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6화 (37/1,336)

#036

불청객 류세연이 소리쳤다.

"삼촌! 뭐해?"

"조용해 봐. 지금 중요한 순간이다."

천문석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류세연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 텔레비전 속 전문가는 말했다.

"시민분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사실 힘들 것 같습니다. 서울 같은 거대한 도시 전체를 안정화 권역으로 유지하는 게 사실 다른 나라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전문가는 서울 지도가 그려진 패널을 들어 올렸다.

"이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울 전체를 안정화 권역으로 유지한 건 수많은 조건이 일치해서 가능했습니다. 서울의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게이트 수, 재금 그룹, 유능한 헌터 부대와 민간 헌터 길드···. 이런 여러 조건이 합쳐져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균열 코어 수급량과 마석을 정제하는 속도로 추정할 때···."

전문가는 잠시 생각하다가 결론을 냈다.

"당장 경기도권까지 안정화 권역을 확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보다···."

하-

천문석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가 높아진 톤으로 말했다.

"아 그렇군요! 시청자 여러분!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은 계속 유지된다!]라는 게이트 연구 전문가, 서울대 한호석 교수님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다음 주제로 넘어가 서울 지역에 재앙급 몬스터가 나타날 경우의 부동산 가격 전망, 다시 불붙은 총기 자택 보관 주장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광고 후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 균열, 던전이 생겼는데도 가격이 안 떨어진다고?"

천문석은 텔레비전을 끄고,

재빨리 머리맡에 놓인 노트북을 열어 즐겨찾기 해둔 네이버 부동산 페이지에 들어갔다.

오래된 노트북은 한참이 지난 후 서울 지도 위에 부동산 매물 현황을 띄웠다.

천문석은 F5 새로 고침을 눌렀다.

한참 후 창이 새로 고침 되고, 매물 현황이 갱신됐다.

확연히 줄어든 매물들.

"..."

천문석은 새로 고침을 계속 눌렀고,

그럴 때마다 매물은 계속 사라졌다.

그리고 남아있는 매물의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점찍어뒀던 건물의 예상 거래가격을 확인했다.

73, 75, 79···.

건물의 예상 거래가격이 새로 고침 할 때마다 오르고 있었다.

"오늘 내로 100억 찍겠네···."

아무래도 서울 부동산 불패는 계속될 것 같았다.

천문석은 깊은 탄식을 했다.

"내가 산 다음에 오르지···."

통장 잔고가 빵빵해졌다고 좋아했는데,

새로 고침 한번 할 때마다 자신이 번 돈 몇십 배나 되는 가격 상승이 일어나고 있었다.

문득 맬서스 인구론이 떠오른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빗나간 예언은 서울 부동산 가격에서만큼은 적중했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천문석은 소파에 쓰러져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동대문 게이트 소멸이라는 초유의 사태보다,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이 심신에 가하는 타격이 더 컸다.

건물주라는 미래 희망에 큰 타격을 받은 천문석은 해가 질 때까지 자면서 힐링할 생각이었다.

추울 정도로 빵빵한 에어컨,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덮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이 타격받은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

이때 이불 밖에서 들려오는 고함.

"일어나!"

말없이 천문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류세연.

류세연은 천문석이 이불을 뒤집어쓰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천문석은 죽은 듯 이불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다리에서 느껴지는 충격!

쿵-

"일어나! 오늘 할 일 많아! 빨리 일어나라고!"

류세연은 천문석이 덮고 있는 이불을 당겨서 뺏고,

천문석이 누워 있는 소파와 다리를 마구잡이로 걷어찼다.

"빨리 일어나!"

"오늘 할 일 많다니까!"

"요즘. 왜 이리 축축 처지는 거야?"

...

"세연아 나 지금 충격받아서 너무 힘들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해···."

천문석이 최대한 힘없이 말했지만,

류세연은 냉정한 현실로 공격했다.

"왜? 찍어둔 건물값이 올라서? 삼촌 어차피 지금 그 건물 살 돈도 없었잖아? 뭔 충격을 받아? 빨리 일어나!"

"금수저가 흙수저의 마음을 알겠냐? 지금 미래의 희망이 꺾인 거잖아. 원래 사람은 현실에 좌절할 때보다 미래의 희망이 꺾인 순간에 더 크게 고통받는 거야."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류세연은 선언했다.

