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팔자 펴는 소리요!
아침이 밝자 백작가의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나석 광산이 있다는 말에 모두가 들떠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동이 트기도 전에 백작은 밖에 나와 검술을 수련했으며, 블레인 역시도 후원에 가 꽃가지들을 손수 정리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오, 교수님.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내려온 아만을 반갑게 맞은 백작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하하, 예. 덕분에 잘 잤습니다.”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백작님, 그리고 교수님.”
예를 갖춰 깔끔하게 인사해 보인 스키르를 차례로 폴라와 루카스 역시도 식당에 들어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이들을 본 백작은 싱글벙글 웃으며 아이들의 접시 위에 손수 빵을 한 조각씩 얹어주기까지 했다.
“허허, 그래. 얼른 와서 들거라.”
“넬라는 아직 이니?”
아이들 사이에서 넬라가 보이지 않자 블레인 백작 부인이 문가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 넬라는 지금 오고 있어요. 부인.”
하녀인 라일라가 얼른 대답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모의 손을 붙잡은 넬라가 들어왔다.
“넬라, 잘 잤니?”
“……네.”
여전히 작은 목소리지만 이제 대답은 꼬박꼬박 잘하게 된 넬라까지 식탁에 앉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가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들뜬 표정의 백작을 살피던 아만이 눈치 좋게 묻자, 백작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는 좋습니다만 교수님을 아침부터 귀찮게 해드리는 것이 아닌지…….”
“하하, 아닙니다. 저 역시도 좋습니다. 그럼 식사 후에 같이 가보시지요.”
“예. 그럼 제가 기사들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백작님과 저 둘이서 가도 충분합니다.”
“예? 하지만…….”
아만이 강한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색이 영지의 주인인데 호위 기사마저도 대동하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았다.
“하하, 걱정하지 마시지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말입니다.”
말을 마친 아만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자 백작 역시도 더 말을 얹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
식사를 마친 아만과 백작이 백작저를 나섰다.
“자, 가시지요.”
“말도 필요 없습니까?”
“예.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 아만이 앞서 걷기 시작하자 백작이 그 뒤를 따랐다.
“자, 여깁니다.”
“예?!”
백작저를 벗어나지도 못했다.
아만이 백작저 후원을 지나 후문 앞에서 멈춰 서자 백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이곳에서 마나석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을 시작으로 저쪽 저 큰 나무 아래까지 분명히 마나석이 묻혀있습니다.”
“큰 나무라 하심은…… 저, 저기까지요!?”
후원 너머에 있는 곳은 평야나 다름없었다. ‘척박한 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타타에는 숲을 제외한 곳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아만이 가리킨 곳에는 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다. 그것도 백작의 눈이 닿는 곳에 있는 딱 한 그루의 나무. 그 큰 땅 아래에 묻힌 마나석이라니!
백작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 발짝 나아가 후문을 열었다.
“진, 진짜 저 나무 아래까지 마나석이 파묻혀 있다는 겁니까?”
“예, 제가 느낀 바로는 그렇습니다.”
“그, 그럼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파내어야…….”
“먼저 광부들을 고용하시지요.”
“아, 광부!”
갑작스레 닥친 행운은 백작의 머리를 마비시켰다.
“하하, 예. 광부가 있어야 파내실 것 아닙니까. 아, 잠시 물러나 보시겠습니까?”
“예?”
물러나라는 아만의 말에도 백작이 멀뚱히 서 있자, 아만이 손을 들어 백작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위험합니다.”
싱긋 웃어 보인 아만이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백작은 두어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대지여 일어나라! 어스 퀘이크!”
-쿠르릉…….
아만이 손을 높게 치켜들자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 어!”
갑작스레 흔들리는 대지에 백작이 얼른 문을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쿠르릉…… 콰쾅!
흔들리던 대지는 어느새 한 곳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진동이 멈추자 그곳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있었다.
“자, 됐습니다!”
부하게 일어나는 흙먼지에 소매로 제 입을 가린 아만이 활짝 웃었다.
“쿨럭, 쿨럭…….”
흙먼지에 기침하던 백작이 뻥 뚫린 구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서부터 시작하시면 딱 알맞겠습니다.”
백작저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뚫린 커다란 구멍은 꽤 깊었다.
“이 정도면 백작저에서도 꽤 떨어져 있고 백작님께서도 자주 들여다보실 수 있는 거리니 알맞지 않으시겠습니까?”
“크흑…….”
아만의 세심한 배려에 결국 백작은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 어!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러운 백작의 눈물에 당황한 아만이 우왕좌왕하며 백작을 살폈다.
“크흑…… 죄송합니다.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구멍을 너무 깊게 파서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이게 광산이라는 게 원래…….”
“아니, 아닙니다! 제가…… 너무 너무나 감사해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왜 울고 그러십니까…….”
백작은 제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크흑…… 크흐읍!”
어느새 콧물까지 들이마시며 흐느끼던 백작이 아만의 손을 꼭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꼭 갚겠습니다!”
“아닙니다. 루카스 군이 제게 와준 것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진심이었다. 아만은 이 안에 파묻힌 마나석 따위는 어차피 안중에도 없었으며, 그저 귀찮아질까 싶어서 마법으로 마나석의 기운을 감춰둔 것이었다.
사실 아만이 내어준 이 광산에는 꽤 진귀한 것이 많이 들어있었다.
각종 보석류는 물론이고, 그중에 품질 높은 마나석 역시도 존재했다.
이 광산의 등장으로 인해 백작가는 크게 일어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루카스의 등장으로 자신이 얻게 될 진귀한 아티팩트와 미래의 신에게 받을 가호에 견줄 것은 아니었다.
