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새먼트와 용병단 (1)
“새미! 오른쪽!”
“으앗! 이런 개 같은!”
하마터면 스콜피온의 독침에 옆구리를 찔릴뻔한 새먼트가 욕지거릴 내뱉으며 검을 다시 한번 그러쥐었다.
“키모! 이쪽으로!!”
-키이이이! 키이! 키!
집게발을 흉포하게 휘두르는 스콜피온 무리 사이를 누비며 고군분투하는 용병 단원들.
아무리 많은 전투 경험이 있다 해도 매 전투가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이었다.
“조심해!!”
-키에에!
키모라는 사내가 내지른 날카로운 검격이 스콜피온의 턱을 관통했다.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풀썩 쓰러진 스콜피온을 둘러싸는 다른 스콜피온들.
그 사이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키모와 새먼트는 서로 등을 맞댄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형님!!!”
“발테리! 이쪽으로 오지 마!!”
그들을 둘러싼 무리 바깥에서 그들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는 발테리라는 사내는, 제 눈앞에 있는 한 마리의 스콜피온과 대치 중이었다.
“크윽……! 알렉 단장!!”
스콜피온의 집게발 공격에 다리를 다친 사내가 단장의 이름을 외쳤다.
“피르칸! 이런…… 개자식들!!!”
스콜피온에게 돌진하는 알렉.
“하, 우리 이제 어쩌냐?”
-키에에! 키익! 키이이익!!
“어쩌긴 뭘 어째? 저 개자식들 모가지 다 따야지! 으아아!!”
무리 속에 갇힌 키모와 새먼트가 달려드는 스콜피온들을 향해 필사적으로 검을 내질렀다.
-피캉! 쿵! 콰지직! 콰직!
그때였다. 고군분투하는 용병 단원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마법.
“이, 이게 뭐야!?”
눈이 휘둥그레져 놀라 돌아보는 용병 단원들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차 앞에 당당히 서 있는 루카스와 일행들이었다.
“흐음~ 고소한 냄새. 쟤네도 먹으면 맛있나?”
입맛을 다시며 미세한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는 제 손끝을 바라보는 폴라.
“저런 건 먹는 거 아니다.”
그녀의 뒤편에 서서 미세한 빛을 흩뿌리는 스키르.
“운디네. 쟤네 목을 물어 뜯어버려.”
-계약자의 뜻에 따라.
늑대 형상을 한 거대한 물의 중급 정령 운디네를 제 수족처럼 부리는 넬라.
“나는 힘이 없군. 너희도 전갈들한테 너무 힘쓰지 마. 나중에 와이번이라도 나오면 큰일이니까 말이야.”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루카스까지.
“쟤, 쟤네는 뭐야?”
“…….”
“크, 크하하하! 강정들이 속이 꽉 찼네!”
새먼트는 그런 그들을 보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
“야, 너희 진짜 대단하더라.”
순식간에 정리된 현장에 용병 단원은 모두 감탄을 내뱉었다.
“끄으으…….”
피르칸이라는 사내는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짜식, 엄살은! 그러니까 머리가 하나도 없지 인마! 대머리 자식.”
“단장! 그게 대머리랑… 크윽! 무슨 상관입니까!?”
‘대머리’라는 단어에 발끈해 보인 사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 다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야, 나 때는 말이야. 응?”
“또 시작이시네. 그러니까 단장이 꼰대 소리를 듣는 거 아닙니까?”
단장의 말을 냉큼 자르고 끼어드는 새먼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였다.
“뭐, 뭐야!?”
“그보다 이거 큰일이네… 마을까지는 아직 이틀은 더 가야 하는데 말이야.”
“이틀… 이나?”
“그래, 너희는 근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거냐? 아카데미는 너희 찾으러 안 오고 뭐 하는 거야?”
“…….”
새먼트의 날카로운 일침에 아이들은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제가 치료해 드려도 될까요?”
곁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목소리에 단원들의 고개가 모두 한곳을 향했다.
“……네가?”
되묻는 사내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다름 아닌 넬라였다.
이미 뱉어버린 말이지만 루카스의 눈치를 살짝 살피는 넬라.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넬라는 그제야 부상당한 사내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섰다.
