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비정규직 천마 -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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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천문석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랩터를 살피며 달렸다.
랩터 두 마리가 간격을 크게 두고 다가온다.
적은 둘,
아군은 혼자.
2:1
홀로 싸울 때 적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면 전투 난이도는 열 배 이상 높아진다.
시야의 사각에서 쏟아지는 공격은 공방의 타이밍을 어그러트리기 때문이다.
결정타를 넣을 기회에 뒤로 물러서야 하고,
막을 공격을 피하고,
피할 공격을 맞는다.
두 마리 랩터.
정석대로 한 놈을 상대하다가 다른 한 놈이 가세하면,
지금 상태로는 잘해야 도망치다가 죽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천문석은 앞서 달리는 랩터를 향해 맞돌진했다.
단숨에 앞에 놈을 처리하고!
뒤에 놈을 일대일로 잡는다!
"야! 문석아!"
"알바!"
김철수와 꼬맹이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올 때.
천문석은 소리쳤다.
으아아악-
함성을 질러 시선을 끌고,
양손으로 무쇠 칼을 단단히 잡아 머리 위로 올린다.
노리는 기회는 단 한 번!
쿵, 쿵, 쿵-
땅을 짓밟고 무겁게 돌진하는 천문석.
두 발로 성큼성큼 가볍게 뛰어오는 랩터.
둘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흉포한 노란 눈동자.
반짝이는 갈고리발톱.
성큼성큼 날 듯이 뛰는 두 다리.
그리고 훅 올라오는 끔찍한 악취!
악취가 느껴지는 순간.
으아악-
천문석은 온 힘을 다해 무쇠 칼을 때려 박았다!
공격을 확인한 후에는 늦는다.
방금 전투로 몸에 새긴 타이밍대로,
단숨에 밀고 들어간다!
깡-
금속을 때리는 듯한 굉음이 터지고,
떨어지는 무쇠 칼에 엄청난 힘이 걸렸다!
순간 천문석은 확신했다.
완벽한 타이밍.
걸렸다!
이를 악물고 두 발로 땅을 밀어낸다!
쿵, 쿵, 쿵-
기세와 힘, 모든 걸 끌어올려 무쇠 칼에 담아 쪼갠다!
으아악-
끄르륵-
생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천천히 나아가는 칼날.
문득 다리에 묵직한 충격이 오고,
몸통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올라왔다.
그러나 천문석의 무쇠 칼은 멈추지 않았다.
칼날 위를 걷는 지금.
멈추는 순간 칼에 꿰뚫려 죽을 뿐이다!
시야가 좁아지고,
청각이 사라진다.
느껴지는 건.
불 속을 걷는듯한 뜨거움,
온 힘이 실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무쇠 칼뿐!
파아악-
이때 무쇠 칼에 걸리던 엄청난 부하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깡-
투둑, 투두둑-
날카로운 쇳소리가 터지고, 랩터의 잘린 팔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랩터의 몸통에 박혔던 무쇠 칼이 비늘과 질긴 근육을 자르고 장기를 끊고 빠져나왔다.
몸통이 반쯤 끊긴 랩터는 픽- 쓰러졌다.
랩터는 엄청난 피를 뿜어내며 잘린 팔을 버둥거렸다.
천문석은 무쇠 칼에 걸린 부하가 사라지고, 끓는듯한 랩터 피를 뒤집어쓰는 순간 직감했다.
잡았다!
그러나 승리한 지금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이 잡은 랩터를 보고 있지 않았다.
랩터의 피를 전신에 뒤집어쓴 천문석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다른 랩터를 보고 있었다.
방금 잡은 놈보다 훨씬 큰 놈.
저놈과의 전투는 더욱 치열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 커다란 랩터가 별로 무섭지 않았다.
"..."
돌진하는 랩터를 보던 천문석의 시선이 손에 들린 무쇠 칼, 자신의 배, 정강이로 움직였다.
부러진 무쇠 칼.
피로 흥건한 배.
부어오른 정강이.
아무리 두툼하다고 해도 조리용 칼.
몬스터의 육체를 끊어낸 무쇠 칼은 부러져 반만 남았다.
