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천문석과 꼬맹이는 경호원이 운전하는 장갑 SUV를 타고 키즈 카페가 있는 건물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알바, 빨리 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구로 뛰어가는 꼬맹이.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제임스에게 인사를 하고 꼬맹이를 따라갔다.
키즈 카페 건물 앞 넓은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천문석은 묘한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주차장을 지나 알록달록 채색된 캐릭터가 그려진 입구로 들어가는 게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직원이 아닌 손님으로 들어가니,
마음이 이렇게 가볍고 편할 수가 없었다.
지옥이 아닌 천국의 입구로 들어가는 듯한 마음!
일체유심조!
이것이야말로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인가?
이때 귀에 익은 명칭이 들려왔다.
"부지점장님?!"
"네?"
소리 나는 곳을 보니, 키즈 카페 건물에서 어린아이들 한 무리를 인솔해 나오는 보육교사가 보였다.
낯익은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
보육교사의 가슴에 달린 명찰이 보였다.
[이미선]
'낯익은 이름인데···?'
아이들 옷을 보니 키즈 카페에 자주 왔던 근처 보육원의 보육교사 같았다.
천문석이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그만둔 지 좀 됐어요."
순간 덥석 손을 잡는 보육교사 이미선.
천문석이 깜짝 놀란 순간,
이미선은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저랑 아이들 구해주시고. 뒤에 홀로 떨어졌던 아이들도 구해주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천문석의 손에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
이제야 천문석은 눈앞의 보육교사를 알아봤다.
'이미선!'
서울 사태가 터졌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 고깃집 강철 셔터를 두들겼던 그 보육교사였다.
쇼크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난장판에 엉망이 된 모습이었던 그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고깃집에서 헤어진 후 잇달아 일이 터져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때 이미선 보육 교사님이 용기를 내셔서 아이들을 살리신 겁니다."
천문석은 부드럽게 말하고 이미선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바보같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미선 보육교사.
문득 이미선이 고개를 돌려 어린이집 아이들을 바라봤다.
"여기 전에 너희들 구해주셨던 분이셔! 모두 와서 감사 인사해야지!"
우와아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천문석을 보고 있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왔다.
천문석의 주위를 둘러싸고 일제히 외치는 꼬맹이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이 순간 천문석은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제대로 인사를 받을 때까지,
끝없이 인사 당하는 '꼬맹이 식 인사법'.
이번에는 '꼬맹이 식 감사'를 당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사방에서 울리는 감사 인사 소리에 어쩐지 마음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좋아요' 하나에 미소짓는 게 사람의 마음.
어린아이들의 열렬한 감사 인사에 천문석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천문석은 한참 동안 감사 인사를 받고,
아이들과 악수를 하고 셀카까지 찍어주고서야 풀려 날 수 있었다.
이미선 보육교사는 떠나기 전 자기 휴대폰 번호를 남기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제가 꼭 한번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요.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꼭 연락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천문석이 약속을 하고 몸을 돌렸을 때,
키즈 카페 입구에 쪼그려 앉아있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특급 헌터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알바. ...에게 전화번호를 받음. 밥 먹자고 약속함···."
"너 지금 뭐 하냐?"
"아무것도 아냐!"
깜짝 놀라 수첩을 감추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의심스러운데···?"
의심스러운 눈으로 특급 헌터를 보는 천문석.
뭔가 촉이 오고 있었다.
---
"부점장 학생?"
키즈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천문석을 부르는 직원 아주머니.
천문석은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잘 계셨죠?"
"아니 이게 얼마 만이야?!"
생각해보면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직원 아주머니의 깜짝 놀란 얼굴에는 정말 반가워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반가워하며 주위를 향해 외치는 아주머니.
"여기 부점장 학생 왔어!"
사방에서 직원 아주머니들이 몰려들었다.
“누가 왔다고?”
“부점장 학생···?”
...
아주머니들은 천문석을 보는 순간 난리가 났다.
"아니 머리카락은 왜 그렇게 된 거야?"
"각성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 거야?"
"그때 아이들 구하고 대형 길드에 스카우트 됐다면서?"
"혹시 우리 조카 만나볼 생각 없어? 은행 다니는데···."
...
여전히 정신없는 직원 아주머니들.
천문석은 적당히 대답하며 키즈 카페 안을 살폈다.
예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키즈 카페 가장자리에 깔린 선로와 어린이 기차.
탄성볼이 가득한 풀과 놀이기구들.
