 하는 거지. 엄청 엄청 장엄하고! 신화적인 모습으로!"

"..."

젊은 무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천문석을 봤다.

"혹시···."

"그래, 어서 말해봐!"

천문석이 기대를 담아 외치는 순간,

젊은 무사는 대답했다.

"요마괴이전(妖魔怪異傳) 같은 소설 이야기이신가요? 제가 그런 소설책을 빌려주는 책방을 아는데 거기로 모실까요? 아니면 이야기꾼, 재담꾼이 있는 객잔이나 주루로 모실까요? 요새 매화장에서 이야기를 파는 재담꾼이 아주 재밌게 말을 잘한다던데···."

"..."

---

천문석은 몇 번이나 전생의 자신을 설명했다.

그러나 젊은 무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름 외우기가 귀찮다고 절정 고수들한테 이름이 새겨진 나무판을 걸고 다니게 하는 천마라고요?”

“그렇다니까. 들은 적 없냐?”

하하하-

순간 웃음을 터트리는 젊은 무사.

“이야기책을 너무 많이 보신 것 같네요. 천마가 아무리 고수여도 그렇게 하면 피바람이 불죠.”

"..."

천문석은 의심스러웠다.

이거 혹시 마도 18문 놈들이 조직적으로 은폐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마도 18문 최초로 천마신공의 12성 대성을 이룬 자신의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천문석은 질문의 방향을 달리했다.

"그럼 지금 천하십절은 누구냐?"

"천하십절요? 그건 처음 듣는데요?"

천하십절은 이세기가 전대의 고수들을 깨부수고 다니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호칭.

시간이 많이 흘렀으면 그 명칭도 바뀌었을 수 있었다.

천문석은 바로 질문을 수정했다.

"강남 3걸 같은 그런 호칭 있잖아? 지금 천하에서 제일 강한 고수들을 뭐라고 하냐?"

"아. 천하 18성 말씀하시는 건가요?"

젊은 무사는 18명의 이름을 쭈욱 읊었다.

천문석이 전부 모르는 이름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사문을 묻는 천문석.

"...그 사람들 사문이 어디냐?"

이번에는 모두 아는 이름들만 나왔다.

소림, 무당, 화산, 개방, 남궁세가···.

어이없게도 마도 18문 출신은 천하 18성에 한 명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정파의 항렬에 빠삭하면 역산해서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겠지만.

천문석이 빠삭한 것은 마도 18문뿐이었다.

‘이래서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는데···.’

순간 천문석은 자신이 놓치고 있던 걸 깨달았다.

그냥 무림 맹주 이세기가 죽고 얼마나 지났는지 물으면 되는 것이다!

천마 천문석은 역사에서 지워졌어도.

무림 맹주 이세기는 남아있을 것이다!

이때 점소이가 커다란 쟁반을 몇 개나 들고 다가왔다.

탁자 위에 차려지는 음식들.

음식을 본 젊은 무사가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야. 먹어! 모자라면 더 시킬게! 팍팍 먹어!"

"감사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젊은 무사.

천문석은 젊은 무사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너 혹시 ‘이세기’는 아냐?"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젊은 무사.

“역대 무림 맹주 중에 가장 잘생긴 무림 맹주. 얼굴로 된 무림 맹주. 이세기 몰라?”

고개를 젓는 젊은 무사.

천문석은 이세기의 칭호를 쭉 늘어놨다.

“검절. 천검. 용봉. 이세기 이 새끼. 더럽게 잘생긴 놈. 하나도 몰라?”

젊은 무사는 계속 고개를 젓다가 문득 고개를 번쩍 들었다.

"더럽게 잘생긴 놈이요? 제가 살던 동네에도 잘생긴 놈이 한 명 있긴 한데···."

"...그 잘생긴 놈이랑 너랑 싸우면 누가 이기냐?"

"당연히 제가 이기죠!"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젊은 무사.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으면 이세기를 몰라.

무공보다도 잘생긴 거로 더 유명했는데?

이세기가 대로를 한 바퀴 돌기만 하면,

사방에서 과일과 손수건, 편지가 날아들었다.

이세기를 쫓아다니던 거대 문파와 무림 세가의 여고수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너 어디서도 '이세기'라는 이름 들은 적 없냐?"

천문석이 다시금 물었지만,

젊은 무사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제17세 생애를 통틀어 이세기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

천문석은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더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구파 일방, 마도 18문.

그리고 '하늘에 묻는다.' 천문사까지.

이 무림 던전은 분명 자신이 살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자신도 무림 맹주 이세기도 잊혀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마도 18문이 있는 서쪽으로 갈 수도 없었다.

말과 마차로 달린다고 하여도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먼 길인 것이다.

“...”

아무래도 전생의 자신의 흔적을 찾을 길이 더는 없어 보였다.

---

전생의 비밀을 찾겠다고 호기롭게 무림 던전에 들어왔는데.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전생의 비밀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천문석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어이없고 싱거운 결말이다.

그러나 원래 인생이 그렇지 않던가?

답을 갈구하던 어려운 문제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풀리기도 하고 때로 그 답이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이번처럼 아주 긴 시간이 지나거나 하는 일이 생겨서 말이다.

천문석은 독한 화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돼지고기 볶음을 먹었다.

전생의 자신의 흔적을 찾는 건 실패했으나,

이번 무림 던전 행은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이세기의 검혼이 담긴 검을 깨우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이 순간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퐁, 퐁, 퐁-

천문석은 문득 검대에 달린 롱소드를 봤다.

얼마나 뇌리에 깊게 박혔는지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서 소리가 생생하게 재생된다.

‘이 롱소드 팔리겠지?’

다시금 생각했지만,

검을 파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검강이 나오는데!

퐁, 퐁, 퐁- 이 대수겠는가!?

클레임을 걸면 검을 팔 때 좀 깎아주면 될 것이다.

무림 던전 안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적당히 놀면서 남은 일주일을 채우고 여기서 나가면 된다.

천문석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허리에 매달린 전낭을 봤다.

장일 총관이 은자로 가득 채워준 두둑한 전낭!

이 전낭이라면 일주일 동안 풍족하고 즐겁게 놀 수 있었다.

"...!"

순간 천문석은 벼락같이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지금의 마도 18문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빠삭하게 알고 있을 '한 사람'이 떠오른 것이다!

그 사람을 찾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엄청난 돈!

밖에서라면 돈이 아까워서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러나 이 은자는 현실로 가져갈 수 없는 게임 속 게임머니나 마찬가지였다.

이 은자를 써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천문석의 시선이 젊은 무사에게 향했다.

마침 쓸만한 길잡이도 있다.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그 '사람'에게로 이어질 수많은 장소가 그려졌다.

그중 한 장소를 선택한다.

유흥가!

적당히 질이 떨어지는 뒷골목의 유흥가가 딱 이다!

흐흐흐-

천문석은 음흉하게 웃으며 독한 화주를 단숨에 마셨다.

이제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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