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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드래곤, 아카데미 가다!-45화 (45/225)

45화. 오닐 공작가 (1)

아만이 돌아간 다음 날, 아이들 역시도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방학이 끝자락에 다가가고, 넬라 역시도 아카데미에 가기로 했다.

방학 대부분을 루카스의 집에서 보낸 아이들은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쉬움을 팍팍 풍겨댔다.

“아… 아쉽다.”

“그렇군. 꽤나 아쉬워.”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아카데미에서 볼 텐데 뭐.”

아이들은 마차 앞에 서서 발을 꼼지락거리며 한참이나 시간을 끌었다.

“넬라, 아카데미에 오면 언니 옆 방으로 꼭 와야 해!”

넬라의 손을 꼭 붙잡은 폴라가 재차 당부했다.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흥! 나도 알아. 그래도 아만 교수님께 부탁하면 들어주실지도 몰라.”

“하하, 그래. 나도 아만 교수님께 부탁해 볼게.”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백작부부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우리 루카스와 넬라를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인.”

어느덧 열여섯 살에 접어드는 스키르는 이제 꽤 아이티를 벗어내고 있었다.

폼을 잡는 모습이 퍽 늠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스키르. 네가 있어 이 아줌마가 걱정을 더는구나.”

스키르의 은백색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는 블레인의 손길이 다정했다.

“흠, 흠… 그럼 그동안 신세 많았습니다.”

“허허, 아니다. 언제든지 놀러 오렴.”

“저도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저도 언제든지 놀러와도 되는 거죠?”

“그럼, 물론이지. 언제든 놀러와도 되고말고.”

이미 폴라는 백작가의 여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부부와 친해져 있었다.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탄 마차가 떠나자, 백작가에 모처럼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그들의 마차를 지켜보던 백작부부의 얼굴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애들마저 가고 나면…….’

블레인이 한 손으론 루카스의 어깨를, 한 손으론 넬라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

“야, 거기 아래에 있는 간식 바구니 이리 줘봐.”

시타타를 빠져나갈 때쯤, 벌써 출출해진 폴라가 간식 바구니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너는 언제쯤 나를 오라버니로 대접할 거지?”

분명 자신이 폴라보다 두 살이나 더 많은데도, 폴라는 단 한 번도 오빠라는 소리를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그런 폴라를 보며 툴툴거리면서도 묵묵히 간식 바구니를 건넨 스키르가 입을 삐죽였다.

“흥, 뭐 오빠 같아야 오빠라고 하지!”

“하,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 곧 데뷔탕트에 나가는 여식들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뭔 탕?”

“데뷔탕트! 귀족들이 치르는 성인식… 뭐 비슷한 거지.”

백작저에서 챙겨준 간식 바구니를 뒤적이던 폴라가 손에 빵 하나를 꺼내 들더니 그것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그건 오늘 아침에도 먹었던 거다.”

“그래? 마차에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건… 켁! 켁!”

빵을 입안 가득 욱여넣던 폴라는 빵조각이 목에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괜, 괜찮나!? 여기 물! 물 마셔!”

제 옆에 있는 물병 뚜껑을 냉큼 딴 그가 물병을 건네자, 받아 든 물을 한참을 들이켠 폴라가 긴 한숨을 주욱 뽑아냈다.

“후우우…… 죽을 뻔했네!”

“그러니 천천히 먹으면 될 것 아닌가!”

어지간히 놀랐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스키르.

“아, 그것보다 그 탕트…… 거기에 가면 너도 이제 어른이야?”

“꼭 그런 건 아니고… 뭐, 성인이 되는 귀족가 자제들이 모여 안면을 트는 그런 자리다. 나는 그곳에 나가는 여식 중 하나의 파트너가 되어 갈 수도 있고.”

“뭐, 귀족들은 다 친구 아냐? 그럼 친구끼리 어른 되면 친구 아닌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것까지 해?”

손에 든 물을 두어 모금 더 마신 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귀족들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어렵다.”

“왜? 너무 고고하고 대단하셔서?”

“그렇기보다는… 언제 적이 될지 모르니까.”