갈고리발톱에 긁힌 배에서는 피가 퐁퐁 샘솟고,
꼬리치기에 맞은 정강이는 순식간에 허벅지만큼 부풀어 올랐다.
"..."
이제는 저 커다란 랩터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저 랩터가 아니더라도,
지금 당장 뒤지게 생겼으니까···.
"하···.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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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탄식 후,
천문석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이없게도 당장 죽게 생긴 이 순간,
천문석은 전생과 현생의 차이를 느꼈다.
전생의 천마라면 당장 죽게 생겼어도,
어떻게 적을 끌고 같이 뒤질까 고민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살아날 방법이 없나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하하하-
현생의 자신은 마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는 인간이었다.
평범한 인간.
문득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
그렇다면 당연히.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최선을 다해서.
인간답게 질척질척!
끈질기게 살아남겠다!
천문석은 몸을 돌려 최선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쿵-
"으악!"
쿵, 쿵-
"으아악!"
매 걸음 자신도 모르게 비명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피가 솟아나는 자상을 손으로 틀어막고,
퉁, 퉁 부은 정강이를 끝없이 앞으로 내디딘다.
목표는 밧줄.
3층 키즈 카페 창문에서 땅으로 드리워진 밧줄이다!
그러나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천문석은 너무나 느렸다.
쿵, 쿵-
쿵, 쿵, 쿵-
등 뒤, 땅을 울리는 랩터의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밧줄을 잡기 전에,
랩터가 자신을 먼저 잡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천문석은 다짐했다.
끝까지 발버둥 치겠다!
살기 위해서!
인간답게 끈질기게!
천문석이 비장하게 다짐하며 반만 남은 무쇠 칼을 든 손에 힘을 줄 때,
창문에서 몸을 내민 돌머리 꼬맹이가 손을 흔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알바! 위험. 엑스. 피해."
피를 많이 흘려서인가?
꼬맹이 목소리는 뚝뚝 끊겨 들렸다.
"위험하니까. 랩터를 피하라는 건가?"
추측해서 말하고 보니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랩터가 위험한 걸 알고, 나도 피하고 싶지만.
피하고 싶다고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이때 다시 한번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알바! 엑스! 피해! 위험! 거기, 거기! 땅·땅·땅!"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땅을 봤다.
자신의 발아래, 땅에는 하얀 분필로 여러 번 덧칠한 듯한 커다란 ‘X’자가 있었다.
“어. 이거? X, 엑스?”
꼬맹이가 그린 엑스?
천문석은 생각과 동시에 무의식중에 앞으로 한걸음 성큼 걸었다.
이때 세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으아아악-
키즈 카페 창문에서 들려오는 김철수의 악을 쓰는 소리.
휘이이잉, 쾅-
펄쩍 뛰어올라 방금 천문석이 있던 X자 표시로 떨어져 내리며 갈고리발톱을 휘두르는 랩터.
콰아아아아앙-
키즈 카페 창문에서 밀려 나와 X자 표시 위로 떨어진 커다란 기차 객석.
콰아아앙-
으아악!
천문석은 바로 등 뒤에서 터진 폭음과 충격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천문석은 경악했다.
"아니 시발! 이게 뭐야!?"
자신의 바로 뒤!
X자에 떨어진 기차!
1초만 늦게 움직여도 뒤질 뻔했잖아!!
이때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철수와 꼬맹이의 목소리.
"문석아! 괜찮냐!?"
"알바! 괜찮아?!"
“...”
천문석은 대답 없이 땅에 떨어진 기차를 자세히 살폈다.
X자 위에 떨어진 기차,
자세히 보니 키즈 카페 기차의 객석이다.
이 기차 객석 아래에 랩터가 깔렸고, 그 주위로 피 웅덩이가 퍼지고 있다.
어린이 6명이 탈 수 있는 금속 기차 객석.
이 커다란 쇳덩이에 깔린 랩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 났다.
"...!"
순간 벼락 치듯 깨달음이 왔다.
'위험. 피해. 엑스.'
꼬맹이가 연신 소리치던 세 단어!
천문석은 돌머리 꼬맹이를 봤다.