소독 모래가 넓게 펼쳐진 모래 놀이실.
...
그런데 아이들의 수가 예전의 1/3도 되지 않았다.
"오늘 아이들이 좀 적네요?"
천문석의 말에 직원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그리고 푸념하듯이 하는 말.
"저 사람들 때문이지 뭐."
직원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인형 옷을 입은 세 사람이 있었다.
"...인형 옷을 입은 분들이요?"
한 직원 아주머니가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췄다.
"저 사람들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사람들이야. 그날 ...잠갔던 사람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
서울 사태!
어린이 자동차로 랩터를 끌고 달리는 꼬맹이.
홀로 간판에 고립된 아이들을 구하는 철수형.
철수형이 이를 갈았던,
키즈 카페 본사에서 왔다던 점검팀 사람들이다!
"그 본사 점검팀의···?"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 아주머니.
"맞아. 철수 점장이랑 부점장 학생 그만두고. 저 사람들이 이곳에 발령받아 왔어. 쯧쯧쯧-"
못마땅한지 혀를 차는 아주머니.
"가뜩이나 소문도 안 좋게 났는데···. 저 사람들이 애들을 자꾸 울려서 오던 애들도 안 오고 있다니까."
천문석은 인형 옷을 입은 세 사람을 훑어봤다.
사자, 기린, 판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형 옷이다.
그러나 큰 애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지나치고,
작은 애들은 무서운지 인형 옷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겠다고 다가가지만 서툴고 어설픈 몸짓.
슬쩍 봐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법을 전혀 모른다는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고양이와 비슷했다.
다가가지 말고, 스스로 다가오게 해야 했다.
아마 저 사람들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본사 점검팀으로 일하다가 직영점 점장, 부점장이라니.
사실상의 좌천이다.
게다가 예전보다 떨어지는 매출에 엄청난 실적 압박을 받고 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찾아왔던 철수형이 눈을 번뜩이며 했던 말.
'...이 일은 내가 깔끔하게 처리할게.'
원칙을 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본사 점검팀 사람들에게 분노하던 철수형!
철수형은 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저거 철수형이 한 거다!
역시 철수형!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수완이 대단했다.
천문석이 감탄하는 이때,
다리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손길이 있었다.
톡, 톡-
"응?"
문득 고개를 내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금발 머리를 땋아 올린,
화려한 인형 같은 여자아이가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다.
"앙꼬!"
순간 특급 헌터가 크게 외치며 달려왔다.
"앙꼬! 언제 온 거야!? 나도 경주대회 참가하기로 했어! 이번에 내가 꼭 너희 대장 이길게!"
다급히 말을 쏟아내는 특급 헌터를 무시하고,
앙꼬가 새침하게 천문석에게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선물!"
언제나처럼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내미는 앙꼬.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천문석은 예전처럼 말했다.
"아저씨는 사탕을 안 좋아해요. 맛있는 사탕은 꼬마 숙녀가 먹어요. 알았죠?"
"그럼 내가 먹을게!"
잽싸게 사탕을 받으려는 특급 헌터,
그러나 앙꼬는 손을 피하고 천문석을 올려다봤다.
으아, 으아-
예전처럼 눈에 차오르는 눈물!
어느새 주위에 꼬맹이들이 몰려들고,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였다.
앙꼬가 울면 아이들도 따라 울고 난장판이 될 것이다.
긴박한 상황!
그러나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상관없었다.
자신은 이제 이 키즈 카페 부점장이 아니었으니까!
천문석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앙꼬를 주시했다.
으아, 으아-
으아, 으아아-
...
한참을 울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다가 우뚝 멈춰서는 앙꼬.
앙꼬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왜 안 말리지?'라는 눈빛!
순간 천문석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You Lose."
“...!”
경악으로 물드는 앙꼬의 얼굴!
충격을 받은 앙꼬는 들고 있던 막대사탕을 뚝- 땅에 떨어뜨렸다.
천문석은 떨어진 막대사탕을 주워들며 웃었다.
"야, 나 이제 여기 직원 아니다! 카캬카-"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앙꼬의 머리를 마구마구 헝클어뜨렸다.
흐어억-
히이익-
"알바! 그러면 안 돼! 큰일 나!"
"앙꼬 머리를 만졌어!"
"빡빡이! 큰일 났어!"
"어떡해! 빡빡이!"
특급 헌터와 경악한 꼬맹이들의 외침!