"빨리 안 일어나면, 진짜 월세 올린다! 아니 방 뺀다! 이 근처 평균 시세 알지? 이 방 지금 가격으로 내놓으면 당장 보러 올걸?"

"갑질하는 금수저 고등학생이라니!"

천문석은 탄식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제야 류세연을 제대로 봤다.

"어?"

류세연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두꺼운 작업복에 안전화를 신고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작업용 복장!

작년에 개고생했을 때 입었던 그 복장이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이불을 낚아채 덮고 몸을 웅크렸다.

"안 해!"

이 순간 들려오는 세연의 음흉한 웃음소리.

흐흐흐-

"조건도 안 들어 보고?"

"뭐가 됐던 안 한다!"

천문석은 강한 의지를 담아 소리쳤지만.

결국, 자발적으로 이불 밖으로 나와 류세연과 일하게 됐다.

“...그게 정말이야!?”

믿지 못하는 천문석 앞에서 말론 브란도처럼 미소짓는 류세연.

“흐흐흐. 나 건물주 딸이야. 금수저 류세연! 당연히 정말이지.”

“...”

언제나처럼.

류세연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

챙이 넓은 모자와 두꺼운 작업복, 안전화에 장갑까지.

천문석은 노가다를 나갈 때 입었던 복장을 챙겨 입고 옥상으로 나섰다.

어느새 류세연은 옥상 창고를 열고 솔과 양동이, 호스 같은 청소 도구를 꺼내놓고 있었다.

"뭐부터 시작할 거야?"

천문석의 질문에 류세연은 호스를 풀어내며 옥상을 가리켰다.

"여기 옥상 물청소부터 하자. 삼촌은 솔질부터 시작해."

텅-

쏴아아아-

류세연 커다란 양동이에 세제를 넣고 수도를 틀며 말했다.

천문석은 세제가 풀린 양동이와 청소용 마대 솔을 챙겼다.

촤아, 촤아악-

어느새 호스를 수도에 연결한 류세연은 호스 끝 스프레이 건을 누르며 압력을 확인했다.

천문석은 청소할 옥상을 훑어봤다.

안전진단도 통과했고 건물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남아있는 흔적이 많았다.

옥상 곳곳에 흙과 먼지가 쌓여 있고,

군화 발자국과 몬스터 핏자국, 탄흔으로 보이는 전투 흔적도 있었다.

류세연은 천문석 옆에 서더니 말했다.

"우리 건물은 피해가 적은 거래."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류세연은 난간 너머 사람들이 작업 중인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 저 건물은 전투 때문에 옥상 골조가 틀어졌다고 하더라고. 우리 건물은···. 여기 3층, 헌터 도장 알지?"

"무당파 도장?"

"맞아. 그 무당파 관장 할아버지가 몬스터하고 싸워서 건물을 지켰대. 그 덕분에 우리 건물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그 관장 할아버지. 각성자였나?"

류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할아버지 전에 텔레비전에도 나왔잖아. 각성 헌터 소개하는 프로그램. 그편 제목이 '무당파 한국에서 부활하다!'였나?"

"..."

어이없는 이름에 천문석이 말문이 막힌 사이,

류세연은 호스를 풀어내고 스프레이건을 당겼다.

촤아아아-

"삼촌. 이제 시작하자."

세차게 분사되는 물에 먼지가 씻겨나가는 바닥,

천문석은 마대 솔을 양동이에 담가 비눗물을 묻혀 솔질을 시작했다.

싹, 싹, 싹-

잔상을 남기며 빠르게 바닥을 왕복하는 마대 솔!

"오 역시, 일꾼 체질! 뭐든 잘한다니까. 하- 잘한다!"

류세연의 전혀 고맙지 않은 칭찬과 함께,

노동으로 보람찬 휴일의 하루가 시작했다.

옥상 전체를 청소한 후, 건물계단을 따라 물청소를 시작했다.

옥상에서 1층까지,

솔질하며 내려가는 천문석과 호스로 물을 뿌리며 뒤따르는 류세연.

흙과 먼지를 1층 현관 밖으로 빼내고 허리를 펴자,

도로를 사이에 둔 다른 건물에서도 청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밀대와 마대 솔을 들고 매장을 청소하고,

벽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 바쁘게 사는구나."