“그럼…….”
물의 정령사가 가진 특권 중 하나인 치유술.
그 덕분에 정령사 중에 제일가는 것은 물의 정령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다른 정령사들 역시도 그들만의 고유 특성이 존재했다.
불의 정령사는 누구보다 강한 공격력을 자랑했으며, 바람의 정령사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를, 땅의 정령사는 강한 방어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물의 정령은 다루기가 가장 까다로웠으며, 설령 운이 좋게 물의 정령과 계약을 했다 한들 정령들이 계약자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
“운디네. 이 사람에게 네 기운을 조금 나눠줄 수 있을까?”
-……내키진 않지만.
“부탁할게.”
-계약자의 뜻에 따라.
거대한 늑대 형상을 한 운디네는 몸 전체가 물로 이루어진 듯 투명했다.
-사아아아
다친 사내의 상처에 다가선 운디네가 환부를 한번 핥자 미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오…….”
그것을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대단하군. 저게 말로만 듣던 물의 정령의 치유 능력인가?”
“그런가 봐.”
저마다 한마디씩 주고받는 사내들의 눈이 호기심에 반짝였다.
“세상에나! 안 아프잖아? 단장, 이것 봐. 나 완전 멀쩡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의 다리가 말끔히 낫자, 그들은 박수까지 쳐 보였다.
“이야, 너희 이제 진짜 강정이 아니네. 엄청나!”
다시 한번 놀랍다는 듯 새먼트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건 그렇고 이틀이나 걸린다고? 여기서부터?”
“아, 맞네. 단장! 그냥 오늘은 여기서 쉬고 해 뜨자마자 일찍 출발하는 게 어때?”
루카스의 물음에 새먼트는 대답 대신 단장을 불렀다.
“흐음…… 그게 낫겠군. 자자, 야영 준비하자.”
“으으~ 그럽시다.”
이제는 말끔히 나은 다리를 몇 번 털어 보인 사내가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서자, 다른 단원들 역시 빠르게 야영 준비에 돌입했다.
“저… 루카스 우리 야영을 해야 하는가?”
야영이라는 말에 스키르는 불안한 듯 눈을 굴렸다.
안 그래도 마을까지 이틀이나 더 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직후라, 그 불안은 배가된 듯 보였다.
“아마도. 지금은 우리끼리 움직이는 것보다 이들과 함께 가는 게 훨씬 나을 거야.”
“하아… 밖에서 자는 건 체질에 안 맞던데…….”
“야! 너는 불평할 시간에 이거나 좀 도와!”
“으응…….”
상황판단과 적응력이 빠른 폴라는 단원들을 도와 야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건 사내들이 하면 되니까…….”
“아니에요. 저도 도울게요. 이거 저쪽에 두면 되죠?”
단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 폴라를 만류해 보았지만, 폴라는 배시시 웃으며 잡일을 열심히 도왔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는지 단장을 비롯한 다른 단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참, 보기 드문 아가씨로구먼.”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른 마법사들은 아주 콧대가 어찌나 높은지… 억!”
새먼트의 옆구리 찌르기 공격에 사내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스읍. 말조심해. 이제 다리가 안 아프니 아주 입이 살아났구먼?”
“아, 형님!”
사내는 제 옆구리를 비비며 눈을 흘겼다.
“큭큭… 귀여운 새끼. 얼른 식사 준비나 해라.”
야영이 일상인 용병 단은 갑자기 늘어난 인원에도 빠르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자, 얼른 먹어. 이래 봬도 야영에서 먹기 힘든 음식들이니까.”
“그래, 쟤 말이 맞아. 오늘 귀한 손님들 덕에 목숨을 건졌으니 단장이 거하게 대접하는 거라고!”
사실 식사는 거하게 대접하는 것과는 거리가 조금 있어 보였지만, 루카스와 일행들은 군말 없이 스푼과 포크를 집어 들었다.
“루카스… 이것이 정말 거한 대접이 맞는가……?”
스키르는 폴라에게 물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질문이라는 것을 저도 아는지, 루카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맞아. 엄청 거한 대접이지.”