“야! 빡빡이라고 하지 마라! 머리 좀 자랐어!”
천문석이 반박할 때,
앙꼬의 눈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순간 천문석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쓱-
“으앗?!”
“막대 사탕이!”
"앙꼬가 먹던 사탕이!"
"앙꼬 머리에 꽂혔어!?"
앙꼬의 금발 머리 한가운데 안테나처럼 꽂힌 막대 사탕!
천문석은 얄밉게 말했다
"먹다가 땅에 떨어진 사탕이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꼬맹아. 먹던 걸 먹으면 뭐라고 했지?"
"..."
"그지라고 했던가?"
순간 앙꼬는 폭발했다.
으아아앙-
두 손을 휘저으며 달려드는 앙꼬!
천문석은 재빨리 도망치며 막타를 넣었다.
"메롱-"
으아악-
분노한 앙꼬가 소리쳤다.
"잡아!"
순간 주위에 있던 꼬맹이들이 전부 다 천문석을 쫓았다!
으아아-
우히히-
끼에엑-
...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뛰어오는 키즈 카페의 악마 꼬맹이들!
너무나 익숙한 상황.
그러나 예전 알바일 때와 지금의 자신은 달랐다!
심법에 입문하고,
무공을 되찾았다!
일기일원공으로 이성의 내력을 쌓았고!
생사의 간극을 넘나드는 생사팔문의 보법마저 익혔다!
"와라! 악마 꼬맹이 놈들아!"
천문석은 오연하게 외치고.
일기일원공과 생사팔문의 보법을 펼쳤다.
"얍! 얍얍!"
천문석의 얄미운 외침이 터질 때마다,
허공으로 번쩍 들려 빙글빙글- 돌다가 뚝- 땅에 내려지는 꼬맹이들!
"으아, 으아-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
꼬맹이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비틀거리다가 쿵, 쿵-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하하- 힘의 차이가 느껴지냐!?"
천문석이 키즈 카페 안을 크게 한 바퀴 돌았을 때,
그 뒤를 쫓던 대부분의 악마 꼬맹이들이 나가떨어졌다.
"으하하- 악마 꼬맹이들. 별거 아니구나!"
천문석이 승리를 확신한 이때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
"특급 헌터가 왔다!"
"뭐?!"
"앙꼬! 걱정마! 내가 잡을게!!"
"야! 너가 이러면 안 되지!"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특급 헌터는 눈을 피하며 힘없이 말했다.
"미안 알바. 어쩔 수가 없어."
특급 헌터의 배신에 충격받은 이때,
키즈 카페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바가 온다고?"
"특급 헌터가 연락했어."
"맞아! 자기가 꼭 데려온댔어!"
"재밌겠다! 빨리 들어가자!"
...
입구에 나타난 수십 명의 꼬맹이!
이 순간 특급 헌터는 외쳤다.
"모두 알바 막아! 앞에! 그거 잡아! 그냥은 안돼! 던져!"
와아아아아-
"알바다!"
"잡아라!"
...
수십 명의 꼬맹이가 사방에서 장난감과 탄성볼을 들고 달려들었다.
후두둑-
비 오듯이 쏟아지는 장난감과 탄성볼!
"...야 이건 반칙이지!"
천문석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악마 꼬맹이들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돌머리 공격에 맞고 아이들에게 잡혔고.
"컥- 이런 돌머리 녀석!"
특급 헌터는 키즈 카페와 앙꼬의 영웅이 됐다.
"으아아! 특급 헌터가 승리했다!"
"우와아!"
"이겼다!"
"승리했다!"
"알바를 무찔렀다!"
...
끝없이 들려오는 승리의 함성!
"..."
패배한 천문석은 키즈 카페 꼬맹이들 모두에게 전리품을 돌렸다.
승리는 강렬한 쾌감이었고,
이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키즈 카페 안은 전리품을 든 신난 꼬맹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느새 인형 옷을 벗고 아이들을 챙기는 점장과 부점장 둘, 세 사람이 보였다.
세 사람은 잠시 후 벌어질 참사를 알지 못한 채,
키즈 카페에 가득 찬 어린이 손님들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때 천문석이 사준 전리품을 쪽쪽 빨아먹으며 우르르 몰려가는 꼬맹이들이 보였다.
꼬맹이들 손에 하나씩 들려있는 천문석이 사준 전리품.
'어린이 젤리!'
소소한 복수를 끝낸 천문석은 악당처럼 웃었다.
카카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