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95화 (95/225)

95화. 새먼트와 용병단 (3)

마차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끼오오오오!

전투태세를 마친 용병 단원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 솟아났다.

와이번 떼라니! 한 마리만 있어도 어지간한 기사단 하나를 전멸시킬 수도 있는 몬스터였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와이번 무리가 뿜어내는 형형한 기운에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지경이었다.

“크으…… 저 자식들이 왜 여기서 나타난 거지?”

“긴장 놓지 마.”

“근데 단장. 저놈들 그냥 지나가는 것 같은데?”

-끼오오오! 끼오오!

피르칸의 말에 창밖을 바라보니, 와이번 떼는 마차를 지나쳐 날아가고 있었다.

“왜 그냥 지나치지……?”

“그러게… 뭔가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날아가는데……?”

군락을 이루고 사는 와이번들은 떼를 지어 다니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대부분 혼자 사냥을 하는 독립적인 개체였다.

그런 와이번들이 저렇게 떼를 지어 가는 것은 무리 전체가 이동을 하는 경우밖에 없었다.

그런데 무리의 이동에서 흔히 보이는 어린 개체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와이번의 이동은 강한 개체가 선두를 이루고, 중간에는 어리거나 나이 든 약한 개체가, 마지막은 그 중간 개체들을 지키는 2군 정도 되는 강한 개체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와이번 떼는 아니었다. 순서나 질서 따위 없이 그저 떼 지어 날아갈 뿐이었다.

‘저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야.’

날아가는 와이번 떼를 지켜보는 루카스의 표정이 심각했다.

“하아아… 이거 한숨 돌렸구먼.”

“나도 꼼짝없이 여기서 죽는 건가 했수다.”

어찌나 손에 힘을 줬는지 다들 손바닥에 검 손잡이 자국이 선명했다.

마차를 가득 채웠던 긴장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후우우… 자, 이것 좀 먹어라.”

어찌나 긴장들을 했는지 갑작스레 찾아온 허기에 다들 주섬주섬 먹거리를 꺼내 입에 물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육포 조각을 받아 듣 넬라가 인사하자, 단원들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아주 대견한 아가씨야. 와이번을 보고도 얼굴색 하나가 안 바뀌더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크큭! 그런데 형님, 단장 얼굴 봤어?”

“크하하하! 봤지. 저, 전투태세!”

와이번이 나타났을 때 했던 단장의 말투와 폼을 똑같이 따라 해 보이는 새먼트의 모습에 모두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크하하하하하! 악!”

단장은 단원들이 신명 나게 자신을 놀려대자, 결국 꿀밤을 먹여주었다.

“콱 그냥! 그러는 너희는! 엉? 아주 손을 바들바들 떨어대더구먼! 네 놈들 말대로 여기 앉은 두 아가씨들이 훨씬 의연하더라!”

“아니, 단장! 왜 자꾸 머리는 때리십니까! 이러니까 머리가 빠지지…….”

“크하학! 야, 네놈 머리 빠지는 게 왜 내 탓이냐? 그럼 지금부터 안 때릴 테니까 머리 나는지 봐보자.”

“……이미 빠져서 안 나는 걸 수도 있잖수!”

입이 댓발 나온 피르칸이 휑한 머리를 조심스레 비볐다. 혹시 한 올이라도 자랐을까, 빠졌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야, 알았다. 알았어. 이번에 시타타에 가면 그 새로 나온 발모제 사줄게.”

“……진짭니까?”

“아잇! 그럼! 까짓거 내가 그거 한 통 쏜다!”

“헤헤… 알겠수다.”

피르칸은 단장의 약속에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다.

“조금만 더 가서 밥이나 먹자고.”

“으아아… 또 이런 땡볕에서 밥 먹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없네.”

“끄으으…….”

***

아만의 집무실.

“아니, 아직도 못 찾았다는 말입니까?”

새로운 학장이 된 아만은 벌써 이틀째 루카스와 일행들을 찾지 못하고 있는 교수진들을 탈탈 털고 있었다.

아만 역시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일행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계약의 인 역시 옅어지고 있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것이… 저희도 디바노스에 델러다칸까지 찾아보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입니까? 아니 그보다 시험을 진행하기 전에 던전과 연결된 흔적들을 먼저 완벽히 지우는 것이 순서 아닙니까?”

“…….”

“뭐 시험 하루 이틀 치릅니까? 그리고, 이 정도 상식은 기초반 학생들도 있겠어요!”

-탁!

제 눈앞에 놓인 서류철을 거칠게 내려놓은 아만이 버럭 소리치자, 앞에 선 교수진들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맨 처음엔 어떻게 저런 뜨내기 같은 새파랗게 어린놈을 학장이자 마탑주의 자리에 앉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학기가 거듭되고 해가 거듭될수록 아만의 진가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일대로 고여 썩다시피 한 마탑의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였으며, 대부분 추천제로 이루어져 말이 많았던 아카데미와 마탑의 크고 작은 일자리들 역시 모두 면접이나 시험을 통해 뽑고 있었다.

맨 처음엔 이런 아만의 행보에 태클을 거는 사람도 많았고, 아만을 매수하거나 회유해 제 편으로 만드려는 자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온 아만은 처음부터 그 어떤 유착관계도 없었기에 관계를 내세워 부탁을 하는 이도 없을뿐더러, 있다 한들 아만이 그 요청을 들어줄 리도 없었다.