‘훗.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나는 더 귀한 걸 얻을 거지롱!’
백작의 감사 인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아만이 내친김에 선물을 하나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 백작님. 잠시만 계세요.”
“……예?”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로 단숨에 내려간 아만이 바닥을 헤집어 무언가를 찾아들었다.
“마나석입니다!”
“예!?”
아만이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든 돌을 본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떻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곳에 마나석이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크흑!!”
마나석의 발견으로 백작의 눈물샘이 다시 한번 터지고 말았다.
“아, 아니 왜 자꾸…….”
마나석까지 직접 하나 발굴해 줬건만 백작은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더 크게 울고 있었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
아만이 직접 캐온 마나석과, 백작저에서도 훤히 보이는 뻥 뚫린 구멍 덕분에 한바탕 모두 난리가 났다.
“우와, 이게 정말 마나석이에요?”
“그렇단다.”
“정말 커다란 크기입니다.”
마법석을 눈앞에 둔 아이들이 그것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흑! 여보, 우리도 이제… 이제……!”
“그래요. 부인… 정말 고생 많았소…….”
마법석을 본 블레인 역시도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녀의 눈물샘을 더욱 자극했다.
“루카스. 이제 더는 걱정할 필요 없단다… 우리 아가… 얼마나 힘들었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아들…… 어쩜 이리도 성숙하고 어른스러운지…….”
백작과 백작부인은 제 아들이 여태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 걱정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생활을 하며 분명 용돈이 부족했을 텐데도, 루카스는 단 한 번도 돈이 부족하다거나 투정을 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루카스는 부자 친구인 스키르를 둔 덕에 힘든 적이 없었다.
용돈은 남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 턱이 없는 백작부부는 제 아들을 꼭 끌어안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옘병…… 숨 막히게…….’
생각은 이렇게 했어도 자신을 꼭 안은 블레인의 품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루카스였다.
***
다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점심 식사 자리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었다.
식사를 마친 루카스와 아이들은 정원에 나와 따스한 초가을의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자, 이제 다시 마법 연습하자.”
아이들의 마법 실력을 책임지고 끌어올려야 했다.
아무리 인간들의 관심이 싫다 한들, 제일 아래인 기초반에서 언제까지고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카스는 자신이 반을 올라갈 때마다 이 아이들을 같이 데려가는 게 목표였다.
그러려면 이 아이들의 조악한 마법 실력을 당장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루키, 우리 낮잠 조금만 자면 안 돼? 으아아…….”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니 졸음이 몰려오는지 아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래…… 그러자.”
아이들의 풀린 눈을 보니 방법이 없었다. 졸린 상태에서 마법 수련을 한다 한들 효과도 없을 것이었다.
“하아암…….”
“후아아암…….”
하품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그 덕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곁에 있던 루카스까지 하품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루카스 군?”
따뜻한 햇살 아래 슬슬 눈이 감기던 때였다.
“아, 아만…… 교수님.”
낮잠을 방해받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흐려진 정신 덕분에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자연스럽게 반말을 할 뻔한 루카스가 얼른 정신을 고쳐잡았다.
살짝 미소 지은 아만이 턱짓으로 자신을 잠시 따라오라는 표시를 해 보이자, 루카스는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따라나섰다.
‘잠 와 죽겠는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앞서갔다.
후미진 정원으로 자신을 데려온 아만이 뒤로 짠! 하고 돌아서더니 활짝 웃었다.
“저 잘했습니까?”
“……갑자기?”
“갑자기라뇨! 로드께서 칭찬해 주실 걸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루카스는 아만의 해맑은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떠오른 옛 기억에 부드럽게 미소 지은 루카스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잘했다.”
아만의 진명, 아마록 테리디어는 그런 드래곤이었다.
작은 것이라도 있으면 자신을 쪼르르 찾아와 칭찬받길 기대했었다.
제 아비인 하셀에게 가 말해보라 해도, 하셀에게 아들인 아마록을 챙기라 그리 일러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자신이 크게 혼을 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또 찾아와 귀찮게 굴었으며, 길을 가다가 괜찮아 보이는 마나석만 발견해도 그것을 들고 자신의 레어에 찾아와 귀찮게 굴었었다.
“하하, 제가 이 한 귀퉁이를 내어줄 때 말입니다?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로드를 위해 이 땅을 인간에게 쾌척한 것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그랬듯 자신의 공로를 제 입으로 줄줄 읊어대는 아만을 지켜보던 루카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아주 잘하였다. 어쩜 이리도 속이 깊은지…… 네 아비인 하셀보다 네가 두 배, 아니 열 배는 낫다!”
제 아비인 하셀보다 열 배가 낫다는 말을 들은 아만의 눈이 두 배, 아니 세 배는 커다래졌다.
“정, 정말이십니까?!”
“그럼! 네가 훨씬 낫지!”
“로, 로드!”
어린아이를 어르듯 해준 원초적인 칭찬에 아만의 어깨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내친김에 그럼 저 뒤편까지 다 캐라고 할까요!?”
“하하하! 아니,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네 땅을 이렇게 막 주면 되겠느냐? 게다가 너무 큰 것을 쥐여주면 인간들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로드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이 아만이 참아보겠습니다. 하하하!”
제 몸에 반밖에 오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었지만, 유희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드래곤들의 여러 모습 덕분에 서로가 전혀 어색하지는 않았다.
‘귀여운 것… 내가 꼭 창고 찾아주마……! 그게 안 되면 네 아비한테 줬던 레어라도 다시 뺏어주마!’