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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70화 (70/225)

70화. 피로.

아모레가 떠난 자리에 남은 루카스의 눈동자는 공허했다.

‘이 씨X자식들이 나한테 원하는 게 뭘까.’

확실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해주질 않았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도대체 인간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 그게 무엇이기에 한낱 인간인 자신을 종말을 해결할 ‘열쇠’라고 칭하며 이리도 안달인 것일까.

마신 타라스와 사랑의 신 아모레. 신들 중에서도 꽤나 한가락 한다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직접 현신까지 해가며 자신에게 직접 아티팩트를 주는 것일까.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의미 없는 고민이다.’

결국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루카스가 고개를 돌려 유유히 텔레포트했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루카스는 잠시나마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란 것 역시 무의미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두웠다. 달이 없는 어두운 하늘엔 별 하나조차 없었다.

긴 한숨을 주욱 뽑아낸 그가 기숙사로 들어서자 그곳엔 아만이 서있었다.

울컥.

아만을 마주한 루카스는 갑작스레 치닫는 감정에 입술을 꽉 물었다.

“로드.”

“……그래.”

왜일까. 아만을 마주한 그 순간 느껴진 감정은 안도였을까.

루카스는 아만이 혹여라도 자신의 감정을 눈치챌까 표정을 바꾸고 활짝 웃어 보였다.

“긴 밤이지요.”

“길구나.”

마치 모두 안다는 듯한 아만의 부드러운 웃음에 다시 한번 감정이 왈칵 솟구쳤다.

“내일 아침이면 난리가 날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루카스 어린이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 아만이 모두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슴을 활짝 펴 보이는 아만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의 말대로 내일 아침이면 아카데미는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브랑디의 죽음에 이어 마신의 종놈들까지 모두 차디찬 시체가 되었으니, 축제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번 사태의 주범은 루카스였다. 마신교의 성유물을 훔친 것도 전생의 그였으며, 마신교의 사제들을 모두 죽음에 몰아넣은 것 역시 그였으니 말이다.

“그래. 네게 귀찮은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서운합니다. 분명 저를 막 부리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로드께 제가 진 빚이 얼마나 많은데요.”

“빚?”

루카스가 되묻자 아만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제가 쳤던 그 수많은 사고들을 로드께서 척척 해결해 주셨지 않았습니까.”

“하하. 누구나 질풍노도의 해츨링 시절을 겪는다. 물론 너는 특히 그랬지만.”

“네.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아만이 싱긋 웃었다.

“그래. 그럼 빚 한번 갚아보아라.”

“예. 로드!”

***

아침이 되자 예상했던대로 아카데미는 한바탕 크게 뒤집혔다.

“사서님이!?”

복도에 선 학생들은 빠르게 퍼진 소문을 속속들이 접하고 있었다.

“그래, 사서님뿐만 아니라 마신교에서 오신 사제님들 역시 전부 주, 죽었대……!”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학생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조속히 기숙사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교수진들 역시 복도 곳곳을 누비며 확성 마법을 사용해 학생들을 기숙사로 복귀시켰다.

“루, 루키는?!”

“기숙사에 있다. 너도 얼른 넬라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라.”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루카스를 찾았던 스키르가 그의 안부를 전하자, 넬라의 손을 붙잡은 폴라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겠어. 너도 혹시 모르니 기숙사에 꼭 있어. 알겠지?”

“걱정 마라. 너도 넬라와 꼭 함께 있어라.”

“응. 걱정 마. 가자, 넬라.”

“……오빠 조심해. 그리고 루카스 오빠도 잘 부탁해.”

넬라의 부탁에 스키르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넬라의 어깨를 다독였다.

“걱정 마라. 폴라 곁에 꼭 붙어있어라.”

“응.”

아이들이 모두 흩어지자 복도엔 적막만이 남았다.

***

아카데미 내에 위치한 회의실은 고성이 끊이질 않았다.

“축제를 재개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럼 여태 준비한 건 다 어떡하고요!?”

“우리 마신교의 대사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대사제님을 해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이곳은 마법 아카데미입니다! 대사제님께서 마법에 당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그럼 누구를 의심하라는 말입니까!?”

대사제의 죽음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아카데미의 축제는 곧 아란트 제국의 축제나 다름없습니다! 의심하시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확신하진 마십시오!”

교수진들과 마신교의 사제들은 언성을 높여 싸웠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후원인들 역시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니, 나는 그런 거 잘 모르겠고 그럼 우리가 낸 후원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

“저희 상단에서 낸 후원금은요! 그리고 이번 후원으로 저희 상단에게 주기로 하셨던 발주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만의 이득을 소리높여 외치는 자가 있었으며.

“아니, 그럼 이번 아카데미 축제가 취소되면 성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 아들은 이번 축제에 사활을 걸었다고요!”

“맞아요! 우리 딸도 이번 첫 번째 각인 시험에 통과했다고요!”

자기 자식만을 챙기는 자가 있었으며.

“다 필요 없고! 이번에 먼저 구해달라고 했던 물건들 전부 구했으니까 그 값은 쳐주세요!”

자신의 손실만을 걱정하는 자가 있었다.