“……진짜?”
스키르의 의문이 타당하긴 했다.
눈앞에 차려진 것이라고는 육포를 불린 듯한 물에 시들한 야채 건더기들이 든 곤죽 같은 스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빵은 어찌나 딱딱한지 스프에 한참을 불려놓아도 그 형체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 이걸 끓여서 주는 건 엄청난 대접이야.”
“……알겠다.”
스키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더 물었다가는 루카스에게도 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바깥에서의 생활이 길어짐에 따라 용병 단원들이 소지하는 식품은 그 종류가 한정적이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육포나 건어물 따위와 쉽게 상하지 않는 수분기 없는 빵 등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설거지가 쉽지 않은 바깥에서,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서 이것들을 넣고 조미를 한 다음 스프로 끓여냈다? 그건 정말이지 거나한 대접이 맞았다.
“크… 이게 얼마 만에 뜨뜻한 음식인지!”
“형님은 덥지도 않으십니까?”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스프를 끓인 피르칸은 사막 한가운데에 앉아 뜨거운 스프를 맛있게 들이켜는 새먼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뜨뜻하다고 좋아하기까지 하다니!
“덥지! 그런데 동생아. 이열치열 뭐 그런 말도 모르냐?”
“그런 개 같은 소리 좀 하지 마쇼. 아니 왜 열을 열로 이긴답니까? 이럴 땐 살얼음이 사르륵 껴가지고 목구멍이 아플 정도로 차가운! 그런 맥주를 마셔야지.”
“그것도 좋지…….”
피르칸의 생생한 표현에 새먼트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하늘을 바라봤다.
“하아… 덥긴 진짜 덥네…….”
모두가 더위에 지쳐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말이 좋아 이열치열이지 이곳에 앉은 사람들 중 시원한 무언가가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원하게 한번 해줘?’
모두 시원한 것 생각이 간절한지 뜨거운 스프 그릇을 그대로 든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루카스는 그들에게 시원한 선물을 하나 주기로 했다.
“넬라. 나이아스를 불러줄래?”
“나이아스를……? 알겠어.”
넬라가 나이아스를 부르는 사이, 루카스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박수를 여러 번 쳤다.
“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엥? 갑자기?”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는 것도 잠시, 루카스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기서 뒤로 다섯 보 가보세요.”
“……뭐 하는 거야?”
둥그렇게 둘러 앉아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뒤로 다섯 보를 물러서자, 사람들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 넬라. 사람들에게 물벼락을 내려줘.”
“……어?”
“어서.”
“으응…….”
-촤르르륵!
“으아아악! 이게 무슨 짓이야!”
갑자기 머리 위로 쏟아진 물벼락에 놀란 사람들이 허둥지둥하며 세수를 해댔다.
“자, 한 번 더!”
-촤르르르륵!
“으아악!”
다시 한번 더 쏟아지는 물벼락에 사람들의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루카스가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으아아아! 추워, 추워!”
몸을 휘감는 바람에 물이 마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언제 더웠냐는 듯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자, 이제 샤워도 했고 시원하기도 하니까 얼른 먹고 잡시다.”
“이, 이게 뭐여!? 이런 게 마법이여!?”
생전 처음 보는 기발한 마법의 활용에 단장의 작은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래졌다.
“다, 단장! 나 머리 나는 것 같아!”
피르칸은 휑한 정수리에 돋아난 소름에 머리를 들이밀며 소리쳤다.
“응. 아니여.”
너무나도 단호한 단장의 말에 시무룩해진 피르칸.
그 모습을 보며 웃는 사람들.
사막 한가운데서의 밤이 그렇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아, 그런데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아이고, 참 빨리도 물어본다. 아란트로 가는 길인데 수도는 아니고…… 그 어디였더라?”
뜬금없는 루카스의 물음에 목적지가 생각이 나지 않는지 한참을 고민하는 용병 단장.
“시… 뭐였는데…….”
“……시타타?”
“어! 그래! 시타타!”
설마 싶었는데 역시나 하고 튀어나온 대답에, 루카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고 말았다.
‘……이거 좋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