“왜? 다들 돈도 많고 잘 사는데?”

“몰라도 된다.”

“쳇. 짜증 나.”

물병을 옆에 툭 내려둔 폴라가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보다…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가?”

“그게 무슨 말이야?”

뜬금없는 질문에 창문에서 시선을 거둔 폴라가 물었다.

“그냥. 사람들은 저마다 꿈이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거지.”

“참나! 어떤 사람은 무슨 어떤 사람? 나는 그냥 돈이나 많이 벌고 싶어.”

“돈?”

“그래. 돈.”

“어째서지?”

“하, 너는 몰라도 돼. 그리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잖아? 돈도 많은 게.”

갑작스러운 폴라의 비아냥거림에 스키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야, 너는 돈 걱정해 본 적 있어?”

“…….”

“없지? 그런데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

“미안하다.”

“그게 뭐가 미안… 아, 짜증 나!”

스키르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질문에 짜증이 난 게 맞는데 사과를 하니까 더 짜증을 낸다?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

하지만 폴라 역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스키르는 진짜 몰라서 물었을 텐데, 자신과 입장이 달라 모르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벌컥 화를 냈으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런데 저 멍청이는 냉큼 사과나 하고 앉아있으니 짜증이 더 치솟는 아이러니에 또 화가 났다.

“야. 너는 바보야? 왜 사과해? 네가 원해서 부자인 것도 아닌데. 나도 내가 원해서 가난한 거 아냐.”

“나는 그저 네가 짜증이 난 것 같아서…….”

“미안. 사실 너한테 짜증 난 거 아냐. 나한테 짜증이 났지.”

작게 미간을 찌푸린 폴라가 제 머리를 긁적거렸다.

“사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없어.”

“…….”

“그냥 마법사는 돈을 많이 버니까. 그래서 그냥 마법사가 되고 싶은 거야.”

“미안.”

“사과 그만해. 짜증 나.”

“미아… 아니. 응.”

스키르는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사과의 말을 냉큼 집어넣었다.

“하, 됐어. 그러는 너는 뭐가 되고 싶은데?”

“……마법사.”

“이미 마법사잖아?”

“형님보다 더 대단한 마법사가 되고 싶다.”

“형? 너희 형도 마법사야?”

폴라의 질문에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인 스키르가 말을 이었다.

“그래. 형님 역시도 아카데미 졸업생이시다. 아쉽게도 수석은 놓쳤지만 나름대로 대단한 실력의 마법사라고 알고 있다.”

“우와, 그럼 집에서 형이 마법 가르쳐 주겠네?”

“아니. 그런 일은 없다.”

“왜?”

“별로 친하지 않거든.”

스키르의 굳어진 표정을 본 폴라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생각을 마친 폴라가 간식 바구니를 뒤적여 쿠키를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넸다.

“자, 너도 먹어.”

“고맙다…….”

쿠키를 받아 든 스키르가 작게 미소짓자, 폴라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순간 달아오르는 볼에 고개를 푹 숙인 폴라가 열심히 빵을 씹어 넘겼다.

‘뭐야, 왜 갑자기 웃고 그래?!’

***

“도련님, 오셨습니까.”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큰 도련님과 함께 황궁 무도회에 참석하셨습니다.”

공작저에 돌아온 스키르는 돌아온 집사의 대답에 쓴웃음을 삼켰다.

“그래…….”

“목욕물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부모님의 편애는 하루 이틀이 아니니 익숙했다.

형을 조금 더 사랑하시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한들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니.

하지만 모래알이 들어찬 것처럼 가슴이 묵직하고 칼칼했다. 몇 주 만에 돌아온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다.

방에 들어온 스키르는 넓은 제 방을 한번 주욱 둘러봤다.

아카데미에 폴라를 먼저 데려다준 뒤 돌아온 공작저는 공허했다.

돌아오자마자 폴라와 루카스가 그리웠다.

루카스네 집은 어딘지 모르게 따스했었다.

“마음도 편했었지…….”

호화로운 태피스트리나, 샹들리에. 값비싼 가구들은 없었지만,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었다.