천문석이 내심 감탄할 때,

류세연의 외침이 들려왔다.

"삼촌. 빨리 올라와!"

"알았어."

천문석과 류세연 두 사람은 옥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류세연이 스퀴지로 물을 걷어내며 내려가고,

천문석은 마른 밀대 걸레로 남은 물기를 제거하며 따라갔다.

이렇게 1층 현관까지 물기를 모두 제거한 후,

두 사람은 다시 옥상으로 돌아와 계단을 내려갔다.

천문석이 마른 손걸레와 밀대 걸레로 각층의 벽과 문, 계단 난간을 닦으며 내려갈 때.

류세연은 현관 벨을 눌러 세입자와 만나 수리할 게 있는지 확인하고 도어락 건전지를 교체했다.

"주인집 세연 학생이네. 부지런도 하지."

"뭘요. 우선 도어락 건전지부터 교체할게요."

"세연아. 고생하는데, 이것 좀 마시고 해."

"감사합니다. 할머니. 혹시 고장 난 데 있으신가요?"

...

류세연이 생글생글 웃으며 세입자를 챙기는 동안,

천문석은 마른걸레로 건물 내부 곳곳을 문질러 닦았다.

이렇게 건물 입구까지 내려온 류세연은 건물 입구에 놓인 두 개의 통을 가리켰다.

"페인트 집 아저씨 왔다 갔나 보네. 삼촌. 이제 이거 들고 올라가면 돼."

"이게 뭔데? 뭔 통이야?"

"방수 페인트."

류세연은 능숙한 솜씨로 무거운 통을 어깨에 척 짊어지고 계단으로 향했다.

“...”

정녕 저 아이가 고등학생이란 말인가!

노가다 십 년 차는 된 것 같은 이런 능숙한 모습이라니?

천문석이 새삼 감탄할 때,

류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빨리 와."

천문석도 방수 페인트 통을 어깨에 올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강렬한 햇살에 옥상의 물기는 어느새 바짝 말라 있었다.

천문석과 류세연은 옥상의 방수 페인트가 까인 곳을 긁어낸 후, 방수 페인트를 다시 칠했다.

류세연은 방수 페인트를 여러 번 덧칠하며 말했다.

"임시작업으로는 한계가 있나 봐."

천문석이 고개를 들었다.

"응?"

류세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옥상 곳곳에 드러난 파인 흔적과 색이 바랜 곳, 덧칠된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제대로 전문업체를 불러서 방수 작업을 해야겠어. 생각보다 바닥 손상이 심하지?"

천문석은 순간 움찔했다.

옥상에서는 밤에만 수련하고 먼지가 두껍게 깔려 있어서 몰랐는데···.

청소 후 드러난 옥상 곳곳이 손상됐다.

헌터 도장 할아버지가 몬스터와 싸웠다고 해서 그 흔적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살피니 흔적에서 익숙한 보법의 투로가 보인다.

마종권.

자신이 마종권을 수련하며 만든 흔적이 섞여 있었다.

천문석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말했다.

"이거 비용이 꽤 많이 들 텐데?"

"페인트 집 아저씨가 자기한테 맡기면 좀 싸게 해준다고는 하던데. 이 방수 페인트도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오래된 거라고 공짜로 가져다주신 거야."

"그래도 몇 곳에서 우선 견적을 받아보고 진행하는 게 좋을걸. 못해도 몇백은 들 거 같은데···. 견적 받으면 말해라 나도 좀 보탤게."

류세연은 문득 천문석을 돌아보더니 웃었다.

"됐어. 세입자가 무슨 건물 보수 비용을 보태. 월세 받은 거에서 예비비로 빼둔 거 있으니. 비용은 충분할 거야."

"그래도···."

천문석은 대답하려다 말고 멈췄다.

한여름 강렬한 태양 빛 아래,

작업복을 입고 방수 페인트칠하면서 나누는 대화.

대화만 들어서는 공사장에서 인부 둘이 나눌법한 대화다.

그런데 실상은 대학생과 여고생이 휴일에 나누는 대화다.

이런 강렬한 위화감이라니!

천문석은 능숙하게 페인트칠을 하는 류세연을 잠시 바라봤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고3 여고생과 휴일에 건물 청소와 보수 작업을 하면서 방수 작업 견적 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대단히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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