“나가보세요! 지금 사라진 학생들을 찾지 못한다면… 교수님들 역시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아만의 싸늘한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지자, 교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후다닥 방을 빠져나갔다.

“하아아…….”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아만이 긴 한숨을 뽑아냈다.

“도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창고도 넘겨받지 않았는데 루카스가 죽기라도 한다면…… 정말 끔찍했다.

그리고 이것은 직무 유기였다.

루카스의 이번 생을 잘 끝마치게 돕겠다고 했던 그 직무를 유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에 계신 겁니까아!!!”

아만의 애절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

시타타에 도착한 용병단과 다른 일행들은 쾌재를 불렀다.

“으아아! 형니임!”

“그래! 고생했다!”

멀리서 시타타가 보이는 그 순간부터 용병 단원들은 시타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지금은 꼭두새벽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틀이 걸릴 일정을 모두가 의기투합하여 미친 듯이 달려온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넬라의 정령술이 한몫했다.

넬라는 말들이 지칠 때마다 치유술을 써 그들을 처음과 같이 달릴 수 있게 만들었고, 수시로 물을 끼얹어

온도가 시원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왔다.

“고맙다! 진짜, 물의 정령사 말만 들었지… 이렇게 좋을 줄이야!”

“하지만… 비밀 잘 지켜주세요.”

“그럼! 물론이지!”

넬라가 정령사인것은 아직까지 비밀이었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마법과 정령을 모두 쓸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무려 중급정령을 부린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게 되는 순간 평화는 끝나고 말 것이다.

넬라의 입장을 백분 이해한 용병 단원들도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을 지키겠노라 몇 번이고 다짐해 주었다.

“먼저 여관부터 잡자고! 단장이 너희 방도 잡아줄 거다.”

“그래, 거기 스키… 뭐시기랑 그쪽이랑 한방을 쓰고, 우리 기특한 넬라 양과 대담한 폴라 양이 한방을 쓰면 되겠구먼.”

사실 루카스와 일행들은 이대로 백작저로 직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충격만 안겨주고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던 일행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아침에 가면 되겠지.’

용병 단원들 역시 이들이 아카데미에서 낙오된 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가는 것이 순서였다.

“고생했다! 그럼 늘어지게 자고 점심때 식당에서 보자!”

단장인 알렉이 각자 손에 방키를 쥐여주더니 먼저 올라갔다.

“그럼, 잘 자라! 강정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크학학! 나는 네가 그런 노인네 말투를 쓸 때마다 웃겨 죽겠다니까! 잘 자라!”

새먼트의 짓궂은 장난에 스키르는 어릴 때와 같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있었다.

“잘 자.”

“그래, 잘 자라! 내일 보자.”

“잘자, 오빠.”

폴라와 넬라도 자신들의 방으로 흩어지자, 남은 것은 스키르와 루카스였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이렇게 한방을 같이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공기 중에 어색한 침묵이 살짝 흐를 때쯤 루카스가 입을 뗐다.

“우리도 자러 가자.”

“으응. 그래야지.”

어색한 침묵도 잠시. 방에 돌아온 루카스와 스키르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낼 새도 없이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

황제의 집무실.

“그래서?”

건조한 황제의 목소리에 비서인 라돌프의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타타를 저대로 두어도 되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래서? 로드리고 백작가가 나라라도 세운다고 하던가?”

“그것은 아니오나…….”

“그럼 좀 내버려 둬도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저들이 탈세를 하거나 영지민들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허나 저러다가 국가로 선포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라돌프는 마지막 수를 꺼내 들었다.

저들이 정말로 나라라도 세운다고 할 때엔, 드높은 제국의 위상에 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황제의 표정은 조금 전과 같이 건조했다.

“저들이 따로 병력을 키우는가?”

“…….”

“나는 아직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네마는.”

백작가는 모든 일을 진행함에 있어 흠이 잡힐만한 행동을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진즉에 권력의 쓴맛을 봤기 때문인지 몰라도, 백작가는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며 주변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이문이 남는 행동들의 대부분은 골드나인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이미 제국민들의 여론은 백작저를 옹호하는 쪽이 강했다. 물론 중앙 귀족들 중 몇몇은 그들을 시기해 폄하하고 욕하는 자도 있었지만 말이다.

“황실에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국민들을 착취하거나 영지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데 무슨 명분으로 그들을 몰아낸다는 말인가?”

이것 참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황제가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제로스 황자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을 때만 해도 황좌에 눈이 멀어 형제까지 제 손으로 죽인 사람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아닙니다. 폐하.”

“그래, 다른 사안은 없는가?”

“…….”

“없으면 나가보게.”

황제는 손을 내저으며 서류 더미에 다시 시선을 묻었다.

“예. 그럼…… 아!”

라돌프는 몸을 돌려 나가려다 말고 다시 황제 앞에 섰다.

“……?”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실종되었다 합니다.”

“흐음…… 몇 명이나?”

“총 네 명입니다.”

“어쩌다가?”

“실기시험을 치르다가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드의 표정이 짐짓 심각해지는가 싶더니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그건 뭐…… 아만 학장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

“아카데미의 학생이 사라진 일까지 내게 처리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다행이군. 나가보게.”

비서인 라돌프가 방을 빠져나가자, 황제는 피곤하다는 듯 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후우…….”

그렇게 깊은숨을 몇 번 들이마시었다 내쉬기를 반복하던 황제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이 짓도 오래 해 먹을 건 못 되는군.”

황제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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