로드리고 백작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문득 자신이 서있는 제 방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다.”

백작저에서 먹었던 푸른 노루 고기를 생각하던 스키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금 느끼는 공허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도련님. 목욕 준비 다 되었습니다.”

“그래. 나가지.”

바깥에서 들려오는 사용인의 목소리에 그는 욕실로 향했다.

“후우…….”

욕조에 몸을 푹 담그자 피로가 점점 녹아내렸다. 노곤한 기분에 머리를 기댄 스키르가 긴 한숨을 뽑아냈다.

“도련님. 공작님과 부인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리에 스키르는 하던 목욕을 얼른 마무리하고 방을 나섰다.

“오, 스키르! 잘 다녀왔느냐.”

계단을 내려가자, 제 아버지이자 시러스 오닐 공작이 자신을 반겼다.

“예. 잘 다녀왔습니다.”

“호호, 우리 스키르 얼굴이 조금 탄 것 같구나.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 보냈니?”

“예. 즐거웠어요.”

어머니인 소셋 오닐이 자신을 품에 한번 꼭 끌어안고 놓아주자, 활짝 웃어 보인 스키르가 주변을 살폈다.

“형님은요?”

“아, 형은 먼저 올라갔다.”

시러스 공작의 짤막한 대답에 스키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혹시 선물은… 잘 전해드렸느냐?”

“예. 백작님께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편으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그, 그것이 정말이냐?”

스키르가 전한 뜻밖의 소식에 공작이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뒤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제 형인 스턴 오닐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 형님.”

“그게 무슨 소리냐 물었다. 멍청한 표정을 짓기 전에 대답 먼저 해라.”

“스턴! 동생에게 그게 무슨 말이니!”

“맞지 않습니까? 저 녀석의 멍청한 표정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습니다.”

어머니인 소셋이 다그쳤지만, 스턴은 그만두기는커녕 더욱 큰 소리로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너같이 멍청한 자식이 어째서 오닐가 사람인지 모르겠군. 오늘 내가 무도회에서 너 때문에 무슨 소리까지 들었는지 아느냐?”

“…….”

“공작가는 돈이 많아 그런지 기초반에 다니는 동생의 생활비까지 척척 잘만 댄다고 하더군!”

당시 상황이 떠올랐는지 스턴이 이빨을 으득 갈았다.

“그만두지 못하겠니!?”

“뭘 그만둡니까? 창피해서 밖에 나다니지를 못하겠습니다. 기초반을 한 학기 내내 다니는 저 자식에게 하인이며 호위까지 붙여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잘하신 건 없습니다.”

“이놈이!?”

무도회장에서 당한 수모가 꽤 컸는지 스턴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제국의 반역자나 다름없는 로드리고 백작가라뇨?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이신지는 몰라도 당장 그 선물이란 걸 돌려보내세요!”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하! 이 공작가가 이만큼 건재할 수 있었던 건, 황제 폐하의 성총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스턴을 바라보는 공작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를 지켜보던 소셋이 얼른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네가 속상한 것은 알겠다. 하지만 말이 지나쳤어. 어서 아버지께 사과드려라.”

“사과요? 사과는 아버지께서 하셔야지요. 제가 뭘 사과드려야 됩니까? 멍청한 동생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합니까? 그것도 아니면 옛 친구를 배신한 아버지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짜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한쪽으로 돌아갔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정면을 향했다.

분노의 찬 눈동자가 자신의 뺨을 내려친 제 어미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소셋의 몸이 떨려왔다.

“예. 잘 알겠습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스턴이 조소했다.

“제가 떠나지요. 이런 멍청한 집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겠군요.”

몸을 돌려 걷는 그의 몸에 잔잔하게 빛이 일어났다.

“스턴! 스턴!!!”

텔레포트를 시전하는 스턴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셋.

“스턴…….”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그가 서 있던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소셋의 얼굴에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스키르가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흐흑…… 스턴…….”

“들어가시지요.”

흐느끼는 제 어미의 어깨를 감싼 스키르가 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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