꼬맹이는 창문에서 몸을 내민 채, 철수형의 등을 두들기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사장! 알바가 피하는 거 봤지? 역시 내 계획은 완벽해! 잘했어, 사장! 잘했어, 알바!"
"야! 괜찮냐?"
천문석은 신이 난 꼬맹이를 보며 허탈하게 말했다.
"[엑스]자 위에 기차가 떨어져서 [위험] 하니까 [피해]야 된다는 거였냐?"
이런 어이없는 녀석!
말을 제대로 했어야지!
까딱했으면 뒤질 뻔했다!
그러나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법!
하하하-
끄어억-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고 다시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재빨리 밧줄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현생 알바 천문석이 첫 승리를 거둔 날이다.
승리야말로 최고의 마약!
당장이라도 뒤질 것 같던 몸도 이제는 좀 덜 아팠다.
크하핰크억-
천문석은 고통과 웃음이 뒤섞인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밧줄을 향해 걸었다.
이때 새 울음소리를 닮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
끼이이익-
...
울음소리는 연기가 솟구치는 큰길 방향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진동이 느껴졌다.
투, 두드드득-
사방에서 우박 떨어지는 듯한 진동이 울리고,
진동 사이사이 대화하는듯한 랩터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이때 공터와 큰길이 이어진 곳에서 랩터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
순간 천문석과 랩터의 시선이 마주쳤다.
끼이이익-
랩터의 울음소리가 터지고,
사방에서 들려오던 진동과 울음소리가 방향성을 띄었다.
두드드득-
끼이이익-
큰길에서 랩터가 쏟아지듯이 나타나고.
"문석아!!"
"알바!"
김철수와 꼬맹이가 소리 지를 때,
천문석도 위를 향해 마주 외쳤다.
"철수형! 빨리 당겨!"
처음 울음소리가 울려올 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낀 천문석.
천문석은 미적대지 않고 바로 밧줄로 허리와 허벅지를 감아 매듭지어 몸을 고정한 상태였다.
"알았어! 끌어올릴게!"
“나도 도울게!”
으아아악-
이야압-
철수형과 꼬맹이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고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몸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천문석도 성한 발로 벽을 밀어 힘을 보탰다.
이때 큰길에서 나타난 수많은 랩터가 일제히 울부짖었다.
그리고 파도가 무너지듯 밀려왔다.
투두두둑-
끼이이이익-
음파 공격이라도 당한 듯 부르르 떨리는 강철 덧창!
으아악-
까아악-
...
건물 안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아 시바."
천문석은 달려드는 랩터와 자신이 올라가는 속도를 가늠했다.
자신은 몸 상태가 개판에 다리 한쪽은 아작났다.
줄을 당기는 철수형은 무거운 기차를 창으로 밀어 올리느라 지친 상태다.
으아악-
이얍-
철수형과 꼬맹이의 힘겨운 기합에도 밧줄은 느릿느릿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게다가 랩터 이놈들, 한데 뒤엉키니 뛰는 높이가 확 늘었다.
랩터들은 뒤엉킨 다른 랩터의 몸을 밟고 더 높이 뛰어오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키즈 카페의 열린 창으로 랩터 한 마리라도 들어가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다.
"..."
"으아악! 조금만 더! 제발!"
“알바! 힘내!”
"본사! 야! 본사! 여기 좀! 도와줘!"
"으얍! 으으읍!"
"으악! 본사! 시발 놈들! 야! 좀! 와라!"
"으야얍! 아르바! 히르내!"
이때 철수형과 꼬맹이의 악쓰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러나 밧줄이 올라가는 속도는 오히려 느려지고,
랩터 무리가 달리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천문석은 결심을 굳히고 반만 남은 무쇠 칼을 꺼냈다.
"하···. 시바. 어쩐지 이렇게 될 것 같더라니."
천문석은 위를 향해 외쳤다.
"철수형! 바로! 덧창 내리고! 잠궈요!"
"으아악! 어···? 뭐?"
그리고 천문석이 반만 남은 무쇠 칼로 밧줄을 끊어 버리려는 순간.
밧줄이 걸린 창에서 불쑥 몸을 내미는 꼬맹이.
꼬맹이는 밀려오는 랩터를 향해 외쳤다.
"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