“하아…….”

모두를 지켜보던 아만이 긴 한숨을 토해냈다.

“사일런스.”

귀찮다는 듯 해 보인 그의 손짓 한 번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정말이지 실망스럽군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선 읍읍거리는 소리만이 간간이 새어나올 뿐, 누구 하나 말을 뱉어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책상 위에 양손을 짚은 아만의 시선이 사람들을 주욱 훑었다.

“먼저 이 자리에 계신 모든분께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읍읍! 읍!”

마신교의 사제 하나가 마법을 당장 풀라는 듯 거칠게 항변하자, 아만의 손끝이 그에게로 향했다.

“슬립.”

-풀썩!

아만의 공허한 목소리가 주문을 읊자 사내는 풀썩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강압적인 제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사과드리죠.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저를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푸른 머리를 천천히 쓸어넘긴 아만이 다시 입을 열었다.

“먼저 마신교에서 입으신 피해는 제국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질 겁니다. 또한 사제님들을 해한 범인 색출에 최대한 힘쓸 것을 약속드리며, 마신교 측에서 관대히 합의해 주신다면 감히 합의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힙니다.”

-쾅! 쾅!

‘합의금’이라는 단어에 다른 사제 하나가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예. 압니다. 대사제님께서 돌아가셨는데 감히 돈이야기를 꺼냈으니,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범인이 잡힌다면 범인의 신변 역시 모두 인도할 것입니다. 또한 합의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면, 저희 역시 애통한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회의가 끝나는 대로 황제 폐하께서도 면담 요청을 하실 겁니다.”

황제 이야기가 나오자 분개했던 사제의 태도가 한껏 누그러졌다. 황제가 요청하는 면담이라 함은 이 사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직접 사과의 말을 전하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이번 축제는 잠정 중단될 예정입니다.”

그러자 회의장 안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예. 압니다. 그러니 저희 아카데미 측에서는 모든 보상을 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먼저 축제에 참여했던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 전원에게 마탑에 입탑할 수 있는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실력에 따라 부서와 직책은 나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자 날뛰던 학부모들 모두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마탑이 어디인가? 아란트 제국뿐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마법사들이 꿈꾸는 직장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 마탑에 입탑할 수 있는 우선권을 모든 학생에게 주겠다니? 이보다 더한 기회는 없었다.

“또한 모든 분야 1차 시험에 통과했던 학생들 모두에게 5등상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으시겠지만 말입니다.”

이 또한 만족스러웠다. 물론 5등상은 누구나 탐낼만한 물건은 아니었으나, 값이 나가는 물건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축제에 후원해 주신 상단 모두 계약서 내용 모두 이행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또한 다음 축제에 같은 내용의 계약을 약속드리지요.”

그러자 장내엔 더 이상 어떠한 반발조차 남지 않았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만의 사과의 말을 끝으로 사일런스 마법은 모두 해제되었지만, 그곳엔 더 이상 입을 여는 자는 없었다.

***

아카데미 축제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제국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와 동시에 들떠있던 제국의 분위기는 차게 가라앉았으며, 아카데미 입구에는 두 개의 검은 깃발이 걸렸다.

하나엔 마신교의 문양이, 다른 하나에는 사서 브랑디를 기리는 책 그림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책 그림에는 작은 글씨로 ‘브랑디 트렌다이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루카스는 깃발 앞에 서서 글씨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미안하네.’

늙은 사서의 주름처럼, 깃발은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주름이 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저…….”

그때 누군가 루카스를 불렀다.

루카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이제 막 십 대 후반이 되었을 법한 소녀가 서있었다.

“이, 이걸 전해드리려고…….”

소녀가 쭈뼛거리며 품속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건네자, 루카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이게 뭡니까.”

어찌나 꼭꼭 접었는지 네모나게 접힌 쪽지는 면이며 모서리가 모두 날이 서있었다.

“그, 그게…….”

루카스가 쪽지를 뻗은 손을 흘끗 바라만 봤을 뿐 받아 들지도 않자, 소녀는 더욱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했다.

“신분을 밝히세요. 그게 아니라면 받을 수 없겠습니다.”

“저, 저는 그저 시, 심부름…….”

“그저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모르는 사람이 건넨 쪽지라면 더욱요.”

“그, 그게… 그게…….”

루카스의 말에 소녀는 말을 더듬으며 쪽지를 든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받을 수 없겠군요.”

“저, 저는…….”

소녀는 몇 번이나 말을 하다 말기를 반복하다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저는 티, 틸리 아, 아스트리드입니다…….!”

“아스트리드?”

떨리는 목소리로 제 이름을 밝힌 소녀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뒷말을 이었다.

“아, 아스트리드 배, 백작가… 지, 지금은 아, 아니지만…….”

“아.”

그제야 루카스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쪽지를 건네받았다.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정이 있는 집이라는 소리겠군.’

루카스가 쪽지를 받아 들자, 소녀는 그제야 눈을 뜨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아, 안녕히 계, 계세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린 소녀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자, 고개를 살짝 갸웃해 보인 루카스가 쪽지를 펼쳤다.

‘……이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쪽지의 내용을 본 루카스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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